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하나님의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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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전도서 2:24~26
주일오전예배 | 2019-12-0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인생은 비극일까요? 아니면 희극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희극인거 같기도 하고 비극인거 같기도 하고! 희극이었으면 좋은데 비극에 가까운 것 같고. 어찌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고. 참 어려운 물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반드시 희극이 되길 축복합니다. 찰리 채플린(1889-1977)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습니다. 채플린은 배우, 코미디언, 음악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천재 영화인입니다. 그는 20세기 전 세계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이자, 위대한 영화인으로 평가받습니다. 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는 채플린을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 50명에서 남자배우 순위 중 10위에 선정했습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가 82편입니다. , 아카데미,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당대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정말 신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세 번 이혼했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대부분 10대라고 합니다. 자신과 70살이 차이가 나는 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문란한 사생활과 상대 여성들의 어린 나이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정말 아름다운 희극입니다. 정말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재밌고 신이 납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칙칙했습니다. 추하고 문란했어요. 그의 인생은 그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의 삶이 채플린의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아파트에 삽니다. 낮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합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각종 문화생활을 즐깁니다. 때때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여행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없다! 모자라다! 괴롭다! 싫다! 슬프다!” 짜증, 불평, 원망, 분노가 가득해요.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기 못사는 나라보다 행복지수가 훨씬 낮아요. 현대인들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에요. 정말 잘 살아요. 멋져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에요. 병들어 있어요. 우울해요. 현대인의 삶은 멀리서 보면 백화점이에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시골 구멍가게 같아요. 제가 비약이 너무 심했나요?  

그런데 솔로몬도 그랬던 것 같아요. 솔로몬은 순금으로 만든 보좌가 있었습니다. 금방패가 200개입니다. 1년에 들어오는 금이 666달란트입니다. 1달란트는 34kg입니다. 22,644kg입니다. 왕국에서 쓰는 그릇은 모두 금입니다. 은이 돌같이 흔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수시로 진귀한 보물들을 실어왔습니다. 부인이 1,000명입니다. 그 중 700명은 왕족이고 300명은 평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싶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금을 싸들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역대하에 ‘~한 것이 없었다는 말이 8번 나옵니다. 이 중에 7번이 솔로몬과 관계되어서 나옵니다. ‘측량할 수 없었더라’(4:18),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5:6), ‘같은 것이 전에는 없었더라’(9:9) 솔로몬은 이전에 누구도 누려보지 못했던 찬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인생 말년에 전도서를 쓰면서 헛되다는 말을 36번 합니다. 바람 13, 죽음/사망 16, 근심 5번 사용합니다. 이 외에 슬픔(3), 괴로움(2), 무익(1), 눈물(1), 울다(1), 번뇌(1), 질병(1), 분노(1) 등 부정적인 단어를 막 쏟아냅니다. 솔로몬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입니까? 아니면 멀리서도 비극이고 가까이서도 비극입니다. 아니면 멀리서도 희극이고 가까이서도 희극입니까? 솔로몬은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헛되다!’ ‘괴롭다!’ ‘슬프다!’ ‘무익하다!’는 말을 계속 사용하다가 갑자기 224절에서 기쁘다!’, ‘좋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인생을 한 없이 허무해하던 솔로몬이 왜 갑자기 기쁘다!’, ‘좋다!’고 했을까요?

1. 일의 기쁨 - 하나님의 손에 있다.  

솔로몬은 24절에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쇼송은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숨김없는 사랑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뮐러는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충분한 음식이지 훌륭한 말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수고) 또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일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헨리 포드는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토쿠토미 소호오는 잠은 일어나기 위함이요, 휴식은 일하기 위함이다.” 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가장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이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기본이 사람에게 만족을 줍니다. 여러분! 기본에 충실하세요. 사람들은 특별한 것,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만족은 기본에 있습니다.  

작년에 냉장고가 고장이 났습니다. 서비스를 불렀습니다. 서비스 기사분이 이제 쓸 만큼 썼으니까 새로 사라는 것입니다. 기사분께 어떤 냉장고가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사분이 냉장고이건 세탁기이건 전자제품은 기본형이 제일 좋아요. 기능이 많을수록 고장이 많아요. 기본형은 고장도 없고 오래 씁니다.”라고 하세요. 그런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세탁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신형 드럼 세탁기입니다. 사용한지 7년 됐습니다. 이것을 사용하기 전에는 통돌이를 썼습니다. 통돌이는 12년을 사용했습니다. 12년 쓴 통돌이는 고장이 나서 버린 것이 아닙니다. 너무 오래 써서 구석구석 떼가 많이 껴서 버렸습니다. 작년에 통돌이 세탁기 가격이 3-40만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니까 7-80만원이 넘는 거예요. 갑자기 비싸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통돌이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기본형이 좋은 거예요. 기본형이 좋습니다. 기본에 충실하세요.  

솔로몬이 아주 기본적인 일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바로 이전까지 일과 수고가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다고 했습니다. 4절에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고 동산과 과수원을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종들과 가축을 많이 가졌습니다.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세상의 진귀한 보물들을 모았습니다. 솔로몬은 일 중독자처럼 일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예루살렘에 있던 어떤 사람들보다 더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것을 다 가진 후에 솔로몬은 ! 좋다. ! 기쁘다.”라고 하지 않고 아 헛되다. ! 슬프다. ! 괴롭다.”라고 했습니다. 11절에 수고와 일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또 무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7절에 일이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18절에는 수고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20절에는 자기가 한 수고에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23절에는 수고가 슬픔이라고 했습니다. 2장에서 솔로몬은 일과 관련해서 헛되다는 말을 8번 쓰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누구보다 좋은 것을 먹었습니다. 크고 놀라운 일들을 해냈습니다. 크게 성공했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그것들을 허무해하는 거예요. 심지어 괴로워하는 거예요. 고통스러워하는 거예요. 참 이상하죠. 그러다가 솔로몬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왜 갑자기 솔로몬이 달라졌을까요? 앞에서는 일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일이 기쁘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솔로몬을 달라지게 했을까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솔로몬은 24절 끝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기쁨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사람은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합니다. 솔로몬은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왜요? 일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일에는 기쁨도 없었습니다. 사람과 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인생, 하나님 없는 일은 허무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일에 얼마나 깊이 빠졌는지 일을 하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일에 포로가 되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허무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하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릴 정도로 하지는 마세요. 청교도 지도자인 존 프레스톤은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4장에 예수님의 큰 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밭에 일하러 나갔습니다. 일 때문에 잔치를 사양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소리를 다섯 겨리 샀습니다. 소를 시험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잔치를 사양했습니다. 모두 일 때문에 바빠서 잔치를 사양했습니다. 일 때문에 영혼의 위험에 직면한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막스 베버는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근면, 절약, 정직을 기독교의 노동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근면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혼이 위험에 빠질 정도로 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없이 일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인은 근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에 열중한 나머지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오랜 시간 인질범에게 잡혀있다 보면 인질범들을 공감하게 되어 그들에게 협조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19738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은행직원들은 6일 동안 인질로 잡혀있었습니다. 정말 오래 잡혀 있었죠. 사건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은행직원들 중 몇 사람이 범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스웨덴의 범죄 심리학자 닐스 베예로트는 이것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질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아내나 학대 받은 아이들이 남편, 아버지를 옹호하는 것도 스톡홀름증후군의 심리상태로 불립니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인질 혹은 포로에 비유했습니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가 직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 포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죄수처럼 끌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직장, 직장 상사, 일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옳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마음 아픈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그런데 직장, 일에 포로가 되지는 마세요.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였습니다. 다니엘은 왕궁에 취업했습니다. 정말 취업을 잘했습니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었습니다. 다니엘의 직장 상사가 환관장이였습니다. 환관장의 손에 다니엘의 출세, 성공, 실패가 달려있습니다. 환관장의 손에 생사여탈권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환관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환관장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다니엘은 성공, 일에 포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근면하게 일할 것을 권면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1-12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라는 말을 NIV 성경은 외부인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라고 번역했습니다.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람은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만족을 얻습니다. 그런데 일에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족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일을 하되 하나님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일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일은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이것에 일의 정신입니다.

2. 먹는 기쁨 - 하나님의 손에 있다.  

솔로몬은 25절에서 ,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생각하면 나 보다 먹고 즐기는 일을 더 많이 해 본 사람이 없다.”, “먹고 즐기는 일은 내가 최고다.”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바로 직전에 솔로몬은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4)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먹고 마시고 일하면서 누리는 기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24),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는 말씀을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떠나서 먹고 즐기는 일을 아무리 해도 기쁨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먹고 마시는 일을 최고로 해보았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는 아무리 먹고 마셔도 기쁨이 없더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일도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그를 떠나서 누가 먹거나 즐거워 할 수 있느냐?”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먹어도 기쁨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열심히 드세요. 잘 드세요.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먹고 마시지 마세요. 하나님 안에서 드세요. 하나님 앞에서 드세요. 하나님 없이 먹고 마시지 마세요.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습니다. 음식은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음식은 하나님을 위해 있습니다. 음식은 하나님을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2시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입니다. 배가 고프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사람은 왜 배가 고플까요? 왜 목이 마를까요? 천사는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래서 천사는 음식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사처럼 배가 고프지 않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음식이 필요 없는 생명체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이 배가 고프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배가 고프도록 만드셨을까요? 왜 음식을 만드셨을까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왜 음식을 지으셨고 음식이 있어야만 인간의 목숨이 부지되게 하셨을까요? 왜 배고픔과 목마름일까요? 이 질문에 존 파이퍼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분이 떡을 지으신 것은 나는 생명의 떡”(6:35)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갈증과 해갈의 리듬을 지으신 것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굳이 음식과 물이 필요한 존재, 미각의 즐거움을 아는 존재를 지으실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 굶주린 삶, 32)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명대로라면 우리가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예수님을 먹고 마시라는 싸인과 같은 것입니다. 음식은 우리에게 생명의 참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적 배고픔은 영적 배고픔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육적 음식은 영적 음식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35에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주에게로 돌아감이란 말은 만물이 존재하는 목적이 그분을 주목하게 하고 칭송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만물이 다 그[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음식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33). 즉 배고픔과 목마름은 예수님을 먹고 마시라는 싸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먹고 마시세요. 예수님 없는 음식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0)  

인류 역사에서 요즘처럼 먹고 즐기는 문화가 발달된 때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입은 아주 고급화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맛있고 더 쇼킹한 것을 찾습니다. 세속적인 향락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먹는 것을 즐기는 미식가들은 먹는 것을 얼마나 탐하는지 토하고 다시 먹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리 먹어도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 좋은 것을 먹는데 왜 만족이 없을까요? 그 음식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드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세요. 일하는 기쁨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처럼 먹는 기쁨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먹을 때 그 음식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줍니다. 하나님 없는 음식은 허무합니다.  

3. 하나님이 의인과 죄인에게 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의인과 죄인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의인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준비하셨습니다. 26절 상반절에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희락을 주실까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이 질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실까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버티기는 것입니다. 24절의 그가 기뻐하시는 자라는 말 뒤에 히브리 성경에는 그분의 얼굴 앞에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 부드럽지 않아서 생략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버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 시험이 있을 때,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믿음으로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버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될까요?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성경과 설교를 통해 보고 듣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티는 사람은 귀로 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 마음에 솟아나는 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반면에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십니다. 26절 하반절에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죄인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타입니다. 하타는 길을 잃다, 놓치다, 죄를 짓다, (과녁에) 빗맞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놓치는 사람이 죄인입니다. 죄인은 단순히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 사람이 죄인입니다. 이 죄인에게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노고입니다. 사람은 땀을 흘리며 수고합니다. 그 수고에 보람과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죄인에게는 수고가 보람과 기쁨이 아니라 노고가 되는 것입니다. 왜 노고가 될까요? 그가 흘린 땀이 다른 사람의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27: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27:17>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솔로몬은 인생 말년에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놓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자신이 평생 모아놓은 재물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허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땀, 하나님이 없는 재물은 허무한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경제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의 손일까요? 하나님의 손입니다. 사람이 경제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경제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시면서 다른 것은 다 놓쳐도 하나님은 놓치지 마세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을 붙드세요.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땀이 노고가 됩니다. 수고가 슬픔이 됩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 않는 한 우리가 자신의 근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을 잃어버릴 정도로는 일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수고가 고통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불리 먹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부르짖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63:1)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63:5)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우리의 삶은 안전합니다. 셜록 홈즈의 추리 소설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강도 사건을 수사 중인 홈즈가 개가 밤중에 이상한 행동을 보였습니다.”고 언급합니다. 동료 경관은 홈즈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며 개는 밤중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라고 말했습니다. 홈즈는 그게 바로 이상한 행동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원래 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이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것입니다. 마치 개가 사람이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2019년 말입니다. 한해가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이맘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세월 참 빠르다. 인생 참 허무하다.’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주변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저만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아직 젊어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인생을 살다가 허무함을 느낀다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허무를 느낄 때 바로 하나님을 찾으세요. 다른 곳에 가지 마세요. 하나님께로 돌아오세요. 기쁨도 만족도 우리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을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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