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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할렐루야! 오늘은 2020년 새해 첫 번째 주일입니다. 새해에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위에 형통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건강을 축복합니다. 평안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2020년대가 시작되는 첫 번째 주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2010년대는 다 지났습니다. 새로운 십년이 시작됐습니다. 앞으로의 십 년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결심을 합니다. 금연, 금주, 운동, 공부 등등. 여러분은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뉴욕 타임지가 깨지기 쉬운 새해 결심 10가지를 뽑아봤습니다. 결심은 많이 하는데 잘 깨지는 새해 결심 10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살 빼고 운동하기입니다. 연말이 되면 회식, 동창회,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많습니다. 모임은 없어도 왠지 밖에서 한 번쯤은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은 때가 12월입니다. 그래서 연말을 과식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12월은 살찌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1월에는 헬스클럽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하지만 60프로는 뜨내기라고 합니다. 2월 중순이 되면 원래대로 돌아간답니다. 운동결심이 한 달 반 정도 가는 것입니다. 새해에 운동 해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담배 끊기입니다. 새해가 되면 금연패치, 금연 검, 금연초가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 중에 15프로만 6개월 이후까지 금연을 유지한답니다. 새해입니다.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은 금연 계획을 세워보세요. 세 번째는 새로운 분야 배우기입니다. 네 번째는 건강한 식생활 유지하기입니다. 간식과 폭식을 금한다고 합니다. 건강한 식생활을 하세요. 집에서 드세요. 집 밥이 건강에 제일 좋습니다. 다섯 번째는 빚 청산하고 저축하기입니다. 아껴 쓰세요. 여섯 번째는 가족과 시간 보내기입니다. 새해에는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부모, 남편, 아내, 자녀에게 최선을 다 하세요. 남는 것은 가족뿐입니다. 일곱째는 새로운 곳 여행하기입니다. 여덟 번째는 스트레스 덜 받기입니다. 아홉 번째는 봉사활동하기입니다. 열 번째는 술 덜 마시기입니다. 술을 덜 마시는 것도 좋지만 끊으면 더 좋습니다. 그것으로 좋은 일 하세요. 여러분은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만약 열 가지 중에 하나라도 결심을 하셨다면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계속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현식씨의 「새해결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현식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불분명하게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바꾸려면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사는데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새로운 일을 결심하세요. 코넌트는 “거북이를 보라. 그는 목을 펼 때만 앞으로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결심이 우리를 전진하게 합니다. 2020년 새해에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해보세요. 뭐든지 계속 결심하세요. 안 돼도 다시 결심하세요. 결심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게 세 가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첫째, 마음을 넓힙시다. 둘째, 마음을 강하게 합시다. 셋째, 거룩하게 삽시다. 2020년에는 보다 넓고 강한 마음을 가지고 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삽시다. 이 시간 이 세 가지를 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혜로 마음을 넓히라
첫째, 2020년 한 해를 예수님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삽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고린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게 열었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입이 열리고’라는 말은 ‘숨김없이 다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숨기는 것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투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말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합니다. 입이 열려 있었다는 말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교회 앞에 바울은 숨기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를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출 것도 없었고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또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바울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열린 입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세요.
반면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음이 좁았습니다. 12절에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우리가 여러분을 옹색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색한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이 좁아진 것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좁아진 것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입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닫혀져 있었습니다. 여기 좁아지다는 말이 헬라어로 스테노코레오입니다. 스테노코레오는 ‘좁다(좁아지다), 빽빽이 들어차다, 압착하다’는 뜻입니다. 조금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아주 밀착된 상태를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아주 좁아져 있었습니다.
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옹색해졌을까요? 그것은 거짓말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지 못합니다. 약속을 못 지킨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에게 다른 선교 일정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때 고린도 교회 안에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가짜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헛소문을 퍼트린 것입니다.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 무슨 사도냐?”, “그 동안 바울이 너희들에게 했던 모든 행동은 외식이다.”, “너희들 짝사랑하지 마라. 바울은 너희들에게 애정이 없다.” 등등의 온갖 악의적인 말들을 지어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닫혔습니다. 좁아졌습니다.
세상은 뒤에서 말합니다. 거짓을 말합니다. 음모를 꾸밉니다. 거짓을 진짜처럼 말합니다. 공산주의자 레닌은 ‘거짓말도 100번 하면 참말이 된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참말이라고 우깁니다. 세상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세상은 거짓을 말합니다. 뒤에서 하는 말에 속지 마세요. 거짓에 속지 마세요. 세상에 속지 마세요. 그거 모두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해 바울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고린도후서 보다 먼저 기록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4:15) 복음으로 내가 너희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가진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처럼 넓은 마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입이 열려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기들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피치 못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고 바울을 오해한 것입니다. 오해는 마음을 좁아지게 합니다. 오해는 마음을 옹색하게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거짓에 속지 마세요. 수군수군하는 말에 속지 마세요. 모두 이간질입니다. 마귀는 거짓말, 이간질에 선수입니다. 마음을 넓히세요.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넓힐 수 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13절에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내 자녀들에게 말하듯이 말한다. 아버지의 넓은 마음으로 말한다. 내 마음은 너희들을 향해 넓게 열려 있으니 너희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넓은 마음을 가져라.” 여기 ‘보답’이라는 말의 의미가 ‘동일한 보상’입니다. 바울이 마음을 넓힌 만큼 동일하게 마음을 넓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넓은 마음으로 우리를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마음을 넓힙시다. 이 우주에서 마음이 가장 넓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넓은 마음을 가집시다. 넓은 마음으로 교우들의 연약함을 받아주고 덮어줍시다. 바리새인처럼 구부러진 마음, 좁은 마음으로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말하지 맙시다. 마음을 넓힙시다. 넉넉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합시다.
2. 은혜로 마음을 강하게 하라
두 번째, 2020년 마음을 강하게 하고 삽시다. 과거에 비해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포기합니다. 별일 아닌데도 낙심합니다. 그냥 우울해하고 슬퍼합니다. 왜 이렇게 현대인들의 마음이 약해져 있을까요? 그것은 사탄의 공격이 과거보다 더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오스 힐먼의 「내 마음 살리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힐먼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아기가 어머니 배 속에 생겼을 때부터 사탄은 공격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낙태를 통해 생명을 앗아가려고도 한다. 예수님과 모세가 태어났을 때도 그랬다. 사탄의 강령이 무엇인지 아는가? 요한복음10장 10절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거라고 말한다. 사탄이 당신을 태어날 때 죽이지 못했다면 어떻게든 유년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수치와 학대, 방치와 거부로 인해 혹은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심각한 결핍을 갖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9쪽)
가정 폭력 치유 사역자인 폴 헥스트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5년에 걸친 연구 결과, 부부들이 직면하는 문제의 약 98퍼센트가 각자 11세 미만에 겪었던 유년기의 상처가 원인이라고 밝혀졌다.” 11세 이전에 어떤 일을 겪었느냐가 11세 이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11세 이전에 겪은 일들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인생을 망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공격합니다. 그것도 태아 때부터 공격하는 것입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세 번의 상처를 입는다고 합니다. 1년이면 1,095번입니다. 10세가 되면 10,950번입니다. 20세가 되면 2만 번이 넘습니다. 2만 번의 상처를 입은 사람의 마음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상처로 성한 곳이 없는 마음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사탄의 공격으로 현대인의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습니다. 곪을 대로 곪아 있습니다. 이렇게 약해진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마음을 강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몇 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 방법은 마땅히 없다.” 제가 그분의 말에 아주 공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 공부하는 분들은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명상의 방법은 몇 시간 동안 좋은 말을 계속 듣는 것입니다. 제가 궁금해서 들어봤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성공에 배 아파하지 않는다. 나는 단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 참 자랑스럽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나는 내 인생의 주연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런 말들을 10-20분이 아니라 5-6시간 동안 계속 듣는 거예요. 좋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듣는 것이 마음을 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문득 명상이 자기 최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금 들으니까 머리가 아파서 못 듣겠더라고요. 제가 심리, 상담, 내면치유에 대해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참고로만 들으세요. 어떤 부분에서 이런 학문들이 자기 최면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분이 상담을 받더니 최면 같다는 거예요. 자기 최면을 하면 마음이 강해질까요? 아니요. 강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마음을 강하게 하는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요? 사람은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마음을 사람이 어떻게 강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기 ‘굳게 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베바이오오(βεβαιόω)입니다. 베바이오오는 ‘견고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 굳게 하다, 확립하다’는 뜻입니다. 은혜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합니다. 다른 것은 안돼요. 오직 은혜뿐입니다. 은혜는 은혜 은(恩)자에 은혜 베풀 혜(惠)를 씁니다. 은혜를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합니다. 카리스는 “호의”, “감사”, “선물”, “자비”, “너그러움”, “기쁨”라는 뜻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이유 없이 그냥 베푸는 것입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바울은 은혜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엡2:8).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강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안 됩니다. 혹시 마음이 약해지실 때가 있습니까? 은혜를 받으세요. 하나님이 그냥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보세요.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강해집니다.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음식은 몸을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은혜로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상한 교훈에 끌리지 마세요. 이 세상 교훈은 마음을 강하게 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오직 은혜로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이 헬라어로 칼론(καλόν)이다. 칼론은 아름다운 외에 ‘유익한, 훌륭한 유리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는 일은 아름답고 훌륭한 일입니다. 은혜가 사람을 유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까요? 그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되어 집니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은혜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은혜는 사람을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다. 은혜는 삶의 원동력입니다.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은혜로 거룩하라
세 번째 2020년 거룩한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영적으로 깨끗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점점 영적으로 어두워질 것입니다. 2014년 세계 에이즈 감염자 수가 200만 명이었습니다. 2000년에 비해 35프로가 줄어든 수치입니다. 세계적으로 에이즈 환자가 줄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에이즈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달에 백 명씩 늘고 있습니다. 1년이면 1,200명입니다. 2000년 6월에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가 1,173명이었습니다. 2014년에 10,0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이 있습니다. 보건소에서 에이즈 약을 타가는 사람 중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누구인지 물어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약을 달라면 그냥 줘야 한답니다. 정말 이상한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에이즈 환자가 2만 명이 훨씬 넘었던 거예요.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약값이 월 150만원입니다. 모두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50억 원이 나가고 있습니다. 약 값만 1년이면 1,800억입니다. 그 외에 들어가는 치료비가 엄청납니다. 그런데 지금도 전국적으로 동성애법을 통과시켜달라고 퀴어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에이즈 환자 중 98.5프로가 성접촉으로 감염되었습니다. 남자들이 대낮에 벌거벗고 퀴어축제를 하고 있어요. 이것을 국가에서 허락해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어떤 남자가 어떤 여인이 유혹해서 함께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여자는 없고 테이블에 메모가 있습니다. “에이즈 가족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분풀이로 병을 옮기고 있는 거예요. 세상이 정말 음란합니다. 거룩하게 사세요.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요? 사람은 두 가지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말씀으로 거룩해집니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왜 말씀이 사람을 거룩하게 할까요?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순결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119:160에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참조 119:15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순결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접촉돼야 사람은 거룩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진리의 말씀에 여러분을 접촉시키세요. 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세요. 이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세상 진리는 철학자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샌델은 정의를 세 가지 측면에서 추적합니다. 먼저 샌델은 정의를 공리주의 입장에서 추적합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최대다수가 최대의 행복을 정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샌델은 공리주의는 정의를 원칙이 아니라 계산의 문제로 만들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공리주의를 비판합니다. 둘째, 정의를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선택의 자유는 종종 종교적 • 도덕적인 문제와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성 결혼은 종교적 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샌델은 선택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정의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 정의를 미덕을 키우고 공동의 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동의 선을 정의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좋은 삶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우리 시대에 모두가 선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정의입니까? 모두가 좋으면 그것이 정의입니까? 이 시대가 끝나고 다음 시대에 사람들은 다른 것을 공동의 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의가 바뀌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바뀌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랬다 저랬다는 하는 게 정의일까요? 정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어야 정의입니다. 또 좋은 것 보다 앞서는 것이 옳음입니다. ‘정의’는 ‘옳다’는 뜻입니다. 옳음, 의는 좋은 것 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만약 옮음이 없이 모두가 좋다고 그것을 추구한다면 이 가치는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샌델은 옳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치를 아주 추락시켰습니다. 한 마디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거예요. 마이클 샌델은 27세에 최연소로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됐습니다. 천재학자입니다. 30여 년 동안 하버드 대학의 가장 인기 있는 교수입니다. 1년에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샌델의 강의를 듣습니다. 샌델의 강의에 세계가 환호했습니다. 가까운 대학 도서관의 추천도서 중 하나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정의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샌델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금이 왜 가치가 있습니까? 다이아몬드가 왜 가치가 있습니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은 모든 시대 모든 공간에서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진리란 영원토록 변함이 없어야 진리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리저리 바뀌는 세상 진리는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없어요. 순결한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사세요.
둘째, 기도가 사람을 거룩하게 합니다. 왜 기도가 사람을 거룩하게 할까요? 그것은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께 접촉시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기도라는 말이 헬라어로 ‘엔튝시스’(ἔντευξις)입니다. 보통 기도라는 말에 프로슈코마이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엔튝시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엔튝시스는 특별한 단어로 성도가 누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밀함을 묘사합니다. 더러운 것을 만지면 더러워집니다. 하지만 깨끗한 것을 만지면 깨끗해집니다. 병원에 가면 병실 입구에 손 소독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손에 바르면 손이 깨끗하게 살균이 됩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더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고 들어오라는 말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소독약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접촉할 때 우리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하기아조(ἁγιάζω)입니다. 하기아조는 ‘신성하게 하다,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 거룩하다는 말은 사람이나 물건이 그 속성에 부합되기 위하여 성결하여지는 것을 뜻합니다. 거룩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거예요. 거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거예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이 사람다워집니다. 사람이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쓸모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접촉하세요. 그래서 거룩해지세요. 그때 우리의 인생이 인생다워집니다.
2020년 새로운 해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십년이 시작됐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새 날을 주십니다. 우리도 새로워집시다. 나를 위해서 결심합니다. 내 가정을 위해서 뭔가 결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결심합시다. 예수님처럼 넓은 마음을 결심합시다. 은혜로 마음을 강하게 하기로 결심합니다. 거룩을 결심합시다. 빌리 썬데이는 “많은 사람이 재능의 부족보다 결심의 부족으로 실패한다.”라고 했습니다. 재능, 재산, 환경 때문이 아니라 결심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무엇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매우 냉철한 사람이었습니다. 칸트는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답변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답답했던 여인이 칸트에게 결혼 여부를 분명히 말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칸트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바로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책들을 찾아 결혼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을 모아 연구하며 결혼을 해야 좋을지 안해야 좋을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여인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보게, 너무 늦었네. 내 딸은 벌써 결혼해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결단은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다 허비한 후에 결단하지 맙시다. 지금 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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