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겨자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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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3:31~32
주일오전예배 | 2019-10-2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가 고등학교 때 교회 고등부 선생님 한 분이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겨자 나무 사진과 겨자씨를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책갈피 보다 조금 큰데 코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위에는 겨자 나무 사진, 아래는 실제 겨자씨 한 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겨자씨가 정말 작구나!’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겨자씨가 아니라 야생 담배씨입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 가면 아랍 상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지나갈 때 한국말로 겨자씨!”, “겨자씨!”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랍 상인들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그만 봉지에 야생담배씨를 넣고 코팅해서 성지 순례객들에게 겨자씨라고 속여 파는 것입니다. 야생담배씨는 겨자씨 보다 훨씬 작습니다. 연필로 종이 위를 살짝 찍으면 조그만 점이 나오는데 그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야생담배씨는 1,800년대 북아메리카에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옮겨 들어와 지금까지 자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없었습니다.  

요즘 겨자소스를 많이 먹지만 실제로 겨자를 보신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겨자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자라는데 특히 갈릴리에 많습니다. 2-3월이 되면 길에 유채꽃처럼 흔하게 피어 있습니다. 겨자는 겨자풀과 겨자 나무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겨자풀은 다 자라면 2-3미터가 됩니다. 크게는 4.5m까지 자라는 것도 있습니다. 또 겨자나무가 있습니다. 겨자 나무는 다 자라면 큰 나무가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꽃대궁(꽃이 피는 줄기)이 올라오는 식물은 모두 나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겨자씨의 비유를 겨자 풀을 보고 말씀하신 것인지 겨자 나무를 보고 말씀하신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두 종류의 겨자를 모두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봄이 되면 갈릴리 호수 주변과 길 가에 흔하게 피어 있는 겨자풀 같은 인생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겨자씨 비유가 길가에 흔하게 피어 있는 겨자풀 같은 제자들을 앞으로 자신의 정원에 커다란 나무로 키우겠다는 예수님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의 꿈을 갖고 계셨습니다. 겨자씨의 꿈은 교회를 향한 꿈이기도 합니다. 또 우리를 향하신 꿈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교회와 우리 성도들에게 겨자씨의 꿈이 있습니다.  

겨자씨 비유는 예수님의 천국비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겨자씨 비유에는 농부, , 겨자씨, 새 등이 나옵니다.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포인트는 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사람이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비유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밭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 나옵니다. 두 번째 비유인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는 씨를 뿌린 사람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을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농부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겨자씨 비유에서는 천국이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한 자루가 아닙니다. 한 알입니다. 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자기 밭에 겨자씨를 뿌린 농부와 겨자씨 그리고 겨자씨를 뿌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나의 겨자씨 정원  

먼저 씨를 뿌린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자기 밭에 겨자씨 한 알을 심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밭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밭이 아닙니다. 밭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그로스(ἀγρός)입니다. 아그로스는 농장, , , 마을, 지역, 시골이라는 뜻입니다. 아그로스는 농촌이나 들판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농부는 자기의 농장(, , 지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바로 자기 농장에 씨를 뿌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밭에 씨를 뿌린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인생농부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농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 농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정, 직장, 이웃,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가는 모든 곳은 내 인생 필드입니다. 다윗은 그 인생 필드를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주셨다고 했습니다. 시편 16:6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고 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라는 말씀을 영어성경은 계선이 나를 위해 즐거운 곳에 떨어졌다.”(NIV, The boundary lines have fallen for me in pleasant places)라고 번역했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처럼 고통스런 삶을 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식끼리 간음을 행하고 살인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인생 필드를 다윗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하나님이 줄로 재어서 내게 준 구역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 농장에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원망의 씨? 한숨의 씨? 농장에는 반드시 뿌린 것이 납니다. 뿌리지 않은 것이 나지 않습니다. 장미 씨를 뿌렸다면 장미 꽃밭이 될 것입니다. 백합 씨를 뿌렸다면 백합 꽃밭이 될 것입니다. 사과 씨를 뿌렸다면 사과 꽃이 피고 사과가 열릴 것입니다. 인생의 정원에 열심히 씨를 뿌리세요. 아름다운 씨를 뿌리세요. 좋은 씨를 뿌리세요. 그런데 무엇보다 진리의 씨를 뿌리세요. 인생이 진리의 농장이 되게 하세요. 예수님의 천국 비유 처음 세 가지는 모두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이 씨는 모두 진리의 씨를 상징합니다. 인생 정원에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미움, 원망, 질투, 분노, 편당의 씨를 뿌리지 마세요. 내 인생의 필드를 미움과 분노의 정원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정원입니다. 내 인생의 정원에 미움의 나무가 자라게 하지 마세요. 내 인생 필드를 사랑과 기쁨의 정원으로 만드세요. 사랑의 나무가 자라게 하세요. 내 인생의 필드에서 새들이 깃들여 미움을 맛보지 않게 하세요. 사랑과 기쁨과 은혜를 맛보는 정원으로 만드세요.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농장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밭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 밭이 되면 안 됩니다.  

농부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씨앗을 뿌렸습니다. 씨앗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씨앗은 쓸모없는 씨앗이 되고 말 것입니다. 씨앗은 뿌려야 합니다. 처음 세 비유에서 농부는 모두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국 씨앗이 뿌려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받은 씨를 그냥 갖고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씨를 뿌립시다. 인생 구역에 진리의 씨를 뿌리세요. 진리의 씨를 뿌려야 진리의 열매가 맺습니다. 진리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찰 것입니다. 진리의 겨자씨를 뿌리세요. 가정이 진리로 가득하게 하세요. 직장이 진리로 가득하게 하세요. 아무것도 뿌리지 않으면서 세상이 어둡다고 하지 마세요. 이 진리의 씨는 생명의 씨입니다. 진리의 씨를 뿌리면 생명의 열매가 맺습니다. 생명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작년이 이맘 때였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 1층에 사시는 집사님과 길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분과는 인사만 하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아주 반가워하면서 저를 만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몇 달 전에 자신의 90여세 된 오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오빠는 말기 암으로 병원에서 투병 중이었습니다. 집사님은 오빠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시키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영접시켜야 할까?’ 방법을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 떨어진 전도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등대교회 전도지였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전도를 하거든요. 아마 그 전도지가 길에 떨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사님은 전도지를 보면서 이렇게 영접시키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오빠의 자녀들과 집사님의 형제들이 와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혼잡했습니다. 집사님은 오빠 자녀들을 병실에서 내 보냈습니다. 이제 병실에는 집사님, 집사님의 언니 그리고 암 말기 오빠 셋만 남았습니다. 언니는 전에 교회를 조금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오빠에게 전도지에 적힌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빠가 아멘하더래요. 깜짝 놀랐습니다. 영접을 시킨 후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오빠가 언니에게 너도 손잡아!”라고 하더래요. 삼형제가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삼형제가 손을 잡고 함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오빠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며칠 후에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집사님은 삼형제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너무 감격스럽더래요. 언니까지 다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꼭 만나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교회에 음료수를 사왔습니다. 진리를 뿌려야 진리의 열매가 맺습니다. 우리 모두 진리를 뿌리는 진리의 농사꾼이 됩시다.

 

2. 겨자씨는 살아 있다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한 자루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겨자씨 한 줌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라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겨자씨를 많이 심은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을 심었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백 개라고 해야 얼마나 될까요? 한 줌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줌도 아닌 한 알이라고 하십니다. 농부는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을 심었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게다가 겨우 한 알 뿐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습니다. 씨앗 속에는 생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겨자씨를 칼로 잘라 보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세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냥 씨앗입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씨앗을 땅에 심으면 싹이 납니다. 살아나는 거예요. 생명은 신비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씨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복음은 겨자씨와 같습니다. 복음은 살아 있습니다. 복음은 씨앗처럼 단순합니다. 복음은 겨자씨처럼 작게 보입니다. 복음은 겨자씨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잘 것 없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에는 천국의 생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씨앗이 사람들의 영혼에 떨어지면 생명이 깨어납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복음의 겨자씨에는 생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씨는 사람을 살리는 씨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는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용사였습니다. 마케도냐와 그리스 지역의 맹주였습니다. 하지만 마케도냐 사람들은 필립포스를 아주 무시했습니다. 이유는 필립포스가 무식했기 때문입니다. 필립포스는 자신의 아들 알렉산더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데려왔습니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철학, 음악, 해부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웁니다. 그 배움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음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정복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살인자가 됩니다. 어떤 때는 이성이 마비돼 악행을 저지릅니다. 철학자들의 교훈이 사람들을 문명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그 배움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학살을 자행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시킵니다. 배움이 사람을 문명화시키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배움이 악행을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철학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또 생명을 주지도 못합니다. 인간의 교훈에는 하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한 알뿐이지만 살아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씨앗입니다. 한 자루, 한 트럭이 있어도 죽어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태산 같이 많은 지식이라도 생명을 주지 못한다면 결국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살아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간단해보이지만 그 속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천 마디, 만 마디 철학자들의 지혜를 말하는 것보다 한 마디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말하는 것이 더 복됩니다.  

겨자씨는 작습니다. 하지만 씨에서 나오는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습니다. 씨앗이 땅에 뿌려지면 싹이 나서 줄기와 수십 개의 가지가 생길 것입니다. 또 수백 개의 꽃과 수백 개의 잎사귀가 나올 것입니다. 나중에는 수 백 수천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 모든 정보가 어디에 들어 있을까요? 1-2mm 밖에 안 되는 작은 씨앗에 다 들어 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작은 씨앗에는 앞으로 나무가 어떻게 자랄지 모든 정보가 다 담겨 있습니다. 복음도 이와 같습니다.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세요. 복음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복음의 씨앗 안에 기독교의 진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생, 회개, 믿음, 성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이 복음 진리 안에 천국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복음 진리는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겨자씨 구조처럼 단순합니다. 하지만 이 복음의 겨자씨 안에는 천국의 영원한 것,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다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합니다.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믿으면 능력을 얻습니다. 믿으면 승리를 얻습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간단한 이 진리를 잊지 마세요. 바울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뉴턴, 아인스타인, 스티븐 호킹이 살아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에게 겨자씨를 만들어보라고 해보세요. 겨자씨를 만든다면 억만금을 준다고 해 보세요. 그들이 겨자씨를 만들 수 있을까요? 결코 만들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실험을 다 사용한다 해도 결코 만들 수 없습니다. 겨자씨는 1-2mm 밖에 안 되는 작은 것입니다. 겨자씨를 칼로 잘라 보십시오. 구조가 아주 간단합니다. 씨눈이 있고 배젓이 있을 뿐입니다.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볼펜 보다 단순합니다. 성분도 단순합니다. 당분, 단백질, 그 이외에 성분 한 두 가지가 아주 조금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똑똑한 과학자라고 해도 겨자씨 한 알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요즘 유전자를 복제합니다. 그것은 복사지 창조가 아닙니다. 과학자가 당분과 단백질을 혼합하여 겨자씨를 만들었다고 해봅시다. 그것을 땅에 심으면 싹이 날까요? 꽃이 필까요? 열매가 맺을까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겨자씨는 땅 속에서 썩고 말 것입니다. 왜 썩을까요? 그 속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씨앗 하나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철학자들의 지식체계와 과학이론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심오합니까? 그 심오함에 빠져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 지식이 매력적이어도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문명화시킬 뿐입니다. 하지만 겨자씨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국립도서관에는 약 2억 권의 책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입니다. 책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한 권수를 모른다고 합니다. 나사렛대학교 도서관에 책이 25만권이 있습니다. 나사렛대학교 도서관 보다 800배 큰 것입니다. 학교 보다 큰 도서관입니다.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십니까? 미국 워싱턴 DC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있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16,400만권의 책이 있습니다. 1,800년대에 만들어진 200년이 된 도서관입니다. 직원이 3,105명입니다. 이 도서관에 세계의 유수한 자료와 책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상과 이념, 이론들을 다 모아 놓았습니다. 이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해도 겨자씨 한 알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 도서관에 별의별 책이 다 있습니다. 하지만 겨자씨를 만드는 책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사람은 겨자씨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생명의 창조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제임스 패터슨을 아십니까?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타임지에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린 책만 51권입니다. 그가 책을 써서 벌어들인 돈이 7,000만 달러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은 2,008년 한 해 동안 책 출판과 영화 판권으로 3억 달러, 우리 돈으로 3,600억을 벌었습니다. 이제까지 출판된 책의 인세로만 해마다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제임스 패터슨, 조앤 롤링 같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와도 예수님의 생애를 쓸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복음서를 쓸 수 없습니다. 12사도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필적할만한 책을 써 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쓴 책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재미가 있어도 거기에는 천국의 씨가 없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냥 재미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불어넣어져 있습니다. 천국의 겨자씨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이 겨자씨를 대신할 다른 복음은 누구도 만들 수 없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이 겨자씨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 천국의 씨를 사용하세요. 이 천국의 씨를 인생의 정원에 뿌리십시오. 집에서 뿌리세요. 직장에서 뿌리세요. 이것은 정말 놀라운 축복입니다. 천국은 복음의 겨자씨를 뿌리는 사람의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벼는 도정을 하면 즉시로 맛있는 밥을 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씨를 땅에 뿌린다는 것은 지금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씨에서 싹이 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면 결코 씨를 뿌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씨를 뿌리는 것이 미친 짓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씨를 뿌리는 것이 씨를 버리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믿음입니다. 지금 먹을 수 있는 밥을 포기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추수의 법칙은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천국의 겨자씨를 뿌리는 것은 믿음으로 미래의 천국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결코 천국의 겨자씨를 뿌릴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을에 열매를 거두듯이 인류 역사의 가을에 반드시 영혼의 추수가 있을 것입니다. 추수의 법칙은 믿음의 법칙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천국의 겨자씨를 뿌리세요. 믿음의 법칙을 믿고 구원의 겨자씨를 뿌리세요. 자녀에게, 친구에게, 이웃에 뿌리세요. 열매가 반드시 있습니다.

 

3. 겨자씨의 꿈  

씨를 뿌린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겨자는 자랐습니다. 겨자가 어떻게 자랐을까요? 씨를 뿌린 사람은 겨자씨를 열심히 돌보았습니다. 물을 주었습니다. 잡초를 뽑았습니다. 거름을 주었습니다. 잘 자라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면 씨를 뿌린 사람이 자라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씨를 뿌린 사람은 겨자를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겨자를 자라게 하십니다. 여기 강단에 고무나무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이 나무에 거름을 주었습니다. 수시로 물을 줍니다. 예배가 없는 낮 시간에는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햇볕을 쬐게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나무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요? 절대로 못합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 이 순간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회 뒷산에 있는 나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누가 자라게 할까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비슷한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성장은 기적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장이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 안에는 천국의 겨자씨가 뿌려져 있습니다. 그 천국의 겨자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제가 예배를 집례합니다. 집사님이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설교합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천국의 겨자씨가 자라게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물주는 것도 풀을 뽑아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천국의 겨자씨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교우가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 천국씨를 자라게 합니다. 돌보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돌봄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겨자씨 성장을 방해하는 가라지가 돼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짓밟는 독초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거 마귀예요. 그거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예요.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섬김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어린 아이가 성장하려면 엄마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성장은 하늘의 천사도 할 수 없습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자란 나무는 큰 나무가 됐습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초봄이 되면 갈릴리 해변에 피어나는 노란 겨자풀꽃과 커다랗게 자란 겨자나무를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겨자풀 같은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닐까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 빌립, 안드레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미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길가에 핀 겨자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겨자풀 같은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커다란 겨자나무의 꿈을 꾸셨습니다. 겨자씨 같이 잘 보이지도 않는 제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겨자씨의 꿈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이 겨자씨의 꿈을 꾸고 계십니다. 우리도 큰 나무가 됩시다.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성장의 은혜에 우리를 부탁합시다. 그래서 큰 은혜의 나무가 됩시다. 큰 하늘의 나무가 됩시다. 하나님의 큰 나무가 되세요. 저는 우리 교회가 큰 나무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를 부탁해야 합니다.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저는 매일 하나님의 얼굴빛 가운데 있는 등대교회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가정, 자녀, 직장에 항상 비춰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빛 은혜 안에 있어야 우리가 자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큰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얼굴빛 안에 계세요. 다른 곳에 가지 마세요. 다른 곳에 가서 왜 우리는 매일 이 모양이야라고 불평하지 마세요. 항상 하나님은 은혜 아래 계세요. 그래야 우리는 큰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겨자씨 꿈을 꾸고 계십니다.  

큰 나무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됐습니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했습니다. 다 자란 겨자나무는 놀라운 정도로 무성했습니다. 나무가 자랐을 때 새들이 날아왔습니다. ‘깃들다는 말이 헬라어로 카타스케노오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천막을 치다, 살다, 머무르다, 보금자리에 들다입니다. 그러니까 가지에 깃들었다는 말은 가지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새들은 겨자나무에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과수원 울타리는 철조망으로 칩니다. 아니면 가시나무를 심습니다. 울타리가 가시나무입니다. 가시나무는 아무리 울창하고 커도 새가 날아오지 않습니다. 왜요? 가시에 찔리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가시나무가 되지 마세요. 그거는 천국 나무가 아닙니다. 지옥나무입니다. 마귀나무입니다. 악한 나무입니다. 천국나무는 사랑의 나무입니다. 섬김의 나무입니다. 이해의 나무입니다. 천국나무가 되세요. 그래서 사람들이 여러분의 가지에 깃들게 하세요. 예수님은 겨자씨 같은 미미한 제자들을 보시면서 겨자씨의 꿈을 꾸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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