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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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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30:4
주일오전예배 | 2019-07-0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서울 자양동에 가면 갈보리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강문호 원로 목사님이 계십니다. 아주 성자와 같으신 분입니다. 목사님이 미국에 있는 <침묵수도원>에 가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목사님이 3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3일 동안 말을 한 마디도 하면 안 됩니다. 혼잣말도 안 됩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강 목사님은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강 목사님은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하셨답니다. 본문에 찬송하다는 말에는 고백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병에 걸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한 중병에 걸렸습니다. 3절에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스올은 무덤을 말합니다. 또 나를 살리사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제 죽는 구나!’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다윗은 아주 심한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2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았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의술로 고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서 병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죽을병이 치료된 후에 다윗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찬양입니다.  

다윗은 숨어서 혼자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찬양을 권했습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라병을 고침받은 것은 다윗 개인입니다. 그런데 찬송은 모두가 함께 했습니다. 함께 은혜를 나눈 것입니다. 보통 합심기도를 강조합니다. 합심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찬양은 기도입니다. 합심기도가 힘이 있는 것처럼 합심찬양도 힘이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벽돌을 한 장씩 쌓아 큰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약한 줄도 여러 가닥을 모아 꼬고 또 꼬면 단단한 밧줄이 됩니다. 나무를 모아놓고 불을 붙어야 불이 활활 탑니다. 나무가 떨어져 있으면 불이 붙지 않습니다. 함께 찬양할 때 찬양의 불이 활활 타는 것입니다. 다윗이 병을 고침 받은 후 모두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살펴보며 다윗과 주님의 성도들이 합심해서 무엇을 찬양했는지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입니다. 이 둘을 순서대로 살펴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메시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여호와를 찬송하라  

다윗은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을 성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자라고 합니다. 천주교는 신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기독교는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는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도라는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오래 참으심과 수고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성도는 출애굽 후 광야 생활 40년을 모두 마친 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 사용한 말입니다. 성경에 성도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이 신명기 33:2입니다.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곳은 모압 평야입니다. 모압 평야 바로 앞에 요단강이 있습니다. 요단강을 넘으면 가나안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모압 평야까지 40년을 걸어왔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의 불 시험을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40년 동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애굽에 10가지 재앙이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 때문에 원망합니다. 광야에서 못살겠다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불평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간음을 했습니다. 당을 만들어 다퉜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40년 동안 내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외세의 공격도 있었습니다. 아말렉과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의 미혹이 있었습니다. 원망, 불평, 다툼, 우상숭배, 간음, 미혹, 전쟁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그들에게 계속 은혜 베푸셨습니다. 계속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 광야생활을 모두 마쳤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광야 40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성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말이 아닙니다. 성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수고와 오래 참으심과 보호와 인도 아래 생겨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성도가 되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셨기 때문에 성도가 됐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침 뱉음과 조롱과 매 맞음과 죽음을 참으셨기 때문에 성도가 됐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와 오래 참으심으로 성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냥 성도가 된 것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성도라는 말은 은혜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성도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씨드입니다. 하씨드는 헤세드에서 온 말입니다. 헤세드는 은혜, 자비라는 뜻입니다. 헤세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옷 입은 자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성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성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성도들입니다. 다윗은 주의 성도들아!’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주는 여호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도들입니다. 왜 하나님의 성도일까요? 하나님께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구약 성경에서 코데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코데쉬는 구별, 봉헌, 분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칼로 자름, 끊어냄, 나눔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칼로 자르듯 세상에서 잘라 내셨습니다. 무엇으로 분리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세상과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세상 성도가 아닙니다. 육적으로는 세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우리는 세상과 이미 끊어졌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끊어진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연결된 세상의 끊을 끊으셨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여호와의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성도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에 지옥의 성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옥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전에 우리는 마귀의 성도였습니다. 우리는 악한 영에 이끌려서 악한 영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마귀의 성도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성도가 됐습니다. 때로 우리는 연약해서 악한 영에 미혹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입니다. 더 이상 마귀의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찬송한다는 말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힘 있게 표현하자는 뜻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삽시다. 찬송을 부르는 것 보다 더 기쁜 일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저 하늘의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입니다. 종달새는 하늘 높이 날며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저 높은 하늘 예루살렘을 가까이 날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의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입니다. 집에서 늘 찬송가만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밖에 나가게 됐습니다. 밖에 나갔더니 유행가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이 나오자 아이들이 찬송가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든 노래를 다 찬송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직 하나 노래가 있다면 그것은 찬송입니다. 여러분! 찬송을 부릅시다. 이 세상에 찬송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저 높은 하늘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나아갑시다. 거룩한 노래를 부릅시다. 순례자의 노래를 부릅시다.

 

2.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라  

이제 오늘 말씀의 두 번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다윗은 중병을 고침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병 고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 권세, 기적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깨끗하심, 순결하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감사해야 할까요?  

거룩함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코데쉬는 분리, 구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코데쉬에는 다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거룩한데 세상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거룩함입니다. 이 거룩함은 신비로운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신성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신비롭게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성령이라는 말은 거룩한 영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깨끗한 영, 순결한 영, 순수한 영입니다. 예수님은 흰색 세마포 옷을 입고 계십니다. 그 옷이 얼마나 깨끗한지 햇빛 보다 더 밝은 빛이 나는 흰색입니다.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은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거룩한 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착한 은혜입니다.  

<4: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걸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착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착한이 헬라어로 유에르게시아입니다. 유에르게시아는 친절하고 선한 행위를 뜻합니다. 이 말은 은덕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이 예수님께 받은 은혜는 착한 은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는 착한 은혜입니다. 나쁜 은혜가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나쁜 은혜를 줍니다. 슬프고 괴롭게 합니다. 아프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염려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착한 은혜를 주십니다.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여기 착한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가도스(ἀγαθός)입니다. 아가도스는 착한, 선한, 좋은, 옳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 속에서 착한 일, 선한 일, 좋은 일, 의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착한 은혜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착한 은혜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은혜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착한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귀신은 더러운 영입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더러운이라는 말이 20번 나옵니다(-3, -11, -6). 그 중에서 19번이 귀신에게 쓰였습니다. 더러운 귀신입니다. ‘더러운이라는 말이 아카따르토스(ἀκάθαρτος)입니다. 아카따르토스는 깨끗하지 않은, 불결한, 추잡한, 더러운, 음란한이라는 뜻입니다. 귀신은 추잡한 영입니다. 불결하고 더러운 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더러운 죄에 빠뜨립니다. 사람들을 더럽고 추하게 합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귀신은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나옵니다. 더러운 귀신입니다. 귀신에게서 착한 것, 좋은 것, 선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깨끗한 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착한 은혜가 나옵니다. 이 깨끗하고 착한 은혜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감사하라는 이유입니다. 이 착한 은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자신의 병을 고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하심, 순결하심, 깨끗하심에 감사하세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는 순결한 은혜입니다.  

그런데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기억의 사전적인 뜻은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기억은 영어로 memory입니다. memory마음이라는 뜻의 mem오르다라는 뜻의 ory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memory의 의미는 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다는 말이 영어로 remember입니다. 여기서 -er은 일어나다는 뜻입니다. remember의 의미는 다시 마음에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계속에서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기억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제케르입니다. 제케르기념’, ‘추억’, ‘기억’, ‘기억된 것’,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이 제케르가 성경에서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먼저 제케르가 출애굽기 3:15에서는 칭호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이름이라는 의미입니다. 에스더 9:28에서는 기념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시편34:16에서는 자취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호세아 14:7에서는 향기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거룩하심을 기억하라는 말은 거룩하심을 오래도록 기념하라는 의미입니다. 또 거룩한 자취를 보존하라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기억은 우리 영혼에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착한 은혜를 마음에 새기세요. 예수님의 순결한 은혜를 기념하세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취는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향기와 같습니다. 악취는 얼굴을 찡그립니다. 하지만 향기는 우리 영혼을 쉬게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착한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올바르게 합니다. 삼겹살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와보세요. 옷에서 고기 냄새가 납니다. 재래식 화장실에 다녀와 보세요. 옷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납니다. 화장품 파는 곳에서 오래 있어 보세요. 향기가 옷에 뱁니다.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납니다. 하나님의 착한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에스겔 6:9너희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들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면 스스로 한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탄하다는 말이 히브리어 나코투입니다. 나코투는 혐오하다’, ‘몹시 싫어하다’, ‘베어내다의 뜻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면 자신의 죄악을 몹시 싫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배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기억은 나를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어렵다 힘들다 못 살겠다 죽겠다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존 밀러).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냥 성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수고와 인내와 사랑 때문에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의 거룩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감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때문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 거룩하심 때문에 우리에게 착한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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