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고 싶어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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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말라기 1:6~10
주일오전예배 | 2020-03-1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요한복음 8:12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4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어서 읽는다면 나는 세상에 빛이다. 그리고 너희도 나처럼 세상이 빛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은 아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빛 아래에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의 학자요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AD 23~89)인류에게 소금과 햇빛만큼 유용한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빛이 헬라어로 포스(φς)입니다. 포스의 뜻은 빛, 광채, 광휘, 햇빛, 횃불, 불빛입니다. 빛이라는 것은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세상을 밝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세상을 밝힐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첫 번째는 윤리적인 측면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행실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5:16).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행실이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측면입니다. 영적인 밝힘은 예배와 기도를 통한 밝힘입니다. 예배는 세상을 밝히는 영적인 빛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빛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기도로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가 멈추는 것은 세상의 빛이 꺼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한 착한 행실, 예배, 기도로 세상을 비추는 기관입니다.   

착한 행실을 잃어버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할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예배와 기도의 불이 꺼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비추지 못할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빛이 되지 못하는 교회를 세상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 시간에 먼저 제사장들의 두 가지 죄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경이 어떠셨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며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던 구약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는지 생각해보며 영적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말라기서는 말라기 선지자가 주전 435~425년 사이에 기록한 구약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말라기서는 약 430년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1.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다   

말라기 선지자는 제사장들의 두 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멸시한 죄입니다. 6절 앞부분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제사장은 여호와의 제사장이라고 불렸습니다. 제사장이라는 말 앞에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따라다녔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제사장!”, “여호와의 종!” 제사장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제사장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제사장과 하나님의 관계는 부자관계, 주종관계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주인님이십니다. 하나님 보다 더 좋은 아버지, 더 좋은 주인이 있을까요? 그런데도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멸시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빠자입니다. 빠자는 경멸하다, 함부로 다루다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다루었습니다. 그러고도 제사장들은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6절 끝부분에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뻔뻔했습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께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말한 가인처럼 제사장들은 뻔뻔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가장 공경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목사입니다. 사람의 목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도입니다. 사람의 성도가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목사”, “하나님의 성도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부자관계, 주종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공경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실 때 , 하나님을 공경함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 속에 하나님을 공경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집에도, 내 직장에도 하나님을 공경함이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제사를 경멸한 죄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위해서 세워진 존재입니다. 제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예배)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을 중보했습니다. 제사장에게 제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제사를 경멸했습니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나의 제단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성전에는 세 가지 제단이 있었습니다. 번제단, 떡상(진설병), 분향단입니다. 번제단에는 양, 염소, 비둘기, , 곡식 가루를 제물을 드렸습니다. 떡상에는 떡을 진설했습니다. 분향단에는 향을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제단은 번제단과 떡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는 제물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흠 없는 것(12:5, 1:3, 3:1)입니다. ‘흠 없는 것이라는 말이 히브리어(타밈)로 온전한 것, 건전한 것, 진실한 것, 깨끗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흠 있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것으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경멸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든, 마음을 드리든, 예배를 드리든 진실하게, 건전하게 드리세요. 거짓으로 드리지 마세요. 하나님을 속이지 마세요.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드렸습니다. 떡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러운은 히브리어로 가알이다. 가알은 더럽히다, 모독하다, 불결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떡, 더럽히는 떡을 드렸습니다.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주기도문에 첫 번째 간구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말은 한 마디로 하나님은 다르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신들과 전혀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우상들과 전혀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 어떤 신과도 비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럽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 세상의 신들처럼 만든다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이 세상 다른 신들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달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이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과 똑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 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신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 되세요.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마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신과 동급으로 만들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제사장들이 어떻게 제사를 경멸했는지 세 가지를 지적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8) 첫째, 제사장들은 눈 먼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눈 먼 것은 주인이 이것저것 챙겨주어야 하는 짐승입니다. 수발을 들어주어야 하는 짐승입니다. 있으면 이로운 것이 아니라 귀찮은 짐승입니다. 둘째, 저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것은 일은 못하고 먹이만 축내는 짐승입니다. 주인에게 이득이 없는 짐승입니다. 셋째, 병든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병든 것은 병이 들어 약해진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실비실한 것입니다. 키워서 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팔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른 가축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살 처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먹을 수 없거나 쓸모없는 것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쓸모없는 것을 처리하는 곳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를 아주 경멸했습니다. 제사에 대한 경멸은 하나님에 대한 멸시입니다. 나는 예배를 멸시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을 멸시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회개합시다. 예배를 귀하게 여깁시다. 예배를 성심껏 드립시다. 예배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2. 하나님이 성전 문을 닫고 싶어 하시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경멸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너희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너희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라는 말을 직역하면 내가 너희들로부터 얼굴들을 받아들이겠느냐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십니다. 부모는 자식을 보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패륜아라도 자식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패륜아였으면 아버지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패륜아 중에서도 패륜아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자녀입니까? 아니면 보기 싫어하는 자녀입니까?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자녀가 되세요. 건강한 예배, 온전한 예배를 드립시다.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이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성전의 문을 닫고 싶어 하셨습니다.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했으면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을까요? 성전에서 은혜가 시작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성전의 문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 문이 닫힌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인류에게 최악의 상태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아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동사무소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전화도 왔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희 바로 앞에 있는 교회도 몇 주 동안 새벽, 수요일, 주일 모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온 것 같습니다.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새벽 환하게 켜 있던 불이 다 꺼졌어요. 캄캄해요. 저희 교회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교회라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지자체에서 교회 문을 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80프로가 교회 문을 닫았습니다. 주변의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교인 중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가 폐쇄된 곳도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 1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하나님이 한국 교회의 문을 닫기를 원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어떤 경고를 하시는 것인가?’, ‘한국교회가 무엇을 잘 못했을까?’, ‘하나님이 우리 등대교회를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교회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만약 하나님이 우리 교회 문을 닫기를 원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코로나19가 무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더 무섭습니다. 동물은 성전이 없어도 됩니다. 식물은 예배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의 문이 닫히면 안 됩니다. 우리 회개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합시다. 우리 위에 열려진 하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벧엘 광야에서 열린 하늘을 보았습니다. 야곱의 머리 위에 하늘가는 사닥다리를 놓여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 생활 중에 그발강 가에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1:1). 사도 요한은 유배지 밧모섬에서 열린 하늘을 보았습니다. 나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려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늘 문을 닫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까? 은혜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요한계시록 3:8에 예수님께서 빌라델피아 교회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라델피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두셨습니다. 우리 등대교회는 하늘 문이 열린 교회일까요? 아니면 하늘 문이 닫힌 교회일까요? 우리 교회가 하늘 문이 열려진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하나님이 교회 문을 활짝 열어두기를 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이 세상 어떤 권세도 결코 닫을 수 없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10절에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라고 했습니다. 여기 불사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오르입니다. 오르는 밝히다, 비추다, 환하게 하다, 빛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긍정문으로 바꾸면 너희가 내 제단 위에서 빛을 비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제단을 만드신 이유는 제사를 통해 세상을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제사는 이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예배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예배는 이 세상의 영적인 빛입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는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등대교회 예배는 이 쌍용동, 불당동을 밝히고 있습니까? 우리 예배를 통해 이 지역을 밝히 비춥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착한 빛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영적인 빛입니다.   

경기도 평택항에 가면 등대가 있습니다. 이 등대 근무자 중에 백원경 씨라는 분이 계십니다. 3대째 등대지기를 하시는 분입니다. 등대지기의 공식 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또는 등대원입니다. 백씨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원입니다. 1903년에 인천 팔미도에 우리나라 최초로 등대가 세워졌습니다. 이 등대에서 할아버지는 1950915일에 맥아더 상륙작전을 지켜보았습니다. 당시 등명기(燈明機 · 불을 밝히는 기계)의 태엽이 고장 나 손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신이 나던지 힘들 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 등대 숙소에서 백 씨가 출생했습니다. 마침 아버지께서 뭍으로 나갔을 때 엄마가 출산했습니다. 팔미도는 무인도입니다. 당시 등대에는 남자 직원이 한 명 있었지만 차마 부르지 못하고, 등대 숙소에서 혼자 탯줄을 끊었습니다. 백원경 씨 아버지는 등대를 돌리는 등유를 지게에 나르다가 허리가 부러져 치료를 받는 중에 암이 돼서 죽었습니다. 공무원이 백원경 씨에게 3대째 등대지기를 하라고 했지만 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의 생계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실 앞에서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결혼 후 선미도로 발령이 났습니다. 아내가 2개월 만에 육지로 나왔습니다. 등대지기 하면 유배, 고립, 격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막내 시절에는 6개월 동안 등대에서 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경쟁률이 50:1입니다. 요즘은 에어컨 냉장고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제 등대의 불빛에 의지해 항해를 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최첨단 위성항법장치로 정확히 항로를 찾아 들어옵니다. 그런데 밤이면 등대 불빛은 꺼지지 않고 여전히 등대지기가 있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백원경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레이더 장비가 좋아도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실제로 도선사(導船士·선박을 안전한 항로로 안내하는 사람)들이 원한다. 도로의 신호등처럼 바다의 길에서도 불빛이 보일 때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캄캄한 바다에서 배는 기계만을 의지한 체 항해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등대의 빛이 보이면 !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등대의 빛은 선원들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에베소서 5:8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합시다. 이사야 42:9에는 너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 세상에 온갖 찬란하고 밝은 네온사인이 있어도 교회의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 사람들이 보면 안심이 되는 빛이 됩시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평안을 찾는 빛이 됩시다. 보기 싫은 빛, 눈살을 찌푸리는 빛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닫고 싶어 하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세상 사람들이 열었으면 좋겠다는 교회가 됩시다. 하늘이 열려 있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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