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바벨탑 - 인류 최초로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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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11:1~2
주일오전예배 | 2019-08-0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살았습니다.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첫 번째로 버린 사건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피조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남자는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게 됐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하게 됐습니다. 기쁨의 세상이 수고와 고통의 세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하지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이 세상에 번성할 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는 여인들을 모두 아내로 삼았습니다. 아주 심각한 쾌락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두 번째 버린 사건입니다. 그때 홍수심판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또 급격하게 변합니다. 땅 위에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이 생겼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추위와 더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의 자연환경은 지금 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노아는 홍수 이전의 환경이 그립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인류가 하나님을 세 번째로 버린 스토리입니다.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이때 인류의 언어가 쪼개집니다. 언어에 따라 민족이 나누어집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습니다. 민족끼리 끊임없이 싸우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들은 바벨탑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인류가 오직 하나의 언어만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떠날 때마다 세상은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멀리 떠났습니다. 성경의 경고를 무시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지 마세요. 역사를 교훈 삼으세요. 성경은 농담이 아닙니다. 역사입니다. 예언입니다. 인류의 미래와 행복입니다. 하나님 곁에 계세요. 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세요. 오늘 읽은 말씀을 살펴보면서 시날 평지에서 인류가 하나님이 얼마나 심각하게 거역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거역 속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메시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하나의 입술을 가졌던 인류  

온 땅의 언어가 하나’(1a)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라는 말은 전체, 모든, 모두라는 뜻입니다. ‘온 땅모든 세상, 세상 전체를 가리킵니다. 언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싸파입니다. 싸파는 입술이라는 뜻입니다. 말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라는 말은 온 땅의 입술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바벨탑 이전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이 마치 한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처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온 땅의 구음(입에서 나는 소리)가 하나이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외국어가 없습니다. 언어가 하나라는 말은 민족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말이 하나’(1b)라고 했습니다.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르입니다. 다바르는 낱말, 어휘라는 뜻입니다. 이때는 지방 사투리도 없었습니다. 말이 낯선 곳이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언어만 있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자유롭던 시대입니다. 오직 언어가 하나인 시대에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하나의 입술을 가진 사람들처럼 모두가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말은 생각과 사상에서 나옵니다. 입술은 물론 사용하는 단어와 어휘까지 하나라는 말은 생각과 사상까지 일치됐다는 뜻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는데 생각과 사상이 일치됐습니다.  

언어가 하나라는 말은 언어의 계통이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이 지상에는 8700개의 언어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언어는 오직 하나의 계통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의 계통이 하나라는 말은 언어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7절에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라고 했습니다. 언어는 사람들이 고안해낸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 천 만의 생물체가 있습니다. 그 중에 오직 사람만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돌고래의 아이큐가 80입니다. 범고래는 90입니다. 아주 높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80, 90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돌고래와 범고래가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노보 침팬치는 아이큐가 120입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 평균 아이큐가 116입니다. 어떤 통계에는 104로 되어 있습니다. 침팬치 아이큐가 웬만한 서울대학교 학생들보다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이큐가 높은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의 평균 아이큐가 106입니다. 침팬치 아이큐가 인류보다 아주 많이 높습니다. 그런데 말은 못합니다. 언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만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입니다. 언어는 인간을 다른 생물체와 구분되게 하는 탁월한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 말을 한다는 것은 아주 신비로운 것입니다. 언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언어를 주셨을까요? 첫째,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록되어진 성경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 드립니다. 침팬치는 아이큐가 높아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어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의 제일 되는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제를 위해서입니다. 언어는 욕하고 싸우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말은 사람간의 인격적인 만남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언어는 사랑하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언어는 섬기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언어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말을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말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복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더욱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말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똑같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은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때 언어가 쪼개졌습니다. 그리고 언어에 따라 민족이 쪼개졌습니다. 그 쪼개짐이 오늘 나라간의 분쟁과 전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일본하고 얼마나 싸워요. 일본 민족의 기원은 한국입니다. 하지만 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싸워요. 얼마나 혐오해요. 얼마나 욕해요. 조상이 같은 나라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지금도 반일감정 부축이며 불매운동하고 욕하잖아요. 왜 싸울까요? 딱 하나입니다. 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이 다른 것은 저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있던 120 문도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하늘의 바람이 집안에 가득 찼습니다. 불의 혀 같은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제자들의 입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다른 나라 언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있던 사람들이 제자들이 하는 말을 모두 자기가 난 곳의 말로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에는 적어도 15개국에서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자기가 온 곳의 언어로 제자들의 말을 알아들은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언어가 통일됐습니다. 물론 그때만 있었던 기적입니다.  

오순절날 왜 이런 기적이 있었을까요? 성령은 종말의 영입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표입니다. 지금부터 세상 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임재로 언어가 통일됐다는 것은 바벨탑 사건으로 쪼개진 언어가 앞으로 하나의 언어로 다시 통합될 것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일본어도 없습니다. 영어도 없습니다. 중국어도 없습니다. 불어도 없습니다. 독일어도 없습니다. 국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언어만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천국 언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천국의 언어로 찬양하고 천국의 언어로 말할 것입니다.  

<7:9-10>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그런데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만국공용어가 몇 개 있습니다. 그것은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나라마다 약간씩 발음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비슷합니다. 미국에서는 에이멘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아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멘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번역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가 동일하게 씁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아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3000년 전에도, 2000년 전에도 동일하게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그대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대로 사용될 것입니다. 심지어 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될 것입니다.  

<19: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아멘, 할렐루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말입니다. 만국공용어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언어입니다. 바울은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저는 찬양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만국공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을 미국 성도들도 부릅니다. 일본 성도도 부릅니다. 중국 성도도 부릅니다. 물론 나라마다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찬양이 거의 똑같아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의 정서가 같다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며 하나가 돼요. 찬양은 크리스천의 정서를 하나 되게 하는 만국공용어입니다.  

제가 군 생활할 때입니다. 경기도 매산리에서 공수훈련을 받을 때입니다. 우리나라에 공수훈련장이 거기 하나뿐이었습니다. 거기에 전국 특수부대원들이 다 모입니다. 특전사, 특공대, 해병대, 수색대 등등. 그런데 부대간에 은근히 기 싸움을 해요. 모두 특수부대원들이잖아요. 그런데 공수 훈련받는 군인들은 보통 수개월 동안 훈련만 받는 군인들입니다. 저도 입대하고 5-6개월째 훈련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일반 사병은 6주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병보다 두 세배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어요. 게다가 12월이었습니다. 힘들고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거예요. 저만 그렇겠어요.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그랬을 거예요. 수요일 저녁이 됐습니다. 어두컴컴한 밤길을 걸어서 예배실로 갔습니다. 당시 훈련소에 교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강연장에서 예배를 드린 것 같아요. 강연장에 빈자리가 없어요. 꽉 찼어요. 크리스천 군인들이 함께 모였어요. 앉았는데 마음이 푸근해지는 거예요. 목사님이 성경 봉독 후에 누가 나와서 특송을 하래요. 제가 나갔습니다. 얼마나 훈련이 고되고 힘든지 김활난 박사가 작시한 찬양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찬송가를 폈습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이 찬양을 불렀더니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거예요. 어디서온지 누군지 몰라요. 사람도 환경도 다 낯설어요. 그런데 군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찬양으로 하나가 되는 거예요. 찬양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용광로와 같아요. 찬양은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이 가진 통일된 언어예요. 찬양은 크리스천의 천국 언어예요. 우리는 천국에 올라가서 찬양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가진 크리스천입니다. 아멘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영광돌립시다. 뜨겁게 찬양함으로 하나 됩시다. 아멘 할렐루야 하며 싸우지 맙시다.

2. 니므롯 - 인류 최초의 반역자  

2절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노아 홍수 후에 번성하기 시작한 대부분의 인류입니다. 홍수 후에 인류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나섭니다. 만나다는 말이 히브리어 마차입니다. 마차는 찾다, 발견하다는 뜻입니다.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 발견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시날 평지를 만납니다. 시날 평지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넓은 평야지역입니다. 지금의 이라크 남부 지역입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에 하나입니다. 인류 최고의 문명 발상지입니다. 시날 평지는 넓고 비옥했습니다. 물이 풍부했습니다. 살기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동쪽으로 가다가 아주 살기 좋은 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주를 주도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니므롯입니다.  

<10:10>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니므롯은 사람들을 이끌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동방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다가 시날 땅을 만납니다. 니므롯은 시날 땅에 거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거기서 니므롯은 우두머리()가 됩니다.  

<10:8-9>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은 세상이 생긴 이후 첫 번째 용사이었습니다. 용사(기뽀르)는 용감한 사람입니다. 또 니므롯은 용감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용감한이라는 말을 니므롯에게 세 번 쓰고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라는 말을 두 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용감한’(기뽀르)이라는 말이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폭군), ‘강력한 권세를 가진 자라’, ‘지배자’, ‘우두머리’,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니므롯의 뜻은 반역자입니다. 그러니까 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다는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니므롯에 관한 기록이 역대상에도 있습니다.  

<대상1: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세상에서 첫 영걸이며  

영걸이라는 말이 용감한’(기뽀르)입니다. 성경에 니므롯이 나올 때마다 기뽀르(용감한, 폭군, 우두머리)라는 말이 계속 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갈대아 역본은 이렇게 풀어서 번역을 했습니다. “구스가 또 악에 있어 첫째 가는 니므롯을 낳았으니, 이는 그가 무죄한 피를 흘리고 여호와께 반역했기 때문이며갈대아 사본은 니므롯에 관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니므롯은 악에 있어서 첫째가는 인물이었습니다. 니므롯이 누구에게 비할 수 없는 아주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무죄한 피를 흘린 사람이었습니다. 니므롯은 무자비한 폭군이었습니다. 셋째, 니므롯은 하나님의 반역자이었습니다. 단순한 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반역자이었습니다. 첫 용사(10:9)라는 말은 첫 번째 반역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인류 최초의 반역자의 나라가 시작된 곳이 시날 땅 바벨론입니다.  

그러면 니므롯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둘째,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니므롯의 죄를 하나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그가 폭군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냥꾼이라는 말에서 니므롯이 얼마나 야수적인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 문맥을 통해 볼 때 니므롯은 동물 사냥꾼이 아니라 사람 사냥꾼인 것 같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니므롯의 죄입니다. 그런데 고고학 자료는 니므롯이 하나님을 어떻게 반역했는지 또 하나의 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BC 500년 경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바빌론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헤로도투스는 이 건축물이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탑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이 있습니다. 탑의 가장 높은 곳에 바벨론 신의 집을 지어 놓은 것입니다. 이 건축물의 높이가 210m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라크에 고대 바벨론의 건축물로 알려진 지구라트가 여러 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라트의 가장 높은 곳에는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습니다. 지구라트가 있는 곳은 다른 곳과 구별되는 성역으로 구분했습니다.  

바벨탑은 우상 숭배를 위한 장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태양신이 바로 니므롯입니다. 니므롯이 고대 태양신의 기원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니므롯은 사람들에게 탑에서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적인 예배를 만든 것입니다. 자신을 신격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니므롯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신적 영광을 요구하고 또 받은 것입니다(아더 핑크). 사람들은 니므롯에게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돌렸습니다. 니므롯과 인류는 오직 하나의 언어로 말과 사상의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같이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상 숭배입니다. 니므롯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상 숭배를 시작한 하나님의 반역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집단은 반드시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는 집단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조심하십시오. 생각지 못하는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반역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바벨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붉은 빛 짐승을 탄 음녀를 큰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언어는 인류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초기 인류에게 오직 하나의 언어만 주셨습니다. 하나의 언어만 있다는 것은 더 없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 축복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가장 비옥한 땅에 살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말합니다.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은과 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가지고 바알 우상에게 갔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는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투고 싸우고 있습니다. ‘네가 잘못했다, 내가 잘했다라며 사람들은 다툽니다. 이 시대는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 보다 더 악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습니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한 분 성령님이 계십니다. 믿음이 하나입니다. 교회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갈등하고 있습니까? 갈등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기심, 욕심, 교만 등 우리 속에 쌓여 있는 바벨탑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가진 크리스천입니다. 오직 하나의 언어는 기적입니다. 오직 하나의 언어는 은혜입니다.  

기독교 교양 월간지인 가이드 포스트에 나온 내용입니다. 나탈리라는 여성이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골반은 부러지고 내장이 파멸됐습니다.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판정받았습니다. 남편은 기도 중에 확신을 받았습니다. ‘들레지 말라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다만 내가 치료함으로 회복 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목사님을 통해 온 성도님들께 알려 졌습니다. 성도들은 다만 한 가지 소리만을 갖기로 했습니다. ‘주님이 치료하신다. 그리고 곧 회복된다.’는 언어였습니다. 오직 하나의 언어만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의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의 언어만을 외쳤습니다. 3년이 지난 부활절 아침 남편이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아내의 눈이 깜박 거리며 눈물이 주르륵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3년만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 하나의 믿음, 한 분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의 언어는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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