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 ok!
등대교회 홈페이지입니다.

Sermon

주기도문 강해7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조회수 : 1090회

본문 : 마태복음 6:9
주일오전예배 | 2020-02-0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임스 바틀리라는 영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묘비에는 고래에 잡혀 먹었다 살아난 사람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제임스는 다른 사람들과 18912월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근처 바다에서 고래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포경선 선원들은 향유고래를 발견하고 밧줄이 달려 있는 작살을 쏘았습니다. 향유고래는 고통스러워하다가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선원들은 향유고래가 다시 올라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향유고래가 밑에서 배를 아주 세게 들이받았습니다.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선원들은 물에 빠졌습니다. 모두 구조를 받았지만 제임스는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그날 밤에 떠오른 향유고래를 분해했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뼈와 내장을 바다 버리려는 순간 내장이 꿈틀댔습니다. 내장을 갈라보았더니 제임스가 있었습니다. 고래 뱃속에서 무려 15시간 동안 있었던 것입니다. 몸의 털이 다 빠지고 살갗은 엄청나게 하얀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제임스는 한 달을 치료받은 후에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비로소 사람들에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래 뱃속이 아주 따뜻했다고 했습니다. 약간의 공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내장이 수축하는 느낌이 들 때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향유고래의 크기는 13m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15시간이 아니라 무려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습니다. 3일이라면 72시간입니다. 날 수로 3일이라면 48시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의사의 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바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나도 정신이 혼미하지 않았을까요? 기가 막히지 않았을까요? 보통 정신력이 아닙니다.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는 시편 말씀을 암송하며 기도도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성이 아닐까요? 참 신비한 민족입니다. 애굽이 이스라엘 민족을 430년 동안 삼켰습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앗수르가 삼켰습니다. 바벨론이 삼켰습니다. 메대 파사가 삼켰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가 삼켰습니다. 로마가 삼켰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의 히틀러가 삼켰습니다. 러시아가 삼켰습니다. 그 외에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스라엘은 건재합니다.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를 요나 민족이라고 합니다. 고기가 삼켜도 소화되지 않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무엇이 이스라엘 민족을 그 모진 고난에서도 살아남게 했을까요? 저는 그 비밀이 하나님의 이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민족입니다.   

이 시간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버린 이스라엘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린 이름을 하나님이 다시 누구에게 주셨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버린 이스라엘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린 이스라엘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그들은 누구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선택받은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32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십니다. 이후에 야곱의 모든 후손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사라와 엘의 합성어입니다. 사라의 뜻은 주도하다, 끈질기게 다투어서 이기다, 다스리다입니다. ‘이스라는 사라의 3인칭 평서형입니다. 엘은 하나님’, ‘강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엘은 하나님의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이름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주 특별한 민족입니다.   

어떤 성경학자에 따르면 성경에는 467개의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스스로 있는 나()’, ‘나는 나등의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된 때는 출애굽 직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에서 이 이름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하나님의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저 하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한 민족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한 곳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두십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이스라엘의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맡은 자들입니다.   

<12: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삼하7: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이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명성, 명예, 기억, 기념 등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단어입니다. 이름을 맡기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맡기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와 명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아주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신뢰와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이름은 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이름은 붙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입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선택받은 민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선포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9:16, 102:21). 왜요? 하나님의 이름에 인간의 구원과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게 하신 것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20:24). 자신의 이름을 위한 삶, 자신의 명예를 위한 삶, 그것은 교만의 길, 멸망의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 때 영광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세요. 하나님의 이름에 인간의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인간의 영광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되 행복은 추구하지 마세요. 행복은 추구할수록 도망갑니다. 만족이라는 것은 추구할수록 사람을 목마르게 합니다. 갈증이 나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 때 참된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버렸습니다. 그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시편 74: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36: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성전은 무너졌고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성전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성전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는 것은 인간에게 패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의 이름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구원과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드세요. 하나님의 이름을 추구하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세요.  

2.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인들에게 주시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린 이름을 하나님은 누구에게 주셨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 민족의 성전에서 없어졌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이제 이 땅에서 없어진 것일까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졌다면 하나님의 이름도 무너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성전이 없어도 하나님의 이름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이 무너져도 하나님의 이름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구약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전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성전이 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사람 성전입니다. 건물 성전이 아닙니다. 인격 성전입니다. 무인격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이름은 저와 여러분의 몸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이름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맡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11:26, 26:28, 벧전4:16).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시리아의 안디옥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들의 입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는 거예요. 안디옥 사람들은 조롱의 의미로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티아노스라고 불렀습니다. 크리스디아노스는 헬라어 크리스토스에 라틴어 어미 이아노스라는 말을 붙여서 만든 단어입니다. 크리스토스는 그리스도입니다. 이아노스는 노예 또는 그에 속한 가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집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노예 또는 그리스도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된 것입니다. 이름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맡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너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몇 말들이 여러분 자신입니다. 한 번 물어보세요. 저도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나는 목사다!’입니다. 두 번째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는 크리스천이다!’ 이상하죠. 제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안에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목사, 하나님의 자녀,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의 이름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리스도의 집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기도하라.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주기도에는 일곱 가지 간구가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 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린 하나님의 이름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주기도로 기도를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린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예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럽힌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세요. 나에게 하나님의 명예가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사세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행복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 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3.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름의 책입니다. 정말 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책 중에 등장인물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삼국지입니다. 삼국지에 등장인물이 1,000명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등장인물이 몇 명이나 나올까요? 성경에는 등장인물이 2197명이라고 합니다(신오균). 물론 이름만 나오는 사람들은 뺀 숫자입니다. 한 번이라도 이름이 언급된 사람까지 다 포함하면 수 만 명입니다. 정말 엄청난 숫자입니다. 사람 이름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다윗입니다. 1천 번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제가 개역개정판 성경에서 검색해보니까 902번 나옵니다. 야곱이 365번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236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가장 많이 불린 개인의 이름은 다윗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는 몇 번 나올까요? 6,828번 나옵니다(트리브그 메팅커 - 하나님의 이름들). 하나님이라는 말은 약 4천 번 나옵니다. 주라는 말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4복음서에만 예수 이름이 1,042번 나옵니다. 성경은 이름의 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당신의 이름이 계속해서 불리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 세상 다른 신들과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시편은 성도들이 삶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찬양과 기도로 엮은 책입니다. 시편에만 여호와라는 말이 688번 나옵니다. 여호와라는 말이 시편 한권에 구약 전체의 1/10이 나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382번 나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도 구약 전체의 1/10 정도 됩니다. 주라는 말은 700번이 넘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삶에서 끊임없이 주님을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세요. 수시로 부르세요. 길을 가다가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은 여러분에게 불리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주님을 부를 때 주님은 높임을 받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공언하는 것입니다(왓슨). 공회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입으로 고백하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때 베드로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다 죽어가는 소리이었을까요? 큰 소리이었을까요? 틀림없이 확신에 찬 큰 소리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공회 앞에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공언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현대 교회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욕을 먹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담대하게 선포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공언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신 이유를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셋째, 순수한 몸과 마음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왓슨). 바울은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술에 취해 제사를 집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모독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가까이 하는 자가 내 거룩함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수한 마음, 신령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10: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넷째, 환난 중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말씀을 어떤 번역가는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라고 번역했습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높임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환난을 당할 때,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슬플 때, 괴로울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다섯 째,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주일을 세상 사람들은 일요일, 선데이라고 합니다. 일요일을 라틴어로 Dies solis라고 불렀습니다. 태양에게 바쳐진 날이라는 뜻입니다. 해에게 바쳐진 날이라는 의미의 'Day of the sun'에서 유래한 것이 Sunday입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 태양신을 ‘Sol’이라 부르며 숭배했습니다. 4계명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날, 주의 날을 기억해서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여러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세요

여섯 째,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 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못 살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집니다. 사무엘상 25장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부모님은 그에게 귀족같이 살라는 의미에서 나발이라고 지어준 것 같습니다. 영어의 귀족’(noble)이라는 말이 히브리어 나발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나발이 형용사로 바보또는 무감각한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에 대해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라고 말합니다. 잘 살았다면 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못 살아서 바보가 됐습니다.   

히브리어 야곱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리라또는 하나님이 지키시리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와 사촌언어인 셈족어에서는 야곱이 속이는 것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와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장자권을 탈취해간 야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녀석의 이름이 왜 야곱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이 이번까지 두 번이나 저를 속였습니다.” 야곱이 잘 살았더라면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라고 불리었을 것입니다. 못살았기 때문에 사기꾼이라고 불린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면 하나님이 영광받으십니다. 하지만 못 살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집니다. 잘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삶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를 꼽는다면 단연 독일의 요한 세바스찬 바하(1685.3.21 - 1750.7.28)입니다. 아마도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바흐를 뛰어넘는 음악가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떠나 형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형은 바흐를 미워했습니다. 형에게 구박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바흐는 결혼을 해서 7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레오폴드 후작과 외국 연주 여행을 다녀와 보니 아내가 세상을 떠나 장례를 이미 치룬 후였습니다. 재혼해서 13명의 자녀를 더 낳았습니다. 그 중에 10명이 죽었습니다. 나머지 10명 중에는 정신박약아도 있었습니다. 바하는 노년에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됐습니다. 너무 가난했습니다. 둘째 부인이 먼저 죽었습니다. 장례를 치룰 돈이 없어 빈민 구제위원회에 장례를 맡겨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참기 어려운 고난이 바흐를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로 만들었습니다. 바흐의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음악가들은 그의 음악을 한 송이 장미꽃에 비유합니다. 고난이 그의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한 것입니다. 바하는 오라토리오, 칸타나 작곡을 끝내고 나서 꼭 오선지에 SDG라고 적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라는 말입니다. 오르간 연주곡을 작곡하고 나서는 꼭 INJ라고 적었습니다. <예수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의 약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바하 가문에서 200여년 흐르면서 저명한 작곡가 50여명이 나왔습니다.  

에스겔36:21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껴주세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여기 아끼다는 말이 히브어로(하말) ‘가엾게 생각하다’,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주세요.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애통해 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세요. 이 이름에 우리 인생의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전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다음글 주기도문 강해6 - 가장 위대한 기도의 머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