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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바닷가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생선과 떡이 구어지고 있었습니다. 불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안뜨라키아(ἀνθρακιὰ)입니다. 안뜨라키아는 숯불, 화롯불을 의미합니다. 7명의 제자들이 먹을 생선과 떡을 구웠다면 쾌 큰 숯불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큰 숯불을 어떻게 준비하셨을까요? 숯을 해변까지 짊어지고 오셨을까요? 아니면 커다란 나무를 태워 직접 숯을 만드셨을까요? 또 생선은 어디서 가지고 오셨을까요? 바다에서 잡으셨을까요? 아니면 시장에서 사오셨을까요? 그리고 떡은 어디서 가져오셨을까요? 떡은 헬라어로 아르토스(ἄρτος)입니다. 아르토스는 빵입니다. 예수님은 빵 반죽을 직접 하셨을까요? 스티어라는 학자는 생선과 떡을 천사들이 만들었다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스티어의 말처럼 천사들이 숯불과 떡과 생선을 준비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 곁에 제자들을 위한 숯불과 생선과 떡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곁에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양식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얼마 안 있으면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바닷가에 와 있는지 묻고 책망하시고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먹이셨고 쉬게 하셨습니다. 그날 아침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쉼과 먹을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시간과 쉴 시간을 주셨습니다. 굶주려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과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 필요도 채우시지만 육적 필요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지치고 곤할 때 육신의 배와 영혼의 배가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로 채워지기를 구합시다. 우리가 만나로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공하신 아침식사의 의미
먼저 예수님께서 해변에서 제자들에게 차려주신 아침식사가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제자들은 밤샘 작업으로 완전히 탈진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준비한 식사가 필요했습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전날 밤에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져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축축했습니다. 제자들은 지쳐 있었고 배가 고프며 추웠습니다. 그런데 아침으로 먹을 물고기 한 마리 빵 한 조각도 없었습니다. 쉴 곳은 있었을까요? 제자들 각자의 집이 있었지만 실패자의 모습으로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갈 곳 없는 제자들! 이것이 그날 아침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그들은 측은했고 가여웠습니다. 우리들이 보기 좋지 않다면 틀림없이 예수님께서 보시기도 좋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이 축축하게 젖어 추위에 떨며 배고파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곤고함을 덜어주시고자 아침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행한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세상 여러 가지 일로 삶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 한다면 틀림없이 주님은 좋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기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힘이 있고 활기차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2천 년 전 제자들을 당신의 뜨거운 사랑으로 예비된 숯불가로 초청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당신의 숯불가로 초대하십니다. 주님의 숯불로 오세요. 여기에는 생명의 양식인 거룩한 떡과 거룩한 생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영적 아침 식사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련하신 조반을 드세요. 진리의 말씀으로 불안함을 떨치세요. 생명의 양식으로 무기력함을 이기세요. 성령의 은혜로 두려움, 근심, 불확신, 나약함, 낙심을 물리치세요. 주님의 숯불에 앉아 힘껏 찬송하시고 마음을 다해 기도하세요. 그래서 내적으로 넘치는 영적 상태를 갖추세요. 이 땅에서 진리의 싸움을 계속하려면 큰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잠시 떠나 계신 때에 제자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갈릴리 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고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7명의 어부들이 밤새도록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경험한 또 다른 형태의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고기가 득실거리는 바다에 그물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고용정보원에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사업장 직무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직업을 집대성한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을 최근 발간했습니다. 한국직업사전은 1986년부터 발간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직업정보서입니다. 통합본 제5판에는 총 1만6891개의 직업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2012년 발간된 제4판에 비해 5236개의 직업이 늘었습니다. 세상에는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돈도 정말 많습니다. 앞으로 돈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넓은 세상에 아주 커다란 그물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인생의 분투를 거듭하고 있지만 어떤 소득도 얻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는 없습니까?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와 실망과 피곤 외에 아무런 소득이 없는 분 없습니까? 이런 상태에 처해 있다면 틀림없이 주님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숯불 곁에서 새 힘을 얻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은 이런 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나와 함께 조반을 먹자. 배와 그물은 잠시 버려두고 나와 함께 조반을 먹자. 지난밤의 실패와 낙심과 아픔은 잊어버리고 나와 함께 조반을 먹자.” 불평, 원망, 낙심을 그치시고 지금 주님이 당신을 위해 준비하신 조반을 드십시오. 우리에게는 주님의 영적 조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준비하신 조반을 드세요.
예수님은 조반을 다 먹은 후에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15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셨지만 거기에 함께 했던 모든 제자들에 대한 물음입니다. 여기 틀림없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라고 했습니다. 조반 먹기 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반을 먹으면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반을 다 먹은 후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가 비어 있을 때 물어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가 신비한 생선과 신비한 떡으로 꽉 찬 후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근심할 정도로 아주 정말하게 신앙을 시험하셨습니다. 17절에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근심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슬퍼하다(엘뤼페데)입니다. 이 단어는 보다 적극적으로 ‘슬픔으로 상처를 입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근심하고 슬퍼할 정도로 자세히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마음에 상처가 입을 정도로 아주 깊이 물어보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앞으로 세상은 베드로를 광풍처럼 밀어붙일 것입니다. 세상은 풀무불처럼 베드로의 믿음을 조사할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영적으로 굶주려 있다면 비참할 정도로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 세상의 어떤 시험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영적 양식을 충만하게 먹이셨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계속 시험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 그럴 것입니다. 그때 영적으로 굶주려 기진해 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사탄의 시험에 참혹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조반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의 조반을 드세요. 그래야 세상의 정밀검사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조반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먹이신 후에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직무가 베드로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베드로와 함께 한 모든 제자들에게 동시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한 학생에게 수업 진행에 관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질문은 그 학생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학급 전체에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임무는 베드로와 바다에 함께 있던 모든 사도에게 동시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시대 주님의 종들에게 동일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조반을 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양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떡을 먼저 먹지 않은 자는 남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돈을 버십니까? 한 가지 묻겠습니다. 돈 버는 일 말고 다른 하는 일이 있습니까?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을 열심히 버십시오. 하지만 돈 버는 일 말고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발견하십시오. 그것이 이 땅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그 일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이것이 이 거룩한 주일 아침에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주님의 숯불가로 부르신 이유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영적 조반을 충만하게 드십시오. 대충 드시지 마십시오. 주님의 조반을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오. 주님의 조반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값지게 여기십시오. 넘치도록 드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집니까? 저는 그들이 주님이 주시는 조반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찬양을 하시되 진심으로 하십시오. 기도를 하시되 마음을 다해 하십시오. 말씀을 들으시되 집중해서 들으십시오. 그래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흐르게 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먹어야 할 주님의 영적 조반입니다. 주님의 이 조반을 드십시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정밀조사도 이기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사명도 감당하십시오.
2. 연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조반을 직접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또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고기 좀 잡아오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잡은 생선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 아침 해변 연회의 주인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생선과 떡을 얼마나 먹었을까요? 저는 그날 아침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생선과 떡을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고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서 생선과 떡을 일일이 나눠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색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후하신 분이십니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넉넉하게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인생 연회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을 인생 연회장의 주인으로 삼으십시오. 주님께는 신비한 양식이 있습니다. 주님께는 넉넉한 양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 계실 때입니다. 한 참 잔치 중입니다. 손님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혼인 잔치의 기쁨이 깨질 판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분명히 연회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문제를 예수님과 상의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연회의 주인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종들이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연회장이 포도주의 맛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연회장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온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의 진정한 연회장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연회장으로 삼으십시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은혜가 있습니다.
갈릴리의 어느 언덕에 5천명이 굶주려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리들을 돌려보내 마을에서 먹을 것을 얻게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들에 앉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놓고 축사하신 후에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무리가 다 먹고 배불렀다고 했습니다(눅9:17). 그리고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떡입니다. 먹을수록 더 많아지는 생선입니다. 신비한 떡과 생선입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연회장으로 삼으세요. 예수님께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신비한 양식이 있습니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신비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진한 제자들을 위해 아침 일찍 해변에서 식사를 직접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날 아침 주방장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숯불을 어떻게 준비하신지 모릅니다. 떡과 생선도 어떻게 준비하신지 모릅니다. 사셨는지 만드셨는지 아니면 잡으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것 보다 더 좋은 음식이 있을까요? 이것 보다 더 특별한 음식이 있을까요?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의심의 여지없이 불과 고기는 모두 창조적 능력의 소산물이었다. 우리 앞에는 구주께서 너무나 용이한 그런 기적 중의 하나가 여지없어 나타나 있다. 그가 말씀했더니 불과 그 위에 놓여진 생선이 있었고 숯불로 구워진 떡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퀘스넬은 “기적 위에 기적이 일어났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는 물고기로 그물을 가득 채운 기적이 일어났고 땅 위에서는 다른 것들을 만들어낸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아침 제자들을 위해 친히 음식을 만드시는 주방장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주방장입니다. 창조의 능력이 있는 주방장입니다. 특별한 음식을 만드시는 주방장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당신의 창조적 능력으로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영적 주방장으로 삼으세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아침 식사에 친히 웨이터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난 날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씻기셨던 것처럼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떡과 생선을 가져다가 주셨습니다.
<13절>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먼저 떡을 주셨습니다. 그 웨이터는 제자들이 떡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그 웨이터는 물도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떡을 다 먹자 생선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일곱 명이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배가 매우 고팠습니다. 먹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서빙을 본 웨이터는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빙은 완전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날 아침에 지친 제자들을 위해 완전한 웨이터가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겸손이 있을까요? 주님은 지금도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하늘 양식을 이처럼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 공급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 속에서 소화가 되어 그것이 우리 영혼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우리 영혼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 인생 연회의 웨이터로 삼으십시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영혼의 만나를 먹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에나 가실 수 있는 이동식 뷔페 주인이십니다. 그 이른 아침에 예수님은 지친 제자들을 위해 해변에 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그 꼭두새벽에 누가 해변에 숯불을 피우고 떡과 고기를 구울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부모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들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해변에 이동식 뷔페를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만나는 교회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시다가 마음에 곤고해하지 마세요. 곤고할 때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이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 영혼의 만나를 가지고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갑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은 들에 풀을 베러 가실 때 낫을 여러 개 가지고 가셨습니다. 풀을 베시는 중에 한 번씩 낫의 날을 살피십니다. 낫의 날을 살피시다가 어떤 것은 한 쪽으로 치워놓으셨습니다. 날이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무디어진 날로 풀을 베면 베는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어느 날 제가 아버님이 치워놓은 무디어진 낫으로 풀을 베어보았습니다. 낫이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낫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저녁 때 집에 들어가셔서 숯 돌에 날을 간 다음 그 다음 날 다시 사용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늘 같은 일을 반복하셨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에 들어가셔서 낫을 가셨습니다. 아침이 되면 그 낫을 다시 사용하셨습니다. 쓰시다가 무디어지면 한 쪽으로 치워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날을 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영혼의 날을 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한 친구는 유달리 승부욕이 강해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친구는 열심히 일하다가 중간 중간 쉬어가며 일을 했습니다.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어 나뭇짐을 정리해 보니 쉬면서 일한 친구의 나무가 더 많았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가 이상하다면서 투덜대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쉴 때마다 도끼날을 갈았다네.” 도끼날이 날카롭게 서면 나무는 쉽게 잘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날이 무디다면 힘이 많이 들어 사람을 지치게 할 것입니다. 안식은 우리 영혼을 날카롭고 강하게 합니다. 우리 인생은 도끼날을 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숯불가로 오십시오. 여기에는 주님이 준비해놓으신 아주 특별한 조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 조반을 먹고 원기가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힘이 없고 나약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근심하고 불안해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조반을 드십시오. 진리의 생선을 드십시오. 생명의 떡을 드십니다. 그 은혜로 충만한 상태가 되십시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진리의 싸움을 계속 하십시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주님의 조반을 먹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밥이 되지 마세요. 주님의 조반을 드시고 마귀와 싸와 이기세요. 승리자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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