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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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21:15~22
주일오전예배 | 2020-09-06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모퉁이돌 선교회>에서 발간하는 카타콤 소식지난 8월호에 실린 이삭 목사님의 복음의 밀수꾼이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라는 글 중에 일부분입니다.  

     35년 모퉁이돌 사역은 어둠 속에서 이뤄지고는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어두운 밤에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둡지 않았더라면 사역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밤이면 민들레 사역이 이뤄지고는 했습니다. 성경 배달은 감시하는 공안원들이 잠을 자는 밤에만 가능했습니다. 그런 어두운 시간에 우리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엔 밤이 길었습니다.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얼기에 힘들었지만, 오히려 밤이어서 안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밤에, 빛이신 하나님은 우리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깊은 밤이 되어갑니다. 분명 이 어두움은 전염병으로 인해 더욱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런 어두움 속에서 우리는 일하게 됩니다. 어둡기 때문에 가능하고, 어두움이 오히려 방법을 찾는 기회로 선용됩니다. 그 세월은 35년을 보냈습니다. 남들이 자는 밤에 일하고는 했습니다. 지금이 일할 때입니다.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밀수꾼은 어두운 지금을 기다립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잠든 시간이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저의 첫 성경 배달은 상해에서 이뤄졌습니다. 다음 성경은 어두운 밤 하얼빈에서 배달되었습니다. 강을 건너 북으로 들어가는 성경도 어김없이 밤에 운반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밤에 일하십니다. BC 1103년에 사무엘 선지자가 출생합니다. 때는 사사 시대 말입니다. 사사기 마지막장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한 마디로 어둠의 시대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은 때입니다. 사무엘상 3: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고 했습니다.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말은 아주 희미하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이 태어나던 때는 하나님의 등불이 아주 희미하던 때입니다.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를 밝혔던 인물이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을 이스라엘 1대 왕으로 세웁니다. 사무엘이 밝혔던 등불을 하나님은 사울이 밝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다시 그 등불을 희미하게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등불을 밝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둡게 하고 있습니까? 사울 시대 희미해진 등불을 다시 밝게 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이 시간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이 하신 일  

먼저 다윗 왕국이 어떻게 견고히 설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무엘서는 BC 1100년 정도부터 BC 970년까지 약 130년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한나, 사무엘, 사울, 다윗, 네 사람의 스토리입니다. 그 중에 다윗 스토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무엘하 21장은 사무엘서의 끝부분으로 다윗의 생애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다윗 왕 치세 초기에 있었던 블레셋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기 역사를 말기 역사에 끼어넣은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과 왕이 된 직후에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수가 블레셋이었습니다. 다윗왕은 여러 차례 블레셋과 싸워 항복을 받아냅니다(삼하8:1). 본문은 그 여러 번의 싸움 중에 하나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기자가 다윗 왕 치세 초기에 있었던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하나를 다윗의 일대기를 정리하면서 사무엘서 끝에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 왕국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아주 견고하게 살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윗 왕국이 든든히 설 수 있었던 첫 번째 배경은 다윗 왕국을 위한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국이 세워지는데 다윗 본인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도자 한 사람으로만 나라가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 이외에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 왕국에는 바로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비새입니다. 다윗은 청소년의 나이에도 골리앗 앞에서 기가 죽지 않을 정도로 기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칭송을 한 사람입니다.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자 다윗이 지쳤습니다.  

<삼하21: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피곤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우프입니다. 우프는 실신하다, 기진맥진하다, 탈진하다는 뜻입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물을 마시지 못해 탈진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집을 떠나 밖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지친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으로 심신이 아주 지쳐 있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이 블레셋 장수 이스비브놉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비브놉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윗을 치기 위해 달려듭니다. 다윗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이스비브놉을 죽이고 다윗을 구한 사람이 아비새입니다. 이스비브놉은 거인족입니다. 최신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아비새는 여러 모로 불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생명을 구합니다. 아비새는 다윗을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운 것 같습니다. 아비새는 다윗 왕 초기 때부터 말기까지 한결같이 다윗 곁에서 함께 했던 이스라엘의 용사입니다. 다윗 왕국에는 충성스러운 용사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왕국입니다. 주님께 아비새 같은 충성스러운 용사가 필요합니다.  

다윗 왕국이 굳건히 설 수 있었던 두 번째 배경에는 불리한 상황을 역전 시킨 역전의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 조건과 무기에 있어서 많은 열세에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비새,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 네 사람은 이 상황을 역전 시킨 용사들이었습니다. 본문에 거인족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거인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라파입니다. 하라파는 가라앉다는 의미입니다. 땅이 가라앉을 만큼 몸이 장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곰이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습니다. 발자국이 남을 만큼 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나단이 죽인 거인은 손가락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나씩 더 있을 만큼 손과 발이 컸습니다.  

  •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이 네 명의 거인들은 단순히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최신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이스비브놉이 들고 있는 창의 무게는 300세겔이었습니다. 1세겔은 11,4g입니다. 300세겔이면 3.42kg입니다. NIV 성경은 창날’(spearhead)의 무게가 300세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창날만 3.42kg이었다면 창의 전체 무게는 굉장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스비브놉은 새 칼로 무장을 했습니다. 칼은 새로울 것이 없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새 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처음 보는 신형 무기를 이스비브놉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신무기가 이스비브놉에게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블레셋의 핵심 전력이었을 것입니다. 또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는 베틀 채 같은 창자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블레셋은 해양 민족입니다. BC 3000년에 에게해에는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에게해 문명이 발달합니다. 크레타 섬 사람들은 BC 2000년 이후에 활발한 해상 무역으로 한층 발달된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다가 BC 14세기 즈음에 이 섬에 재난이 닥칩니다. 그때 크레타 섬 사람들은 배를 타고 블레셋 지역으로 이주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가나안 본토인들보다 아주 발달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배경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체적인 우세와 신무기를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달한 문명과 신체적 열세를 뒤집은 용사들이 아비새,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 네 사람입니다. 코로나19로 교회가 큰 열세에 처해 있습니다. 코너에 몰렸습니다. 점점 세상은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빛을 일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어둠의 시대에 아비새, 십브개, 엘하나, 요나단 같은 영적 용사가 한국교회에 나타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래서 이 열세에 빠진 한국 교회 상황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역전되기를 기다려봅니다.  

본문은 다윗의 나라가 견고히 설 수 있었던 세 번째 배경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22절에 앞의 네 사람 가드의 거인 족 소생이 그의 부하들 손에 다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아비새,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 네 사람은 다윗의 뛰어난 용사들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한 용사들이 아닙니다. 혼자 블레셋 병사 800명을 죽은 요셉밧세벳이라는 용사가 있었습니다. 혼자 블레셋 군대를 막아선 엘르아살, 삼마라는 용사가 있었습니다. 네 사람보다 훨씬 강한 용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 명의 거인 족은 블레셋의 가장 강한 용사들입니다. 블레셋의 가장 강한 용사들을 이스라엘의 가장 강한 용사들이 무찌르지 않았습니다. 그 보다 못한 용사들이 무찔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무기 이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들려져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칼과 단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의 승패는 힘에 있지 않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 다윗 왕국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견고히 섰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비해 모든 것이 열세이었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150년 동안 수많은 영적 전쟁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에는 신사참배 우상과 영적 전쟁을 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는 공산주의와 영적 전쟁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혼란, 가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가지 사건으로 한국 기독교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소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소원합니다. 사울처럼 버림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두운 시대에 다윗 왕국이 견고히 섰던 것처럼 오늘 우리 시대에 교회가 견고히 서기를 소원합니다.

2.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둘째, 이스라엘의 등불이라는 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윗이 이스비브놉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아비새가 다윗의 생명을 구합니다. 위기일발이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추종자들은 깜짝 놀라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는 저희와 함께 싸움터에 나서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의 추종자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등불은 생명, 번영, 영광을 상징합니다. 등불이 활활 탄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번영을 상징합니다.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죽음은 곧 이스라엘의 쇠퇴, 망함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죽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라는 말은 잠시 잠깐만 꺼지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영원히 꺼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결코 꺼지면 안 되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등불입니다. 영원히 타올라야 할 등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 되게 했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다윗은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을까요? 전쟁에 나갈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를 읽다보면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었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사무엘하 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5:19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다윗은 삶의 매 순간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을 추종자들이 보았습니다. 성공하십시오. 하지만 성공이 등불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세요. 하지만 돈이 등불은 아닙니다. 믿음이 등불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등불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등불이 되세요. 하나님의 믿음의 등불이 되세요. 가정, 직장의 믿음의 등불이 되세요.  

둘째, 언약의 등불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등불이 된 이유는 다윗에게 언약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하21: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은 다윗과 후손들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로보암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의 길입니다. 여러보암의 길은 죄악의 길이고 다윗의 길은 의의 길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은 우상숭배의 길이고 다윗의 길은 여호와 경외의 길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은 사망의 길이고 다윗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등불을 켜는 이유는 길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등불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따라가야 할 길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 길이 다윗의 길입니다.  

  • <왕상15: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 <대하34: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등불이 다윗이라면 오늘 이 시대의 등불은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등불입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후손에게 등불을 주셨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는 교회와 우리에게 등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등불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이 등불을 끄고자 합니다. 이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세요. 이 등불을 지키세요. 17절에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임금님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자 합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우리가 지킵시다. 교회의 등불을 지킵시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사세요.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해지려고 애쓰세요. 지금 우리는 정말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 보다 더 정직해야 합니다. 더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 착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시대의 등불이 될 수 없습니다.  

리처드 백스터라는 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금 있는 곳의 촛불로 사용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등대로 당신을 쓰시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촛불이 됩시다. 이 코로나19 시대에 교회, 가정, 직장에서 촛불이 됩시다. “저 사람 코로나19 걸려서 직장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코로나 귀신은 저 인간을 안 잡아 가나.”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당신은 코로나19 걸리면 절대로 안돼요. 항상 조심하세요. 당신은 우리 직장에 꼭 있어야 해요.”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세요.  

오늘 우리는 어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세요. 하지만 너무 꽁꽁 숨어계시지 마세요. 강하고 담대하세요. 그리고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등불로 해야 할 일을 찾으세요. 이삭 목사님의 글을 마저 읽어보겠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두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내야 합니다. 이럴 때 빛의 일을 해야 합니다. …… 이 밤에, 전염병이 창궐한 이 밤에.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이가 여러분과 저를 빛을 발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어둡지요? 빛의 사람들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이 빛으로 밝히라고 보내셨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러나 그리스도인답게 사세요. 코로나19로 어두운 우리 사회를 비추는 영적 등불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찬식 때 포도주를 먹는 것을 보고 반대자들이 피를 먹는다는 이유를 달아 박해의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로마 시내의 한 복판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 굴이 바로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입니다. 그 무렵 로마시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 시내 길거리 곳곳에 죽은 시체로 널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체에 손을 대면 전염되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 시내는 사람들의 시체가 거리마다 쌓여 있었고 시체 썩는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밤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시내에는 시체가 모두 치워지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고관으로부터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이 더해갔습니다. 도대체 검정 옷을 입은 저들은 누구일까? 로마 정부에서 자세히 알아보니 카타콤으로 숨어들어갔던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풀렸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대신에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시신을 수습한 성도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8절에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능력이 기독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그리스도인의 행함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로마 초대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를 치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코로나19가 무서워 꽁꽁 숨어 있는 세상 사람들처럼 집에만 꽁꽁 숨어 계시지 맙시다. 어두운 때에 직장과 사회에서 크리스천으로 주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읍시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한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 믿음 하는데 어둠의 시대에 세상에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하고 애씁시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와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애씁시다. 복음의 등불을 지킵시다. 예배의 등불,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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