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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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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5:2-3
주일오전예배 | 2018-12-16
설교자 : 서요한 목사

18세기 영국의 전도자 조지 휫필드(1714.12.16.1770.9.30)가 어느 석탄 광부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광부가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교회가 믿는 것을 믿고 있지요그러자 휫필드는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 교회는 무엇을 믿나요?” 광부가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교회도 제가 믿는 것을 믿죠.” 그 사람이 얼버무리면서 말꼬리가 희미해지자 휫필드는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과 당신 교회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석탄광부가 대답했습니다. “교회와 나는 모두 같은 것을 믿고 있지요  

우리는 설교를 통해 많은 것을 듣습니다. 듣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듣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귀로 들은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확인할 때 우리 믿음은 더욱 굳게 세워집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사랑합시다. 성경을 읽읍시다. 매삼주오입니다. 평일(매일)3, 주일은 5장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1년에 성경을 1독을 하게 됩니다. 이 성경에 여러분의 미래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요? 솔로몬은 잠언 24절에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화를 찾듯 그것을 찾아라.”(표준새번역)고 했습니다. 고대 시대에 은 화폐 단위로 사용됐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은이라는 말이 나오면 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구할까요? 아주 열심히 구합니다. 보화는 어떻게 찾을까요? 아주 열열이 찾습니다. 아주 간절히 찾습니다. 솔로몬은 성경을 돈을 간절히 구하듯 읽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5-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너는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터득할 것이다. 주께서 지혜를 주시고, 주께서 친히 지식과 명철을 주시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간절히 구하면 주께서 지식과 명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명철은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마음입니다. 성경을 알아야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읍시다. 성경을 읽으면 지식과 명철을 얻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사랑합시다. 조금만 시간을 내세요. 그래서 성경을 펼치세요. 성경에 여러분의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의 복수성, 둘째, 성경은 영원성, 셋째, 성경은 현재성입니다.

 

1. 성경의 복수성  

먼저 성경의 복수성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은 복수성 갖습니다. 기독교는 복수성이 아주 강한 종교입니다. ‘복수성연대성이라고도 합니다. 기독교는 아주 연대성이 강한 종교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5:2-3>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우리라는 말이 다섯 번 들어가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이 29장에도 나옵니다.  

<29:14-15>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 이니  

14절에 너희라고 했습니다. 15절에 우리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성경은 우리라는 공동체에 주신 책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달아나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날 때 함께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야곱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경에 나오는 어떤 특정인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우리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와 자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4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박해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것이 곧 나를 박해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연대성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우리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우리가 없습니다. 대신 끼리끼리가 있습니다. 지들끼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끼리끼리’, ‘지들끼리가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에 파당이 있으면 안됩니다. 교회는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불교 신자 한 사람이 잘 못해서 불교 전체가 욕먹는 것 보셨습니까? 천주교 신자 한 명이 잘 못해서 천주교 전체가 욕먹는 것을 보신 적 있습니까? 물론 약간의 지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잘 못하면 매스컴이 난리가 납니다. 순식간에 실검 1위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기독교는 우리의 종교입니다. 여러분! 우리라는 의식을 잊지 마세요.

 

2. 성경의 영원성  

두 번째로 성경의 영원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내용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성경 자체가 영원합니다. ‘성경이 영원한 책이라는 것은 성경 자체가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모세는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2-3>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하나님과 출애굽 1세대가 호렙산(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을 호렙산언약 또는 시내산 언약이라고 합니다. 호렙산 언약 후에 40년이 지났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세운 당사자들이 모두 죽은 것입니다. 이제 출애굽 2세대가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입니다. 출애굽 2세대는 조상들이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울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호렙산 언약을 여호와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와 세운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 2세대입니다. 새로운 세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대대로 그리고 영원히 계속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율법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4-50년 동안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받은 사람들의 후세대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들고 말라서 없어지는 꽃이나 풀과 같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중단되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됩니다. 성경은 영원합니다. 구약 성경 시대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신약 성경 시대에 사도 베드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동일하게 인용했습니다.  

<벧전1:24-25>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마르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는 진리가 성경에 담겨 있습니다. 변할 수도 없고, 변하게 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이 진리가 성경에 담겨 있습니다. 구약 시대 의식과 관련된 율법의 일부 - 예를 들면 제사법, 음식법 등 - 는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영적 교훈은 영원히 그 기능을 계속 발휘하며 썩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율법의 말씀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4:35, 21:33)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예수님은 율법의 한 획이 없어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것이 쉽다라고 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성경은 땅에만 존재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천국에도 존재합니다.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성경은 사람만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천사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영원 속에 있는 책입니다. 성경이 영원하다는 것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이 영원하다는 것은 역사가 증거합니다. 7세기 말에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성경을 면도칼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잘라진 성경 파편을 화롯불에 태웠습니다. 성경을 없어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또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몇 년 후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습니다. 여호야김은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가 BC 606(605)입니다. 20년 후인 BC 586년에 유다는 완전히 망합니다. 그리고 1948년에 독립합니다. 2534년 만에 독립한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성경을 없애려고 했지만 성경은 다시 기록됐습니다. 성경을 없애버리려고 한 땅에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곳에서 교회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전파됐습니다. 성경의 땅이 된 것입니다.  

BC 2세기 중엽입니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4)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타인에 진군했습니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을 아주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여인들의 피부를 칼로 도려냈습니다. 임신한 여인의 배를 칼로 찔렀습니다. 사람을 토막 내 죽였습니다. 사람을 불 태워 죽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을 모조리 불살랐습니다. 누구든 성경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참 아이러니입니다. 안티오쿠스는 3년 후에 갑자기 미친병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러더니 즉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에서는 성경이 전파되었습니다.  

AD 284년에서 305년까지 로마를 다스렸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아주 지독하게 박해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과 성경을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모든 성직자들을 투옥시킵니다. 교회 건물은 쓸어버렸습니다. 성경은 불태워버렸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태우는 모닥불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이 1만 명입니다. 고문, 투옥, 망명한 그리스도인들이 2만 명입니다. 타버린 성경의 잔재 위에 승리의 탑을 세우고 거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진멸되었다.”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티오클레티아누스는 이제 기독교는 없어졌다.”라고 새긴 메달을 갖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병으로 305년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 2년 전에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국가적인 종교로 발전합니다. 80년 후인 393년에는 신약성경 27권이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히포 레기우스에서 정경으로 인정됩니다. 여러분! 역사는 아이러니입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Voltaitr: 1694~1778)성경은 쓸모없는 책이므로 100년 안에 없어지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50년 후에 그의 출판사에서 성경을 인쇄했습니다. 200년 후에는 볼테르의 집에 프랑스 성서 공회가 세워졌습니다. 성경을 조롱하던 사람의 집에서 프랑스 전역으로 성경이 배포된 것입니다. 역사는 역설입니다.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은 1922년에 러시아를 장악하고 성경금지령을 제정했습니다. 소련 내에서 성경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수상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앞으로 3년도 못되어 성경을 다 멸하겠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3년도 못되어 사라진 것은 성경이 아니라 흐루쇼프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정변으로 가택 연금되었습니다. 흐루쇼프는 갇혀 살다가 1971년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보십시오. 적그리스도 세력은 끊임없이 성경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전이 성경은 읽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사람이 없앨 수 없는 책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흔들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권의 군주는 이 책을 반대해서 적노했다. 그리고는 성경을 말살하고 근절할 방책을 간구했다. , 유대 왕 여호야김, 헬라 제왕 알렉산더, 이집트 왕 바벨론왕, 페르시아 제왕, 로마의 쥴리어스와 아우구스투스 황제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승리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들 군주들은 다 죽고 없어졌지만 성경은 건재하며 당초에 선포한 그대로 영원히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보존된 것이다. 지금까지 성경의 보존에 누가 그렇게 조력했나? 그 무서운 강권 압력에 대항해 누가 성경을 보호해 왔나? 아무도 없었다. 진실로 하나님, 만물의 주가 되시는 한 분밖에 누가 있었나!"  

사탄은 왜 성경을 없애려고 할까요? 역사는 성경을 따라 흐르기 때문입니다. 웰스라는 사람은 성경은 서구 문명의 모든 내용을 통합한 책이다. 우리의 현대 문명은 성경이 없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고 또한 지탱될 수도 없다.” 성경 속에 인류 역사가 있습니다. 성경 속에 인생들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성경을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가 자기 수중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인류가 자기 수하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성경을 빼앗기지 마세요. 사탄에게 성경을 빼앗기지 마세요. 성경을 가지세요. 성경을 마음으로 가지세요. 성경을 사랑하세요. 성경을 읽으세요. 마귀가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람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붙드세요.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3. 성경은 현재성  

세 번째로 성경의 현재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동시에 현재적인 책입니다. 성경은 영원을 지향합니다. 동시에 현실을 직시합니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책입니다.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책입니다. 성경은 이상적인 책입니다. 동시에 아주 실재적인 책입니다. 성경은 현실 세계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줍니다. 성경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현재적인 책입니다.  

<5: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모세는 성경의 현재성을 세 개의 단어로 묘사합니다. 첫째, ‘오늘입니다. 틀림없이 성경은 과거에 주어졌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 태고 적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고고학 자료정도로 생각합니다. 역사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고전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오늘성경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오늘은 영원한 오늘입니다. 변하지 않는 오늘입니다. 계속되는 오늘입니다. 어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어제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어야 합니다. 사도들의 말씀이 2천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내 귀에 들려지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2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오늘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듯이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생생하게 하시는 말씀이 성경입니다.  

둘째, ‘여기입니다. 모세가 말한 여기는 어디일까요? 모압 평지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모압 평지에 서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호렙산 언약은 40년 전에 모세가 호렙산(시내산)에서 받은 것입니다. 장소가 전혀 다릅니다. 비슷한 곳도 아닙니다. 연관성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오늘 여기모압 평지에서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요?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시대에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주 무대는 이스라엘 땅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유대 광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갈릴리 바닷가나 유대 광야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갈릴리 해변이 아니라 천안시 쌍용동 등대교회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저기서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여기서주어진 말씀입니다. 성경을 옛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옛날에 그러셨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마귀가 미소 짓게 하는 생각입니다.  

셋째, ‘살아 있는입니다. 성경은 오늘 여기에 살아 있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를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살아 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죽은 것은 먹지 않습니다. “에이 목사님! 사람이 죽은 것을 먹지 산 것을 먹나요?” 이렇게 생각하실 모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살아 있는 소를 잡아서 먹는 것입니다. 저절로 죽은 소는 먹지 않습니다. 사과를 먹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달린 사과를 따 먹습니다. 떨어진 사과는 먹지 않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을 먹습니다. 싱싱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마가복음 12:27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주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18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도 살아계신 영이십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죽은 음식, 죽은 말씀, 죽은 신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싱싱한 말씀,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태고 적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인류를 영원으로 인도하는 책입니다. 고전이 아닙니다. 문학작품이나 학문적 자료로 생각하는 것은 마귀가 너무 좋아하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생명입니다. 오늘 여기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살아 있는 영의 양식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성경에 인생의 생사화복이 있습니다. 성경에 인류사의 미래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을 사랑하세요. 성경이 여러분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 1842~1910)27살이 되었을 때,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낙담과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그의 병은 오히려 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병으로 죽을 것을 생각하자 겁이 났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도와 줄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절의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설령 죽는다 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누가 되었든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라는 말씀을 읽고, 호흡을 하듯, 약을 먹듯, 그 말씀을 복창하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정신병에서 서서히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고하기를 내가 성경말씀을 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정신병에 대한 고통을 책으로 써서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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