Sermon

예루살렘에서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조회수 : 217회

본문 : 열왕기상 15:1~9
주일오전예배 | 2020-09-13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인 존 맥스웰(John C. Maxwell)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쉽을 키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위 위로 등대 하나가 우뚝 서 있고, 그것을 관리하는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등대의 빛을 항상 밝히기 위해 매 달 한 번씩 공급처로부터 기름을 받아왔습니다. 등대는 해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한번은 불쌍한 할머니가 등대지기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돈이 없어 굶어 죽을 형편이 되었다네. 기름을 조금만 주면 팔아서 끼니라도 대신할 수 있을 테니 기름을 조금만 주게.” 동정심에 등대지기는 할머니에게 기름을 조금 주었습니다. 며칠 뒤 동창생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급하니 기름을 조금만 주게.” 등대지기는 인정상 또 기름을 조금 주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아내가 찾아와 아들의 학자금을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등대지기는 기름을 팔아 아들의 학자금을 해결했습니다. 그날 밤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배 한 척이 침몰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침몰 원인은 배가 표류하는 동안 등대의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등대에 그만 불이 꺼진 것이었습니다. 상부에서는 등대지기를 질책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등대를 밝히라는 것입니다.” 등대지기의 사명은 캄캄한 바다에 등대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기름을 준 것입니다. 이 기름은 오직 등대를 밝히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용도로 써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매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땅 속에 있는 굼벵이 한 마리까지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은혜를 받고 사는 피조물이 사람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남편에게, 자녀에게, 아니면 놀고먹는데 써야 할까요?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엉뚱한 곳에 쓰다가 눈이 뽑혀 짐승처럼 연자 맷돌을 돌렸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곳에 쓰지 마세요. 은혜를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쓰세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빛입니다. 이 시간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이스라엘이 점점 빛을 잃어가다  

첫째, 빛을 잃어가는 이스라엘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두운 시대에 이스라엘을 밝힌 등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등불이 후손들에게 가면서 점점 빛을 잃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재위 초기에는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나라를 잘 다스려 아버지 다윗 보다 이스라엘을 더욱 환하게 밝힌 등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위 후반에 사치와 쾌락에 빠졌고 우상에 깊이 미혹됐습니다. 여호와께서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우상을 따르지 말라고 하셨지만 솔로몬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마음도 우상에게 미혹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쪼개집니다.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12개 지파 중 10개 지파와 혁명을 일으켜 이스라엘 북쪽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두 개 지파 유다와 베냐민만이 이스라엘 남쪽에서 르호보암 왕을 따릅니다. 이때부터 남쪽을 유다, 북쪽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부터 북쪽 이스라엘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의 길로 나갑니다. 르호보암도 초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더니 나라가 견고해지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립니다. 이 르호보암의 악행을 그 아들 아비얌(BC 913~BC 911)이 그대로 답습합니다.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다윗 이후 왕들의 악행과 우상 숭배로 이스라엘은 그 빛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빛을 잃게 된 배경에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을 따라 하나님을 버리게 된 배경에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열왕기의 기자는 유다의 2대 왕인 아비얌의 모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사가들이 거룩한 역사를 기록하면서 종종 왕의 모친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왕의 모친이 왕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것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쳐 나라의 역사를 흔들어놓았는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비가 700명이었고 첩이 300명이었습니다. 아비얌의 아버지 르호보암은 부인이 18, 첩이 60명이었습니다. 아들이 22명 딸이 60명이었습니다. 왕이 나라의 많은 일들을 보면서 수십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다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한 번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일 년에 몇 차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자들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의 인품이나 신앙에 많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왕자가 어머니에게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좋은 감화를 받게 되면 나라에 유익했지만 반대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면 나라가 결딴나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비얌의 모친은 마아가로 아비살롬의 딸이라고 했습니다. 아비살롬은 압살롬을 늘여서 발음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로 아버지를 반역한 왕자입니다. 딸이라고 했지만 연대를 볼 때 손녀입니다. 딸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바트인데 이 말에는 딸이라는 뜻도 있지만 손녀라는 뜻도 있습니다. 히브리 개념에서 딸이라는 말은 그 후손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역자의 핏줄이 다 반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가가 굳이 반역자였던 증조 할아버지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아비얌의 악의 뿌리가 어디서부터였는지 성경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끊어버리기 어려운 깊은 악의 쓴 뿌리가 있습니다. 사가는 압살롬의 손녀였던 마아가는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마아가는 혐오스러운 아세라(Asherah) 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아세라는 고대 셈족들의 여신으로 바알신의 부인입니다. 바알은 고대 근동의 최고의 신입니다. 그러니까 아세라는 최고신의 부인인 것입니다. 또 아세라는 바다 위를 거니는 여인으로 불렸습니다. ‘혐오스러운이라는 말을 개역성경은 가증한이라고 번역했습니다. NJB음란한’(obscenity)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랍비들에 따르면 아세라 우상의 모양이 남근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고대 종교들은 성적으로 아주 문란했습니다. 아세라는 망측하고 혐오스러운 우상이었습니다. 마아가는 이런 혐오스러운 목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해괴한 종교의 전도자였습니다. 이 망측한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자란 아비얌에게서 바른 통치를 기대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는 아버지, 얌은 바다라는 뜻으로 아비얌은 바다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얌은 얌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얌신의 아버지또는 나의 아버지는 얌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비얌이 역대하 12:16에서는 아비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비야는 아브에 여호와를 뜻하는 예흐와의 단축형인 야흐가 결합된 형태로 나의 아버지는 여호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비얌과 아비야, 둘 중에 어떤 이름이 맞을까요?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 중에 하나가 아비얌은 아비야의 오기로 봅니다. 성경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아비야를 아비얌으로 잘 못 썼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오기가 있었을까요? 성경학자들은 그 이유를 히브리어 문자적 구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을 옮겨 쓰는 서기관들이 이 왕의 행적을 볼 때 도저히 아비야라는 이름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비야를 아비얌으로 쓰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서기관들의 그의 삶을 볼 때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다라는 이름을 도저히 붙일 수 없을 정도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얌신은 나의 아버지시다라는 이름의 붙여진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추론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이 이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저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성도라는 이름, 교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목사 같지 않은 목사, 권사 같지 않은 권사, 집사 같지 않은 집사로 살면 안 됩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에 맞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비얌의 악행 뒤에는 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르호보함의 악행 뒤에도 우상숭배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왕상14:21). 솔로몬 뒤에도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돌이키게 한 우상숭배자들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을 건설했고 그 아들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더욱 부강한 나라로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영광이 아들 대에 가서 허물어지고 맙니다. 세상 영광이라는 것은 참으로 허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점점 빛을 잃어갔습니다. 구약의 사가들은 그 하나의 이유를 왕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왕 하나로 인해 나라가 부강해지기도 하고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빛을 잃기도 하고 빛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가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 왕의 배후에 있는 한 여성을 지목합니다. 여성분들은 우리나라, 우리사회, 하나님의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 바른 신앙의 감화를 미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입니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지만 그 남성을 지배하는 것은 여성입니다.

2. 예루살렘의 등불  

두 번째로 예루살렘의 등불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윗 이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빛을 잃으며 국운이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등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다윗(BC1040 ~ BC962)BC 962년경에 죽었습니다. 아비얌은 BC 913~ BC 911년에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다윗이 죽은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등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 때문이라고 하지 않고 다윗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다윗이 살아 있는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아 있습니다. 다윗은 살아있을 때도 예루살렘의 등불이었고 죽은 후에도 예루살렘의 등불이었습니다. 다윗이 살아있을 때는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했고(삼하21:17) 다윗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예루살렘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영원한 예루살렘의 등불입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왕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등불을 주시겠다는 말은 정치적인 부흥의 등불과 영적인 부흥의 등불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등불일까요? 사람이 등불입니다. 여기 등불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니르입니다(삼상21:17, 등불은 게르). 니르는 등불, 등대, 등잔이라는 뜻입니다. 니르는 , 빛나다, 타다라는 뜻을 가진 누르에서 온 말입니다. 성경에서 등불(니르)은 자손(후손)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등불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등불 같은 사람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우상 숭배와 배반, 르호보암의 우상 숭배와 우둔함, 그리고 아비얌의 우상숭배와 악행으로 이스라엘의 국운은 점점 기울어져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빛은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도록 다윗을 위하여 등불 같은 사람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을 세워라고 했는데 여기 세운다는 말이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등불 같은 사람을 일으키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우리사회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 등불 같은 사람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세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등불일까요? 첫째, 정직한 사람이 등불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지 않는 것이 등불입니다.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다윗에게는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주홍글씨가 있었습니다. 항상 이 주홍글씨가 다윗을 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 일 외에는 평생 동안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주홍글씨가 있습니다. 그 주홍 글씨 앞에 겸손합시다. 정직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솨르입니다. 야솨르는 정직한, 곧은, 옳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가장 적합한, 좋은이라는 뜻입니다. 야솨르는 ‘(길을) 똑바로 만들다, 길로 똑바로 행하다는 뜻의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정직은 똑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정직은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곧게 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정직은 적합한 것입니다. 정직은 편협한 것이 아닙니다. 정직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보다는 영혼에 좋은 것입니다. 육신에 좋은 일을 하기 보다는 영혼에 좋은 일을 하세요. 다윗은 아주 똑바로 행했습니다. 다윗은 똑바로 행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여러분! 똑바로 섭시다. 그리고 똑바로 갑시다.  

성경 기자가 정직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정직이라는 말이 동방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불렸던 욥에게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개역개정). 그런데 다윗에게는 다섯 번 사용됐습니다. 또 정직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도 다윗입니다. 시편에 정직이라는 말이 29번 나옵니다(개역개정). 그 중에 15번을 다윗이 사용합니다. 시편에는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시가 여러 편 있습니다. 그중에 다윗의 시로 여겨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9번 중에서도 상당수가 다윗이 사용한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입으로 끊임없이 정직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입에 늘 정직을 달고 살았습니다. 정직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다윗이 왜 이스라엘의 등불이었을까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기 때문입니다. 정직이 나라의 등불입니다. 정직이 교회의 등불입니다. 정직이 가정의 등불입니다. 정직이 크리스천의 등불입니다. 정직을 잃으면 교회는 등불을 잃는 것입니다. 정직합시다. 거짓말 하지 맙시다. 거짓은 어두움입니다. 2:13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라고 했습니다. 정직한 길을 떠나면 어두운 길로 들어갑니다. 정직이 빛입니다. 정직이 등불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국대학이 하버드 대학교라고 합니다. 아마도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드라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우리나라 학생들 중 절반이 퇴학을 당하는데 그 이유가 컨닝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컨닝 하다가 퇴학당하는 학생은 한국학생 밖에 없다고 합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2년 안에 80퍼센트가 퇴사를 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퇴사를 당한 사람들의 80퍼센트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라고 말합니다. 사회는 적당한 거짓말을 조장합니다. 그런데 망하는 것은 거짓말 때문입니다. M.B.에디는 진실은 불멸이요 거짓은 필멸이다.”라고 했습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정직은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정직합시다. 정직이 등불입니다. 정직한 국민, 정직한 나라, 정직한 나라가 부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등불입니다. 5절 하반 절에 다윗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어기다는 말이 히브리어 쑤르입니다. 쑤르는 돌이키다. 빗나가다, 떠나다, 결론에 이르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일에서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명령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일에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는 사람이 등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의 귀에 수 없이 들려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세요. 그래서 다윗처럼 작게는 가정에 크게는 교회와 사회에 살아있을 때도 등불이 되고 죽은 후에도 등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모두가 다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그 나라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등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그 가족이 다 잘 못해서가 아니라 그 가정에 등불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깨지는 것은 교인들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 교회에 등불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인이 적더라도 등불이 있으면 그 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교인이 많더라도 등불이 없으면 그 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다 잘 못하더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등불이 있으면 그 공동체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등불이 되세요. 가정에, 교회에 등불이 되세요.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예루살렘의 등불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등불이 되셔서 세상을 찬란하게 비추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세상의 등불이 됩시다.

3. 마지막에 받은 은혜의 이유   

마지막으로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이 인생 끝에 받은 은혜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 땅엔 전쟁만 있었습니다.  

  •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 땅엔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의 시대에도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가는 아비얌의 유일한 업적 하나를 거룩한 역사에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사는 날 동안 전쟁만 했다는 것입니다. 왜 전쟁을 했을까요? 아버지 대에 둘로 나누어진 땅을 회복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선친 르호보암에게 여로보암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싸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두 나라는 한 민족입니다. 다른 민족이 아닙니다. 한 형제입니다. 또 두 나라가 나누어진 이유는 솔로몬의 배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살 길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하지 않고 전쟁만 했습니다. 전쟁이 아비얌이 왕이 돼서 한 유일한 일입니다. 다른 업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싸움만 하다가 갔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샬롬을 약속한 샬롬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에 약속된 복이 없어졌습니다. 샬롬의 땅에 약속된 샬롬이 없어졌습니다. 왜요? 불순종 때문입니다.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악행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샬롬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샬롬의 땅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도 샬롬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순종 때문입니다. 내 안에 숨은 우상 때문입니다. 정욕 때문입니다. 악의 쓴 뿌리 때문입니다. 순종하세요. 회개하세요. 그래야 샬롬이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샬롬을 불순종으로 깨뜨리지 마세요. 아비얌은 샬롬의 땅에서 불순종으로 샬롬을 깨뜨리는 일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비얌 같은 악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인생 끝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8> 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일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그 조상 다윗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비얌 같은 악한 사람에게 마지막에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그것은 그의 조상 다윗 때문입니다. 아비얌이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등불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나를 구속해주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 등불이 됐던 누군가의 기도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마세요. 다윗이 살아있을 때 얼마나 밝은 등불이었으면 3대 손인 아비얌 같은 배역한 사람에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다윗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그 후손들에게 예루살렘의 등불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등불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등불이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등불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등불이 되어주세요. 다윗처럼 밝은 등불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 가정, 내 직장을 밝힐 수 있는 등불이 되어주세요. 나 때문에 내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등불이 되어주세요. 나 때문에 교회가 복을 받고 나 때문에 나라가 복을 받도록 등불이 되어주세요. 나 때문에 자녀가 저주를 받으면 안 됩니다. 나 때문에 자녀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교회가 저주를 받고 나 때문에 우리 사회가 저주를 받으면 안 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등불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등불을 버렸습니다. 가정도 쉽게 버리고 교회도 쉽게 떠납니다. 직장도 쉽게 버리고 나라도 쉽게 버립니다. 돈 있으면 그냥 이민 가버리면 됩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너무 쉽게 떠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저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나를 놀고먹고 마시는 데에만 쓰지 마시고 주님을 위해 주님의 불을 밝히는 데에 쓰세요. 우리시대 등불이 필요합니다.  

<62: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이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왜요? 시온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등불이 됐던 다윗과의 언약 때문입니다. 다윗 때문에 하나님이 잠잠하시지도 쉬시지도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입니다. 등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을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그리고 우리 교회를 위해 쉬시지 않고 일하시도록 우리가 등불이 됩시다. 여러분이 등불이 되어주세요. 이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등불이 되어주세요. 등불이 필요합니다.

이전글 하나님의 맛을 경험하라
다음글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