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마음아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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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3:3~9, 18~23
주일오전예배 | 2019-10-13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예수님의 비유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농사의 비유, 고기잡이의 비유, 보물의 비유, 동물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 종과 주인의 비유, 식물의 비유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농사의 비유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밥이 주식입니다. 벼는 논에 심습니다. 그래서 논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빵이 주식입니다. 빵은 보리나 밀로 만듭니다. 밀과 보리는 밭에 심습니다. 그래서 빵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논이 없습니다. 밭만 있습니다. 빵은 주로 밀로 만듭니다. 그래서 보리보다는 밀을 많이 심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씨를 밀이라고 생각하시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아주 비옥합니다. 돌이 많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입니다. 그래서 주로 돌밭입니다. 이스라엘 중심부는 강 석회암으로 되어 있습니다. 돌이 얼마나 많은지 캐내고 캐내도 돌이 끝없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산지라 밭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농부들은 밭에서 돌을 골라 담을 쌓거나 밭의 축대를 쌓습니다. 돌로 쌓은 축대에서는 가시덤불이 자랍니다. 그 사이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스라엘에 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땅에서 돌을 골라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돌이 한 없이 나오더래요. 돌 밑에 돌이 계속 있는 거예요. 나중에는 돌을 거둬 내는 일을 그만두고 엎드려 회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게 제 모습입니다. 캐내도 개내도 또 나오는 돌들을 어떻게 합니까? 저는 언제쯤 돌 하나 없는 옥토가 됩니까?”(이윤재, 예수의 비유) 이스라엘은 광야입니다. 돌을 거둬내고 거둬내도 돌만 나오는 돌밭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평균 10배 정도를 거둬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이 많은 요단강 근처에서는 작게는 10, 많게는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30, 60, 100배의 결실은 많기는 하지만 기적은 아닙니다. 곡식을 심어 놓고 잘 돌보면 많이 거둡니다. 하지만 돌보지 않으면 많이 거둘 수 없습니다. 또 땅이 중요합니다. 땅이 비옥할수록 알곡이 실하고 좋습니다. 또 많이 거둡니다. 어렸을 때 논에도 가보고 밭에도 갔습니다. 같은 논인데 벼가 더 크게 자란 곳이 있습니다. 잎도 크고 알곡도 실한 곳이 있습니다. 반면에 같은 논인데 벼가 다른 곳보다 작은 곳이 있습니다. 움푹 들어갔어요. 키가 작아요. 알곡도 좋지 않아요. 땅에 따라 결실이 달라집니다. 농사는 땅이 중요합니다. 창세기 26장에 이삭이 100배를 거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최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씨 뿌리는 자가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 농부가 손에 씨를 한 움큼씩 쥐고 조심스럽게 뿌렸습니다. 하지만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흙이 얇은 돌밭이나 가시떨기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좋은 땅에도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흙이 얇아 자라다가 뿌리가 없어 햇볕에 말라버렸습니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100, 60, 30배 결실을 맺었습니다. 여기서 씨는 말씀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 또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밭은 마음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비유를 예수님의 씨의 비유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씨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씨는 안 됩니다. 사람이 깨달은 도나 철학은 안 됩니다. 사람의 말이나 교훈은 안 됩니다.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하지만 인간의 말은 아무리 멋있어도 천국의 씨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천국의 씨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결실을 못한 이유는 씨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씨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땅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쁜 씨앗은 열매가 없었고 좋은 씨앗은 30배 결실을 했다. 더 좋은 씨앗은 60배를 거둬들이고 가장 좋은 씨앗은 100배를 거뒀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똑같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땅에 따라서 결실이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씨의 비유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 비유를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주장합니다. 씨를 뿌리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예수님은 쉬지도 드시지 못하시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 요한과 같은 제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와 같은 제자도 나왔습니다. 예수님께 똑같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일까요? 예수님이 잘 못 가르쳐서 일까요? 아닙니다. 마음 밭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씨를 뿌리는 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씨를 정성스럽게 뿌린 곳에서는 100배의 결실을 맺고 대충 뿌린 곳에서는 30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똑같이 뿌렸습니다. 그런데 밭에 따라 결실이 달라졌습니다. 밭이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는 표현도 어색합니다.  

씨가 중요합니다. 씨 뿌리는 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밭을 더 강조하고 계십니다. 뿌린 자도, 뿌린 씨도 동일합니다. 결과는 밭의 상태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비유를 밭의 비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밭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비유를 마음의 비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땅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땅의 상태에 따라 결실이 달라지듯 사람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본문에는 네 가지 밭, 네 가지 마음이 나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길가입니다. 길가도 밭입니다. 사람이 다녀서 밭이 길이 된 곳입니다. 계속 밟아서 딱딱해진 곳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딱딱한 길에서는 싹이 나지 않습니다. 씨가 좋다고 아스팔트 위에서 싹이 나지는 않습니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이고 온도가 맞춰져서 씨가 발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오고 가고 사람들의 발에 치이고 밟히기 때문에 씨가 나지는 않습니다. 설령 아스팔트 위에서 싹이 났다고 할지라도 그 씨는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갈려 곧 꺾어지고 말 것입니다. 밭에 난 길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다니는 길은 흙이 푸석푸석합니다. 밭의 흙은 곱습니다. 그래서 밭에 난 길은 반질반질합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 딱딱합니다. 씨가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다닐 때 이리저리 밟히고 치입니다. 길가에서는 결코 씨가 자랄 수 없습니다. 길처럼 반질반질한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날 수 없습니다. 길가 밭처럼 딱딱해진 마음 밭에는 천국 씨가 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을 보세요. 평평합니다. 흙이 많습니다. 햇볕이 하루 종일 들어옵니다. 식물이 자라기 좋은 조건입니다. 하지만 운동장에는 풀 한포기 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뛰어놀기 때문입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온갖 잡초의 씨가 바람에 날아와 섞여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 옥상을 종종 올라갑니다. 화단에 해마다 못 보는 잡초가 새로 나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나팔꽃이 피었습니다. 틀림없이 작년에는 없었습니다. 누가 심었을까요? 바람이 심었습니다. 9층 높이의 옥상에 씨가 날아온다면 학교 운동장에는 얼마나 많은 씨가 날아올까요? 그런데 싹이 나지 않습니다. 씨가 아이들의 발에 끊임없이 치이기 때문입니다. 씨가 때로 흙속에 들어갑니다. 씨가 생각합니다. ‘햇볕 좋고 흙이 좋으니 싹을 내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느새 흙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 발에 치여서 흙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수 없이 반복합니다. 여기서 쉬려고 하는데 금세 저쪽으로 날아갑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씨앗은 아무리 좋아도 싹이 날 수 없습니다. 나중에는 밟혀서 싹이 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싹이 나지 못하는 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새를 가리켜 악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자는 사탄(마가복음) 마귀(누가복음)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 밭을 길로 삼아 밟고 다니는 자입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을 어떻게 밟고 다닐까요? 우리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사탄은 우리 마음에 미움과 정죄의 발을 슬쩍 내밉니다. 여러 가지 환경으로 미움에 부채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미움으로 휩싸입니다. 원망하고 미워하고 불평합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을 밟고 다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으로 누군가 정죄를 하고 있다면 지금 당신의 마음을 사탄이 정죄의 발로 밟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사탄의 길이 된 것입니다. 사탄이 거짓말과 교만의 발로 나의 마음을 밟게 하지 마세요. 사탄이 편견과 오만의 발로 나의 마음을 밟게 하지 마세요. 나의 마음을 사탄의 운동장이 되게 하지 마세요. 내 마음을 사탄의 밭이 되게 하지 마세요. 사탄이 우리 마음을 많이 밟을수록 우리 마음은 딱딱해집니다. 반질거립니다. 씨가 결코 자랄 수 없는 밭이 됩니다. 사탄의 밭에 어떻게 하나님의 씨가 자랄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내 마음에 발을 내밀려고 할 때 차단하세요. 마음에 미움이 생길 때 미움을 차단하세요. 사탄의 발입니다. 마음을 지키세요. 그래야 마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마음이 시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을 사고팝니다. 씨를 만지작거립니다. 씨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 시장에 씨앗이 아무리 많아도 싹이 나는 법이 없습니다. 씨앗을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오이는 사람이 너무 만져서 반질거립니다. 가시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 마음은 영혼의 시장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상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진리를 파십니다. 이 진리는 값이 없습니다. 공짜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공짜로 진리를 파십니다. 주님은 씨를 뿌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천국의 씨를 뿌리십니다. 천국씨는 값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장사꾼이 있습니다. 바로 사탄이라는 장사꾼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상인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거짓의 장사꾼입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거짓이란 씨를 뿌립니다. 이 씨는 공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주 비쌉니다. 이 거짓으로 인생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서 거짓의 씨를 사지 마세요. 거짓의 씨를 사는 순간 내가 가진 진리의 씨가 팔리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바람처럼 날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를 거짓에 팔지 마세요. 진리를 사시고 팔지 마세요.  

사람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대상이 가족입니다. 가족 중에서도 첫째가 배우자입니다. 부부는 닮습니다. 배우자에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둘째가 부모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사탄은 가족을 이용합니다. 아담은 사탄에게 진리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아내가 있었습니다. 사탄이 하와의 마음에 거짓을 뿌렸습니다. 하와는 사탄의 거짓을 진리로 샀습니다. 하와는 그 거짓을 다시 아담에게 팔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아내 때문에 사탄에게 진리를 판 것입니다. 인류의 비극은 가족의 비극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나쁜 영향을 미치면 함께 몰락합니다. 사탄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거짓의 씨를 뿌립니다. 직장, 친구, 구역, 찬양대 등등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세요. 가까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세요.  

서울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님이 안식년을 맞아 6개월간 이스라엘로 공부하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떠나면서 주일 설교를 외부 목사님에게 맡겼습니다. 보통 목사님들이 출타 중에 주일 낮 예배 설교는 외부 목사님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저녁 예배나 새벽예배는 부목사님들이 합니다. 그것은 성도님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한 남자 집사님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 왜 목사님이 설교를 부목사님들에게 맡기지 않은 줄 알아?” “글쎄갑자기 묻는 남편의 질문에 여 집사님이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부목사님들이 담임목사님 보다 설교를 더 잘해서 그래. 담임목사님보다 인기가 더 올라갈까봐. 그래.” 이 이야기를 여 집사님은 교회에 가서 다른 성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소문이 교회 안에 금방 퍼졌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은 교회 안에서 속이 좁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6개월 후에 강 목사님이 돌아왔습니다. 강 목사님의 설교가 교인들의 귀에 들어올까요? 강 목사님이 명설교를 해도 길가에 떨어진 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이래서 이렇게 했는데 사람들은 저래서 저랬다고 말합니다. 저는 좋은 뜻에서 이렇게 했는데 사람들은 나쁘게 말합니다. 교회와 목사를 너무 정죄하지 마세요. 결국 같이 죽는 거예요. 사탄은 우리 마음을 거짓이라는 발로 밟고 다닙니다. 사탄의 거짓의 발에 밟히지 마세요. 마음을 지키세요. 마음이 생명입니다.  

두 번째 밭은 돌밭입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씨는 돌밭에도 떨어졌습니다. 땅 위로 솟아올라와 흙에 덮여 있지 않은 돌에는 씨가 떨어져도 싹이 날 수 없습니다. 돌이 땅 아래로 조금 내려간 돌에는 흙이 얇게 덮여 있어 씨가 떨어지면 싹이 금방 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깊이 박힙니다. 반면에 돌밭에는 싹이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흙이 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밭에 떨어진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보다 싹이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흙이 얇아 뿌리가 내릴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흙이 말라 있습니다. 그래서 햇볕이 나면 말라버립니다.  

<5-6>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해가 싹을 말려버렸습니다. 식물은 햇볕이 있어야 잘 자랍니다. 햇볕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뿌리가 없는 식물은 오히려 햇볕 때문에 말라 죽습니다. 식물이 햇볕 때문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가 없으면 말씀 때문에 넘어집니다.  

<20-21>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때문에) 넘어진다고 했습니다(21). 크리스천은 말씀 때문에 삽니다. 그런데 어떤 크리스천은 말씀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말씀 때문에 넘어진다는 말은 믿음이 걸림돌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이 시험에 들게 한다는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크리스천은 믿음 때문에 넘어집니다. 영국이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입니다. 어느 구두회사가 시장개척을 위해 아프리카에 두 직원을 파견했습니다. 직원이 아프리카에 갔더니 신발을 신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 직원은 회사에 돌아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모두 맨발로 다니는데 이런 데서는 장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다른 한 직원은 이렇게 보고 했습니다. “이 곳에는 신발을 신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황금시장입니다.” 똑같은 곳에 갔습니다. 똑같은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불모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황금시장입니다. 똑같은 곳에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올라갑니다. 어떤 사람은 그대로 있습니다. 참 인생은 아이러니입니다. 불평 원망 부정적인 생각이 나의 마음을 밟지 말게 하세요.  

사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미친 것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라마나욧으로 갔습니다. 선지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는 예언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미쳤습니다. 어제는 예언을 합니다. 오늘은 미쳤습니다. 오늘은 예배합니다. 내일은 죄를 짓습니다. 제가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아내에게 잔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 아내가 은혜스럽게 예배드리고 잔소리를 하고 싶으세요.”라고 해요. 여기서는 예배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다툽니다. 교회에서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집에 가다가 잃어버립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천국의 씨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천국이면 가정도 천국이 되게 해야 합니다.  

독일의 우화입니다. 임금이 신하 한 사람에게는 이 나라의 잡초 종류를 되도록 많이 수집해 오라고 명령하고, 또 한 명의 신하에게는 되도록 많은 종류의 꽃을 수집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1년 후 돌아와서 잡초 수집을 맡은 신하는 임금님, 잡초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잡초로 덮여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꽃 수집을 맡은 신하는 '임금님, 우리나라는 전체가 꽃동산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잡초만 보고 살지 맙시다. 잡초만 보면 우리 인생이 잡초 밭이 됩니다. 꽃을 보며 삽시다. 우리의 삶을 잡초동산이 아니라 꽃동산으로 만듭시다.  

세 번째는 가시밭입니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가시 때문에 결실을 하지 못합니다. 가시는 무엇일까요?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입니다.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기운을 막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아포프니고입니다. 아포프니고는 질식시키다. 숨을 막다. 익사시키다는 뜻입니다. 기운을 막았다는 말은 질식시켰다는 의미입니다. 막히다(22)는 말이 헬라어로 쉼프니고입니다. 쉼프니고는 질식시키다, 시들게 하다, 억제하다는 뜻입니다. 막히게 했다는 말은 말라 죽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심령의 근심은 뼈를 바르게 한다고 했습니다(17:22). 실제로 염려는 우리 뼈를 마르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평상시 약 알카리로 중성을 띱니다. 그런데 걱정을 하게 되면 몸의 산도가 산성으로 바뀝니다. 우리 몸이 다시 약 알카리로 돌아기기 위해서는 칼슘이 필요합니다. 이때 뼈를 녹여 몸의 산도를 조정합니다. 그러니까 걱정은 뼈를 녹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15:13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심령을 상하게 한다는 말을 NIV는 영혼이 부서진다고 번역했습니다(heartache crushes the spirit). 공동번역 성경은 기가 꺾인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염려는 숨이 막히게 합니다. 염려는 뼈를 마르게 합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염려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했습니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22%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일입니다. 4%는 우리가 아무리 걱정해도 바꿀 수 없는 일입니다. 남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염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염려의 96%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나 이미 일어난 일이나 걱정을 전혀 안 해도 되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고 했습니다. 기도하세요. 염려가 사라집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넷째,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했습니다. 듣는다는 말은 잘 듣고 순종한다는 뜻입니다(아쿠오). 깨닫는다(쉬니에미)는 말은 말씀을 완전히 깨달아 말씀과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땅이라는 말은 마음이 말씀의 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말씀과 잘 맞는 토양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좋은 땅이라는 말은 천국씨가 자라기 적합한 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온양에 살 때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에 공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도 터를 잡아 오이, 상추, 땅콩,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새벽 기도 끝나고 한 번씩 돌아봤습니다. 오이를 많이 따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빠졌어요. 얼마나 바쁜지 여름 내내 가질 못했어요. 그러다가 가을에 갔더니 땅콩 밭에 풀이 잔뜩 자라 있어요. 땅콩을 캤어요. 별로 없어요. 고구마를 캤습니다. 고구마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고구마가 정말 맛있는 거예요. 제가 고구마 한 봉지를 교회 관리집사님께 드렸더니 집사님이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를 처음 먹어본다는 거예요. 토질이 고구마에 잘 맞는 토양이었던 거예요. 잘 가꾸었으면 정말 많이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농사는 땅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땅은 고구마에게 좋은 땅이었던 것입니다.  

청도는 감이 유명합니다. 흙이 감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입니다. 입장은 거봉 포도가 잘 됩니다. 입장은 거봉에 좋은 땅입니다. 공주는 밤이 유명합니다. 공주는 밤에게 좋은 땅입니다. 나주는 배에 좋은 땅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에 좋은 땅입니까? 미움에 좋은 땅입니까? 교만에 좋은 땅입니까? 시기 질투 분쟁에 좋은 땅입니까? 나의 마음이 마귀에게 좋은 땅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숨이 막혀 죽어요. 말라죽어요. 기가 꺾여요. 우리 마음은 말씀에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씨가 자라기에 좋은 땅이어야 합니다. 천국씨가 자라기에 좋은 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좋은 땅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100, 60, 3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주후 3541113일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지금의 알제리의 수도 수크아라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어거스틴은 천성적으로 말을 잘했습니다. 웅변가의 소질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님은 어거스틴을 훌륭한 정치적 인물로 키우기 위해 15(371)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나빠져 꿈을 펼치기도 전에 돌아오게 됩니다. 실망한 어거스틴은 아주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18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니교에 빠져 9년 동안 마니교를 신봉합니다. 마니교는 유대교, 영지주의 크리스트교, 조로아스터교를 혼합한 이란의 짬뽕 종교입니다. 불교까지 혼합한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죽마지우의 죽음으로 심적 변화가 생깁니다. 또 마니교의 점성학에도 허망함을 느낍니다. 어거스틴은 383년에 로마로 갑니다. 그는 로마에서 밀라노교회 감독 암브로시우스를 만납니다. 그때 나이가 29세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황금의 입으로 불리는 로마 최고의 설교자입니다. 어거스틴은 당대 최고의 설교자 아래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그때 심정을 어거스틴은 자신의 고백록에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 죄의 포로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통하게 부르짖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하여야 하는가? 왜 지금은 안 되는 건가? 나는 왜 이 숫한 나의 추한 죄를 청산하지 않는가?’ 나는 내내 울면서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가장 비통한 슬픔이 눈물로 쏟아진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아주 극심한 영적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정원에 있었습니다. 그때 담 너머에서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들어봐, 읽어봐”(Tolle lege) “들어봐, 읽어봐그 순간 어거스틴은 성경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로마서 13:12~14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말씀을 읽는 순간 캄캄했던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즉시로 어거스틴은 허무함에서 탈출했습니다. 마음에는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쳤습니다. 참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거스틴은 황금의 입으로 불리는 당대 최고의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것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동요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인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최고의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의 음성을 듣고 회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은혜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 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요? 마음의 밭이 문제입니다. 회심한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학체계를 완성합니다. 그의 신학은 1,000년 후에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가 쓴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작 3편 중에 하나라 꼽힙니다. 오늘 말씀처럼 말씀이 옥토에 떨어져 100, 60, 30배 결실을 한 역사적인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마음이 좋은 땅이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나는 좋은 땅이야!’라고 생각하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언합니다. 저를 포함한 여기 계신 누구도 좋을 땅을 가지고 계신 분은 없습니다. 우리 속에는 죄악의 쓴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성이 죄악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는 가시가 무성합니다. 깨내고 깨내도 돌이 끊이지 않습니다. 길처럼 딱딱하게 메말라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우리 마음에 뿌려질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 마음이 결코 좋은 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됐다고 해서 항상 좋은 땅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은 세상 죄악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죄악 세상 속에서 살다보면 우리 마음이 가시에 점령당할 수 있습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돌멩이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이 죄악의 가시에 점령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에 노출시킵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사탄의 가시를 이기게 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마음이 가시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도 100, 60, 30배 결실이 있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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