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인생은 오십 보 백 보, 귀죽지 말고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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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전도서2:12~17
주일오전예배 | 2018-10-0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세상에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일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는 일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일을 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일을 하는 사람을 사장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다 하는 사람을 마누라라고 한답니다. 선생님에게 대드는 것은 배우기 싫은 것입니다. 사장님에게 대드는 것은 돈 벌기 싫은 것입니다. 마누라에게 대드는 것은 살기 싫은 것이라고 합니다.  

지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한 분이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회사 관계자가 처음에는 좋은 사람으로 나왔습니다. 두 사람이 이것저것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 관계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큰소리를 치며 갑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은 쩔쩔 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물론 꿈과 현실은 다릅니다. 하지만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꿈을 꾸게 하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직장생활 힘드시죠? 힘내세요!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마세요.  

매스컴이 아무리 보도를 해도 갑질은 없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힘이 조금만 있으면 군림하고 싶어 합니다. 가진 것이 좀 있으신 분은 조금 덜 가지신 분에게 베풀어주세요. 식당이나 마트 같은 곳에 가서도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낮은 자의 자리에서 대해주세요. 막대하지 마세요. 또 직장에서 아래 사람들에게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겸손하고 부드럽게 해주세요. 아래 사람을 섬겨주세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윗사람이나 고객이 갑질을 하면 절대로 기죽지 마세요. 어렵겠지만 여유를 가지세요. 그리고 웃음을 잃지 마세요. 별거 아닙니다. 가진 자나 좀 덜 가진 자나 오십 보 백 보입니다.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빨리 가는 자는 늦게 가는 자나 도진개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많이 가진 사람, 힘이 있는 사람, 빨리 가는 사람 부러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인생은 반드시 역전되게 되어 있습니다.

1. 오십 보 백 보인 인생  

전도자는 왕이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전도자는 최고의 지혜자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최고의 부자이었습니다. 이 전도자가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세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전도자는 쾌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술을 마셔봤습니다. 육체적 쾌락도 즐겨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만족이 없었습니다. 전도자는 다시 일에 눈을 돌렸습니다. 자신의 사업을 크게 벌인 것입니다. 전도자는 모든 사람들이 놀랄만한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허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습니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했습니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안해 본 것이 없습니다. 못 이룬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일평생 원하는 소원 성취를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말 부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인생의 만족과 보람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허망했습니다. 바람을 잡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전도자는 사람들의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지혜는 무언가를 이루는 능력입니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무엇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망령됨

93절에서 미친 마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망령된 것은 광기입니다. 광기는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은 일을 그르치게 하는 바보스러움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끝에 와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십 보 백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늘 하던 것을 반복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여기 왕 뒤에 오는 자왕의 후계자입니다. 왕이 자신의 후계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선왕들이 이미 했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만 바뀐 것입니다. 일은 똑같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또 왕 뒤에 오는 자는 왕 뒤에 일어나는 모든 세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전도자는 자신 뒤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행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옛날에 하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왕 자신도 오래 전에 누군가가 했던 그 일을 했다는 말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인류 최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요? 자신이 최고의 지혜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던 일이 앞에서 누군가 하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최고의 지혜자도 이 땅에서 행해지는 일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과거에 누군가 하던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미래에 누군가 할 것입니다. 일은 똑같습니다. 사람만 바뀌는 것입니다.  

박이문 씨의 죽음 앞의 삶, 삶 속의 인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문학에 관학 책입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아직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볼 때도 저자는 무신론자입니다. 박이문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싫든 좋든 인간으로밖엔 살 수 없다. 우리는 신도 아니요, 짐승도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대한 우주를 의식하고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시간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한 공간, 그러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존재가 얼마만큼이나 작은 존재임을 또한 자각한다. 그와 같은 의식과 자각은 존재 일반의 궁극적 신비에 압도되어 무한한 경건심과 아울러 외경심을 느낀다. 우리는 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무조건 기도를 올리고 찬가를 부르며 구원을 찾고 산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인간적 사회적 의미를 찾는 일뿐이다. (328)  

사람은 사람으로밖에 살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늘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인간의 삶에서 허무를 느낍니다. 어떤 가치를 찾지 못합니다. 겉모습만 그럴싸해 보일 뿐이지 사람의 인생은 모두 다람쥐 쳇바퀴였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허무한 인생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사람은 허무한 인간의 한계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허무를 깨뜨리시는 분이십니다.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10살 정도인 남자아이가 1달러를 손에 꼭 쥐고 거리에 있는 상점마다 들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들은 안 판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가게 주인들은 아이가 장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매몰차게 내쫓았습니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69번째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좀 파시나요?”  

가게 주인은 60이 넘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하나님은 사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니?”  

자신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본 아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사연을 노인에게 털어놨습니다. 아이는 부모님이 오래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삼촌이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삼촌마저 건축 현장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삼촌을 치료하던 의사는 아이에게 삼촌을 구해줄 것은 하나님 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진한 아이는 의사에게 제가 하나님을 사 와서 삼촌에게 먹일게요. 그러면 꼭 나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니?”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1달러요.”

마침 잘 됐구나. 하나님은 딱 1달러거든.”  

노인은 아이의 돈을 받아 선반에 있던 <하나님의 키스>라는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여기 있단다. 얘야, 하나님을 마시면 삼촌이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기뻐하며 음료수를 품에 안고 쏜살같이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자랑스럽게 소리쳤습니다.  

삼촌! 제가 하나님을 사 왔어요! 이제 곧 나으실 거예요!”  

다음 날, 세계 최고의 의료전문가들이 전용기를 타고 이 작은 도시에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와 삼촌의 상태를 진찰했습니다. 아이의 삼촌은 정말로 병이 금방 낫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퇴원할 때 천문학적인 병원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어떤 억만장자 노인이 이미 비용을 전부 냈다고 말했습니다. 삼촌을 진찰한 의료진도 이 노인이 고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촌은 나중에야 아이가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의 주인이 억만장자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노인은 할 일이 없을 때 가게에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감격한 삼촌은 아이와 함께 노인의 가게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여행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가게 점원은 이들에게 이번 도움을 마음에 크게 담아주지 말라는 말과 함께 노인이 쓴 편지를 전했습니다. 삼촌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봤습니다.  

젊은이,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사실 모든 비용은 자네의 조카가 다 낸 것이니 말일세. 자네에게 이런 기특한 조카가 있다는 것이 정말로 행운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네. 자네를 위해서 1달러를 쥐고 온 거리를 누비며 하나님을 찾아다녔으니 말이야……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자네를 살린 건 그분이니 말일세!”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인생, 그 가치는 어쩌면 1달러도 안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1달러도 안 되는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기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한낮 안개 같은 존재가 참된 가치를 발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사람은 바꿀 수 없습니다. 안됩니다. 사람의 허무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인생은 오십 보 백 보입니다. 갑질하는 직장 상사나 고객에게 기죽지 마세요. 우리 인생은 근본적으로 도진개진입니다. 모두 해 아래 동일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2. 똑같은 일을 당한다  

이렇게 묻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가 없다고요? 내가 볼 때는 아주 많은 데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가 오십 보 백 보이면 인생을 대충 살아도 된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전도자는 분명히 지혜자와 우매자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지혜와 우매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와 같습니다. 성경에서 종종 빛은 지적 능력, 생명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어둠은 혼돈, 불행, 죽음, 재해 등을 상징합니다. ‘뛰어남’(이트론)이라는 말은 남아서 넘치다 풍성하다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지혜는 우매보다 그 유익함이 차고 넘칩니다. 빛과 어둠처럼 지혜와 우매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극과 극의 차이입니다. 빛이 오른쪽 끝에 있다면 어두움은 왼쪽 끝에 있습니다. 지혜와 우매가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와 같습니다. 이어서 전도자는 말합니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지혜자는 눈이 머리에 붙은 사람입니다. 몸을 지배하고 인도하는 것은 머리입니다. 지혜자의 눈이 머리에 있다는 말은 지혜가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고 인도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매자는 인생을 어둠 속에 해매는 것처럼 삽니다. 이것이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입니다. 지혜와 우매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자와 우매자가 당하는 일이 똑같습니다. 여기서 당하는 일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당하는 우연한 사고와 불행입니다. 지혜자도 죽습니다. 우매자도 죽습니다. 지혜자도 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우매자도 사고를 당합니다. 지혜자라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혜자라고 해서 불행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가 죽고 누구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합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세상 만물이 평등합니다. 예기치 못하는 사고 앞에서 모든 피조물이 평등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인생이 헛되다고 합니다.  

<15-16>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어느 겨울 날 차를 타고 가는데 산모퉁이에서 꿩이 차 유리에 부딪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논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날아가는 새가 교통사고가 나다니요? 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 고양이, 고라니, 사람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도 사고가 납니다. 사고 앞에 모든 피조물이 평등합니다.  

199157살의 태국 여성이 자신의 농장에서 산책을 하던 중에 진흙에 미끄러졌습니다. 넘어지면서 노출된 전선을 잡았다가 감전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녀의 여동생이 이웃들에게 이 비극을 설명하다가 똑같이 미끄러져 똑같은 전선을 잡고 똑같이 죽었습니다.  

201768일 오전 810분경에 양산의 한 아파트에서 밧줄에 매달려 실리콘 작업과 도색작업을 하던 A씨가 떨어져 숨졌습니다. A씨는 도색 작업을 하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아파트에 살던 B씨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고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A씨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 까요? 슬하에 고등학교 2학년 큰 아이로부터 27개월 아이까지 5남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2017612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이었던 벨 하우스 교수가 집 부근에서 산책하던 중 소 떼에 밟혀 사망했습니다. 벨 하우스 교수는 주사바늘을 사용하지 않고 압축가스를 이용해 백신을 고속 투여하는 산학기업 파우더젝트를 설립했습니다. 설립 4년 후인 1997, 파우더젝트가 총액 5000만 파운드(750억 원)에 상장되며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벨 교수는 모교의 생명공학 분야에 장학기금을 설립하는 등 큰 돈을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80세의 벨하우스 교수는 12일 오전 11시경(현지시각) 영국 이스트 서섹스 지역 게스틀링의 자택 부근으로 산책을 나갔다 갑자기 놀라 달려든 소 떼에 밟혀 사망했습니다. 기사는 소에게 짓밟혀 죽다니 백만장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백만장자라고 다르게 죽는 것 아닙니다. 지혜자라고 천사처럼 죽는 것 아닙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피조물은 평등합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겸허한 태도로 임합시다.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둘은 한참을 싸웠고, 마침내 승패가 결정됐습니다. 싸움에서 진 수탉은 깊은 상처를 입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어둑한 구석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반면 이긴 수탉은 암탉을 차지하게 된 기쁨과 승리에 도취해 높은 담장 위에 올라가서 큰 소리를 내지르며 자랑했습니다.

꼬끼오~~~이 세상은 내 것이다!!”

그때 그 소리를 듣고 독수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담장 위의 수탉을 낚아채 가버렸습니다. 결국, 싸움에서 진 수탉이 암탉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오늘 내가 가진 것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일이 잘된다고 자만하지 마세요. 높은 자리에 있다고 교만하지 마세요. 낮은 자리에 있다가 기죽지 마세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오십 보 백 보입니다. 인생은 역전되었다가 다시 역전됩니다. 역전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3.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노라  

전도자는 사는 것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하는 일도 괴롭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기 때문입니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솔로몬이 염세주의나 비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괴로운 생을 빨리 마치자고 자살을 권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는 것을 미워했다.’는 말은 그 동안 해 온 일이 표현할 수 없이 너무 싫다는 말입니다. 미워하다(사네)는 말이 증오하다는 말입니다. 지난 자신의 어리석은 삶을 증오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얻어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청춘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은사를 엉뚱한 곳에 썼습니다.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허무했습니다. 사는 것을 미워한다는 것은 지나온 인생에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한 아주 철저한 후회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다시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한탄입니다. 이제 인생은 끝났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인생 끝에서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끝에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싫어하지 않도록 주님 안에서 열심히 사십니다.  

1998년에 상영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때는 세계2차 대전입니다. 이 전쟁에 4형제가 투입됩니다. 그 중에 3명이 죽고 막내만 남습니다. 막내까지 죽으면 4형제가 모두 한 전쟁에서 죽는 것입니다. 밀러 대위에게 임무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전쟁 중에서 한 명을 찾아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밀러 대위는 프랑스 전선에서 아직 막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합니다. 프랑스로 막내를 찾아갑니다. 프랑스는 가장 전쟁이 치열한 곳 중에 하나였습니다. 막내는 1944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중에 있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프랑스 오마하 해변을 배경으로 합니다. 연합군이 오마하 해변에 상륙해 프랑스 본토로 진격해 들어가는 작전입니다. 여기는 독일 최정예 사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독일 군의 방어망이 가장 잘 형성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미군만 3천명이 죽었습니다. 얼마나 치열했는지 198명의 한 개 중대가 상륙했는데 5분 만에 196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막내가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총알이 빗발칩니다. 밀러 대위와 대원들은 막내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7명이 죽습니다. 밀러 대위도 여러 번 죽다 살아납니다. 하지만 막내는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전쟁터에서 전우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자기만 비겁하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 혼자 떠나다뇨? 저희 동료들이 저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데 어떻게 고향길을 밟을 수 있겠습니까?” 밀러 대위는 막내를 설득해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어가며 유언을 남깁니다. “헛되이 살지 마. 잘 살아야 돼. 우리 몫까지...” 영화는 이렇게 끝납니다. 라이언이 인생 마지막에 공동묘지 밀러 대위와 전사자들 묘지 앞에서 자기 자녀들이 있는 앞에서 부인에게 나 잘 살았냐고 나 열심히 살았냐고 물으면서 끝이 납니다.  

199784일 프랑스의 잔 칼망이라는 할머니가 만 122세의 나이로 죽습니다. 122164일 살았다고 합니다. 44,724년을 산 것입니다. 1999년판 기네스 북에 등재된 최장수 할머니입니다. 보통 사람의 두 배를 산 격입니다. 기자들이 잔 칼망에게 인생이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짧은 것이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생 한 번뿐입니다. 가는 순서는 없습니다. 정말 짧은 인생입니다. 지금 우리가 헛되게 사는 시간은 누군가가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순간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생이 헛되지 않도록 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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