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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톨스토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우화입니다. 물고기들이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한 ‘물’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늙은 물고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은 결국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온몸이 언제나 그 물에 적셔 있으며 날마다 그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공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공기 속에는 이 땅에 사는 5천 만 명의 사람들, 하늘의 새, 물속의 물고기, 땅에 짐승, 수많은 곤충들 그리고 식물 등 수억의 생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기를 인식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공기보다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은혜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일반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반 은혜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은혜와 사랑 속에서 생명을 공급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마치 물속의 물고기가 물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듯이 말입니다. 고라 자손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49:18-20>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사람은 존귀합니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변함없이 오늘도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창조 이래 변함없이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듯 하나님의 은혜는 변치 않고 오늘도 온 인류를 동일하게 비춥니다. 연약한 자나 강한 자나 추한 자나 정결한 자나 동일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은혜는 변치 않고 비춰집니다.
1. 저녁도 주의 것 낮도 주의 것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라’입니다. 카라는 ‘외치다, 선포하다, 축하하다, 부르다, 부르짖다, 선택하다, 축하하다 ~의 이름을 명명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셨다’는 말은 ‘빛을 낮이라고 이름을 지으셨다’ 또는 ‘빛을 낮이라고 선언(선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칭하시니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수 없이 많은 피조물을 만드십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섯 가지 피조물의 이름을 하나님이 직접 지으십니다. 낮, 저녁, 하늘, 땅, 바다 다섯 가지입니다.
<5절>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8절>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왜 이 다섯 가지는 하나님이 이름을 직접 지으셨을까요? 그것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르다는 말에 선포하다, 선언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섯 가지 사물에 이름을 지으시고 그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내 것에는 내가 이름을 짓습니다. 내 것에 다른 사람이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남의 것에 내가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이름을 지으셨다는 것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해 하나님이 전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섯 가지 외에 나머지 피조물은 아담이 이름을 짓습니다. 동물, 새, 나무, 꽃, 풀, 물고기 이름은 아담이 지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주권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낮과 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낮, 밤, 하늘, 땅, 바다를 사람들이 주장하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과학으로 해를 멈출 수 있습니까? 달을 멈출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하늘을 보십시오. 우주 크기를 465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우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거리가 465억 광년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하늘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또 465억 광년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이 말이 맞는다면 누군가 지금도 우주를 더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주의 크기를 과학으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아직 과학은 하늘을 측량도 못합니다. 첨단 과학으로 사람들이 살피고 있는 것이 겨우 화성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를 볼 때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보잘 것 없습니까? 과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렇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땅에서 일어나는 지진이나 화산폭발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안돼요, 안돼요. 타임머신이 있다고요. 아니요. 타임머신은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루 24시간의 1초도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해를 단 1초도 늦게 돌게 할 수 없습니다. 해를 눈곱만큼도 뒤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낮, 밤, 하늘, 땅, 바다에 대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사람은 낮, 밤, 하늘, 땅, 바다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늘 아래에서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해 아래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 낮과 밤, 하늘과 땅, 바다를 통해 주시는 일반적인 은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해를 보십시오. 해의 주권을 가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세요. 하늘의 달을 보십시오. 달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 앞에 순종하세요.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을 보세요. 우리에게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은 없어!”, “내 경험으로 봐서 종교라는 것은 사람들의 도피처야!” 사람이 그렇게 뛰어날까요? 사람이 그렇게 똑똑할까요? 천만에요. 빛을 낮이라고 선포하신 하나님, 어둠을 밤이라고 선언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낮도 주의 것입니다. 밤도 주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 저녁 먼저, 아침은 나중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침이 돼야 저녁도 온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저녁이 돼야 아침이 온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아침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루가 저녁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창조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처음 창조된 땅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혼돈과 공허이었습니다. 무질서와 황량함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엄청난 양의 물이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 위를 아주 두꺼운 흑암이 덮고 있었습니다. 혼돈, 공허, 깊음 그리고 흑암 이것이 세상의 처음 모습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찬란한 빛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흑암으로 시작됐습니다. 어둠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흑암 위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어둠을 이기고 오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의 창조는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매순간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갑시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창조의 법칙은 창조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하나님의 창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창조입니까?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창조입니다. 밤의 혼돈, 무질서를 깨고 빛의 질서, 정돈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창조 이후 단 하루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법칙에서 예외인 날은 없었습니다. 인류는 매일 같이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순간 어둠의 무질서에서 빛의 질서로 나아갑시다.
히브리어로 아침이 포켈입니다. 히브리어 ‘보케르’라는 말은 ‘파괴하고 다시 시작하다’는 뜻입니다. 아침이란 말은 어둠을 깨뜨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은 날마다 새로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아침이 있습니다. 오늘 실패해도 내일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안 돼도 내일은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좌절했어도 오늘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침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침을 주셨습니다. 아침에 어제를 아쉬워하지 맙시다. 아침에 어제의 실패를 괴로워하지 맙시다. 아침에 오늘의 희망을 가집시다. 하나님은 실패한 우리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침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다시 시작하세요. 날마다 다시 시작하세요. 매순간 다시 시작하세요. 다시, 다시, 또 다시, 이것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삶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인생들의 <삶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어둠 속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십시오. 이브자리, 옷매무새, 얼굴, 머리, 집안 정돈 상태 모든 것이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얼굴을 씻습니다. 머리를 빗습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아침 빛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빛이 닿게 되면 모든 것에 질서가 잡힙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은 우리 인생들의 생활원리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생활원리로 삼읍시다. “내 삶은 왜 항상 엉망진창이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원래 삶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인생들의 성공의 원리입니다. 열림이 먼저일까요? 닫힘이 먼저일까요? 닫힘이 먼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닫힘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열림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열림에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열려있는 것처럼 보일뿐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닫힘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림에서 마쳐져야 합니다. 내 인생의 시작이 좋다 나쁘다 고민하지 마세요. 지금은 닫혀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꼭 열림이 되도록 기도하세요. 닫혀 있는데 계속 닫혀 있는 대로 끝나지 않게 하세요. 인생은 닫혀 있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인생은 저녁을 아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는 성공법칙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원리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 후에 영광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노 크로스 노 크라운(no cross no crown)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왕관도 없습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십자가가 있어야 왕관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틀은 고난 후의 영광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버리지 마세요.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버리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을 신앙의 원리로 삼으세요. 밤을 지난 후에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 생긴 때는 아침입니다. 야곱이 밤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성경은 그때 해가 돋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창조하신 때가 긴 밤을 지난 아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지난 사건은 세례에 비유됩니다. 세례의 의미는 새롭게 함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의 세례로 새롭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이 아침입니다. 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는 시간입니다. 어둠 속에 있으십니까? 반드시 아침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의 손기를 바라보세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결코 소망을 잃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아침이 있습니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3. 낮의 시간과 어둠의 시간을 정하시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고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어둠은 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흑암으로 뒤덮인 세상에 첫 번째로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굳이 이 빛을 낮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냥 빛으로 두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빛이 있으라.”고 하지 마시고 “낮이 있으라.”고 하시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빛을 만드신 후에 그 빛을 굳이 낮이라고 명명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 어둠을 굳이 밤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빛은 낮이라고 어둠은 밤이라고 이름을 붙이시고 선포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을 낮과 밤으로 기간을 정하신 것입니다.
처음 세상은 어둠뿐이었습니다. 빛이 없었습니다. 어둠만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둠을 멈추게 한 것이 빛입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어둠도 있고 빛도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둠과 빛을 나누셨습니다. 어둠과 빛을 나누셨다는 말은 빛과 어둠의 기간을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빛의 기간이 낮입니다. 어둠의 기간이 밤입니다. 빛이 창조되기 전에는 어둠만 계속됐습니다. 그렇지만 빛이 생긴 이후에 빛과 어둠은 공존하게 됐습니다. 그것을 낮과 밤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낮과 밤은 서로 교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반은 낮입니다. 반은 어두움입니다. 겨울에는 밤이 깁니다. 여름에는 낮이 깁니다. 어떤 때는 낮이 깁니다. 어떤 때는 밤이 깁니다. 낮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밤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낮과 밤은 이 세상이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교대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낮이 있습니다. 하지만 밤도 있습니다. 낮만 계속되지 않습니다. 밤만 계속되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낮과 밤이 계속 반복됩니다. 낮은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밤도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낮을 지나고 있습니까? 낮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낮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밤을 준비하십시오.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밤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낮을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낮이 옵니다. 인생의 낮과 밤은 천국 가는 날가지 교대로 올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낮만 주시지 밤도 주셨을까요? 인생에는 낮도 필요하지만 밤도 필요합니다. 제가 텃밭을 만들어 오이를 키워봤습니다. 낮에는 오이가 그대로 있습니다. 오이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침에는 오이가 자라 있습니다. 밤사이에 자란 것입니다. 식물은 밤에 자랍니다. 그러면 낮에는 무엇을 할까요? 광합성을 하는 것입니다. 식물은 낮에 일하고 밤에는 자랍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낮은 일하는 시간입니다. 인생에 낮이 오면 열심히 일하세요. 열심 뛰세요. 낮은 일 할 시간입니다. 그러다가 인생에 고난의 밤이 오면 가만히 계세요. 침묵하세요. 밤에는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밤을 지날 때 성숙해집니다. 사람에게 밤은 자라는 시간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위나라의 사마의가 붙습니다. 지략으로 따지면 제갈공명은 박사급입니다. 그에 비해 사마의는 중고생 수준입니다. 그런데 군사력은 반대입니다. 사마의가 훨씬 위입니다. 그럼에도 번번이 제갈공명이 사마의를 이깁니다. 한 번은 제갈공명이 사마의를 호로곡으로 유인했습니다. 제갈공명은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마의는 구사일생으로 호로곡을 빠져나갑니다. 그때부터 사마의는 제갈공명만 나타나면 도망가는 거예요. 움직이지 않고 성안에서 가만히 있는 거예요. 도망가고 가만히 있는 사마의를 제갈공명은 어떻게 하질 못합니다. 제갈공명은 초조했습니다. 초조한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결국 천하는 가만히 있는 사마의 손에 들어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낮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밤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낮이라는 은혜와 밤이라는 은혜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에 낮이 오면 열심히 일하세요. 밤이 오기 전에 열심히 일하세요. 그리고 밤을 준비하세요. 반드시 밤이 옵니다. 밤이 오면 엎드리세요. 가만히 계세요. 밤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라게 하십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말은 교회의 하루입니다. 오해 없이 들어주세요. 어제 김윤성 목소리 청년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가고 오는 버스 안에서 이러 저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종원 집사님 어머님, 김진표 집사님 어머님이 병원에 계세요. 아마도 두 분의 마음 한 편에 항상 그늘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한쪽에는 항상 그늘이 있을 거예요. 윤태현 집사님은 뇌동맥 치료 중이세요. 다른 곳이 아프신 성도님들도 계세요. 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 가운데 결혼식도 있어요.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 안에 낮도 있고 밤도 있구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말씀은 교회의 하루이구나!’ ‘한쪽은 낮이고 한쪽은 밤이구나!’, ‘한쪽은 아침이고 한쪽은 저녁이구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말씀은 인생의 하루입니다. 제 마음 한 편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는 그늘이 진 곳도 있습니다. 속상함이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인생 한 쪽은 낮인데 다른 한 쪽은 밤이에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하루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어둠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저녁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적인 삶입니다. 여러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말씀을 붙들고 날다마 아침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교회에 아침이 오게 해주세요. 우리 인생에 아침이 오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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