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미운 수고를 밉지 않은 수고가 되게 하려면

조회수 : 186회

본문 : 전도서 2:18~23
주일오전예배 | 2019-06-23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미국의 신학자인 Peter Lives가 쓴 글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살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호화로운 집을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최고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최상의 달콤한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흐르는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얼마든지 책은 살 수 있어도, 결코 삶의 지혜는 살 수 없다.

돈으로 지위는 살 수 있어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좋은 약은 살 수 있어도, 평생 건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피는 살 수 있어도, 영원한 생명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성은 살 수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마음속 깊은 곳의 기쁨은 살 수 없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은 살 수 있지만, 마음이 동하는 식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화려한 옷은 살 수 있으나, 내면에서 우러난 참된 아름다움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미인을 살 수는 있으나, 정신적인 평화로움은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지만, 행복한 죽음은 살 수 없다.

………

돈이 생의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러분! 세상은 지금 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 그거 별 것 아닙니다. 그래도 돈이 좋다는 생각이 드시죠? 솔로몬은 일평생 자신이 한 수고를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수고 때문에 실망한다고 했습니다. 수고를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고가 슬픔이라고 했습니다. 수고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솔로몬이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자신이 쌓은 산업 때문입니다. 이 시간 일평생 전도자가 한 수고가 왜 미운 것 되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미운 수고를 밉지 않은 수고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 미운 수고를 밉지 않은 수고가 되게 하려면  

전도자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평생 동안 행한 모든 인생의 수고를 미워했습니다. 사업을 크게 했습니다. 돈을 모으고 집을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과수원을 만들었습니다. 각종 진귀한 보물들을 모았습니다. 전무후무할 정도로 큰 산업을 이루었습니다. 도자는 왕이었습니다. 나라 여기저기에 성을 쌓았습니다. 수리사업을 했습니다.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역사상 이스라엘을 가장 부자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했던 인생의 모든 수고를 미워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혐오했습니다. 18절 상반절에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미워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사네입니다. 사네는 증오하다, 싫어하다, 혐오하다, 미워하다는 뜻입니다. 원수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나타낼 때 쓰는 말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원수처럼 혐오했습니다. 지난날 자신의 삶이 원수 같았습니다.  

전도자가 일평생 자신이 한 수고를 혐오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모든 재산과 업적을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18절 하반절) 그러면 전도자는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까웠을까요? 아닙니다. 전도자가 자신의 수고를 미워한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재산과 업적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자신의 아들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들에게 모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도자는 자신의 아들이 슬기로운지 어리석은지 몰랐을까요? 전도자는 정치, 경제, 사회, 건축, 동물, 식물, 예술 등 여러 분야에 아주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잠언 3,000개를 말했습니다. 1,005개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저 같은 범인도 사람들과 조금 지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몰랐을까요? 전도자는 아들이 어떤 정도의 인물인지 너무 잘 알았습니다.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모른다는 말은 그 아들이 우매자라는 말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일평생 쌓아 놓은 많은 재물과 업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았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남겨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전도자의 아들은 어리석었습니다. 아버지가 일평생 쌓은 업적과 재물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전도자는 실망했습니다. 20절에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실망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아쉬입니다. 야아쉬는 절망하다, 소망이 끊어지다, 실망케 하다는 뜻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아들을 봤습니다. 미련했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일평생 수고하여 쌓은 산업이 자신의 죽음과 함께 모두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은 0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 마이너스가 될 것입니다.  

인생 마지막에 전도자는 한없는 허무를 느낍니다. 자신의 삶이 미웠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원수 같았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혐오스러웠습니다. 전도자는 인생 끝에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전도자가 인생 끝에 느낀 허무가 여러분이 인생 끝에 느끼게 될 허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전도자의 혐오스러운 인생이 우리의 혐오스러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인생 끝에서 전도자처럼 인생의 허무를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생 끝에 일생의 수고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지금 걷고 있는 인생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20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다는 말씀의 히브리어 문자적인 뜻은 내가 나의 마음을 실망하도록 돌이켰다.”입니다. 우리말 번역에 돌이키다는 말이 생략되었습니다. ‘돌이키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사바브입니다. 사바브는 자신을 돌리다, 방향을 바꾸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지향했던 바에서 돌이켜 새로운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전도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지향해 왔던 삶의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전도서는 전도자가 인생 끝에 기록한 책입니다. 전도자는 인생 끝에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이 싫었습니다.  

그러면 전도자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전도자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전도서 2:4~8을 보세요.  

<2:4-8>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나를 위하여4(원어 성경 - 6) 나옵니다. 1절부터 11절까지 32(원어성경 -39) 나옵니다. 전도자의 인생에는 자신뿐이었습니다. 나를 위해 집을 지었습니다. 나를 위해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종들을 두었습니다. 나를 위해 가수를 두었습니다. 나를 위해 처첩을 두었습니다. 모두 나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위하여라는 말은 ‘~쪽으로, ~에게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라는 말은 나를 향하여라는 뜻도 됩니다. 전도자는 오직 자신만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를 향하여’, ‘! ! !’ 그런데 돌이켰습니다. 12절에 내가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헛되어 바람 잡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이대로 계속 걸어가면 우리는 인생 끝에서 전도자처럼 우리들이 살았던 인생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미워했다는 말을 개역성경은 한하였다고 했습니다. 한스러운 인생, 한탄스러운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누구를 향해 돌이켜야 할까요? 하나님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나를 향한 발걸음을 하나님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이었습니다. 깨어 보니 3시가 조금 안됐습니다. 잠시 기도하고 성경 한 장 읽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두컴컴한 길을 걷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좋지 않은 기억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오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때의 일을 회개했습니다. ‘만약 그때 내가 가던 길을 계속 갔다면 지금 쯤 어떤 사람이 됐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예수님 믿기를 정말 잘했다. 교회 다니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시죠? 교회 다니시죠? 기도하시죠? 그래도 조금만 더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세요. 지금 모습에 만족하지 마시고 조금 더 하나님께로 돌아서세요. 하나님께 조금 더 가까이 가세요. 술을 드시는 분은 두 번 드실 것을 한 번으로 줄여 보세요. 술을 끊으면 더 좋습니다. 그 돈을 좋은 일에 써보세요. 건강에 좋습니다. 가족에게 좋습니다. 신앙생활에 정말 좋습니다. 흡연하시는 분은 세 개 하실 것 한 개로 줄이세요. 담배도 끊으면 더 좋습니다. 끊으시고 기도를 해보세요. 하나님께 조금 더 나아가 보세요. 텔레비전 3시간 보시던 것 한 시간으로 줄여보세요. 그리고 성경을 조금 읽어보세요. 혼자 찬송도 불러보세요. 혼자 찬송을 부르면 정말 좋습니다. 찬송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도 해보세요. 수요예배도 드려보시고 새벽기도도 해보세요. 금요기도회에 참석하셔서 소리 높여 기도도 해보세요. 여러분! 하나님께로 조금 더 걸어가세요. 하나님을 향해 조금 더 나아가세요. 제 자리에 계시지 마세요. ‘나를 위하여’, ‘나를 향하여’, ! ! 나가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세요. 그 자리에 인생의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인생 끝에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인생 끝에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돌이키세요. 그리고 지금 잘 사세요. 1020년 그냥 훅 지나갈 것입니다.

 

2. 악한 수고를 악하지 않은 수고가 되게 하려면  

전도자는 일평생 자신이 한 수고를 허무하다 못해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일평생 쌓은 모든 산업이 전혀 수고 하지 않은 엉뚱한 사람의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이것은 사람들이 수고하여 얻은 열매를 전혀 수고하지 않은 제 3자가 갖게 될 수 있다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수고한 사람이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고해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아픔입니다. 반대로 땀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얻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 않고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입니다. 수고한 사람이 있고 얻는 사람이 따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현실의 모순을 전도자가 겪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은이 돌 같이 흔할 정도로 엄청난 산업을 이루었습니다. 그 큰 산업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아무 수고 없이 물려받았습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솔로몬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아이러니가 생겼습니다. 르호보암이 자신이 가진 12개 중 10개를 여로보암에게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5/6를 제 3자가 가져간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자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지식과 재주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많은 산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하나님의 선물을 우상 숭배자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현실입니까? 전도자는 이것을 큰 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여기 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라아입니다. 라아는 , , 고통,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나쁘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결실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결실이 고통과 괴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결실이 나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쁘다는 말일까요? 전도자가 쌓은 많은 재물과 산업이 나쁜 것일까요? 아닙니다. 물질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인생의 수고, 쌓은 재물이 악한 것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전도자의 수고가 악한 것이 된 이유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악한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누구입니까? 사람을 키우는 사람들입니다. 20세기 미국의 부흥사 디 엘 무디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내일 재림하실 것을 알았다면 오늘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무디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한 그루 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무디가 말한 나무는 사람 나무입니다.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 해도 오늘은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들은 사람 나무를 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을 키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1:42) 시몬은 갈대라는 뜻입니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반석으로 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키우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키워야 할까요? 먼저 자식을 키워야 합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믿음으로 키워야합니다. 남아프리아의 성자로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녀를 기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자녀가 우리가 수고하여 쌓은 인생의 산업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주위에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존 맥스웰은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을 키우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천은 자식만 키우는 것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크리스천은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진주를 캐내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키워야 합니다. 옛말에 1년을 계획하면 씨를 뿌리고, 10년을 계획하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계획하면 사람을 키우라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인생 끝에 소망을 잃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명예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이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도자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식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우매자였습니다. 우매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샤칼입니다. 샤칼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어리석음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어리석음입니다. 망할 일을 골라서 하는 어리석음입니다(삼상13:6). 르호보암은 망할 일을 골랐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에게 10개를 빼앗겼습니다. 여러보암은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여로보암은 10개를 빼앗아 벧엘과 단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0개의 지파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죽은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수고하며 쌓고 있는 산업이 악한 것이 되지 않도록 믿음의 사람을 키우세요.

 

3. 소득이 없는 인생을 소득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하려면  

전도자는 일평생 수고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22절에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라고 했습니다. 여기 소득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와입니다. 하와는 떨어지다, 내리다는 뜻입니다. “무슨 소득이 있으랴는 말은 떨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사람에게 남는 것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을까요? 솔로몬은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들어오는 금만 666달란트입니다. 1달란트가 33kg입니다. 666달란트면 21,978kg입니다. 1년에 들어오는 금만 2만 킬로그램이 넘었습니다. 금이 얼마나 많았는지 솔로몬이 쓰는 그릇은 모두 금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솔로몬의 이 말이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죽을 때가 되면 동의가 될까요? 솔로몬은 왜 남은 것이 없다고 했을까요? 죽음 앞에서는 이 땅에 재물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많은 것이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23절에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밤낮 쉬지 못하고 일했습니다. ‘일평생에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그의 모든 날에입니다. 그의 인생의 모든 날에 밤낮 없이 수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 앞에 떨어진 것은 슬픔뿐이었습니다.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제로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평준화 시킵니다.  

여러분! 소득이 없는 인생을 소득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음 앞에서도 남는 것이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2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여기 해 아래서 하는 행하는 모든 수고라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일생을 수고 했는데 왜 남은 것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해 아래의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라고 했습니다. 20절에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미워한 것이 무엇입니까? 해 아래서의 수고입니다. 전도자가 실망한 것이 무엇입니까? 해 아래서의 수고입니다. 전도자는 왜 해 아래에의 수고를 미워하고 해 아래서의 수고에 실망했습니까? 해 아래에서 얻은 어떤 것도 해 위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없는 인생을 소득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해 아래서의 삶이 아니라 해 위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해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해 위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해 위에서의 삶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크리스천은 믿음으로 해 아래에서 해 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의 시작은 믿음입니다. 크리스천의 과정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끝도 믿음입니다. 크리스천은 해 아래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해 위로 이사 가는 사람들입니다.  

컴퓨터게임 마인 크래프트를 아십니까? 마인 크래프트는 마커스 페르손(36)이라는 스페인 사람이 개발했습니다. 마커스는 삽시간에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1억 명 이상이 다운로드한 마인크래프트를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매각했습니다. 25억 달러(28200억원)를 벌었습니다. 그는 미국 비버리힐스의 가장 비싼 저택에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며 삽니다. 침실만 8, 욕실은 15, 차고가 16칸이나 있는 궁전입니다. 이 저택을 7000만 달러(790억 원)를 현금으로 주고 샀습니다. 주말엔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돈을 펑펑 씁니다. 하룻밤 파티에만 16만 달러(18000만원)를 뿌렸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12세 때 이혼했습니다. 우울증과 약물 남용에 빠진 아버지는 절도죄로 감옥까지 다녀오더니 자살했습니다. 여동생은 가출해 약물중독에 빠졌고, 자신도 한동안 조울증을 겪어야 했습니다. 불우한 처지에 있던 그는 따돌림을 당해 대부분 시간을 컴퓨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익힌 컴퓨터 기술로 대박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는 돈을 물 쓰듯 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사치생활을 즐기던 그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엄청난 부()가 나를 극도로 외롭게, 의욕도 없게, 의미 있는 관계도 맺지 못하게 만들었다. 계속 노력해야 할 이유들을 잃게 됐다. 파티를 벌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뭐든 할 수 있게 됐는데, 이렇게 외로운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지만, 내 삶이 두렵다며 평범한 사람에게 가버렸다. 결혼을 했으나 1년밖에 가지 못했다. 딸 양육비로 매달 6000달러를 보내주며 떨어져 산다. 고립된 세상에 갇힌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이 내 호화 파티에 몰려드는 것은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뚱뚱보 괴짜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돈을 보고 몰려드는 것이다. 나와 친해지려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돈으로 친구나 행복은 살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외롭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전글 깊은데서 부르짖나이다
다음글 잠 못 이루는 밤에 만난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