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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 사회는 병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최악의 사회 연계 국가입니다.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이 37.5명입니다(2018년). OECD국가 중 1위입니다. 그것도 14년째 계속 1위입니다. 노인 빈곤률(65세 이상) 1위, 은퇴자 빈곤율 1위, 술 소비량 1위, 음란물(포르노) 활성화 1위, 매춘 1위, 부패지수 1위(아시아 최악의 부패국가), 암 사망률 1위, 이혼율 1위, 낙태율 1위, 청소년 불행지수 1위(어린이 소년 행복지수는 뒤에서 1위), 노동의 질 뒤에서 1위, 보행자 사망률 1위입니다. 보행자 사망률은 다른 OECD 회원국보다 3배 높습니다. 최악입니다. 휴대 전화 자주 바꾸는 국민 세계 1위, 식품 물가 세계 1위, 악성코드 배포 세계 1위, 여성흡연율 세계1위,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1위, 제왕절개 수술 세계1위, 공주병 환자 수 세계1위, 꽃뱀수 세계1위, 화장품 사용빈도 세계1위, 남자 무시하기 세계1위, 40-50대 남성 자살률 여자의 3.3배로 남녀 비교치 세계1위, 해커 공격당하기 세계 1위입니다. 제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나요? 우리 사회 밝은 면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병든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아주 특별한 부분에서도 1위가 있습니다. 재림 예수님이 세계 1위입니다. 몇 년 전에 모르는 곳에서 책 한 권이 우편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이단에서 온 것 같아요. 이단에서 종종 교회로 책을 보내와요. 교회를 미혹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거 오면 뜯어보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 옥상에서 태우려고 뜯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에 커다란 남자 상반신 사진 하나가 있어요. 사진 밑에는 <재림 예수 ○○○>라고 쓰여 있어요. 세계에서 재림 예수님이 제일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현재 자칭 재림 예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명이 넘을 것입니다. 파악되지 않은 수가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수개월 전에 전에 다니던 교회 청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청년은 6년 전에 신천지에 빠졌습니다. 신천지인들은 이만희를 이긴 자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이긴 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만희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저를 한 번 만나고 싶어 해요. 사이비에 빠진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통화 중에 잘 못된 것을 알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저는 그 청년이 신천지가 잘 못된 것을 알고 신천지에서 나오려고 고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을 교회로 오라고 했습니다. 와서 하는 말이 신천지에서 집회를 하니 오라는 거예요. 기가 막혔습니다. 정신 차리라고 했습니다. 신천지와 이만희가 아주 나쁘다고 욕을 해서 보냈습니다. 5층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니 누구랑 같이 왔어요. 그런데 안 가는 거예요. 한참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 주부터 교회 앞 공터에 와서 신천지 포교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포교의 반은 교회를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피켓에 기독교가 자신들을 욕해서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만희와 신천지를 욕했다고 보복 나온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때부터 신천지가 빨리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신천지는 거짓말로 시작했습니다. 기성 교회에서 거짓말과 속임수로 신도들을 빼내 갔습니다. 또 교회를 붕괴시켰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아름다운 신천지>, <진리의 성읍> 등등의 말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몸이 병든 시대입니다. 마음이 병든 시대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병든 시대입니다. 그것도 조금 아픈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아픕니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병들어 있습니다. 옳지 않는 것이 옳은 것처럼 포장되어 있습니다. 거짓이 진실이 되어 있습니다. 진실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살면 끝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 참을 더 살아야 합니다. ‘저 어린 것들이 이 병든 세상을 어찌 살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들 때 제 마음에 종종 스치는 말씀이 오늘 읽은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14절) “하나님 이 땅을 고쳐주소서”
본문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자신의 궁전을 다 건축한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회가 죄악으로 병들면 세 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가뭄과 흉년입니다. 13절 앞부분에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라고 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은혜가 중단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을 닫고’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닫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봄이 되면 봄비가 내립니다. 여름에는 여름비, 가을에는 가을비가 옵니다. 그래야 곡식이 제대로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제가 13년째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가장 민감한 것이 비입니다. 그런데 비가 적절하게 오지 않습니다. 봄에 봄비가 안 옵니다. 가을에 가을비가 안 옵니다. 전에는 여름에 장마가 왔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가을에 장마가 왔습니다. 가을에 장마가 오면 열매가 썩어요. 자연의 섭리가 고장이 나 있습니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삐거덕거립니다. 기상학자들은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이 닫히는 것입니다.
둘째, 메뚜기가 땅의 소산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13절 중간에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라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의 공습입니다. 지난 2월 16일 중국 정부는 메뚜기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2019년 6월에 아프리카를 출발한 메뚜기 떼가 지금 중국 근처까지 와 있습니다. 현재 4,000억 마리라고 합니다. 이 메뚜기 떼들이 이동하면서 하루에 8,800명분의 식량을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그 수가 500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200조 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4,400,000만 명의 식량을 먹어치울 수 있는 숫자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농산물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가 현재 상태로 유지가 된다면 올 여름에 농산물 가격이 폭등할 것입니다. 지금 경제가 바닥입니다.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지난 7개월 동안 예멘,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탄자니아, 수단 등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까지 20여 개국이 메뚜기 떼 피해를 입었습니다. 현상태가 여름까지 계속되면 30개 이상의 나라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2-3센티의 조그만 메뚜기가 아닙니다. 6-7센티의 커다란 메뚜기입니다. 팔뚝만한 괴물 메뚜기입니다.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메뚜기 떼의 공격이라고 합니다.
셋째, 전염병의 유행입니다. 13절 끝부분에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라고 했습니다. 전염병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데베르입니다. 히브리어로 ‘말’이라는 단어가 다바르입니다. 전염병과 말이라는 단어의 자음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91:3의 “심한 전염병”(극한 염병)이라는 말씀을 어떤 번역본(70역, 시리아역, 심마커스 역)은 “파격적인 말”로 번역했습니다. 또 유행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보내다’입니다.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했다’는 말을 직역하면 ‘내가 전염병을 내 백성 가운데 보냈다’입니다. 그러면 전염병을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냐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제가 설교하기가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전염병을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전염병에서 하나님의 영적 메시지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을 하다가 머리나 손을 어디에 부딪치면 바로 회개합니다. 어떤 때는 무릎을 꿇고 회개합니다. 제가 부주의해서 부딪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일에서 내게 하나님이 주시려는 경고가 있는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커다란 전염병에서는 더 큰 메시지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전염병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영적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습니다. 왜 중국일까요? 왜 우한일까요? 얼마 전에 학교 동기 몇 명을 만났습니다. 동기 중 한 명이 어떤 선교사님이 그랬다며 우한 폐렴은 중국의 기독교 박해 때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다른 동기들도 그냥 흘려듣는 분위기였습니다. 여러분도 그게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도 최근에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한은 시진핑의 종교정책 시범지역입니다. 우한에서 48개 교회가 강제 폐쇄됐습니다. 십자가와 성경을 불로 태우고 교회당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습니다. 교회당 마다 CCTV 설치하고 목사와 성도들을 감시했습니다. 교회당 안에 국기 설치, 시주석 초상화 걸기, 예배순서에 정부선전 시간 넣기, 교직자 수감 등 여러 가지 간악한 수법으로 교회를 지금도 박해하고 있습니다. 우한폐렴이 우한에서 발생한 것이 우연일까요?
중국인 인권 감시단체 차이나에이드(ChinaAid)의 대표 밥 푸(Bob Fu) 목사는 “현재 중국 정부의 교회와 기독교인 탄압은 문화대혁명 이래로 최고 수위”이며, “핍박사례는 해마다 늘어 2015년 643건에서 2016년 762건으로 늘었고, 2017년 2월 신종교사무조례 발효 이후로는 핍박이 노골화되었으며, 2018년에는 전방위적인 거센 핍박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교회 재산 몰수, 수천 명의 지도자를 포함한 기독교인 체포, 교회 지도자의 누명과 실종,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는 인권 변호사들의 체포, 구금, 실종, 의문의 죽음, 성경말씀의 중국화, 성경 판매 중지, 학교 내 종교 활동 금지, 기독교인의 해외 활동 금지 등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으로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원 동기 한 명이 중국 청도에 선교사로 있습니다. 청도에 있는 교회를 하나로 통합했다고 합니다. 말이 통합이지 실제로 교회를 다 폐쇄하고 하나만 남겨놓은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다 추방됐습니다. AP통신에 의하면 허난성에서만 4천개의 교회가 폐쇄됐고 교회 집기는 강제 압수당했습니다. 2018년 구금된 기독교인이 1만명이라고 합니다. 어떤 소식에 의하면 스촨성에서 구속된 기독교인만 1만 명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기독교인을 얼마나 구속했는지 그 숫자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시진핑의 종교의 중국화 정책이라고 합니다. 말이 종교의 중국화이지 실상은 시진핑 독재와 우상화 작업입니다. 우한폐렴 공무원 사망 1호가 누군지 아십니까? 우한의 기독교 탄압을 지휘하던 책임자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우연일까요? 박쥐 때문에요? 동물시장이 우한에 있어서요? 그러면 수 백 년, 수 천 년 동안 박쥐를 먹었는데 그 동안은 왜 괜찮았을까요?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사태가 생겼습니다. 대구는 2-3일 만에 유령도시가 됐습니다. 코로나19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신도입니다. 이 사람이 대구 신천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신천지에서 처음에 집회 인원을 300명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460명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1,0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8,000명 정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계속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갑자기 확진자가 100명을 넘었습니다. 금요일에는 204명이 됐습니다. 어제는 433명이 됐습니다. 지난 목요일 확진자의 70프로가 신천지였습니다. 지금은 53.3프로입니다. 433명 중 231명이 신천지입니다. 왜 신천지일까요? 저는 신천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저는 그동안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이 전염병이 어떻게 번질지 모릅니다. 2002년에 사스가 있었습니다. 2003년에는 메르스가 있었습니다.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전의 전염병과는 그 확산이나 양상이 아주 다릅니다.
하늘이 닫히고 비가 오지 않는 것, 메뚜기 떼의 습격, 전염병의 유행은 고대의 미개한 시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설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흑사병처럼 중세 역사책에 나오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문제입니다.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3,000여 년 전에 이 모든 것을 이미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재앙이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사회가 병들 때 생긴다는 현상이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가 삐거덕 거립니다. 날짐승의 공습이 있습니다.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성경에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3-14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첫 번째가 회개입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악한 길이 아닌지 생각해봅시다. 나의 길이 하나님의 길인지 마귀의 길인지 생각해봅시다. 마귀의 길을 걷고 있다면 돌아섭시다. 하나님의 길로 갑시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죄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마음의 때를 씻는 것입니다. 회개는 영혼의 묵은 때를 씻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 감염증 때문에 계속 손을 씻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독약으로 손을 씻는 것보다 영혼의 소독약으로 마음의 손을 씻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기도와 말씀이 영혼의 소독약입니다. 영혼의 소독약으로 영혼의 손을 씻읍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스스로 낮추고”라고 했습니다. ‘낮추다’는 말이 ‘굴복시키다’는 뜻입니다(카나으). 겸손은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님! 나는 못합니다. 나는 아닙니다.’라며 엎드리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물과 은혜는 비슷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은 절대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절대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는 것입니다. 전염병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낮추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코로나19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메뚜기 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보다 무서운 것은 메뚜기 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기도입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기도가 문제 해결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는 말은 하나님 자체를 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컴퓨터에는 하드웨어가 있고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하드웨어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본체입니다. 기도 응답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자동차를 사면 옵션이 있습니다. 옵션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이 본체예요. 저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입니다. 퇴근하면서 몇 번 뭐를 사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제 얼굴 보다 손을 먼저 봐요. 제가 안아줘도 아이들의 눈은 선물에 있어요. “아빠! 이게 뭐야?” 아빠가 오니까 선물이 있는 것입니다. 아빠 없는 선물은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옵션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의 장소를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장소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 성전입니다(12절 - 나타나사).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이 성전입니다(12절 - 이르시되).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신 곳이 성전입니다(12절 – 듣고, 15절 – 귀를 기울이리니). 하나님이 기도의 장소로 택하신 곳이 성전입니다(16절).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성전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16절). 솔로몬은 성전을 7년 동안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궁은 13년 동안 건축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화려할까요? 궁전이 훨씬 더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솔로몬의 궁전에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성전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헤롯 왕궁을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여러 번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말이 복음서에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셨습니다. 다른 한번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우셨습니다(참고, 히5:7). 예수님의 눈은 당신의 백성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이 청와대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눈이 대기업 회장실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성전에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약속의 장소, 만남의 장소입니다. 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고친다고 하셨습니다.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듣고 죄를 사하고 땅을 고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과 죄의 용서와 땅을 고치는 문제가 동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땅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창세기에 아담이 죄를 범하자 그 죄로 인해 아담과 땅이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였을 때도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기상학자들은 가뭄, 이상기온이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죄가 땅을 오염시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회개하면 땅을 치료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 나온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 독실한 신자가 열차 기관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천로는 교회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분은 교회 옆을 지날 때마다 경적을 울렸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도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 하겠습니다.”라는 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열차 사고가 났습니다. 열차가 탈선해서 수 십 미터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신문에 이렇게 보도됐습니다. <대형 열차 사고였으나 한 사람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다.> 목사님은 기관사에게 시편91:11-12 말씀을 담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셔서 지켜주셨다는 확신과 감사의 편지였습니다. 기관사가 목사님께 답장을 썼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신 덕으로 한 사람의 사상자도 없었습니다. 신문에는 기적이라고 평했습니다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지켜주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요? 먹는 것, 입는 것이 끊어지는 것일까요? 메뚜기 재앙일까요?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늘이 닫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회가 병들면 나타나는 세 가지, 가뭄 메뚜기 재앙 전염병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회개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회개합시다. 회개가 우리 땅을 고치는 방법입니다. 손을 소독하는 것보다 마스크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우리 땅을 치료합니다. 회개가 우리 사회를 치료합니다. 회개가 약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죄에서 돌이킵시다. 교만하지 맙시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낮춥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시다. 하나님의 평강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한국교회에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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