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회개한 3,000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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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2:39-41
주일오전예배 | 2018-06-03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사료 제조회사에서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신제품 프리미엄 고급 개 사료를 만들었습니다. 신제품에 대한 제품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담당 직원의 화려한 설명이 끝나자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참석자 :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착각으로 사람이 먹는 일은 없을까요?

직 원 :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사람이 실수로 먹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참석자 : 유기농 청정원료이고 영양가 높고 위생적으로 제조된 사료라서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직원의 마지막 한 마디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직원 : 사람은 비싸서 못 먹습니다.  

과연 그 비싼 개 사료는 판매에 성공했을까요? 점점 우리 사회는 고가품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기본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사치와 낭비에 빠져들게 됩니다. 애완동물은 아무리 사랑스럽고 귀해도 애완동물다워야 합니다. 미국에 유학 갔다 오신 분들 중에 처음 미국 갔을 때 잘 모르고 한 동안 개 사료를 먹은 적이 있다는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3개월 동안 통조림으로 된 애완견 사료를 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먹을만하다는 것입니다. 애완동물 사료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짐작이 갑니다. 아무리 삶이 풍성해져도 사람이 먹는 음식 보다 비싼 음식을 애완동물에게 먹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개를 키우시는 분들은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개가 어떤 때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배신해도 개는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또 애완동물이 현대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옵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옵션은 선택의 자유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옵션이 주가 되고 있습니다. 옵션이 한이 없습니다. 옵션의 홍수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옵션에 빠져 있습니다. 주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주체를 잊어버리고 옵션에 빠져들면 끝없는 불행의 늪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옵션의 삶에 너무 빠지지 마세요.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 죄사함 세례 그리고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필수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 교회는 필수를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의 체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잘 모릅니다. 여러분! 회개하시고 죄사함 받으세요. 성령의 선물을 받으세요.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우리 인생에 최우선하는 주체입니다.  

1.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  

베드로는 성령의 선물이 누구에게 약속되어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약속받은 사람들을 셋으로 구분했습니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첫째, ‘너희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첫 번째 대상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따지면 첫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약속에 있어서 첫 번째인 유대인들이 약속의 성령의 선물을 가장 받지 못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약속에서 꼴찌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옵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유대인하면 첫 번째로 꼽는 것이 탈무드입니다. 탈무드는 전 세계인들이 연구하고 읽고 있습니다. 탈무드, 노벨상, 지혜 이런 것들이 유대인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핵심은 언약입니다. 말씀입니다. 탈무드를 만든 사람들이 율법학자들입니다. 뿌리가 토라(율법)입니다.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주는 잃어버리고 옵션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탈무드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첫 번째로 약속 받았지만 가장 성령을 받지 못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20:16, 10:31, 13:30)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나중 된 자가 아니라 먼저 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너희 자녀입니다. 약속에 있어서 두 번째는 유대인의 자녀입니다. ‘자녀가 헬라어로 테크논입니다. 테크논은 부모 또는 조상으로 인해 출생하는 자식들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식들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을 믿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그 사람의 후손들에까지 적용됩니다. 여러분! 틀림없이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엄마가 구원받았다고 아들까지 구원받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자녀까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가족과 집의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내 집에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셨다고 했습니다(삼하23:5).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은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가족과 집의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의 약속에 있어서 두 번째 대상은 유대인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자녀도 유대인 부모들처럼 약속에 꼴찌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들이 탈무드를 가르치지만 핵심인 말씀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뿌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와 출세를 위해 애를 씁니다. 하지만 영원한 미래를 위해서는 준비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셋째, 모든 먼 데 사람입니다. ‘모든 먼 데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서 외인이었고 나그네였고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아주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약속의 성령의 선물에 있어서는 꼴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외인도 아닙니다. 나그네도 아닙니다. 꼴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선을 없애 버렸습니다. 이제 하나가 됐습니다(2:11-13). 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의 피가 담을 헐어버렸습니다(2:14).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꼴지가 아닙니다.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냐? 아니면 이방인이냐?’가 아닙니다. 여기서 부르다는 말이 헬라어로 프로스칼레오’(προσκαλω, “πρς ~에게로 + καλω 부르다”)입니다. 프로스 칼레오는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를 가지고 초대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부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를 가지고 부른 것입니다. 기쁨 마음으로 부르셨습니다.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초청)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 응답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우개와 같습니다. 지우개는 종이에 난 연필자국을 지워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 삶에 난 좋지 않은 흔적을 지워줍니다. 죄를 지워줍니다. 나쁜 기억을 지워줍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난 울타리를 지워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치료약과 같습니다. 아픔을 치료합니다. 고통을 치료합니다. 삶을 치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세요. 그래서 지우개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보세요. 치료약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보세요.

 

2.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14절부터 36절까지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23절입니다. 이 설교는 누가가 요약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더 많은 설교를 했습니다. 누가는 설교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확증하다는 단어입니다.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확증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디아마르튀로마이입니다. 이 말은 간절히 바라다’, ‘간곡하게 권유하다’, ‘증언하다등등의 뜻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확증(확실히 증거)했습니다. 복음에 확신이 찬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권하다는 단어입니다. 여기 권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ώ)입니다. 이 말은 부르다’, ‘초대하다’, ‘탄원하다’, ‘간청하다’, ‘친절하게 위로하다’, ‘설득하다등등의 뜻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탄원했습니다.  

여러 말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러 가지 말로 확실히 증거하며 믿으라고 간청했습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게 된 과정을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간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은 다했습니다. 손짓 발짓을 했습니다. 가슴을 쳤습니다.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확실히 증거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나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확증할 수 있는 신앙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여러분! 없다면 확실한 증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둘째, ‘나는 베드로처럼 사람들에게 여러 말로 예수님을 간절히 증거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 간청은 우리와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간청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시대에 여러 가지 말로 간청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여러분! 베드로의 간청은 바로 우리를 향한 간청입니다. 오늘도 회개합시다. 매일 회개합시다. 순간순간 새로워집시다. 죄사함 받읍시다. 매일 죄사함받읍시다. 매일 은혜 받읍시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받읍시다. 그래서 능력있는 크리스천이 됩시다.

고등학교 때 본 영화가 있습니다. 한 선교사가 원시부족에게 선교하는 영화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부족 간에 싸움이 났습니다. 창과 화살에 맞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상황은 아비규환입니다. 서로 찌르고 찔리고 있습니다. 함성 소리, 고함 소리, 비명 소리, 신음 소리, 때리고 찌르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선교사가 전쟁터 한 중앙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한 사람을 붙들고 예수 믿으라고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고 소리 지르며 외치는 장면입니다. 그 사람은 외치는 선교사님을 바라보며 서서히 죽어갑니다.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 머리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영상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외치고 붙들었다가 손짓하고 간곡하게 말하는 선교사의 모습이 지금 베드로의 모습이 아닐까요?  

베드로가 여러 가지 말로 확증하며 권한 말의 핵심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구부러진 세대’, ‘거짓된 세대’, ‘부정한 세대’, ‘사악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꼬부라진 세대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꼬부라져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같이 꼬부라져 있습니다. 세상도 꼬부라져 있습니다. 꼬부라진 사람들이 꼬부라진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꼬부라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바르게 펴져 있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하워드 댄포드의 불합리한 지구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 관한 책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실제적인 행동을 연구하는 경제학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경제의 주체로 합리적인 인간을 꼽습니다. 합리적인 인간은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정보를 입수해서 완벽하게 처리하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합니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사람이란 의미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실제로는 아주 이상한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이것을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이상현상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하지 않고 일부의 정보만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족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 비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댄포드는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아는 정보 안에서만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합리적입니다. 이것을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대부분 불합니다.  

넛지(캐스 R. 선스타인, 리처드 탈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처럼 사고하고 IBM컴퓨터처럼 뛰어난 기억용량을 갖고 있으며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천재인 동시에 바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천재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바보 같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불합리한 세상에 불합리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합리한 사람이 너무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니까 얼마나 불합리하고 어처구니가 없겠습니까? 세상은 꼬부라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꼬부라진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합시다. 죄사함 받읍시다. 그래서 성령의 선물을 받읍시다. 꼬부라진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선물 밖에 없습니다.

 

3. 세례를 받은 3천이 되라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후에 전무후무한 대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이 날에 신도의 수가 3천이나 더한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대 사건입니다.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여기서 성경에 기록된 3천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정말 3,000명이었냐는 것입니다. 너무나 엄청난 역사이기 때문에 일부 성경학자들은 3,000명은 실제 3,000명이 아니라 단지 많은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 당시 예루살렘에는 한꺼번에 3,000명이 세례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당시 예루살렘 근처에는 8개의 큰 연못이 있었습니다. 또 유대인의 의식을 위한 연못 수백 개가 있었습니다. 이 연못 중에 48개가 예루살렘 성전 남쪽에서 발굴되었습니다. 3,000명이 하루에 세례를 받을 장소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따라서 3,000이라는 숫자를 문자적으로 보아도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가감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지 맙시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그대로 믿읍시다. 성경의 역사는 사실을 넘어 진리입니다.  

둘째, 3,000명은 남자만 센 수라는 것입니다. 41절을 볼 때는 남자만 3천인지 모인 사람이 모두 3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44절에는 남자의 수가 5천 명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비교해보면 3천 또한 남자만 3천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만 세는 것은 당시 관습이었습니다. 남자를 세면 여자의 수까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까지 포함하면 3천이 훨씬 넘는 수입니다. 정말 굉장한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역사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선물을 받으세요. 놀라운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셋째, 3,000명은 말씀을 받고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받는다는 말이 헬라어로 아포데코마이입니다. 아포데코마이는 누구를 친절하게 받아들이다’, ‘환영하다’, ‘누구를 혹은 무엇을 인정하다’, ‘칭찬하다는 뜻입니다. 3,000명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조롱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3천명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헤롯은 말씀을 기쁨으로 들었습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더 이상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3,000명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더 나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수만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적어도 15개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자리에 모인 수만의 사람들이 아니라 회개한 3,000명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헤아리신 것은 오직 회개한 3,000명뿐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예배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다 세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헤아리시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수에 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옥한흠 목사).  

어떤 대형 교회에 방송실 엠프가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엠프는 아주 고가의 장비입니다. 수억이 넘는 장비들입니다. 고장 같지 않은데 안되는 거예요. 그리고 고장이 날 일도 없었어요. 직원들이 아무리 살펴도 고장의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비기사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원인이 먼지였습니다. 먼지가 엠프에 끼어서 소리가 나지 않았던 거예요. 아주 작은 먼지 때문에 수억이나 되는 고가의 장비가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죄는 이 은혜를 우리가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작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회개는 우리 영혼에 끼어 있는 먼지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관입니다. (파이프)가 녹슬면 녹물이 나옵니다. 녹을 제거해야 깨끗한 물이 나옵니다. 회개는 우리 영혼의 녹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은혜의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관이 막히면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파이프를 뚫어야 물이 잘 나옵니다. 회개는 막힌 은혜의 관을 뚫는 것입니다. 은혜가 나에게 흐르게 하려면 막힌 곳을 뚫어야합니다. 회개해야 막힌 곳이 뚫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흘러나옵니다.  

우리 집에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릇이 깨끗해야 음식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많은 그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깨끗하지 않으면 은혜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 영혼의 그릇을 십자가의 피로 씨는 것입니다.  

모두 가슴을 찢읍시다. 통회하고 자복합시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우리 등대교회가 이처럼 회개하는 3,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막연히 교회에 출석하는 3,000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에 회개할 줄 아는 3,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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