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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영혼으로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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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5:25~28
주일오전예배 | 2020-07-1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저는 치아 때문에 35-6년을 고생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고기 뼈를 씹다가 어금니 한 쪽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고기를 먹는데 뼈가 있었어요. 아버님이 그 뼈는 먹는 거라고 하셔서 아주 세게 꽉 깨물었는데 뼈가 잘리지 않고 이가 깨졌어요. 공주에 있는 병원에 갔더니 70은 족히 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나오더라고요. 35년 전이니까 공주가 아주 시골일 때입니다. 병원이 구멍가게 같았어요. 선생님이 보시더니 뽑아야 한다는 거예요. 마취를 하시고 펜치 같은 것을 입에 넣더니 이를 꺾듯이 빼는 거예요. 나무에 박힌 못을 뽑듯이. “뿌지직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소리가 큰지 소름이 돋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안 뽑아도 되는 멀쩡한 이를 뽑은 거예요. 치료를 마치고 할아버지 선생님께 이를 새로 해서 넣어야 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안 해도 된다고 하세요. 이때부터 저는 이 때문에 고생을 시작했습니다. 이가 하나 없어지자 옆에 있는 이가 빈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뒤에 있는 치아도 옆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개가 듬성듬성 혼자 서 있게 됐습니다. 이가 혼자 서 있자 잇몸 뼈가 가라앉았습니다. 잇몸 뼈는 이가 없으면 점점 함몰됩니다. 이 세 개가 혼자 서 있고 잇몸 뼈가 함몰되자 세 개 중 두 개가 흔들렸습니다. 하나는 사랑니였는데 사랑니만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때가 25살 정도였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잇몸에 뼈 이식을 하라고 해요. 얼마나 아픈지. 그렇게 고생했는데 몇 년 후에 흔들리던 이를 뽑고 임플란트 세 개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뼈 이식을 하지 말고 바로 임플란트를 했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아픕니다.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은 큰 복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의사를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이웃, 좋은 교우, 좋은 목사,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에 좋은 의사,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가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고 좋은 사람만 찾지 마시고 좋은 사람이 되세요. 여러분은 서로서로에게 좋은 교우가 되어주세요. 나쁜 교우가 되지 마세요.    

예수님의 3년 공생애 중에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 병을 고침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14:36, 3:10).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 세 사람은 그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진 사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본문을 살펴보면서 그 여인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졌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그 여인에게 어떤 은혜가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영적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12년을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관 벽에 상처가 생기거나 혈관 조직이 약해져 그 틈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일반 의학에서 혈루라고 합니다. 혈루증은 피가 몸 안에서 몸 밖으로 계속 흘러나오는 병입니다. 레위기 15장에서는 유출병이라고 했습니다. 유출병은 육체의 불결을 상징하는 질병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인들은 유출병자를 아주 불결하게 생각했습니다. 유출병자가 만진 곳, 누운 곳, 앉은 곳은 다 더러워졌습니다. 말을 하다가 침이 튀면 침이 떨어진 곳도 부정해졌습니다. 민수기 5장에서 유출병은 나병과 함께 다루어졌습니다. 당대에 사람들이 유출병을 얼마나 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출병은 씻어도 여전히 더러울 뿐만 아니라 다른 것, 다른 사람까지 더럽히는 아주 부정한 질병입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즉시로 자신이 죄로 더러워졌다는 느꼈습니다. 그걸 느꼈음에도 하와는 자기 남편에게 선악과를 건네주었습니다. 불순종으로 자신을 더럽힌 하와는 남편도 더럽혔습니다. 하와는 자기 남편을 자신과 공범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만 더러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나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범죄자들을 보세요. 꼭 같이 죄를 짓습니다. 꼭 공범을 만듭니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의 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같이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인류는 자신도 더럽히고 다른 사람도 더럽히는 영적인 혈루증을 앓고 있습니다. 인류는 자신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게 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이 죄의 사슬이 끊어졌습니다. 다시 죄 있는 상태로 가지 마세요. 순결하고 거룩하게 사세요.  

성경기자는 본문에서 12라는 숫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치유되는 기적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해 가시던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나는 기적 사건 중간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치유 사건이 끼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계란의 노른자처럼 한 가운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25절에 혈루증 여인은 12년 동안 이 병으로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25). 42절에 죽었다가 살아난 소녀는 12살이었다고 했습니다.  

  •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두 스토리의 주인공이 모두 12라는 숫자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127처럼 완전수입니다. 구약에 12지파가 있습니다. 신약에 12사도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 열두 대문이 있습니다. 열두 천사가 있습니다. 열두 보석이 있습니다. 12는 완전수입니다. 성경기자는 12라는 수로 여인이 그동안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인은 12년 동안 아주 극심한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인류는 극심한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씻어도 씻어도 여전히 부정한 영적 질병에 걸려있습니다. 이 질병을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요?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성경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많은이라는 말이 심하게’, ‘엄청나게라는 의미입니다. ‘많은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있습니다. 여인이 많은 의사들에게 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입니다. 의술과 수술 도구가 원시적일 때입니다. 얼마나 오진이 많았겠습니까? 첨단 장비를 갖춘 지금도 오진이 있습니다. 2주 전에 어떤 대학병원에 아는 분 문병을 갔습니다. 아주 건강하신 분이었습니다. 정기 검진을 하려고 몸에 약을 투입을 했는데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지금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있어요. 멀쩡하신 분이 죽을 뻔했습니다. 지금도 오진이 많습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엑스레이도 없을 때는 어땠을까요?  

10년 전에 왼쪽 아래 치아에 뼈 이식을 했습니다. 또 어금니의 한 가운데를 긁어내고 다른 물질로 채웠습니다. 신경치료도 했습니다. 치료 중에 제가 움찔하자 의사 선생님이 아프세요?”라고 물어요. 선생님은 왜 마취가 안 됐지!”하며 다시 마취를 해요. 마취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다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에 제가 또 움찔했습니다. 선생님이 또 아프세요?”라고 물어요. 왜 마취가 안 됐지!”하며 다시 마취를 했습니다. 치료 중에 제가 또 다시 움찔 했습니다. “아프세요? 왜 마취가 안 됐지!” 무슨 코메디도 아니고.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선생님이 저에게 먹는 약이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없다고 했습니다. 가끔 마취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마취 주사만 30번 이상 맞았습니다. 선생님이 마취주사를 놓을 때마다 따꼼!”이라고 해요. 그런데 얼마나 아픈지 따꼼이 아니라 따 - - - 꼼이에요. 마취주사가 얼마나 아픈지 제가 견디다 못해 그냥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마취도 안하고 생 뼈를 긁어냈습니다. 이 하나 치료하려고 수술대에 2시간 45분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치료가 끝났는데 몸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허리가 다 아프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는 마취가 안 되는 특이 체질이야라는 말을 가끔씩 하는 거예요.  

한번은 오른쪽 위쪽 어금니 하나를 금으로 씌었습니다. 2-3년이 지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금으로 씌운 이의 아래 부분에 잇몸 수술을 해야 한대요. 잇몸이 조금 낮아졌어요. 그래서 금으로 씌운 이의 윗부분과 잇몸 중간에 2-3mm 정도가 들어나게 됐어요. 1-2년 후에 정기 검사차 병원에 같더니 들어난 부분이 썩었다는 거예요. 저는 치료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 해도 된다고 해요. 2-3년이 지났습니다. 임플란트 정기 검진 받으러 갔는데 보철과 담당 선생님이 금으로 씌운 이의 중간 옆 부분이 많이 썩었으니 치주과를 가보라는 거예요. 자기가 볼 때는 심각하다는 거예요. 치주과에 갔더니 여전히 괜찮데요. 그래서 집에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하는데 이가 뚝 떨어져요. 한쪽에서 이가 썩어 들어가 반대쪽까지 다 썩은 거예요. 그래서 이가 그냥 뚝 떨어진 거예요. 6개월에 한 번씩 치주과와 보철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았습니다. 1년에 네 번 정기검진을 받았습니다. 다른 치료 받을 때도 갔으니까 1년에 여러 번을 간 거예요. 이가 썩었으니 치료해달라고 했습니다. 보철과 선생님이 심각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괜찮대요. 누구의 잘 못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 이건 분명히 치주과 선생님의 잘 못이에요.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이를 빼려고 예약을 잡아 놓고 집에 왔는데 그 병원을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러다가 지난 주간에 어떤 분의 소개로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치과 병원을 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먼저 스켈링을 하는데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스켈링할 때 느낌이 좋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주 편안하게 스켈링을 받았어요. 부러진 치아를 빼기 위해 마취를 하는데 마취도 안 아픈 거예요. 마취를 하는지도 모르게 마취가 끝났어요. 마취가 하나도 안 아프니까 이상한 거예요. 제가 마취가 안 되는 특이 체질이 아니었던 거예요. 저는 정상체질입니다. 치아를 빼는데 선생님이 잠깐 앉았다가 일어나세요. 그러더니 가래요. ‘벌써 끝난 건가? 어떻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의 첫 마디가 당신 괜찮아요?”이에요. 아내는 제가 치아 때문에 얼마나 고생한지 알거든요. 그동안 임플란트 5, 잇몸 수술 여러 차례, 뼈 이식 여러 차례, 그 외에 여러 가지 치료로 까먹은 돈, 낭비한 시간, 잃어버린 치아, 받은 고통,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니까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한 거예요. 어떤 때는 얼굴이 두 배로 퉁퉁 붓고 너무 아파서 말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적도 있었어요. 혹시 가족, 친척, 친구, 지인 중에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은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소수이지만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환자를 더 힘들게 하시는 의사도 있습니다. 의사에게 자기도 모르게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치아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고 돈도 많이 잃었어요. 여러분은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좋은 의사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첨단장비를 갖춘 지금도 오진이 있습니다. 2천 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무면허 무자격 의사가 있었습니다. 주술사, 무당이 의사였습니다. 주술, 굿, 민간요법으로 치료했습니다. 고대 의사는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괴상하리만큼 이상한 치료가 아주 많았어요. 여인은 진짜 의사에게도 진료를 받았겠지만 이상한 사이비 의사에게도 진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여인은 자칭 의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인은 의사들에게 왜 치료가 안 되냐고 따졌을 것입니다. 의사는 자기는 잘 못이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여인은 가진 것을 다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병세가 심해졌습니다. 아픈데 돈까지 없어졌습니다. 여인의 생활이 얼마나 처참했을까요?  

사람은 도와준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때가 있어요. 그때는 그 방법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이게 사람이에요. 사람이 나쁘기 때문에 안 좋게 되는 게 아니에요. 불완전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지 마세요. 더 나빠질 수 있어요. 사람의 방법은 처음부터 포기하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사세요. 그때 사람은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여인은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다녔습니다. 만나는 의사마다 잘 왔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방면에는 내가 전문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자신만만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괴롭힘만 당했습니다. 재산도 다 날렸습니다. 그때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습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어떤 소문을 들었을까요?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11:5)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구세주였습니다. 여인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여인의 이 믿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들음에서 온 것입니다. 로마서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소문으로 예수님에 대해 들었습니다. 들음이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올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세요. 가만히 들으세요. 집중해서 들으세요. 귀로 듣지 마시고 마음으로 들으세요. 머리로 듣지 마시고 영혼으로 들으세요. 듣지 않으면 믿음은 없습니다. 지금 듣지 않으면 후회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때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무가치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무리가운데 끼어서 뒤로 와서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무리 가운데 끼어서 예수님께 왔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당당하게 나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틈에 자신을 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모른 척하며 사람들과 함께 얼마든지 예수님 곁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여인의 다음 동작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뒤로 와서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옆으로 온 것도 아닙니다. 뒤로 왔습니다. 예수님의 뒷모습만을 봤습니다. 감히 예수님의 앞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반면에 자신은 혈루증을 앓는 더러운 여인입니다. 예수님과 자신은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비해 자신은 너무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 그분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인데 내가 감히 어떻게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처신이 이 여인으로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나의 죄와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주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받게 하시며 고침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발 앞에 엎드리세요. 사람은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리고 또 엎드려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고치실 것입니다.  

몸의 질병 때문에 여인은 더러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여인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질병이 여인을 무가치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 속에 있는 믿음은 보석처럼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가는 이 여인이 만진 것이 이라는 했지만 누가는 이 여인이 옷 가를 만졌다고 더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여인이 겉옷 가를 만졌다고 했습니다. 마태는 누가보다도 더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 <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 <9: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옷 가는 옷의 가장자리의 끝을 가리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의 가장자리 끝을 만진 것입니다. ‘대다는 말이 헬라어로 합토마이입니다. 합토마이는 손을 대다, 만지다, 건드리다는 뜻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의 가장자리 끝을 살짝 건드린 것입니다. 옷을 움켜잡은 것이 아닙니다. 부정한 여인입니다. 자신에게 닿는 것은 다 부정해집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을 누가 본다면 더러운 여자가 무슨 짓이냐며 소리치고 돌멩이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 피해가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알아차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옷을 덥석 잡으면 안 됩니다. 끝부분이 자신의 손에 살짝 스쳐야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 끝에 자신의 손을 살짝 닿기만 해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여인은 정말 가엾은 사람이었지만 그 믿음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외모에 상관없이 사람을 귀하여 여기세요. 정말 속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속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세요.  

예수님은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옷 끝자락이 펄럭이었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펄럭이는 옷에 정말 우연처럼 그것도 끝부분에 아주 살짝 대야 합니다. 이것이 쉬웠을까요? 아니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인은 펄럭이는 옷의 끝 부분에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살짝 대기 위해 몇 번을 시도했을까요? 저는 수 없이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우연을 가장해 살짝 스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패할 때마다 누가 눈치 채지 챘을까 마음을 졸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밀치고 부딪치며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 그냥 손을 대도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인에게는 이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시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자신의 손을 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자신의 영혼을 터치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여인의 고백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개역성경>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여인은 내가 그의 옷 끝에 손만 대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함일러라는 말이 헬라어로 레고입니다. 레고는 말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함일러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인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인은 부정한 여인입니다. 큰 소리로 말한 처지가 아닙니다. 누구하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혼잣말로 작게 혼자 중얼거린 것 같습니다. ‘생각함일러라는 말의 시제가 미완료입니다. 계속 중얼거렸다는 뜻입니다. 여인은 혼잣말로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거야, 내 손이 그의 옷에 스치기만 해도 나는 병이 나을 거야라고 수 없이 고백한 것입니다. 여인의 고백은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생각을 했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마음을 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인은 예수님의 옷 끝에 자신의 믿음을 댄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영혼을 터치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영혼을 터치하세요. 그냥 터치하지 마시고 터치되는 순간에 내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터치하세요. 예수님의 옷자락에 여러분의 영혼이 터치되는 순간 여러분의 질병은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영혼을 터치한다.’ 또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의 말씀 터치입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여인이 만진 옷 가라는 말이 말씀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옷 가라는 말이 헬라어로 크라스페돈입니다. 크라스페돈은 망토 또는 외투의 가장자리에 매달린 작은 부속물’,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단 귀에 술을 만들어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여인들의 옷이나 숄 끝에 단 술이 성경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여성분들, 숄에 붙어 있는 술을 볼 때마다 말씀을 생각하세요. 예수님도 술을 달고 다니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옷에 술을 달고 다닙니다.  

  • <15:38-39>
  •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 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옷에 술을 다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옷단 귀에 달린 술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옷 가라는 말은 옷 단 끝에 매달은 율법을 상징하는 술이라는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끝에 달린 술에 손을 댔다는 것은 말씀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옷 술이 말씀을 상징하지만 옷 술에 어떤 마술적인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미신적으로 믿지 마세요. 능력은 말씀에 있지 능력이 말씀을 상징하는 물건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인이 붙든 것은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만진다면 내 병이 나을 거야라고 믿고 상상했습니다. 이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그 영혼이 예수님께 닿아 있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말씀에 영혼을 터치하세요. 정말 진심으로 말씀을 깊이 영혼에 새겨보세요.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세요.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에 여러분의 영혼을 터치하세요. 찬양에 내 영혼을 터치하세요. 기도에 내 영혼을 터치하세요. 이것이 예수님께 내 영혼을 터치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영혼으로 예수님을 터치했습니다. 그때 자신을 12년 동안 괴롭힌 더러움이 깨끗해졌습니다. 씻어도 씻어도 더러운 인류의 영적 질병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나도 더럽고 남도 더럽게 하는 부정한 질병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영혼이 예수님을 터치할 때 깨끗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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