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누가 더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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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7:40~43
주일오전예배 | 2019-11-1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저는 지난 한 주간을 보내면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매순간 감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캔에 손가락을 비었습니다. 순간 입에서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시작하는 아침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아팠지만 감사해야지!’라고 마음먹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고백했습니다. 화요일에는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계속 고백했습니다. 목요일 밤에는 더 안 좋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를 계속 고백했습니다. 금요일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제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입에서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아니다 싶어 미소를 지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기쁨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웃으니까 금방 기쁨이 생기는 거예요. 웃음 효과에 조금 놀랐습니다. 또 금방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웃으면 3초 만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실험에 의하면 즐거워서 웃는 웃음과 억지로 웃음이 효과가 똑같다고 합니다. 뇌는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웃으면 얼굴의 근육이 움직여 뇌에 신호가 갑니다. 그러면 뇌는 기쁜 일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엔돌핀을 분비한다고 합니다. 웃으면 금방 행복해집니다. 웃으면 금방 기뻐집니다. 함께 미소를 지어봅시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옆에 분과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1. 누가 더 사랑하는가?  

바리새인 중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약한 것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말씀도 아주 권능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시몬은 이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던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청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앉아계실 때였습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신 후에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발에 먼지가 많이 끼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방문한 손님들에게는 씻을 물을 주었습니다. 또 몸에 향유 몇 방울을 뿌렸습니다. 땀 냄새로 인한 불쾌감을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환영의 뜻으로 손님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손님에 대한 아주 큰 결례였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해놓고 물도 드리지 않고 향유도 뿌리지 않았습니다. 또 입을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아주 큰 결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반면에 여인은 물 대신 눈물로, 수건 대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발을 씻기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눈물이 필요할까요? 여인이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 눈물은 억지로 짜내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감격, 감사, 기쁨 때문에 저절로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향유를 몇 방울을 살짝 뿌린 것이 아니라 발이 젖도록 듬뿍 부었습니다. 입을 맞추었다는 말의 시제가 미완료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한 번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보고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몬의 심사가 아주 뒤틀렸습니다. 시몬은 참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만약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며 어떤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저 여자는 죄인이 아닌가!’ 여인은 동네 사람들이면 누구나 아는 죄인이었습니다. 37절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죄인이라는 말은 창녀나 세리를 가리키는 통속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여인을 창녀로 생각합니다. 이 여인은 동네가 다 아는 더러운 죄인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상습적으로 죄를 짓는 죄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여인을 대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행동이 정말 못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듣도록 혼잣말을 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물으십니다. “어떤 채권자에게 빚을 진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500데나리온을, 또 한 사람은 50데나리온을 빚졌다. 두 사람 다 빚 갚을 돈이 없어 채권자가 두 사람의 빚을 모두 없애 주었다. 그러면 두 사람 중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합니다. “더 많은 빚을 면제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입니다. 대답하나 마나한 대답입니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품삯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130,000원 정도입니다. 500데나리온이면 65,000,000원입니다. 50데나리온은 6,500,000원입니다. 두 사람 모두 탕감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이 더 감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저를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게 탕감 받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대로 한다면 여인은 5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이고 시몬은 50데나리온 빚진 사람입니다. 여인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시몬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해놓고 반기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씻을 물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도 뿌리지 않았습니다. 입도 맞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너무 큰 결례를 했습니다. 왜 시몬은 감사할 줄 몰랐을까요? 은혜를 작게 받았기 때문일까요? 조금 탕감 받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은혜를 입은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몬이 은혜를 얼마나 크게 입었는지 보세요. 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간 사건이 얼마나 될까요? 아주 소수의 사람의 집에만 가셨습니다. 저녁 만찬을 함께 한 사람은 더 소수입니다. 시몬은 예수님과 식사를 한 그 소수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아주 큰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시몬은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여인은 자신이 큰 은혜를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몬 보다 더 많이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게 되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배웠든 못 배웠든, 지위가 높든 낮든, 돈이 많든 적든, 신분이 귀하든 천하든 상관없이 이성적인 존재라면 감사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아주 일반적인 것입니다.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인은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천하고 큰 죄를 지었지만 은혜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대로 갚은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가장 큰 악덕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들판에 사는 짐승에게서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 가면 의견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에 의견비’(의로운 개를 기리는 비)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오수의 개>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산을 오를 때 많이 헐떡거린다고 해서 주인이 헐떡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술에 취해 밤에 집에 돌아가다가 들판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들판에 불이 났습니다. 불이 주인이 자고 있는 쪽으로 번져오고 있었습니다. 헐떡이는 물을 입에 머금고 와서 주인에게 뿌렸습니다. 온몸에 물을 적셔 주인이 누워있는 풀 주위를 물을 적셨습니다. 몇 시간 동안이나 헐떡이는 물을 퍼 날랐습니다. 주인은 살았지만 평소 심장이 좋지 않던 헐떡이는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20162월 설날 연휴 첫날 대만에서 6.4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16층 아파트 한 동이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건물 잔해 속에 사람들이 생매장 됐습니다.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가족을 잃은 주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건물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소방관들에게 고양이의 애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방관들이 그곳을 향해 달려가 보니 건물 잔해 창틀에 아직 살아 있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후이었습니다. 이 아파트가 붕괴된 후 구조된 것은 고양이와 라는 소년과 어떤 6살 남자아이 셋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집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습니다. 흰 색, 검은 색, 갈색, 점이 있는 것, 회색, 큰 것, 작은 것 등등 여러 종류의 개들을 키웠습니다. 모두 똥개입니다. 저는 개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개 두 마리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이었던 것 같습니다. 털이 20-30cm 되는 검은 색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누가 빚어주지도 않았는데도 항상 등 한 가운데로 가르마가 반듯하게 나 있었습니다. 똥개인데 아주 멋있는 개이었습니다. 그때는 예방주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아주 지저분했습니다. 벼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개를 끓어 안아주곤 했습니다.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지 제가 학교 갔다 오면 펄쩍 펄쩍 뛰면서 달려들었습니다. 슬프게도 어느 여름날 사라졌습니다. 그 개가 가끔 보고 싶어요.  

제가 청년 때 집에서 기르던 개가 있었습니다. 아주 조그만 개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갔습니다. 개가 낯서니까 저를 보면 짖었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짖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손짓하며 한 마디 합니다. “나 주인이야. 주인!” 하지만 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짖습니다. 어느 날 또 집에 갔습니다. 얼마나 짖는지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발로 걷어찼어요. 그랬더니 안 짖는 거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혼내 줄 걸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30년 된 이야기입니다. 동물 학대라고 신고하지 마세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개 쪽으로 가까이 가면 개가 슬금슬금 피하는 거예요. 더 가까이 가니까 떠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미안하든지요. 지금도 그 개가 생각이 나요. 지난 주간에도 그 개를 여러 번 생각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요.  

들판에 사는 금수도, 공중에 나는 날짐승도 은혜를 압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규유를 알건마는이라고 했습니다. 동물은 은혜를 압니다. 그런데 시몬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는 정말 큰 은혜입니다. 우리 신분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습니다. 지옥 형벌에서 천국 상급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2. 여인의 사랑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의 지갑에는 돈이 있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분이 있고 적게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조지폐를 가지고 계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 진짜 돈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큰 믿음을 가지신 분이 있을 것이고 작은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크면 좋지만 작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진짜이어야 합니다. 가짜 믿음, 위조믿음이면 안 됩니다. 진짜 믿음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크면 좋지만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진짜 믿음이라면 자랄 것입니다. 하지만 가짜 믿음이라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이 있습니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습니다. 믿음은 기복이 있습니다.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밤이 있고 새벽이 있습니다. 진짜 믿음이라면 밤이어도 괜찮습니다. 곧 새벽이 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고백했지만 부인도 했습니다. 물위를 걸었지만 물 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활활 타올랐습니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가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은 사라졌습니다. 가짜 믿음은 시험이 올 때 없어져 버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진짜이길 바랍니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여인은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을 소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믿음이 활활 타 올랐습니다.  

사랑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랍니다. 사랑은 들판에 굴러다니는 돌이 아닙니다. 사랑은 철 조각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랍니다.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잎이 핍니다. 사랑은 큰 나무가 됩니다. 사랑은 기복이 있습니다. 봄이 있고 여름이 있습니다.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사랑은 항상 같지 않습니다. 사랑은 타오르는 불과 같습니다. 사랑은 불처럼 일어나기도 하고 불처럼 꺼지기도 합니다. 때로 불씨만 겨우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에 대한 여인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타 올랐습니다.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에 대한 시몬은 진정한 사랑이었을까요? 꺼져가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금방 사라져버리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주님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은 진짜입니까? 아니면 가짜입니까? 여인의 사랑입니까? 아니면 시몬의 사랑입니까? 여인의 사랑이길 바랍니다.  

여인의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타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랑이 타오를까요? 아닙니다. 제가 일산에 산 적이 있습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북쪽으로 가면 춥습니다.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따뜻합니다. 제주도에 가보세요. 여기보다 훨씬 따뜻합니다. 더 남단으로 가면 더 따뜻합니다. 적도로 가면 항상 따뜻합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벗고 생활합니다. 그들은 추위를 모릅니다. 난로도 히터도 없습니다. 왜요? 태양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태양이신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세요. 주님 앞에 엎드리세요. 발에 입을 맞추세요. 향유를 부으세요. 그래야 우리의 사랑이 뜨겁게 타오릅니다. 여인은 예수님께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 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지만 시몬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예수님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불은 꺼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로 가까 가세요. 그때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겁게 타오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사랑이 있는 곳에 죄용서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구원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는 곳에 구원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감사도 없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감사로 나타났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면 스마일법이 있습니다. 밀라노에서는 항상 웃고 다녀야 합니다. 인상을 쓰면서 거리를 다니면 벌금이 부과됩니다. 장례식, 병원을 찾은 사람, 병원 직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웃어야 합니다. 천국은 항상 웃는 곳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입니다. 누가 가장 감사할까요? 많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감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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