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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여왕>으로 불리는 파니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크로스비는 8,000곡 이상의 찬송시를 쓴 사람입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이분의 노래가 많이(22곡) 실려 있습니다.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31),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40)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176), “인애하신 구세주여”(279),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288), “나의 갈 길 다가도록”(384),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391), “나의 영원하신 기업”(435),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540),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565) 등입니다. 아주 많이 불리는 찬송가입니다.
그런데 크로스비는 생후 6주가 되었을 때 의사의 잘못된 약물 치료 때문에 시력을 잃습니다. 한 살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그래서 아주 가난하게 자랍니다. 크로스비는 시에 대한 남다른 재능이 있었습니다. 노래도 잘 했습니다. 하지만 맹인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크로스비는 30살 때까지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서른 살 때 뉴욕의 한 전도 집회에 참석합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영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 눈물은 크로스비의 어둡고 아픈 과거를 말끔히 씻어 버렸습니다.
크로스비는 이 찬송가의 맨 끝 소절인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부분을 부르다가 주님께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주님, 저 같은 사람도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나요?” 그때 주님은 크로스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재능을 주지 않았느냐. 너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 그녀는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서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겠습니다. 이 몸을 바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그때부터 크로스비는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찬송시를 씁니다. 간증을 합니다. 찬송을 합니다.
크로스비가 어느 부흥집회에 참석해 간증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간증 후에 강사 목사님이 크로스비를 동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렇게도 많은 선물을 주셨는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선물로 주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자 크로스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면 저는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목사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멀쩡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1000배나 더 많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영광을 보게 되길 바랍니다.
1. 성경을 읽는 목적
저는 지난 4주 동안 성경과 성경 읽기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이채윤 작가의 「성경이 만든 부자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세계적인 부호들이 여러 명 소개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성공하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 성경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으로 읽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 인생을 성공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의 교훈대로 살면 반드시 인생을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세요. 그리고 그 교훈에 따라 사세요. 반드시 인생을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하루에 성경을 40장 정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읽지 못합니다. 아주 열심히 읽었습니다. 손에 늘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은혜가 충만한 거예요. 성경을 계속 읽어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합니다.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삶에 활력이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마음이 메마릅니다. 답답해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성경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싶어서입니다. 은혜 받고 싶어서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읽는 데는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성경을 알고 싶어서, 성공하기 위해서, 위로를 받기 위해서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성경을 읽습니다. 모두 좋은 목표입니다. 하지만 변치 않는 하나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음으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기간에 여러 가지 표적을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 이유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요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귀로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몸으로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놀라운 은혜이고 특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또 믿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성령께서 오셔서 목격자들이 본 내용을 글로 적게 하셨고 사람들은 그것을 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믿고 그로 인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과는 달리 그분의 육체적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것은 목격자들의 기록을 읽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요20:29-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영생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믿음은 기록된 것을 읽음으로 얻게 됩니다. 기록된 성경을 읽는 일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는 창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목격자들의 성경 기록을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은 16장 13-14절에서 이것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신약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전 갈릴리 바다에 나타났던 예수님의 영광은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영광은 성경을 읽음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은 읽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3:3-4>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여러분! 성경을 읽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져서 예수님의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이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지지 못한 사람들이 읽음으로 예수님의 비밀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음으로 해서 예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해서 예수님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역사가 있습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며 읽어야 합니다.
2.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비밀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뮈스테리온입니다. 우리 귀에 많이 익숙한 단어입니다. 영어의 미스테리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뮈스테리온은 ‘비밀’, ‘신비’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신비가 무엇입니까? 헬라어 사전은 뮈스테리온을 “너무 신비해서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신비는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저는 뮈스테리온이라는 말을 좀 다르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을 계시로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셔서 알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비(뮈스테리온)라는 말을 “하나님이 아직 사람에게 주시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기만 하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이라는 말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 신비라는 말이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신비의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신비의 책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비의 책이 여러분에게 신비가 되길 바랍니다.
이 비밀이라는 말은 두 가지 단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영광’이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풍성함’이라는 말입니다.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비밀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비밀과 영광이라는 단어가 이어져 있습니다. 또 영광이 풍성한지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영광과 풍성함이라는 말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비밀의 영광은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비밀의 풍성함은 예수님의 풍성함입니다. 예수님 안에 영광과 풍성함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풍성함을 에베소서 3장 8절에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라고 말합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과 영광의 풍성함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영광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이 풍성함은 하나님의 풍성함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풍성함입니다. 이 천국의 풍성함을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의 풍성함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 영광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영광에 힘을 얻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읽으십시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쓴 것을 읽으라 그러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성경 읽기는 천국 창고에 있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집 마당 옆에 광이 있었습니다. 광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명절이나 집에 큰 일이 있을 때 쓰는 도구나 그릇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또 집에서 밥 해먹는 쌀도 여기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주로 어머님이 쓰시는 물건들을 여기에 넣어 놓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광은 어머님의 비밀 창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심통이 나거나 골이 났을 때 어머님은 가끔 광에서 아주 특별하고 맛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주셨습니다. 우는 저를 뒤에 두고 광문을 여세요. 그 때 저는 울음을 뚝 그칩니다. 그리고 궁금해합니다. “무엇을 주실까?” 아무 소리 없이 어머님을 기다립니다. 어떤 때는 울고 있는 저를 데리고 어두컴컴한 광으로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저는 엄마의 바지 주름을 잡고 졸졸 따라 갑니다. 거기는 제게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따라가다 보면 어머님은 엎어져있는 그릇 중에 하나를 들춥니다. 그러면 거기서 아주 맛있는 무언가가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고 아주 좋아했습니다. 광은 저에게 신비의 장소이었습니다. 저의 바로 옆집에 아주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도 광이 있었습니다. 그 집 광에는 얼마나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저 천국 하나님의 광에는 얼마나 신비롭고 풍성한 것들이 많이 있을까요? 성경 읽기는 하나님의 풍성한 광을 여는 열쇠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풍성한 보물창고입니다. 그 창고를 여는 열쇠는 읽기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영광과 별도의 것으로 보지 말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다른 것들은 다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풍성함에만 초점을 맞추라는 말이 올바른 것입니까?” 예, 이것은 맞는 지적입니다. 성경은 아주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 헌신, 충성, 믿음, 경외함, 자비, 온유, 겸손, 섬김, 지혜, 가정, 부부, 물질, 교회, 공경, 떳떳한 노동, 결혼 등등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은 이 많은 성경의 주제를 다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성경의 모든 주제는 읽으면서 그 자체를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 메시지에 충실해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주제를 하나님의 영광과 별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별도로 그것들을 보지 말아야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은 성경의 다른 주제와 동일한 선상에 나란히 놓고 고민해야 할 주제가 아닙니다. 모든 주제를 아우르고 모든 주제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실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것의 근거이자 모든 것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항상 성경을 읽을 때 모든 것들 안에서,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지어 보라는 뜻입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같은 가장 평범한 일에서부터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4-8을 근거로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결론은 성경 읽기는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보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감동하셔서 성경을 쓰게 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쓴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여기 읽다는 말이 헬라어로 아나기노스코입니다. 아나기노스코는 ‘읽다’, ‘낭독하다’는 뜻입니다. 또 아나기노스코는 ‘다시 안다’, ‘위에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압니다. 성경을 읽으면 위엣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엣 것을 알면 아래 것도 압니다. 또 성경을 낭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통해 성경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성경을 낭독하게 하셨을까요? 그래야 백성들이 압니다. 성경을 낭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 아침에 15분 성경 읽기를 무시하지 마세요. 성경을 낭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읍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며 성경을 읽읍시다. 그 때 읽는 자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로 충만하게 됩니다. 성경은 신비의 책, 비밀의 책입니다. 그 신비가 여러분의 신비가 되길 바랍니다.
미국 인구 가운데 유대인은 2.1퍼센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07년 미국 잡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가 선정한 미국의 파워 엘리트 100중에 무려 51명이 유대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미국 고위 공직자의 15퍼센트, 주요 대학 교수의 20퍼센트, 핵심 언론인의 25퍼센트, 하버드대학교 재학생의 30퍼센트, 뉴욕의 법률자문가의 40퍼센트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국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70퍼센트, 세계 억만장자의 3분의 1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세계 인구의 불과 0,2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까닭을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첫째,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자존심(선민의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자존심은 어디서 나올까요? 성경에 나옵니다. 성경에 자신들의 하나님의 선택받았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이 그래져 있습니다. 유대인의 자존심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둘째, 역사(구약성서)를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책을 집에 잘 보관해두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읽고 그 교훈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세요. 하나님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셋째, 언어(히브리어)와 문화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넷째, 민족의 핏줄을 귀하게 여기는 민족애(수천 년 동안 단 한 방울의 피만 섞여도 유대인으로 규정)때문이라고 합니다.
몇 달 전에 이지성 작가의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지성 씨는 목사님들이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받은 이유는 성경 때문이라고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받은 이유는 성경 때문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어서랍니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석학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유대인과 성경이 따로 생각되어지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읍시다. 성경 읽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는 열쇠요 통로입니다. 천국창고의 보고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2018년 한해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2019년 한해 성경으로 새롭게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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