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예수님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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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3:1~3
주일오전예배 | 2019-10-06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7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일곱 개의 비유는 모두 천국 비유입니다. 비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주제는 오직 하나, 천국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을 비유의 장또는 천국 비유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7개 중 앞의 4개는 배에서 사람들에게 하셨습니다. 나머지 세 개는 집에 들어가셔서 하셨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7개의 비유를 이어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천국에 대한 아주 귀중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가지 천국 비유는 그 내용에 따라 다시 넷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가라지의 비유와 그물의 비유는 현재의 혼합된 특성과 미래의 순수하고 완성된 특성에 대한 것입니다. 셋째,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외적 성장이고 누룩의 비유는 내적 성장입니다. 넷째,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진주의 비유는 천국의 귀중성입니다.  

이 시간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겸손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둘째,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셋째,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바닷가에 앉으신 예수님  

먼저 겸손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한 없이 자신을 낮추는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가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예수님이 집에 계셨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도대체 이 집은 누구의 집일까요? 이 집은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를 사역하시는 동안 베드로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이 머무신 곳은 호화로운 궁궐이 아닙니다. 특급 호텔이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조업을 하는 아주 평범한 어부의 집입니다. 이 평범한 어부의 집에서 천국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어부의 집을 천국복음을 전파는 기지로 삼으셨습니다. 이 집에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1:33-34>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이 집에서 각종 병든 자가 치료받았습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집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사람들이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지붕에서 예수님이 앉아계신 집 안으로 침상 채 달아 내린 일도 있었습니다. 온갖 하나님의 에피소드가 이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시골 마을 베드로의 집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싹이 솟아오른 것입니다. 지금도 가버나움에 가면 베드로의 집으로 여겨지는 곳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객들이 이 베드로의 집을 관광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순례객들이 베드로의 집에서 거기에 계셨을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고 묵상을 하기도 합니다. 초라했던 베드로의 집이 영광의 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베드로의 집은 사람들에게 기념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여기에 세워진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커다랗고 웅장한 교회가 많습니다. 넓고 좋은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등대교회를 여기에 세우셨습니다. 제가 여기가 좋아서 여기로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저를 여기로 인도하셨습니다. 2014년 초가을이었습니다. 어떤 낯선 분이 주일 낮 예배를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찬양시간에도 찬양을 안 하세요. 성시 교독도 안 하세요. 그리고 교회를 계속 훑어보세요. 왼쪽, 오른쪽, 천정, 뒤쪽을 계속 살피세요. 저는 왜 그렇게 살피는지 몰랐어요. 그러더니 대표기도가 끝나고 나니 없어졌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 시간에 나가서 저 앞에 있는 큰 교회로 가셨대요. 그 분이 예배드리기에 우리 교회가 너무 작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큰 교회는 큰 교회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등대교회도 작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등대교회가 작지만 하나님이 복음 전파의 기지로 삼으셨습니다. 큰 교회에도 하나님이 계시지만 여기에도 동일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장차 우리 등대교회도 베드로의 집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언제일까요? ‘그 날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베드로의 집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날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당신의 모친과 형제들이 문밖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냐? 보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순간에 그 초라한 곳에 모인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날은 바로 이 땅의 죄인들을 예수님이 자신의 하늘 가족을 삼으신 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바로 그 날에 예수님은 어부의 집에서 나가셔서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궁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저명한 귀족의 집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호화롭고 멋진 강연장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수제들이 모인 인류대학으로 가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투박한 어부들이 모인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짠 내 나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곁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에 앉으셨을까요? 비단 방석에 앉으셨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해변에 솟아오른 돌이나 아니면 흙더미 같은 곳에 앉으셨을 것입니다. 쓰다버린 나무 더미 위에 앉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선생님은 앉아서 가르쳤습니다. 청중들은 서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초라한 곳을 자신의 설교 강단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나무 강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와서 자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한 없이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겸손 때문에 갈릴리 바다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뭍에서 배를 조금 떼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배 위에서 해변에 있는 무리들에게 강론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산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길에서도 말씀을 강론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27절에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길에서 강론하셨습니다. , , 바다, , 광야 당신의 백성들이 있는 곳이라면 예수님은 어디든지 찾아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위대한 예수님의 겸손과 열정 때문에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1:20-21>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집에서 거리에서 직장에서 여러분의 삶의 터전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으세요. 예수님은 여러분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십니다. 거기서 마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그분을 따라가세요. 사람들에게서 다투고 미워하는 소리를 듣지 마세요. 분쟁하는 소리를 듣지 마세요. 세상에서 들려오는 놀고먹고 즐기는 소리를 듣지 마세요. 마귀의 소리를 듣지 마세요. 주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지혜의 음성, 진리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따라갈 때 인생이 영광스러워 질 것입니다.

 

2.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두 번째로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배에 앉으신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34절에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항상 비유로만 말씀하셨다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천국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는 항상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비유가 아니라 일반적인 형식으로 말씀하신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 깊이 새겨야 할 것, 특히 천국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두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비유의 말씀은 특히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국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비유가 무엇일까요? 비유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A에 빗대어 B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는 비교입니다. 비유는 헬라어로 파라볼레입니다. 파라는 옆에라는 뜻이고 볼레는 던지다, 제시하다는 뜻입니다. 비유는 한 물건을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물건을 옆에 놓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천국과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같이 놓고 비교했습니다. ‘마치 ~와 같으니라는 말은 똑같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와 같은 특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물의 특성에서 천국의 특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는 땅의 이야기로 하늘의 진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비유는 하늘의 메시지를 갖는 땅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하늘을 닮은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늘을 닮은 땅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났습니다. 그래서 땅의 일밖에 모릅니다. 하늘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일도 아시고 땅의 일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땅의 일밖에 모르는 우리에게 땅의 일로 하늘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땅에서 하늘을 닮은 하늘 이야기를 하며 삽시다. 하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사는 것처럼 산다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지옥 이야기를 하며 지옥 같이 살지 맙시다. 교회는 땅에 있지만 하늘 이야기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하늘 이야기를 하며 삽시다. 소망을 갖고 삽시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35퍼센트가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셋 중에 하나는 비유입니다. 비유의 모든 말씀이 다 천국에 관한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비유가 천국 비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서 천국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천국을 발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성경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천국 이야기를 하며 그것을 내 삶에서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여러분의 삶을 천국으로 만들어보세요.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우리 삶에 그 천국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천국을 발견하고 이집트의 왕좌를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을 발견하고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삭개오는 천국을 발견하고 자신의 재산 1/2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속여서 빼앗은 것은 4배로 갚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던 세상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은 세상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상처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초월해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서 천국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천국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영적 소경으로 살게 됩니다. 세상에 끌려 다니며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끌려 살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이끌려 사세요.

 

3. 예수님의 비유의 목적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비유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샬입니다. 이 말에는 수수께끼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수수께끼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라는 것은 어떤 사물을 빗대어 말하여 그 뜻이나 이름을 알아맞히는 게임입니다. 비유와 수수께끼의 의미가 거의 비슷합니다. 어렸을 때 수수께끼를 많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수수께끼에는 사람들의 재치, 위트,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또 센스, 눈치, 사람들의 삶이 묻어 있습니다. 수수께끼는 대부분 생활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문제 자체에 답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세탁소 사장님이 좋아하는 차는? 구기자차입니다. 종달새 수컷이 암놈을 부르는 방법은? 지지배()”입니다. 사람들이 웃자고 만든 수수께끼입니다. 어쨌든 수수께끼는 생활 속에서 답을 찾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생활 속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농사법, 어업, 생활습관 등등을 수수께끼로 내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천국을 쉽게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나 천국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수께끼 중에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또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답을 들으면 아 그렇구나!”라며 무릎을 치는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신 수수께끼는 알쏭달쏭한 문제들이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는 당연히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수께끼를 답을 알려주고 시작하십니다. 보십시오.  

<13:31-32>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얘들아! 잘 들어. 내가 수수께끼를 낼게. 답은 천국이야. 알았지.” 이렇게 답을 가르쳐주시고 수수께끼를 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수께끼를 생활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로 내셨습니다. 그것도 혹시 답을 모를까 싶어 답을 알려주시고 문제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수께끼는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다. 그런데 크게 자라 나무가 된다. 그래서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천국은 이런 거야.” 세상이라는 밭에 천국이라는 씨가 처음에 뿌려질 때 천국은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도 천국이 겨자씨처럼 작게 보입니다. 아니 겨자씨처럼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천국은 크게 자라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쉬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수께끼를 하나만 내신 것이 아닙니다. 연속해서 여러 개를 내십니다. 하지만 답은 다 똑같이 천국입니다. 보세요. 겨자씨 천국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누룩 천국을 말씀하십니다.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이 보이지 않지만 빵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천국도 보이지 않지만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고 만다는 것입니다. 답은 똑같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수수께끼의 답은 무조건 천국이라고 대답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아니 대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고개만 끄떡이며 예 주님, 알겠어요.”라고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렇게 쉬운 수수께끼를 왜 내셨을까요? 수수께끼를 내지 마시고 그냥 간단하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수수께끼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천국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고의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천국을 감추셨습니다. 그들은 천국이 눈앞에 있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참 미스테리입니다. 답이 나와 있습니다. 답을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답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답을 들어도 답을 모릅니다.  

<13:10-13>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둘째, 천국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비유의 두 번째 목적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천국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까지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천국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수께끼를 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천국이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 보이기를 바랍니다.  

<13: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집안, , 바다 등 사람들의 생활 터전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쉬워도 예수님을 거부하면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거부하지 마세요. 그래야 천국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천국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죽으면 끝이라고 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거부하면 당연히 천국이 보이질 않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믿을 때만 보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늘을 닮은 땅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하늘 이야기를 하며 사세요. 천국처럼 사세요. 집에, 직장에 천국을 만들어보세요. 지옥 이야기를 하며 지옥처럼 살지 마세요. 정말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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