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영원히 남을 것을 붙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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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전도서1:1~3
주일오전예배 | 2018-08-0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오늘 우리는 전도서1장 앞부분을 함께 읽었습니다. <전도서> 많이 들어보셨죠? 전도서는 어떤 책일까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전. 도. 서. 이름 그대로 <도를 전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히브리어로 코헬레트입니다. ‘코헬레트’는 ‘카할’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카할은 <불러서 모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코헬레트’는 ‘그 모인 무리들에게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코헬레트는 <전도자 혹은 설교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Ecclesiastes라고 읽는데 이 말은 헬라어 ‘에클레시아스테스’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 또한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설교입니다. <전도자의 외침>입니다. 말 그대로 <도를 전하는 책>입니다.  

이 전도서는 솔로몬이 썼습니다. 1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1:1) 전도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어서 학자들 간에 전도서의 저자에 대한 논쟁이 많습니다. 하지만 1장 12절에 논쟁이 필요 없게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다윗의 후손 중에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입니다.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입니다.  

솔로몬은 평생에 세권의 성경을 썼습니다. 아가, 잠언, 전도서입니다. 아가서는 젊었을 때 쓴 책입니다. 아가서는 젊은 남녀 간의 깊은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한 책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신부된 교회와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관계로 승화시켜 노래한 책이 아가서입니다. 그래서 아가는 아주 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두 번째로 쓴 책이 잠언서입니다. 잠언은 솔로몬이 장년 때 쓴 책입니다. 세상을 호령하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책입니다. 잠언에는 <인생을 성공하는 방법, 인생을 실패하는 방법> 이 두 가지 길이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돌려서 말하지 않습니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딱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칼로 상대의 가슴을 찌르듯이 말합니다.  

세 번째로 쓴 책이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의 끝자락에 쓴 책입니다. 하지만 대상은 젊은이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난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최선을 다 할 것, 좀 더 잘 할 것, 그때 이렇게 할 것’ 등등 회한이 한 없이 남습니다. 그래서 지금 성장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애절한 마음이 생깁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젊은이들에게 절절한 마음으로 쓴 책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1. 전도자로서의 인생  

1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솔로몬은 자신을 세 가지 신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다윗의 아들, 둘째 예루살렘 왕, 셋째, 전도자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자손’, ‘후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영적 계보를 잇는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다윗의 아들로 소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오늘날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로몬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대에 솔로몬은 더 유명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보물을 싸들고 왔습니다. 동방에서 왔습니다. 애굽에서 왔습니다. 솔로몬은 세계 각국에 알려진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 명성은 영적인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의 영적 계보를 잇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크리스천이 되길 바랍니다.  

또 솔로몬은 자신을 예루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데 왜 솔로몬은 예루살렘 왕이라고 했을까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통치하는 나라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으로 소개하는 것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신적 기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로 전하는 메시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학사 학위 논문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사람은 석사학위 논문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면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논문을 쓸 때 항상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논문을 인용합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논문에 대한 권위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습니다. 최고의 지혜와 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이름을 내고 도를 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예를 가진 사람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지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왕상 4:29-30> 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당시 최고의 지혜로 애굽과 동방의 지혜를 꼽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지혜는 애굽과 동방의 지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컸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왕상 4:32-33> 32.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33.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이것이 솔로몬의 지혜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권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하 9:13-14> 13.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14. 그 외에 또 무역상과 객상들이 가져온 것이 있고 아라비아 왕들과 그 나라 방백들도 금과 은을 솔로몬에게 가져온지라  

1년에 들어오는 금의 수량이 666달란트입니다. 구약시대 1달란트는 34kg입니다. 매년 세금 들어오는 금만 22,624kg입니다. 1달란트가 9만 명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렇다면 금 666달란트가 얼마나 큰 돈인지 이해가 가시죠? 또 솔로몬의 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하 9:15-16> 15.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 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16.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 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삼백 세겔이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왕상 10: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금방패가 500개가 있습니다. 은은 돌같이 흔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의 부귀에 대해서 말하려면 한 시간은 족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게이츠가 무슨 말을 인터넷에 돌며 큰 화제가 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어떤 자리에서 티슈에 잠깐 쓴 글이 뉴스 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의 부와 권세면 자신의 이름으로 이야기해도 얼마든지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요? 지금 전하는 메시지는 솔로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나 권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메시지를 전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뺐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전하는 메시지는 나의 지혜, 나의 부, 나의 권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부와 권세도 이 메시지의 가치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전도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인생의 끝자락에 후대에 영원히 남을 최고의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논문을 쓰는데 이 땅에서는 인용할 만한 논문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 보다 더 높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권위를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치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큰 지혜도 아무리 큰 부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것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다윗이라는 이름이 맨 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에는 전도자라는 말이 맨 앞에 있습니다. 맨 앞에 있는 단어는 항상 강조하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전도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전도자입니까? 워렌 버핏처럼 돈에 관한 전도자입니까? 빌게이츠처럼 자선 사업의 전도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도자> <하나님의 메신저>입니다. 세상에 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어린 시절 왕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에게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자입니다. 솔로몬은 왕이라는 직분 보다 전도자라는 사명을 더 귀히 여겼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전도자로 사세요. 여러분의 학교에서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의 산업에서 여러분을 만나는 그 사람에게 전도자가 되세요. 그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옛날 영국에 가누트라는 아주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스웨덴과 덴마크까지 다 점령하고 대영 제국을 크게 넓혔습니다. 어느 날 많은 신하들이 가누트 왕에게 황금과 보석으로 만든 왕관을 바치면서 “폐하, 이 세상 온 천하에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폐하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십니다.” 라고 하면서 왕에게 경배하고 아첨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태풍이 부는 어느 날 신하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람아, 고요하라! 바다야, 잔잔하라!” 고 명령을 했습니다. 한 번 해서 안 되니까 두 번, 세 번을 계속해서 “바람아, 고요하라. 바다야, 잔잔하라.”고 했습니다. 계속 여러 번 명령을 더 했지만 바람과 바다가 왕의 명령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신하들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잘 보았느냐? 바람과 파도가 내 말을 순종하겠느냐? 나는 연약한 인간이니라. 바람과 바다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할 수 있고, 고요하게 하실 수 있느니라. 이 세상에 왕이 어디 있느냐?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왕이니라.” 그리고 가누트 왕은 머리에서 조용히 왕관을 벗어서 내려놓고 “나는 앞으로 한평생 왕관을 쓰지 않겠노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벗어놓은 왕관이 대영제국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2.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전도자가 외치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헛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벨입니다. 헤벨의 뜻은 ‘호흡’, ‘숨’, ‘증기’, ‘안개’입니다. 헤벨은 세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인생은 아주 짧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숨과 같습니다. 숨 한번 들이 마신 것 같은데 50입니다.  

둘째,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코에서 나오는 숨을 잡아보세요. 부는 바람을 잡아보세요. 분명히 손에 닿는 느낌은 있습니다. 그런데 실체가 없습니다. 분명히 잡았는데 펴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겨울에 차 안에서 입김으로 후 하고 불면 김이 서립니다. 거기에 그림도 그리고 이름도 씁니다. 그러나 금방 사라집니다. 거기에 쓴 글씨도 그린 그림도 함께 사라집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무언가를 성취해도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입김과 다름이 없습니다.  

셋째,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치가 없어지면 밖에 버립니다.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배설물이라는 헬라어는 스퀴바라인데 이것은 쓰레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저는 어렸을 때 딱지치기에 매달린 적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 보다 덩치가 컸던 저는 딱지를 많이 땄습니다. 비료 부대에 가득 넣어서 집 굴뚝 옆에 쌓아 놓고 흐뭇해하곤 했습니다. 가끔 “그 딱지는 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기억에 없습니다. 아마 아버지께서 불 소시개로 쓰셨을 것입니다. 지금 그것이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딱지를 잃으면 억울해서 잠이 안왔습니다. 어떤 때는 분통이 터졌습니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가끔 지금 붙잡으려고 하는 많은 것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이 딱지처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솔로몬은 인생 끝자락에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며 젊은이들에게 애닮은 마음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아침 안개처럼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깁니다. 특히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3. 그렇지만 헛되지 않은 것이 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1:3)

“유익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얻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해아래서 수고해서 얻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얻는다>는 말은 잠시 얻었다가 잃어버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한번 얻은 것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세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새로 나오는 것을 끊임없이 사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들인 것이 어느 샌가 없어져 버립니다. 마치 숨과 같습니다. 바람과 같습니다.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얻는 것이 이렇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시간 솔로몬의 질문으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이 얻은 것 중에 또 앞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 중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입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20살 겨울 어느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30년이 지났는데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20살 때 제가 얻은 것, 갖고 있던 것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제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제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힘들고 낙심될 때마다 그 말씀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나를 붙들어 줍니다. 제가 개인적인 경험만을 갖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둘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교회에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나만의 개인적이 경험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여러분! 짐 엘리엇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영화 창끝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는 휘튼 대학을 나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 이국땅 남아메리카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습니다. 엘리엇은 에콰도르 선교사를 만나 대화하며 한 번도 복음을 듣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듣습니다. 그는 1952년 말에 에콰도르로 출발합니다. 거기서 퀴추아 인디언 사역을 합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복음을 듣지 않은 아우카족에게 들어가려고 접촉을 시도합니다. 아우카족은 수백년 동안 외부인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1955년 가을에 비행기로 아우카족에게 선물을 떨어뜨리며 호의적인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1956년 1월에 에콰도르 동쪽에 있는 쿠라라이 강에 네 명의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상륙합니다. 하지만 접촉하는 중에 1월 8일 5명 모두는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처참하게 살해당합니다.  

당시 LIFE지 기자는 엘리엇의 부인에게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때 엘리엇의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말씀을 삼가해 주세요.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책임을 수행한, 그리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짐 엘리엇이 죽고 난 뒤, 이번에는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남편의 뒤를 따라 그곳의 선교사로 나섰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일년간 간호사 훈련을 받고 아우카족에게로 갔는데 아우카족은 여자를 해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인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목숨을 걸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우카족을 위해 여러 해 동안 헌신하였습니다. 그녀의 헌신에 감동한 아우카족 추장이 어느 날 부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서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아우카족은 감동을 받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짐 엘리엇을 죽인 청년은 나중에 아우카족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짐 엘리엇은 아무 성과도 없이 죽었지만 그들이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아우카족은 추장을 비롯하여 온 종족이 크리스챤으로 거듭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일기 맨 앞장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것을 붙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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