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하나님의 자녀됨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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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 19:5~6
주일오전예배 | 2018-09-0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깊은 산마을 한 소년이 뾰족뾰족한 산꼭대기에 올랐습니다. 소년은 바위 틈 사이에서 새 둥지를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새알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좋아하며 그 새알을 가지고 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닭장 속에 그 새알을 넣어 두었습니다. 암탉은 자기 알과 함께 그 새알도 잘 품어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알과 함께 그 새알도 부화되어 새 생명이 나왔습니다. 암탉은 별일도 다 있다. 어디서 저런 별종이 나왔누.” 하였습니다. 어미 닭은 병아리들에게 모이 주워 먹는 법, 물먹는 법, 지렁이가 많은 곳, 벌레 많은 곳, 족제비 피하는 법 등 닭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별종인 그 병아리도 다른 병아리들과 같이 그 방법에 따라 뒷발질로 땅을 헤쳐 지렁이도, 버러지도 잡아먹으며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병아리들은 잘 자랐습니다. 별종인 그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보다 훨씬 크고 윤기나는 검은 깃털과 투명한 두 눈을 가진 큰 닭이 되었습니다.  

어느 맑게 개인 날, 파란 하늘 위에 이제껏 못보던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웅장한 날갯짓을 하며 공중에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습니다. 어미닭은 호떡집에 불난 듯 새끼 닭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얘들아! 저기 저 하늘을 나는 새를 좀 보아라. 저 새는 새들의 왕이신 독수리란다. 저 새가 뜨면 모두 꼭꼭 숨어야 한다. 알았지?” 모두들 경외하는 눈빛으로 공중을 나는 독수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별종인 그 검고 덩치 큰 닭은 때때로 날갯죽지 아래로부터 알 수 없는 강인한 힘이 용트림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때는 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다는 열정이 세차게 밀려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별종닭은 어미닭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도 새는 새잖아요. 우리는 저 새처럼 날 수 없나요?”

어미 닭이 대답하였습니다.

얘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법이야. 아예 그런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옛 말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단다. 저 새는 새들의 왕인 독수리고 우리는 닭이야 닭! 그러니 그저 닭으로 사는 것이 제일인 게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어미 닭은 닭으로서의 삶의 이치를 잘 일러주었고 그 별종 닭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다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깊은 산마을 닭장 속에는 아직도 그 이상한 닭 한 마리가 있습니다. 투명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게슴츠레해진 눈, 검고 큰 덩치에 날개가 축 쳐진 닭입니다. 생기기는 꼭 독수리같이 생겼는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닭입니다. 석양이 붉게 물든 어느 날 저녁 무렵 그 이상한 닭은 옆으로 픽 쓰러져 고단한 닭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닭입니까? 아니면 독수리입니까? 저는 닭띠입니다. 하지만 닭은 아닙니다. 저는 독수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4절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닭을 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어떤 독수리인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정체성1 - 세굴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는 말은 원래 <세계가 다 내 것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원래 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굳이 <나의 소유>라고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나오는 소유는 아주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유를 히브리어로 <세굴라>라고 합니다. 세굴라는 <보물과 같이 귀하게 여기는 귀중품>을 말합니다. <왕의 보배합에 있는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아끼고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보물입니다. 그래서 세굴라는 금이나 은과 같은 <보물 혹은 보배> 등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대하 29:2). 세굴라는 소유는 소유인데 그냥 흔한 소유물이 아닌 주인에게 소중한 가치가 있는 <아주 특별한 소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소유라는 말 앞에 <특별한>이라는 말을 넣어서 <내 특별한 소유가 되겠고>라고 번역해야 원래 말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입니다. 그런데 세굴라에는 기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이라고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14: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여기서 기업이라는 말이 세굴라입니다. ‘기업의 백성이라는 말이 소유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NIV는 하나님이 너를 자기의 보물된 소유로 선택했다(the LORD has chosen you to be his treasured possession.)고 번역했습니다. 원래 히브리어로 기업이라는 말에 보배(분깃 - 헬레크, 기업 - 나할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 하나님의 보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기업하면 회사를 생각합니다. 삼성 롯데 엘지 두산 등등의 회사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기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나를 선택했다는 말은 나를 보배로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영어 성경에서는 스페셜로 번역했습니다. “특별한 존재그러니까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면 하나님의 보물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읽으시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선물을 말할 때 세굴라라고 합니다. 이 세굴라는 그냥 단순한 귀중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신뢰를 전제로 한 인격적인 관계로서의 소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금 은 보석 다이아몬드도 세굴라가 되지 못합니다. 왜요? 인격적인 관계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 마이크가 비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안 됩니다. 인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굴라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 있는 세굴라입니다.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말미암아  

사랑하시므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관계입니다. 물건이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부관계를 말합니다.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룻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을까요? 남편될 사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룻이 남편 될 사람에게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보배입니다. 스페셜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스페셜입니다.” “당신은 나의 보배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당신은 나의 남편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삼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순간 보아는 룻을 적극적으로 보호합니다. 이것이 세굴라입니다.  

하나님의 세굴라입니다. “네가 나의 세굴라라면 네가 너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겠다.” 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세굴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이것이 복의 개념입니다. 여러분의 세굴라가 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왜 선택했습니까? 이력이 괜찮아서요? 얼굴이 예뻐서요? 가문이 좋아서요? 아닙니다. 세굴라, 하나님의 복을 세상적인 가치로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세굴라는 세상적인 가치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굴라가 아닌 사람들은 세굴라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적인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으로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굴라입니다. 내가 집사라서, 좋은 대학 나와서, 돈이 많아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낳아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굴라가 아닙니다. 만약 세상적인 잣대로 우리를 선택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실까? 미안하지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세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선택을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까? 빌게이츠, 메르켈, 이건희...  

예수님도 세굴라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6:27-30>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기르십니다. 들의 백합화를 아름답게 입히십니다. 심지어 들판의 잡초도 기르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인되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먹이시고 기르십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나와 어떻게 들의 풀 한포기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입니다. 보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굴라입니다. 길에서 난 잡초도 하나님이 기르신다면 세굴라된 우리를 지키시고 기르시지 않겠습니까?

   

(2) 정체성2 - 제사장 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세굴라,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그 할 일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고대에 제사장은 가장 높은 신분이었습니다. 왕 같은 위치에 있던 존재가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제사장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코헨입니다. 코헨이라는 말은 세우다’ ‘정착시키다등을 의미하는 동사 에서 파생된 것으로, ‘서있는 사람봉사하거나 돕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적 관점에서 서 있다는 것은 봉사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요즘은 사무직 종사자도 많아서 일을 앉아서 많이 하지만 고대에는 일은 서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제사장을 봉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61:6)  

그러면 제사장은 어디에 서 있는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는 봉사자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사장의 사역은 두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대표합니다.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와 중보기도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개개인을 상대하지 않고 백성 대표로 제사장을 가까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복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제사장이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과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달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 참고 민6:24-26)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 이 역할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통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면 복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사명은 가나안 땅의 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이웃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한 젊은이가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 날 길모퉁이에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주머니에서 담뱃갑이 툭 떨어졌습니다. 목사님도 한참이나 담뱃갑을 쳐다보고 이 청년도 담뱃갑을 주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얼른 주워서 도망을 갔습니다. 지푸라기 위에 무릎을 꿇었는데 얼마나 창피했던지 얼굴이 불처럼 달아올랐습니다. 그 시간에 결심을 했습니다. 담뱃갑을 쥐어뜯으며 하나님 내 주머니에서 앞으로 담뱃갑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이 떨어지기 원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뱃갑이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복이 쏟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담배를 끊기 위하여 그때부터 은단을 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기 위해 은단을 만들어야지.’ 은단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약품을 만들 거야.’ 비타민 C를 개발하여 비타민 C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고려 은단 회장 조규철 회장입니다. 그의 아들은 조창현 장로님으로 지금 그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복을 세상 가운데, 우리 한민족 가운데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전국 도로명 마다 큰 표지를 달기로 했습니다. <"Jesus loves you" 고려은단>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속도로를 이곳저곳 달리다 보면 올림픽 대로를 달리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Jesus loves you.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저와 여러분의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3) 정체성3 - 거룩한 백성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했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 말하면 깨끗한 백성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언제는 더러운 백성이었습니까? 물론 죄악을 용서 받았으니까 거룩한 백성은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은 단순히 깨끗하다는 말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거룩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도쉬입니다. 카도쉬라는 말은 구별하다. 구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백성>의 원뜻은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구별되다는 말에는 깨끗하다는 의미가 있지만 좀 더 다른 뜻이 있습니다.  

보온 밥솥이 있어서 우리는 언제든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저 어렸을 때는 보온밥솥이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밤늦게 오실 때가 많았습니다. 늦게 오셔도 밥을 대부분 드시고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밥을 따로 떼어놓으셨습니다. 여름에는 가마솥에 불을 떼서 물을 끊였습니다. 밥사발에 밥을 퍼서 뚜껑을 닫고 넣어 놓으면 식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는 아버님 밥을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 두셨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밥으로 따로 떼어 놓은 것입니다. 자식들이 이거 함부로 만지만 안됩니다. 요즘은 이런 것 없습니다. 아버지 것이 어디 있어요! 자식이 먼저입니다. 자식 입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질서가 깨졌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무엇이 생기면 아버지 것을 따로 떼어 놓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을이 되면 마루 처마 밑에 옥수수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듬해에 씨를 하려고 따로 떼어 놓은 것입니다. 보통 종자는 좋은 것으로 골라놓습니다. 시원치 않은 것을 매달아 놓지 않습니다. 좋은 것으로 매달아 놓습니다. 그래야 좋은 열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이건 먹지 않습니다.  

구별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말입니다. <거룩한 백성>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세상 속에서 구별해 두셨다는 뜻입니다. 따로 뚝 떼어 놓으셨습니다. 따로 떼어서 하나님 것으로 보관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코 세상과 합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복의 종자로 따로 떼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세상의 복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여기서 기뻐하다는 동사를 어원적 의미는 자긍심입니다. 프라이드입니다. ‘당당함입니다. 울보는 아무 때나 웁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웁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심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울기를 바랍니다. 인상 쓰기를 바랍니다. 괴로워하기를 바랍니다. 기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은 닭입니까? 독수리입니까? 성경은 여러분을 향해 독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세상의 닭이 아니라 독수리로 세우셨습니다. 세상에서 독수리로서 자존심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독수리는 독수리입니다. 죽을 일을 만나도 독수리가 닭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독수리가 아니라 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약 200만 명이었습니다. 레위 족속 중에서 아론과 그 아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론의 아들이 4명이니까 아론을 포함해서 제사장은 단 5명뿐이었습니다. 200만 명 중에서 제사장은 5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40만 명 중에 1명꼴입니다. 퍼센트로 따지면 0.00025%입니다. 200만 명 중에 단 5명입니다. 그들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만이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만이 백성들을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장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으로서 자긍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세상 어느 누구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자긍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자긍심을 가지세요.  

우리는 세굴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입니다. 여러분! 이 신분은 사람이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자긍심을 갖고 삽시다. 외적인 조건에 따라 좌우되지 맙시다. 이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 그리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당당함이 곧 기쁨의 원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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