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초대교회의 암호,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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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2:46
주일오전예배 | 2018-07-0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2008년에 SK 브랜드 관리실에서 20~50세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수명을 80세로 가정하고 환산한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 : 8시간 (26.6)

하루 평균 먹고 마시는 시간 : 2.6시간 (9)

하루 평균 자는 시간 : 6.7시간 (22)

하루 평균 걱정 근심하는 시간 : 3시간 (10)

하루 평균 웃는 시간 : 86(30)  

걱정 근심하는 시간이 정확하게 3시간 6분입니다. 80년 중 자는 시간 26.6시간을 빼면 인생의 1/5을 걱정 근심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웃는 시간보다 걱정 근심하는 시간이 130배나 됩니다. 성인이 하루에 평균 10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한 번 웃을 때 8.6초 동안 웃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사람이 전체조사대상 중 1.8%로 나타났습니다. 500명 중 9명은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것입니다. 응답자 500명 중 427(85.4%)이 웃음과 행복의 관계 정도에 대해 매우 높다고 대답했습니다.  

남녀를 구분했습니다. 남자는 2시간 30분 걱정 근심을 합니다. 여자는 3시간 30분을 걱정 근심합니다. 여자가 남자 보다 1시간을 더 걱정합니다. 베드로가 여자를 연약한 그릇(벧전3:7)이라고 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분들은 여성분에게 잘 하세요. 여성분들은 걱정 근심을 조금 줄이세요.

연령별로 구분했습니다. 20대가 3시간 15분입니다. 30대가 3시간 7분입니다. 40대가 2시간 50분입니다. 저는 이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40대가 제일 많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0대가 제일 많아요. 여러분! 젊은이들에게 무슨 걱정 근심이 그렇게 많으냐고 하지 마세요. 요즘 젊은이들 정말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시고 힘을 북돋아 주세요. 맛있는 것도 사 주세요.  

흔히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 장자(BC 290)사람은 태어날 때 근심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유태인 격언에 당신이 죽었을 땐 벌레가 먹고 당신이 살았을 댄 근심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일 걱정 내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들을 볼 때 걱정이 없는 사람, 걱정이 없는 시대, 그리고 걱정이 없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걱정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최고의 기쁨을 소유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의 학정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웠습니다. 신앙의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삶 자체가 걱정입니다.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기쁨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암호다.” 기쁨이 자기들만이 통하는 암호가 될 정도로 초대 교회에는 아주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 어떻게 초대교회가 기쁨을 소유하게 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걱정 근심 많은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큰 기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 성령으로 기뻐하는 교회  

초대교회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최고의 기쁨입니다. 누가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6) 매일 성전에 모였습니다. 매일 집에서 떡을 뗐습니다. 그 모임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여기 기쁨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갈리아시스입니다. ‘아갈리아시스는 아주 특별한 단어입니다. ‘아갈리아시스환희또는 넘치는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너무 기뻐 주체할 수 없는 기쁨’, ‘너무 기뻐서 미칠 지경’, ‘기뻐서 뛰고 소리침입니다. 이 기쁨은 말과 몸의 움직임까지 동원하는 큰 기쁨입니다. 속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쁨입니다. 차고 넘쳐서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기쁨의 최고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초대교회가 가진 기쁨이 어떤 기쁨인지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최고의 기쁨, 환희가 넘치는 교회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순전히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기뻐했습니다. 오순절 날 강력한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초대교회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이사야 611절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라고 했습니다. 3절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첫 번째 열매가 사랑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열매가 희락입니다. 희락이 바로 기쁨입니다. ‘오직 성령의라고 했습니다. 여기 ‘~ 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라는 말은 성령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기쁨은 성령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령께 속해 있는 기쁨이 진짜 기쁨입니다. 다른 곳에 있는 기쁨은 모조품입니다. 진짜가 아닙니다. ‘~ 라는 말은 ‘~ 작용으로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라는 말이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기쁨은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면 우리 영혼 속에서 성령께서 작용하십니다. 그래서 기쁨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만들어지는 기쁨은 짝퉁입니다. 진짜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만들어지는 기쁨이 진짜입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표지와 같습니다.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기쁨은 성령님 안에 있습니다. 어떤 학교에 제인이라는 믿음이 좋은 학장이 있었습니다. 학장님은 매일 천국에 다녀온 사람처럼 늘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자 어느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듯 화평하고 늘 기쁨으로 사십니까?” 학장님은 대답합니다. “그것은 마치 깃발과 같다. 어느 성에 깃발이 올라가 있으면 그곳에 임금님이 와 계시다는 뜻이듯,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기쁠 수밖에. 내가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 내가 누구에게 덕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니, 내게 기쁨이라는 깃발이 휘날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실 때 우리 밖에는 기쁨의 깃발은 휘날리는 것입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흡연을 했다고 자랑삼아 말하곤 했습니다. 흡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본드 흡입과 가스 흡입도 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본드를 흡입했을 때 나타나는 환각 상태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우주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손에서 광선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그것을 하면 뿅 간다고 했습니다. 3인데 온갖 쾌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것이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그 아이의 무용담을 다른 친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누리는 기쁨은 멸망이었습니다. 얼마나 흡연을 많이 했는지 중학교 3학년인데 손을 떨었습니다. 손이 가만히 있질 않아요. 계속 흔들려요. 손이 누렇게 되었어요. 이가 누렇게 되었어요. 얼마나 중독이 심했는지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눈을 피해가며 뒷 자석에서 쾌락에 빠졌습니다. 못하면 불안해요. 얼굴빛이 변해요. 손을 더 떨어요. 3인데 제 눈에 폐인처럼 보였어요. 세상이 주는 기쁨은 마약과도 같습니다. 집착하게 합니다. 불안하게 합니다. 허무하게 합니다.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합니다. 그것을 하는 사람은 계속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기쁨도 사라집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기뻐하세요. 세상으로 기뻐하지 마세요. 성령 안에 정말로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나요? 아닙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끊임없이 침노를 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을 얻도록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찬송해야 합니다. 예배드려야 합니다. 감나무 밑에 누어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기쁨을 쟁취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기쁨은 쟁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2.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교회  

사도 바울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여기 끝으로라는 말이 헬라어로 나머지’, ‘잔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1-2장에서 한 말 중에 덧붙여서 더 할 말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바울은 죽을 때가 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못다 한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못다 한 말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장에서 기쁨에 대해서 이미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기쁨에 대해 말했지만 아직도 기쁨에 대해 더 말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기쁨을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기쁨은 본질적인 기쁨입니다. 근원적인 기쁨입니다. 진짜 기쁨입니다. 가짜가 아닙니다. 짝퉁이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본질을 가지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70인 전도대를 파송하셨습니다.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주셨습니다. 전도가 끝났습니다. 70인이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귀신들이 우리에게 항복했다고 보고합니다.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것들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기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밖에 나타나는 현상 때문에 기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본질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진짜를 가지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출세한 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한 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적인 것 때문에 기뻐할 때도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왜요? 세상적인 것으로 기뻐하면 그것이 사라질 때 기쁨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현상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우리는 본질로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이라는 또 다른 단어가 카라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카리스입니다. 카라와 카리스의 어원이 같습니다. 기쁨과 은혜의 어원이 같습니다. 은혜 받아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주님이 주십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본질은 주님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대부분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쇼핑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많은 분들이 쇼핑센터에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부부 싸움 후에 A 쇼핑센터에서 6시간 동안 있었답니다. 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사면서 기쁨을 얻는 거예요. 또 사람들은 음식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또 여행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돈을 쓰면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기쁨은 돈이 없어지면 돈과 함께 없어집니다.  

갈보리 채플에 척 스미스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의 아버지는 중개료를 받으며 일하는 영업사원이었습니다. 디즈니랜드에 애너하임의 토지를 판매할 때와 같이, 수수료가 수천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부동산 거래가 있을 때는 아주 좋았습니다. 그때는 가족에게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배고픔도 있었습니다. 큰 거래가 진행되고 있을 때면, 어린 척 스미스는 아주 흥분되었습니다. 그럴 때는 상상에 빠졌습니다. ‘이것만 성사되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살 수 있겠지, 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그런데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희망 사항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것은 돈과 함께 사라집니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기쁨은 불안 집착 타락 허무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기쁨은 돈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는 기쁨입니다. 진짜 기쁨이 아닙니다. 모조품입니다. 짝퉁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세요. 이것이 진짜입니다.

 

3. 성경은 기쁨의 책  

성경은 기쁨의 책입니다. 성경은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순간순간 좋아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기쁨의 동산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끝이 납니다. 성경의 마지막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신부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동산을 만드셔서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 예루살렘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기쁨의 책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최초로 전해준 메시지는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2:10)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28:6)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합니다. ‘라는 말이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앙겔리온은 천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기쁨을 전하는 천사또는 기쁨의 천사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만족 즐거움 희락 잔치 환호 노래 송축 결혼 등등 기쁨에 관한 단어가 수 없이 나옵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살전5:16)고 했습니다. 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고 했습니다. 시편 100편 기자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1)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말 성경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기뻐 외치라.”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기쁨의 책입니다. 성경은 읽는 자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에서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19: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미국에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25년 동안이나 해오던 카페 사업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65세입니다. 늙고 병들었습니다. 학벌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병실 한 구석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어디서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습니다.  

누가 저렇게 기쁜 찬송을 부르는가 싶어서 밖을 쳐다보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기쁜 찬송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한쪽 다리가 없는 청소부였던 것입니다. 발뒤꿈치가 세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틈으로 동전이 하나 들어갈 정도입니다. 발이 아주 깊게 움푹 파였습니다. 흑인이예요. 모습이 너무 초라해요. 청소부는 계속해서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릅니다.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이 찬송 소리를 듣는 그의 마음은 뭉클해집니다. 그래서 가만히 그 청소부를 부릅니다.  

아니, 당신은 목발을 하고 있으면서도 뭐가 그리 기뻐 그리도 행복해서 찬송을 부릅니까?”

아저씨,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에요. 내 집은 저 하늘나라에 있어요. 그래서 지금 내 환경이 어려워도 나는 항상 기쁘게 살 수 있어요.”

정말 하늘나라에 집이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만나면 되지요.”  

말을 하는데 청소의 얼굴이 환한 거 거예요. 눈동자에서 빛이 나요. 그는 퇴원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나이도 많은데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기도 중에 수많은 닭들이 날아가는 그런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는 그 그림이 자꾸 눈앞을 가려서 더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성도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았더니 그 성도가 아주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합니다. ‘닭이 울기 전에 회개하라는 것이라네.’  

그러나 그는 닭들이 날아가는 그 그림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닭을 요리해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주 맛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힘을 얻어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자기 집에서 닭튀김 장사를 시작합니다. 닭튀김이 맛이 좋아 점점 인기를 얻어갑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됐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닭튀김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 닭튀김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갑니다. 마침내 체인점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나중에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1년 수입이 수십 조에 달하게 됐습니다. 치킨 사업에 성공하자 그는 수많은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많은 돈을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양로원을 지었습니다. 그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바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의 창업자인 커널 샌더스입니다. 한 흑인의 기쁨의 찬송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선교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맛보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정신병자들 중에는 암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염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은 3-4명 중에 한 명이 암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대부분은 염려를 위하여 사는 사람 같습니다. 걱정하면 인생을 도둑맞습니다. 내일을 염려하면 오늘을 도둑맞습니다. 내일을 염려하면 우리의 오늘을 빼앗깁니다. 염려는 우리 인생을 빼앗아가는 도적입니다. 여러분! 기뻐합시다. 성령으로 기뻐합시다. 주 안에서 기뻐합시다. 말씀으로 기뻐합시다. 기독교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는 최고의 기쁨을 소유한 교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항상 기쁨이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35: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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