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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바벨탑 – 하나님을 대신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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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11:3~4
주일오전예배 | 2019-08-1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독일의 고고학자 로버트 콜더베이 탐사팀이 1899년부터 1917년까지 18년 동안 이라크 수도인 바드다드 남쪽 60마일 지점에서 BC 6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바벨론의 성곽을 발굴했습니다. 발굴 후 탐사팀은 바벨론의 유적이 성경의 기록과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바벨론 성곽은 가로 세로 1.8km, 1.3km로 된 직사각형이었습니다. 이 성곽 안에 신전과 제단이 천개가 넘게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우상의 도시이었습니다. 수메르 앗수르 바벨론 유적지에서 지구라트가 25개 발견됐습니다. 지구라트는 마르둑을 섬기는 신전입니다. 마르둑은 수많은 바벨론의 신 가운데 주신이 되는 신입니다. 이 마르둑이 니므롯입니다. 지구라트는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의 에테메난키 탑입니다. 이 탑은 BC600년경 신바빌론 제국의 나보폴라싸르와 그 아들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이 쌓아올린 것입니다. 나보포라싸르왕은 탑의 건축을 시작하며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마르둑 신은 붕괴된 바벨탑을 다시 지으라고 내게 명령했다. 새 바벨탑은 바닥 돌이 지하세계의 심장에 닿고 탑 끝은 하늘을 찔러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까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보폴라쌀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왕이 이어받아 신전탑을 완공하고 탑의 꼭대기에 이런 내용의 명판을 세웠습니다. “에테메난키를 내가 세웠다. 이곳은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며 바빌론의 가장 오래된 기념비(모뉴망)이다.”  

에테메탄키는 높이 90m7층으로 된 탑입니다. 벽돌 8500만 개 정도가 사용되었습니다. 신전의 벽은 황금으로 꾸몄습니다. 신전 안에는 순금의 옥좌 위에 순금으로 된 마르둑 신상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신전과 신상을 만드는데 순금이 22(800달란트)이상 들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마르둑 신을 열심히 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르둑신을 위한 탑을 세우며 하늘 끝까지”, “하늘과 그 크기를 겨룰 때까지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대적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세상을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입으로 나옵니다. 말이 같다는 것은 생각과 사상이 일치했다는 뜻입니다. 언어와 사상이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겠습니다.

1. 니므롯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려하다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므롯은 사람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들은 동쪽으로 가다가 시날 평지 - 바벨을 만납니다. 거기서 니므롯은 우두머리가 됩니다. 어느 날 니므롯은 지도자 회의를 소집합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3)  

벽돌로 돌을 대신하자고 했습니다. 시날 땅은 평지입니다. 비옥한 땅입니다. 그래서 돌이 귀했습니다. 고대인들은 돌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시날 땅에서는 돌로 건물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돌을 대신할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벽돌입니다. 그들은 벽돌로 돌을 대신했습니다.  

그들은 또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습니다. 역청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골짜기에서 나오는 아스팔트 재료입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아스팔트는 접착력이 강해 굳은 후에는 다시 떼어낼 수가 없을 정도로 질이 아주 좋은 것이었습니다. 지구라트의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수 천 년 전에 발라진 역청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대 바벨론 건물에 인공접착제를 사용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 접착제는 진흙과 나무 기름(송진)을 섞어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수 접착제입니다. 또 썩지 않는 방부 접착제입니다. 바벨론의 건축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역청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들은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습니다.  

니므롯은 벽돌로 돌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이런 말을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니므롯이 하나님 대신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라는 말을 직역하면 그 탑 꼭대기가 하늘들 안에 있었다.”가 됩니다. 하늘에게 탑을 세웠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을 찌르도록 높은 탑입니다. 이 탑의 목적은 하늘과 하늘에 계신 분에 대한 도전입니다. 니므롯은 하늘 끝까지”, “하늘과 그 크기를 겨룰 때까지라고 외치며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창세기 10:8-10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라고 했습니다. 니므롯의 높은 분’, ‘마랏반역하다, 대항하다라는 뜻입니다. 니므롯이란 이름은 높은 분, 하나님께 반역하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앞에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과 맞먹었다는 의미입니다. 니므롯은 바벨탑을 세워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한 것입니다.  

바벨론 문화는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한 문화입니다. 그리고 우상으로 하나님을 대신한 문화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세상을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이라는 바벨론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멸망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하나님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마세요. 하나님 자리는 하나님의 자리로 남겨두세요. 하나님은 거기에 오고 싶어 하세요. 이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에어컨이 없으면 선풍기를 쓰면 됩니다. 선풍기가 없으면 부채를 쓰면 됩니다. 밥이 없다면 빵을 먹으면 됩니다. 김치가 없으면 무김치를 먹으면 됩니다. 반바지가 없으면 긴바지를 입으면 됩니다. 구두가 없으면 단화를 신으면 됩니다.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의 자리는 대체가 안 됩니다. 자식의 자리도 대체가 안 됩니다. 아내의 자리도 대체가 안 됩니다. 남편의 자리도 대체가 안 됩니다. 자식은 자식이어야 합니다. 아내는 아내이어야 합니다. 남편은 남편이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돼요. 다른 것으로 메꾸어지지가 않아요.  

먼저 살던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70대 중반 정도 되시는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마르셨지만 아주 꼿꼿하신 분이세요. 20대에 혼자 되셔서 11녀를 혼자 키우셨어요. 그 분 이야기를 들자면 눈시울이 붉어져요. 살아온 이야기가 꼭 소설 같아요. 딸은 결혼하고 미혼인 아들과 함께 살았어요. 아들이 밖에서 밥을 먹다가 맛있으면 엄마 드셔보시라고 사온대요. 아들이 잘하는 것 같아요. 아들이 착해 보여요. 그런데 그 분이 어느 날 그러세요. 못하는 남편이 잘 하는 자식이 보다 낫다고. 자식이 아무리 잘해도 속 썩이는 남편 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남편의 자리는 대체가 안 돼요. 여성분들 있을 때 잘 하세요. 그렇다고 남자들은 속 썩여도 괜찮다는 것 아닙니다. 여성은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래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져요. 그분은 힘들었지만 50년을 혼자 사셨잖아요. 이게 인생입니다.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반드시 그것으로만 돼요. 다른 것으로 대체가 안 돼요. 그래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요.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대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다른 것으로 대체가 안 됩니다. 말씀은 다른 것으로 대체가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안 됩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세요? ‘에이, 하나님 없어도 잘 사는 사람 많은데요. 저도 하나님 없어도 괜찮아요. 전혀 문제없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사는 것 같으나 죽은 인생입니다. 잘 사는 것 같으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에요. 하나님의 자리는 오직 하나님이어야 해요. 결코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대신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 바벨론은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주려고 해요.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해요. 여러분! 하나님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마세요.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 자리에는 하나님만 계셔야 해요. 그것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입니다.

2. 니므롯의 덫  

니므롯과 그의 백성들은 시날 평지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하늘을 찌르는 탑을 쌓았습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그들은 또 말하였다. “,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성읍은 고대의 도시입니다.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도시와 탑 중에 강조점이 탑에 있습니다. 탑을 위한 도시입니다. 바벨탑은 바벨론 최초의 지구라트입니다. 지구라트는 우상 신전입니다. 그 우상이 니므롯 자신입니다. 니므롯은 자신을 신격화 하며 백성들에게 세 가지 덫을 놓습니다.  

첫째, 집단 이기주의라는 덫입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라는 말을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성과 탑을 세우자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라는 말은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만들자입니다. 3절의 벽돌을 만들자.’는 말은 우리가 벽돌을 만들자.’입니다. ‘견고히 굽자는 말도 우리가 견고히 굽자입니다. 3,4절에 우리라는 말이 모두 7번 나옵니다. 우리를 위한 도시입니다. 우리를 위한 탑입니다. 다른 집단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기들만 좋으면 좋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탑과 도시입니다. 집단이기주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라는 말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우리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우리라는 말에 음모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우리입니다. 하나를 위한 모두입니다. ‘우리라는 말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니므롯입니다. ‘서로 말하되 자라는 말을 영어 성경은 서로 말하였다. 오라.”고 번역했습니다. 니므롯이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벽돌을 굽자 하자.’, ‘우리 성읍과 탑을 세우자.’, ‘우리 이름을 내자.’, ‘우리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라는 말로 백성들을 자신을 위한 노동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말을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데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므롯은 자신의 이기심을 집단 이기주의로 포장한 것입니다.  

지금은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 나 시대입니다.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나 중심주의가 이 시대의 무서운 우상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입니다. ‘나를 위하여를 포장한 것이 우리를 위하여입니다. 현대 사회는 여론을 형성해 다수라는 이름으로 악행을 정당화합니다. 집단이기주의 시대입니다. ‘나를 위하여우리를 위하여로 포장되면 공동체는 걷잡을 수 없는 비윤리적인 집단이 됩니다. 전혀 비윤리적인 집단이 절대 옳은 집단으로 포장이 됩니다. 미국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1892.6.21.~1971.6.1.)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집단이다. 집단은 윤리적이 되기 힘들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2:31) 기독교 정신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인이신 우리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단체, 다수는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은 우리는 집단 이기주의 빠지게 됩니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에게 우리라고 하며 다가오면 조심하세요. 거기에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탄의 음모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라는 말을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마세요.  

둘째, 유명이라는 덫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이름을 내고라는 말을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만들자입니다. 이름은 명예를 상징합니다. 이름을 만들자는 것은 명예로운 이름을 만들자는 뜻입니다. 사람에게는 명예욕이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5단계> 이론이 있습니다. 사람의 욕구는 1단계에서 5단계로 점점 상승한다는 이론입니다. 1단계가 생리적인 욕구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리고 4단계가 존경의 욕구입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존경을 받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20대에는 사랑을, 30대는 돈을, 40대는 성공을, 50대는 명예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명예욕이 있습니다. 니므롯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을 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명예로운 이름이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요? 유대인 역사학자 필로에 의하면 바벨론 사람들은 지구라트를 만들 때 벽돌에 자기의 이름을 새겼다고 합니다. 큰 건물을 짓고 그 밑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으면 자신의 이름이 빛이 날까요? 아닙니다.  

이름은 하나님이 주셔야 오래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약속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지 4000여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브라함의 이름이 불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주셨습니다. 그가 죽은 지 3800여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불러지고 있습니다. 이름은 하나님이 주셔야 창대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이름이 창대케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돌에 자기 이름을 새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외치며 탑을 높이 더 높이 쌓으면 명예로운 이름이 만들어질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니므롯의 덫입니다. 마귀의 덫에 속지 마세요. 이름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세요.  

김춘수의 시 <>의 한 구절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하나님이 계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이름은 그저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 이름이 영원합니다.  

셋째, ‘함께라는 덫입니다. 니므롯은 사람들에게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흩어짐은 창조 명령입니다. 홍수심판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아담에게 주셨던 명령을 다시 주십니다(9:1). 흩어짐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따라서 니므롯이 흩어짐을 면하자고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노골적으로 어긴 것입니다.  

니므롯은 노아의 3대손입니다. 노아는 니므롯의 증조할아버지입니다. 노아는 950년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니므롯이 태어났을 때 노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설령 노아가 죽었다 하더라도 할아버지인 함은 틀림없이 살아있었을 것입니다. 함은 노아의 둘째 아들로 홍수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니므롯은 노아 아니면 함으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흩어지지 말자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흩어짐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 초대교회에 엄청난 부흥을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여 예배하며 떡을 뗐습니다. 그런데 모이기만 하지 흩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때 박해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8:1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했습니다. 박해로 교회는 흩어집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8: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각종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표적으로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8: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여러분! 흩어짐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모이는 복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 복을 나누어주지 못했습니다. 흩어졌을 때 그 복이 세상에 나누어졌습니다. 모이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흩어져야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 이름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니므롯이 흩어지지 말자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끼리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레아이고 둘째는 라헬입니다. 레아는 결혼 후에 자식을 계속 낳았습니다. 하지만 라헬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거예요. 레아가 네 아들을 낳는 동안 라헬은 한 명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야곱에게 말합니다. “나도 아이 좀 낳게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 야곱이 라헬에게 대답합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30:2)  

17세 때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30세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7년 동안 천하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7년 후에 천하에 흉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흉년 2년째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옵니다. 요셉과 형들이 만납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도 만납니다. 요셉과 형제들은 애굽에서 같이 살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과거에 저지른 잘 못에 대해 앙갚음을 할까 늘 불안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요셉의 형들은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찾아가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50:19)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대신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신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리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행동으로 말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말을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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