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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에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9장 23절에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10장 11절에는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장 19절에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라고 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 히브리어 문자적 의미는 ‘아주 희귀하고 보배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을 NIV는 ‘오, 높이 존경을 받는 사람이여!’(O man highly esteemed)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KJV은 “오 아주 엄청난 사랑을 받는 사람이여”(O man greatly beloved)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어떻게 하나님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다니엘서에는 다니엘 신앙의 특징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 번째, 기도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또는 1-2년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70여년을 한결같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죽음이라는 위협 앞에서도 이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뜻을 정한 신앙입니다. 세계를 정복한 바벨론은 세계 각지에서 많은 포로를 끌고 왔습니다. 그들에게 바벨론 법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꾸었습니다. 특별히 왕궁으로 잡혀온 포로들에게는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모두 이방인을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들이었습니다. 포로들은 바벨론에서 바벨론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법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네 사람은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바벨론 법도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는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왕의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그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바벨론 법을 거절한 것입니다. 기도 신앙, 뜻을 정한 신앙이 다니엘을 특별한 은총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통법에는 차가 우측 차로로 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교통법에는 차는 좌측차로로 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 가서 운전하는 사람은 일본 교통법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국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국을 먹을 때 소리를 냅니다. 맛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바벨론에서 바벨론의 법을 거절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벨론 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법을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의 뜻을 정한 신앙에서 시작합니다. 다니엘의 인생기록은 뜻을 정한 신앙에서 시작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은 뜻을 정한 때부터입니다. 이 시간 다니엘이 받은 시험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다니엘이 그 시험을 어떻게 이겼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다니엘이 받은 시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아주 특별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식사 때마다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왕이 보내온 세상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왕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왕이 먹는 것을 먹고 왕이 마시는 것을 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다니엘은 그 좋은 것을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구약 성경 레위기에 기록된 음식법 때문이었습니다. 즉 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정결한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부정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부정한 음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을 더럽혔습니다. 음식법은 아주 특별한 법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사용한 음식은 부정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음식들이 왕의 식탁에서 나왔을 때, 만약 다니엘이 먹는다면 레위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들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더렵혀질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합니다. 다니엘은 신앙 때문에 그 좋은 것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모든 생물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기를 피체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고기를 피체 먹는 것은 생명을 먹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고기에서 피를 뺀 후에 먹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사람들은 고기에서 피를 빼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음식을 그대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느부갓네살과 같은 왕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자기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포도주도 신에게 드린 후에 마셨습니다. 왕의 음식은 모두 우상들에게 바쳐졌던 음식들이었습니다. 왕의 음식을 그대로 먹는 것은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의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왕의 음식과 왕의 포도주의 유혹은 아주 강열한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세계적인 대국이었습니다. 왕이 먹는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다니엘 앞에 생전 처음 보는 온갖 진귀한 음식들이 나왔습니다. 너무 진귀해 신비롭게 보였습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음식은 음식 앞에 있는 사람들을 흥분시켰습니다. 함께 유대에서 잡혀온 동료들은 아무런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소년 다니엘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도도하게 행동했습니다. 가차 없이 그 진귀한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잡혀온 포로들은 세계 최고의 음식을 거절하는 다니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동료 유대인들은 “잘난 체 한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다니엘이 받은 시험은 아주 특별한 시험이었습니다. 거절하기 아주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삶 속에서 아주 특별한 시험들과 마주 대합니다.
시험은 존귀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람은 시험을 만날 때 수렁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시험은 번영에 이르는 길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합니다. 왕의 고기를 먹고 왕의 포도주를 마시기로 동의하는 것은 바벨론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음식을 마음껏 먹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야 했습니다. 성공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왕의 음식을 먹지 않는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왕이 당신에게 보낸 음식을 거절한다면 당신은 궁전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융통성이 없고 외골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왕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나이 많고 선량한 아버지 같은 어른들은 다니엘에게 이렇게 충고했을 것입니다.
“얘야, 너는 여기서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너의 신앙이 항상 너의 길을 방해할 것이다. 너는 결코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네가 성공하려면 그 외고집 같은 신앙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다니엘은 시험 후에 지혜의 사람이 됩니다. 나중에는 바벨론의 총리가 됩니다. 그것도 위대한 통치자가 됩니다. 바벨론 왕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총리는 여전히 다니엘이었습니다. 나라가 바뀌었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총리는 여전히 다니엘이었습니다. 정말 신비한 일입니다. 다니엘은 세상적으로 아주 큰 번역을 누립니다. 세계 역사 속에 다니엘처럼 신비한 번영을 누린 사람이 있을까요? 다니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시험은 다니엘을 세상적으로 번영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만납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시험이 없는 삶도 없습니다. 시험이 없는 곳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도 시험이 있고 교회 밖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은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험을 만날 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원망합니다. 인생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시험을 만날 때 원망하지 마십시오.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시험은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의 구조는 시험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시험을 이기십시오. 시험을 이기면 오히려 번영하게 됩니다.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생활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구별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에게 제공되는 왕의 음식을 먹지 않으려 했습니다. 만약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먹었다면 바벨론 사람으로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으로 동화되었던 것처럼 다니엘은 바벨론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시험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인답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처럼 삽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과 같이 대화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먹는 대로 먹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같이 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을 같이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해야 해.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해. 교회에 가면 교회법을 따르지만 세상에 가면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어.” 하지만 이것은 교회를 파멸시키는 사탄의 시험입니다.
다니엘은 그와 같은 행동을 하라는 강력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러분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세상 시험에 노출되어져 있을 것입니다. 직장, 단체, 어떤 모임 등에서 올바르지 아니한 일을 하라고 강요를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 이전에 그런 일들을 하라고 강요당하는 입장에 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안 하면 너는 찍히는 거지! 그러면 직장 생활하기 어렵지! 해고당하든지 아니면 알아서 나가야 할 걸.” 또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안하면 너는 여기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거야! 너는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어.” 그래서 종종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기서 그만 둘 수 없어. 여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이것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 이렇게 한다고 내가 신앙생활을 안 하는 것 아니니까!’
여러분! 저는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다니엘을 제시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주는 진미를 먹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세상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뜻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먹기로 선언하십시오. 세상 왕은 우리가 세상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그 앞에 굴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세상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 분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십니다. 다니엘처럼 살아도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도 다니엘과 같은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 저항하는 올바른 방법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뜻을 정했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마음 위에 ~을 놓았다’입니다. 다니엘이 자신의 마음 위에 무엇을 두었다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이 자신의 마음 위 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이 결심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결법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자신의 마음 위에 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뜻을 정했다는 말은 말씀을 마음 위에 두었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인격의 좌소입니다. 말씀을 마음 위에 둔다는 것은 말씀에 지배받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내 생각이 지배하는 삶이 아닙니다. 세상 무엇에 지배받는 삶이 아닙니다. 말씀에 지배받는 삶입니다.
다니엘은 포로입니다. 다니엘 위에 상관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왕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상관과 왕의 명령에 따라야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다니엘의 지배자는 왕입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고민을 합니다. 바벨론에서 바벨론 사람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바벨론에서도 바벨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가? 바벨론에서 바벨론 왕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된 신분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지배를 받으며 사십니까? 여러분의 마음 위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직장 상사가 있습니다. 세상 왕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있었지만 바벨론 백성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위에 두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거절이라는 것은 불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상사인 환관장이 불쾌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자신의 신앙적인 고민을 있는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왕의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기 ‘구하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바카쉬입니다. 바카쉬는 ‘간청하다, 찾다, 얼굴을 구하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상사인 환관장에게 간청했습니다. 그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얼굴을 구했다는 말은 환관장의 마음에 호소했다는 의미입니다. 환관장에게 은혜입기를 구했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정중하게 요청한 것입니다. 거절, 항의, 항거에는 여러 가지 좋지 못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생떼를 쓰며 고집을 피울 수 있습니다. 반항할 수도 있습니다.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정중하게 자신의 사정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정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누구를 대하든 항상 정중해야 합니다.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여기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단정하라는 말입니다.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나 항상 단정하라는 말입니다. ‘단정히’라는 말이 헬라어로 유스케모노스(ευσχημονωσ)입니다. “ευ”(good)란 말과 “σχημα”(appearance, image)의 합성어입니다. 문자적인 뜻은 “모양이 좋다”입니다. 균형이 잘 잡혀 보기에 좋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이나 행동이 보기에 좋아야 합니다. 단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중해야 합니다.
거절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한 것은 신앙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때문이 아닙니다. 개인의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신앙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바벨론 나라의 모든 제도를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상과 관련된 것만을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위해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신앙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면에서는 항상 순수해야 합니다. 신앙을 위해서는 개인의 삶을 부인해야 합니다. 신앙 때문이라면 나쁜 평판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친구를 잃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손해를 감안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이의 옆에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한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습니다(고전10:13). 세상에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시험에는 반드시 피할 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시험은 강하고 담대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시험에 담대하게 대처했습니다. 왕의 음식을 거절하는 다니엘에게 환관장은 왕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초췌한 얼굴로 왕 앞에 나가게 되면 자신의 목이 잘릴 것이라고 했습니다(단1:10).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말했습니다.
“환관장님! 저와 제 친구들을 시험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그냥 평민들이 먹는 음식을 주십시오. 왕의 포도주 대신 물을 마시겠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우리에게 주지 마십시오. 오랫동안 시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딱 열흘만 시험해보십시오. 시험 후에 우리의 얼굴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은 사람 보다 못하면 그때는 환관장님의 마음대로 하십시오. 두 번 시험도 필요 없습니다.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다니엘은 시험을 자청했습니다.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시험을 요청했습니다. 시험이 다니엘을 다니엘 되게 했습니다. 크리스천은 시험을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시험 앞에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합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성공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세상의 가치관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가치관대로 살았습니다. 그 성경의 가치관이 다니엘을 큰 은총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다니엘을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게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가치관은 다니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세상에서 번영하게 합니다. 큰 은총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다니엘처럼 성경의 가치관에 따라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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