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영혼으로 터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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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5:29~34
주일오전예배 | 2020-07-26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가데스(구별된, 성별된)에서 가나안 땅은 걸어서 3일 길입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 10명은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 60만 명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은 북쪽인데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위로 가야 하는데 아래로 내려간 것입니다. 후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지만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사건 이후에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꾸로 간 것입니다. 반대로 간 것입니다. 코앞에 있는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반대로 내려간 것입니다. 결국 60만 명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60만 명은 40년을 살았지만 거꾸로 간 인생들이 아닐까요? 40년 이스라엘 광야 역사는 우리에게 거꾸로 가는 인생을 살지 말라는 영적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을 불행할 수밖에 없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 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불행하도록 살아요. 참 인생의 아이러니입니다. 또 인생을 실패할 수밖에 없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패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실패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거꾸로 가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지 몰라요. 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 가고 계십니까? 거꾸로 가시면 안 됩니다. 저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은혜로 가야 합니다. 심판으로 가면 안 됩니다. 지옥으로 가면 안 됩니다.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본문에 12년 동안 거꾸로 가는 인생을 살던 여인이 하나 나옵니다. 26절에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좋은 의사를 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은 다 날렸습니다. 인생이 점점 꼬여 갔습니다. 살아보려고 애를 썼는데 지나고 보니 죽으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여인은 인생을 거꾸로 살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이어서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깨끗함을 얻은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1. 곧 병의 근원이 마르매  

여인은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 끝에 손을 살짝 댔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을 누가 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모르셔야 합니다. 누가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려는 동작을 알아차려도 안 됩니다. 왜요? 여인은 누구와도 접촉하면 안 되는 부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볼 때 여인의 손끝이 예수님의 옷 끝에 스치듯이 정말 살짝 닿았습니다. 닿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살짝 스쳤습니다. 그럼에도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옷에 닿는 순간 여인의 혈루증이 깨끗해졌습니다. 성경 기자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병이 치료됐다고 했습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혈루의 근원이 곧 마르매라고 했습니다. 병에는 근원이 있습니다. 그 병의 근원이 제거된 것입니다. 그것도 만지는 순간 즉시로 제거됐습니다. ‘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파라크레마입니다. 파라크레마는 즉시, 당장, 이라는 뜻입니다. 여인이 옷을 만지는 순간 즉시로 병의 근원이 사라졌습니다. 병의 근원만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 몸에 있던 병의 외적인 증상까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고 했습니다. 혈루라는 말은 피가 흐른다는 뜻입니다. 방금 전까지 여인의 몸에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흘러나오던 피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병의 증상과 병의 흔적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 흐르던 피가 어디로 갔을까요? 그 병의 흔적들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그것이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요?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병의 근원과 병의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몸이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여인은 자신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즉시로 알았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외적으로 나타나는 병의 증상과 속에 있는 병의 뿌리까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마가는 혈루증 여인의 치료 스토리를 기록하면서 <근원>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나 누가는 <근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그냥 <혈루증이 그쳤다>고만 했습니다(8:44). 마태는 병의 치유는 기록하지 않고 구원받은 것만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근원이 치료됐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근원이 말라버렸다고 했습니다. “곧 혈루의 근원이 마르매근원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페게입니다. 페게는 원천, 근원, ,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병은 원인이 있습니다. 그 병의 원인이 제거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의 근원을 치료하셨습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병의 증상만을 없앤 것이 아닙니다. 병의 증상과 병의 뿌리를 완전히 마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근원까지 완전히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치료는 완전한 치료입니다.  

제가 전에 EBS에서 이시형 박사의 강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시형 박사는 경북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의대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으로 계십니다. 이시형 박사가 의과대학을 입학해 첫 번째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의사는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말이었답니다. 교수님은 의사는 약을 써서 병을 억제할 뿐이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지 못한다.” 저는 의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교수님이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습니다. 진통제를 먹으면 금방 통증이 사라져요. 참 신기합니다. 진통제는 우리 몸에 통증을 일으키는 물질이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것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이 진통제를 먹는다고 안 아픈 게 아녜요. 약을 먹어도 여전히 아파요. 단지 통증을 못 느낄 뿐예요. 그런데 이 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청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소염제를 먹습니다. 소염제는 염증 발생을 억제하는 약입니다. 소염제를 먹는다고 병의 근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소염제는 염증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세포의 효소반응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소염제를 먹으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둔화되는 것입니다. 약은 병의 증상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증상을 억제하는 동안 우리 몸이 좋아지면 약을 끊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대 의학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병의 증상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왜 병이 재발할까요? 병의 근원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사는 처방 후에 과정을 지켜보자고 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병의 증상뿐만 아니라 병의 근원까지 말라버렸습니다. ‘곧 혈루의 원천이 마르매완전히 치료된 것입니다. 우리 몸에 불치의 병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 불치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점점 좋아지길 바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꼬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때 여인처럼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세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병의 뿌리와 병이 증상, 삶의 문제와 문제의 뿌리까지 말려버리십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는 것은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말씀이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으로 환난을 극복하고,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고, 말씀으로 참고, 말씀으로 일하고, 말씀으로 생활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 때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문제와 그 뿌리를 말려버리시는 것입니다. “곧 혈루의 근원이 마르매”, “곧 문제의 원천이 마르매”, “곧 슬픔의 원천이 마르매주님이 우리의 아픔의 근원을 말려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내에게 비염이 있었습니다. 1년에 봄가을 두 차례씩 환절기만 되면 아내는 비염으로 끙끙 앓았습니다.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훌쩍 거리며 수시로 코를 닦아냈습니다. 코 속에 염증과 콧물로 가득 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숨이 찬 거예요. 머리까지 염증이 가득 찬 느낌이래요. 환절기만 되면 비염으로 지쳐 초죽음이 됐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생선 썩은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때 아내가 읽은 책이 말씀으로 기도하라(지용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자녀를 위한 말씀 기도(조디 번트)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 책에 나온 대로 말씀을 따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수요일 예배 참석 중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중이었는데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는 요한일서 5:14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자녀를 위한 말씀 기도라는 책 맨 앞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생각이 나서 하나님!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를 고쳐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코에 가득 찼던 염증과 콧물이 한 순간에 사라지더래요. 그것이 사라지는데 0.00001초도 안 걸리더래요. 그 순간 얼마나 상쾌하고 좋은지 주님이 치료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막 눈물이 나더래요. 그 때 아내가 제게 하는 말이 그 많은 염증과 코가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병만 치료된 것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 나타났던 병의 증상까지 완전히 치료된 것입니다. 치유집회가 아닙니다. 안수기도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여!”하며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닙니다. 예배 중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기도했더니 말씀대로 이루어진 거예요. 말씀을 따라 기도할 때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말씀 따라 기도하면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아픔의 근원이 말라버립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말씀이 능력입니다.

2.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여인은 깨끗해졌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여인은 얼마나 상쾌하고 좋았을까요?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요? 울음이 하염없이 나왔을 것입니다. 여인은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조용히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큰 일 났습니다. 자신의 모든 행위가 들통 날 위기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사방에서 예수님을 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냐고 물으십니까?” 사람들은 전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받은 자만이 아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접촉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무리가 에워싸 예수님을 밀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등을 만졌습니다. 어깨, , 다리, 허리 등 몸의 여러 부분과 접촉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과 몸을 부빈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는 어떤 능력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능력이 나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에게서 여인에게로 능력이 나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에 반응합니다.  

어렸을 때 집에 펌프기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수돗물을 먹었지만 시골에는 펌프질해서 물을 먹을 때였습니다. 이 펌프기는 평상시에 말라 있습니다. 물을 쓰지 않으면 펌프기는 말라버립니다. 말라버린 펌프기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펌프기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빨리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물을 붓지 않고 펌프질을 하면 아무리 해도 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몇 날 며칠을 해도 물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해야 물리 올라옵니다. 이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마중 나가는 물이라고 해서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땅 속 20-30m 아래에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땅 속 깊이 흐르고 있는 물을 땅 위로 끌어올리려면 마중물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마중물입니다. 예수님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예수님을 만진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손을 잡는다고 해서 능력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포옹을 하고 몸을 비벼도 능력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믿을 때에 나옵니다. 믿음은 능력을 끌어올리는 영적 마중물입니다.  

교회 옥상에 2,290볼트의 전기가 들어오는 변압기가 있습니다. 2,2900볼트이면 옆에만 가도 감전될 정도로 강력한 전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강력한 전기라도 전선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전선으로 연결이 돼야 불이 들어옵니다. 예수님께는 22,900볼트 보다 더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과 유일하게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옷에 손을 대면 찌릿찌릿 감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우리가 유일하게 연결이 되는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돈이 아닙니다. 권세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전선으로 나와 예수님이 연결이 될 때 예수님의 능력이 나에게 다운로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한 방울의 능력도 내게 오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다운로드 하세요.  

예수님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구절이 누가복음에는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8:45)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실제 사실을 기록한 반면 누가는 예수님과 여인의 인격적인 접촉에 초점을 맞춰 기록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 끝에 손을 댔지만 실제로는 여인의 인격이 예수님께 닿았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여인의 인격이 믿음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왔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끝을 만졌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혼은 예수님께 닿아 있었습니다. 여인이 치료된 것은 옷에 손을 댔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예수님께 접촉됐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영혼이 예수님께 닿는 순간 거꾸로 가던 여인의 인생이 정상이 됐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께 나오셨습니까? 이 여인처럼 우리의 인격을 예수님께 접촉시킵시다. 기도와 찬양으로 예수님께 영혼을 접촉시킵시다. 헛된 찬양 부르지 맙시다. 헛된 기도하지 맙시다. 헛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맙시다. 내 마음이 예수님께 닿도록 찬양을 부릅시다. 예수님께 내 영혼이 접촉되는 기도를 드립시다. 말씀으로 예수님과 접촉합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헛된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마당만 밟고 그냥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예배실 바닥만 밟고 가지 마시고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3. 평안히 가라  

예수님은 여인을 보시기 위해 사람들을 둘러보셨습니다. 여인은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나아가 모든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구원과 평안, 이것 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요? 구원과 평안은 성도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 사역 중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두 번 하십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 마을에 사는 어떤 여인이 초대도 안했는데 시몬의 집에 들어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7:50). 이 두 여인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둘 다 사람들이 아주 부정하게 여기는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한 여인은 접촉하는 것마다 다 부정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한 여인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죄인입니다. 누가는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7:37)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죄인이었습니다. 둘째, 둘 다 예수님 뒤로 왔습니다. 그것도 발뒤꿈치로 왔습니다.  

  •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왔던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예수님 앞도 아닌 발뒤꿈치에 엎드린 것입니다.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옷자락 끝을 만졌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허리나 다리 부분의 옷을 만진 것이 아니라 발쪽의 옷 끝을 만졌습니다. 그러니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 뒤꿈치 쪽으로 계속 따라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 끝에 손을 대기 위해 기어왔을까요? 상황을 볼 때 여인은 기다시피하며 예수님을 따라온 것 같습니다. 두 여인은 모두 예수님의 뒤꿈치로 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엎드렸습니다. 앞도 아닌 뒤에서 엎드렸습니다. 여인들은 자신들의 무가치함 때문에 예수님 발 앞에도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한 없이 낮췄습니다. 이 여인들처럼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춘 사람들은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자신을 한 없이 낮췄다는 것은 예수님을 한 없이 높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두 여인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행동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이 두 여인 보다 예수님을 더 높인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이들이 가진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앞으로도 나오지 못한 두 여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예수님의 뒤꿈치 쪽의 옷 끝에 손을 댄 혈루증 여인, 이 여인은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얼마나 울었을까요? 얼마나 무릎이 아프고 손이 아팠을까요? 잡힐 듯 말 듯 예수님의 옷 끝, 여인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여인의 손끝, 이미 여인은 영혼으로 예수님을 터치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손이 아니라 영혼으로 예수님의 말 뒤꿈치를 터치한 것입니다. 그 영혼이 예수님의 발끝에 터치되는 순간 여인의 모든 고통과 아픔은 다 뿌리까지 말라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주님의 평강이 주님 발뒤꿈치에서 여인의 영혼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여인의 믿음이 12년의 고통에서 여인을 구원했습니다. 믿음이 여인으로 평안히 가게 했습니다. 여인의 믿음이 이제까지 거꾸로 가던 여인의 인생을 바로 가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혼으로 터치합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터치합시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터치합시다. 그래서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선포를 우리의 선포로 만듭시다. 믿음이 거꾸로 가는 우리 인생을 바로 가게 합니다. 믿음이 우리 인생을 저주에서 복으로 바꾸어줍니다.  

야고보는 의심하는 자를 가리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8)라고 했습니다. 정함이 없다는 말은 안정됨이 없다. 평안이 없다. 샬롬이 없다.”는 뜻입니다. 두 마음이 의심입니다. 의심하는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마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평안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13개 신약성경을 썼습니다. 권수로 따지면 신악성경의 반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쓸 때마다 맨 앞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은혜와 평강을 축복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신약성경이 27권 중에 16권이 맨 앞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샬롬! 평안은 교회의 가장 큰 복입니다. 평안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평안은 믿음이 가져다주는 복입니다. 여인은 주님 앞에 엎드려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을 받았습니다. 주님 발 앞에 엎드립시다. 주님 발 앞에 우리 영혼을 터치합시다. 그 발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인 평강이 한 없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에는 평안의 복만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소망도 따라옵니다.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믿음 안에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게 하는 통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쏟아져 나오게 하는 마중물입니다.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소망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소망이 우리에게 흘러오게 합니다. 믿음이 클수록 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클수록 큰 기쁨이 있습니다. 믿음이 클수록 큰 소망이 있습니다. 기쁨, 평강 그리고 소망의 복을 믿음 안에서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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