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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1:6)
제 작년 제 딸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왔습니다. 저와 아내는 딸아이가 어떻게 장학금을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학원을 보내주지 않아 수학 성적이 너무 형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적 장학금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내가 부모님, 형제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말 잘 못하면 자랑이 될 것 같았습니다. 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게 했습니다. 그 후에도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이 됐습니다. 대학을 모두 떨어졌습니다. 충분히 붙을 만한 곳까지 모두 떨어졌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주는 기쁨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잠깐입니다.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가 제게 기쁨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항상 기쁨은 아닙니다. 아내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저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좋았다 나빴다 합니다. 세상은 변덕스럽습니다. 세상은 날씨처럼 좋았다 나빴다 합니다. 항상 맑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항상 기쁨입니다.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환난은 포도즙을 짜는 기계로 포도를 쥐어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보면 포도를 비틀어 짜는 듯한 고통을 당합니다. 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면 쥐어짜는 듯한 고통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 환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적당히 힘들면 기도가 됩니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가 막혀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찬송도 부를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들면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이 쑥처럼 쓰디씁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말씀을 꿀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와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받는 자’라는 말이 헬라어로 ‘흉내내는 자’, ‘모방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본받는다는 것은 똑같이 따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고난 중에서 예수님처럼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면 고난 중에서 바울처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한두 번 흉내내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똑같이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주시는 기쁨의 위력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깐입니다. 지나고 보면 한 점과 같습니다. 시편 90:4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천년이 한 점과 같다면 인생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일까요? 정말 잠깐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에게 기쁨을 줄 때 너무 기뻐하지 마세요. 그 기쁨이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세상이 기쁨을 줄 때 그냥 하나님 앞에 겸손히 감사하세요.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사모하세요. 그 기쁨이 진짜 기쁨입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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