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세상을 축복하는 제사장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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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 6:22-27
주일오전예배 | 2019-05-1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랍비 조셉 텔루슈킨의 죽기 전에 한번은 유대인을 만나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사는지를 정리한 책입니다. 유대인들의 삶의 철학, 가치관, 믿음 등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에 안식일에 자녀를 축복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안식을 지킵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가 지면 안식일 양초를 켭니다. 안식일을 알리는 것입니다. 안식일 양초를 점화한 후에 저녁 식사를 합니다. 안식일 만찬입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기 전에 유대인 부모들이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식탁에서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저녁 식사를 하기 직전에 식탁에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유대인 부모(특히 아버지)들의 전통적인 관례입니다. 아주 오래된 관습입니다. 먼저 아버지나 어머니가 또는 두 사람 모두가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그런 다음 손으로 아이를 잡고, 아들에겐 이런 축복의 말을 낭송합니다. “하나님, 저희 아들이 에브라임과 므낫세(할아버지 야곱에게 축복받은 요셉의 두 아들) 같이 되도록 하소서.” 딸들에겐 이런 말을 낭송합니다. “하나님, 저희 딸이 사라와 리브가, 라헬, 레아(유대 민족 여성 리더) 같이 되도록 하소서.”  

아들과 딸들을 위한 부모의 축복기도가 끝나면 성직자의 축복이 이어집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6:24-26) 오늘 읽은 성경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하나님께 받은 때는 BC 1,446년경입니다. 지금은 AD 2,019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기도문을 3,465년 동안 낭송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쉬는 날이 되면 들로 산으로 놀러갑니다. 아이는 아이들대로 놀고 어른은 어른 대로 놉니다. 먹고 마십니다. 여러분! 거기서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쉬는 날은 먹고 마시자! 즐기자!” 그런데 유대인들은 주말이 되면 안식일 촛불을 켜고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축복기도문을 낭송합니다. 축복기도를 낭송한 후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추가로 전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성경의 의식을 그대로 지키며 삽니다. 그 의식을 지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수고롭습니다. 물질도 많이 듭니다. 행하기가 아주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축복하는 일은 누구나 쉽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들지 않아요. 힘들지 않아요.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 저녁마다 자녀를 축복합니다. 우리도 한 번 자녀들을 이렇게 축복 해봅시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제사장의 축복기도문입니다. 하나님은 제사 끝에 제사장들이 백성과 이스라엘을 어떻게 축복해야 할지 그 축복기도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축복기도문에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복을 주시고 싶어 하는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사장의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복을 주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첫째, 지키심의 복입니다.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지킨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샤마르(지키다 보호하다)입니다. 이 말은 둘레를 가시로 울타리를 친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세심하고 철저한 지키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경험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139:5, 표준) 사고, 재난, 천재지변, 모함, 음모, 억눌림, 폭행, 협박, 질병, 슬픔, 고통, 전쟁 등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의한 일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전후좌우를 둘러싸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은혜 베푸심의 복입니다. 은혜는 대가 없이 베풀어지는 선물입니다. 은혜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난입니다. 하난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허리를 굽힌다는 의미에서 온 단어입니다. 부모가 허리를 굽히고 자녀를 돌봐야 자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허리를 굽히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벌레 같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허리를 굽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낮고 천한 인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평강의 복입니다. 평강은 히브리어로 솰롬입니다. 솰롬에는 단순히 평강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솰롬은 안전 행복 건강 번창 평안 우정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솰롬은 온전케 하다는 뜻에서 온 단어입니다. 평강은 우리 삶이 온전케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복주심으로 완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완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제사장의 축복을 통해 우리에게 지키심, 은혜 베푸심, 평강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은혜주시고 평강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제사장의 축복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됩니다. 이 축복에 여호와의 성호가 세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세 번의 여호와의 성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찬양을 할 때 거룩 거룩 거룩이라고 세 번 반복합니다. 이사야 6장에 천사들이 거룩하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두 번이 아닙니다. 네 번도 아닙니다. 세 번입니다. 왜 하필 세 번일까요?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3은 성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세 번 반복되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본문에 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원한다는 말도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호도 세 번 나옵니다. 제사장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축복기도에 성부 성장 성령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고린도후서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세 분 하나님은 일체로 계십니다.  

세 분이 하나이듯 성도는 하나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너희에게가 아닙니다. ‘여호와는 네게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제사장의 축복은 회중을 향한 축복기도입니다. 그래서 너희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너희라고 하지 않고 라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삼위 하나님이 일체로 계시듯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축복도 온 교회에 전체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축복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축복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제외하지도 않습니다. 예배 중에 축복은 모두에게 하나 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은 김 집사님 가정은 빼고 이 집사님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권사님에게는 축복이 있고 저 권사님은 축복에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모두에게 하나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저기 나누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라고 하지 않고 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축복도 하나로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십니다. 성도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축복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하나로 뭉쳐져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축복을 막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세요. 모세를 반역한 고라가 되지 마세요. 여호수아를 반역한 아간이 되지 마세요.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는 축복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세요. 축복을 막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두 번째로 제사장의 축복의 성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축복은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 선포되었습니다. 일반 사람은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제사장만이 축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이 축복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먼저 짐승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축복을 했습니다. 피로 죄를 씻지 않으면 결코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축복은 반드시 짐승의 피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손에 피가 묻지 않고는 결코 백성을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피가 없는 축복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축복 전에 반드시 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는 누구의 피가 있어야 할까요? 예수님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아시죠?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시죠?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에 자신의 피를 묻혀 우리의 죄를 씻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의 손에 묻은 피가 우리 영혼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피로만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피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 가능합니다. 축복 또한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가 없이는 어떤 축복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제사장의 축복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진심으로 믿으세요. 마음을 다해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하늘의 신령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합니다.  

제사장의 축복은 아주 확실한 축복입니다. 제사장이 축복을 선언합니다. 그렇다고 그 복이 제사장의 것은 아닙니다. 복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복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복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복은 하나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복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복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축복은 확실합니다.  

축복의 선포는 하나님이 제정하셨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축복의 선언은 사람이 제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재정하신 축복을 선포할 뿐입니다. 제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축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은 단 한글자도 자기 생각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축복은 확실한 축복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만이 선포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 외에 다른 사람은 축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제사장만이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되고 싶다고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선택받은 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만이 선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6:27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인준을 받은 제사장입니다. 언제 인준을 받았을까요? 창세 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선택받은 제사장입니다. 준비된 복입니다. 계획된 복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주시는 복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주시는 복이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신 때문입니다. 불신이 하나님의 복을 막아버립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정말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 안에 하늘의 신령한 복이 우리에게 확실히 임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믿어본 적도 없으면서 복은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정말 제대로 믿어본 후에 말하세요. 예수님이 주시는 복은 확실합니다.  

이 축복은 계속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했습니다. 이 축복의 시작은 대제사장인 아론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죽습니다. 그러면 축복도 아론과 함께 죽을까요? 아닙니다. 아론은 죽지만 축복은 그 아들들에게 이어집니다. 그 축복은 다시 그 아들들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한 세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축복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던 하나님의 복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임하였고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결코 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죄 가운데 빠집니다. 의심, 불신, 두려움, 염려, 세속적인 것들이 안개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빛을 가립니다. 그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아침 해와 같이 일정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결코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이 축복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축복은 중보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을 통하여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23절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외치도록 했습니다. 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를 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축복의 중보자이었습니다.  

중보자의 모습은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누가복음 22:31-32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해 기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7:25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지금도 간곡하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17:9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이 된 우리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기도했다.” “내가 서요한을 위해 기도했다.” “내가 유온유를 위해 기도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서 안전합니다.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백성들에게 선포됐습니다. 하지만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복이 아닙니다.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래서 이 복은 아주 확실한 복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축복의 중보자였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을까요? 첫 번째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12: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12: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때문에 세상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를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 19: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했습니다. 소유라는 말이 보배로운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는 보배로운 존재, 특별한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장 나라를 삼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 19: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에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을까요? 첫째, 여러분의 인생이 복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여러분 때문에 세상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이 보배로운 인생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존귀한 인생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때문에 세상이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 때문에 나사렛 대학교 도서관에 자주 갑니다. 주로 걸어서 다닙니다. 오후에 갈 때도 있지만 주로 아침 일찍 갑니다. 아침에 일찍 가면 보이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자는 학생들입니다. 도서관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옆에 놓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또 도서관 구석에서 자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멀리서 통학하는 학생들 같습니다.  

지난 3월이었습니다. 야외 강당을 지나다가 내부가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야외 강당인데 벽도 있고 문도 있어요. 물론 천정은 없습니다. 아주 멋지게 해 놓았습니다. 저는 야외 강당에 들어가다가 흠칫 놀랐습니다. 야외 강당 한쪽 구석에서 기도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요. 아직 9시가 안된 시간입니다. 아직 쌀쌀한 날씨입니다. 아침이라 야외 강당 바닥이 차갑습니다. 모두들 분주한 시간입니다. 수업 때문인지 어떤 학생들은 뛰고 있고 어떤 학생들은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또 어떤 학생들은 학교 한 쪽 구석에서 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기도하는 학생이 있는 거예요. 정말 저는 놀랐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저는 그 학생들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차를 끌고 갔습니다. 저는 주로 차를 채플실 옆에 주차를 합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채플실 안은 낮에도 컴컴합니다. 기도하기 좋아요. 차를 끌고 가면 보통 830분 쯤 됩니다. 보통 20분 정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조금 오래 할 때가 있습니다. 930분이 되면 학생 몇 명이 채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날 있을 예배 찬양을 준비하는 학생들입니다. 예배가 정오쯤에 있습니다. 학생들이 들어오면 제가 나옵니다. 지난 주간에는 아이들이 들어왔지만 안 나왔어요. 기도를 좀 더 했습니다. 그러다가 슬쩍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학생들도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있을 예배와 예배를 참석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러더니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거예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학생들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저주, 폭언이었을까요? 원망, 험담이었을까요? 아니면 학교에 대한 비판, 불만이었을까요? 저는 그 학생들의 기도는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기도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도는 축복기도입니다. 나사렛 대학교에 수천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있습니다. 그 중에 몇 사람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대학의 축복의 통로가 아닐까요? 그 대학의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아닐까요? 그들은 그 대학의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와 학생들을 축복하는 제사장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어떤 종교일까요? 기독교는 세상을 축복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세상과 하나님을 잇는 제사장 종교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일까요?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잇는 제사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원망 불평 정죄 저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등대교회가 세상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이 축복의 통로가 되세요.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세요.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세요. 여러분의 직장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세요.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합시다. 우리 가정을 축복합시다. 우리 교회를 축복합시다. 천안을 축복합시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를 축복합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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