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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기도합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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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2:1~4
주일오전예배 | 2018-04-0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음악 용어 중에 합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어로는 앙상블이라고 하지요. 두개 이상의 악기가 하나의 곡을 함께 연주하는 것을 합주라고 합니다. 또 두 명 이상의 주자가 함께 연주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불어인 앙상블(ensemble)은 조화, 통일이라는 뜻입니다. 앙상블의 좋고 나쁨은 연주의 밸런스나 사운드의 통일성에 있습니다. 여러 명의 주자가 다른 곡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곡을 연주합니다. 주자들은 조화로운 음을 내야합니다. 튀는 음, 다른 음을 내면 안됩니다. 만약 다른 음이나 튀는 음을 내면 합주로서의 가치는 없어집니다.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박한정이라는 친구가 성가대에 섰습니다. 성가대에 마이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이크가 성가대 중앙 위쪽에 설치되었습니다. 성가대에서 마이크가 너무 멀면 소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가까우면 마이크 바로 앞에 있는 사람 소리만 납니다. 그래서 마이크 위치가 적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이다 보니 마이크 위치를 잘 못 잡았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가까웠습니다. 마침 박한정이라는 친구가 마이크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성가대 찬양을 하는데 박한정이 소리만 났습니다. 30여명의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합주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소리가 조화롭게 나야 합니다. 누구 하나 튀면 합주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1742218일 스코틀랜드 캠버스랭(Cambuslang)의 한 목회자의 집에서 영적 대각성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평일 교구 목사의 집에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일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죄에 대한 심각한 각성이 일어난 것입니다. 처음에는 50명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지 않아서 300명이 모여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주변으로 번져갔습니다. 나중에는 스코틀랜드 서부를 뒤덮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흥 운동의 배경에는 비상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캠버스랭의 부흥 즈음해서 스코틀랜드의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은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과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편지의 주제와 관심사는 기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기도의 연대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과 편지를 교환하던 스코틀랜드의 목회자들은 174411월부터 기도합주회를 시작합니다. 112, 58월 첫 화요일을 기도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연합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과 주일에는 부분적으로 동일한 기도에 시간을 바쳤습니다. 이 기도회는 2년간 지속되었습니다. 2년의 기간이 끝나기 전엔 1746826일에 기도합주회를 7년간 더 지속할 것을 제안합니다. 7년 후 기도회는 중단됩니다. 하지만 목회자들 사이에 이 기도회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1764624일 다시 기도합주회를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18세기 영국과 미국 교회의 부흥의 중심에는 기도합주회가 있었습니다. 기도합주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 초대 교회 기도합주회  

사도행전은 <기도합주회> 보고서입니다. 사도행전은 시작부터 끝까지 성도들의 기도가 곳곳에서 연주됩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기도합주회를 합니다. 그러다가 성전에서 기도합주회를 합니다. 나중에는 집에서 기도합주회를 합니다. 기도합주회의 절정은 바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감옥에서 기도콘서트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16:25)고 했습니다. 이 기도합주회가 감옥을 흔들었습니다. 사도행전 최고의 기도합주회는 폭풍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며칠 동안 해도 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캄캄한 바다 위에 배가 하염없이 파도에 떠밀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살 여망이 조금도 없습니다. 바울은 그 폭풍 속 배에서 기도 콘서트를 합니다. 이 기도합주회가 배를 구합니다. 그리고 로마 세계를 뒤집어 놓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도합주회는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분자를 세울 때 기도합주회를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12사도가 절름발이가 됐습니다. 120문도는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기도합주회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섬기는 일 때문에 말썽이 생깁니다. 교회는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합주회를 합니다. 그리고 일곱 집사를 세웁니다.  

<사도행전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기도합주회를 한 후 세운 일곱 집사로 인해 초대교회는 또 다른 부흥을 경험합니다. 오늘날 교회 직분이 자신이 체면이나 살리는 감투가 됐습니다. 자신의 직분 감당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령 임재를 위해서 기도합주회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제자들은 오직 기도합주회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에 바람과 불같은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고쳤습니다. 그로 인해 말썽이 생겼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 붙들렸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을 처벌할 죄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풀려납니다.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과 기도합주회를 열었습니다. 기도합주회가 끝나자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초대교회 기도합주회는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셋째, 아픈 자, 갇힌 자를 위해서 기도합주회를 했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냈습니다.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통치자의 아버지가 앓는 병의 치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병이 치료되었습니다(28:8).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풀려나왔습니다(12). 베드로는 죽은 도르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죽은 도르가가 살아났습니다(9:40).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성도들은 여기저기에서 기도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것 또한 기도합주회입니다.  

넷째,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도합주회를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금식하며 기도합주회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 여행이 시작됩니다.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복음이 본격적으로 이방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으로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복음의 본질은 세상을 뒤집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사람의 심령을 뒤집는 것입니다. 기도합주회를 하지 않으면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합주회로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초대교회사는 기도합주회의 역사입니다.

2. 기도합주회의 결과 충만하게 채워주심  

기도합주회는 제자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줬습니다.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바람이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집안을 가득 채웠다는 말은 제자들의 속을 가득 채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오순절의 하늘 바람은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 바람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텅 빈 그릇에 불과합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공수레 공수거라고 합니다(부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빈 손에 비유한 것입니다. 종교나 철학은 인생을 비어 있는 존재라고 합니다. 문학은 인생을 뜬 구름이나 바람에 비유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비어 있는 존재입니다.   

지난 주간에 아주 의외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이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존슨은 영화배우, 프로듀서, 사업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그 많은 일들을 아주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전직이 프로레슬링 선수입니다. 덩치가 산만합니다. 2024년에는 미국 대통령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존슨은 인터뷰에서 나는 황폐하고 우울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은 같은 영화를 찍은 사람입니다.  

의사였고 심리학자였던 빅 터 프랭클은 사람은 공허감과 무의미에 시달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의미요법이란 책에서 인간의 상태를 존재적 진공상태라고 했습니다. 진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겉모양은 있는데 속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존재적으로 진공상태입니다. 그래서 무의미와 공허감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고 싶어 합니다.  

길을 가다가 보면 마음수련 책자가 여기 저기 꽂혀 있습니다. 궁금해서 책을 빼서 한 번 읽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은 자꾸 더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다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예요. 행복하려면 빼기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마음 빼기>라고 하더라고요. 마음 빼기는 마음 비우기입니다. 마음 비우는 방법이 수련입니다. 도를 닦는 거예요. 여러분! 동양 종교의 특징 중에 하나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다는 것은 비우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사람은 채우고 싶어 하는데 종교는 비우라고 합니다. 누가 맞습니까? 사람이 맞습니다. 종교가 틀렸습니다. 사람은 비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채워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비우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채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은혜를 채우라고 합니다. 시편 81:10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하신 말씀은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을 말합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을 받으세요.  

그러면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치 너무 흔하고 쉬워서 안하고 안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하찮게 보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보입니다. 기도가 소중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로 자신을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로 성령충만 받으세요. 기도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세요. 그래야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가 성도의 능력입니다.  

이상혁 선교사님의 채워주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상혁 선교사님은 미국 인디언 호피 부족 선교사입니다. 어느 날 선교사님은 청소를 하면서 사도행전 18:18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삭발했습니다. 머리를 깎은 이유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아주 급박하고 긴박할 때 하는 기도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서원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아주 긴박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바울의 선교 여행이 3차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결실이 많았던 것이 2차 선교여행입니다. 선교의 절정입니다. 이제 바울의 나이가 60 정도 되었을까요? 당시 나이로 아주 노인입니다. 그냥 자축하며 돌아오면 됩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주 비상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긴박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혁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채워주시기 이전에 하나님이 중히 보시는 것, 그것은 몸부림치는 비상한 기도가 있냐는 것입니다(113). 비상한 기도가 있을 때 비상한 하나님의 채워주심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도는 비상한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오로지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상한 제자들의 기도에 하나님은 비상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람과 불같은 성령입니다. 제자들이 비상한 기도를 했을 때 하늘의 바람과 하늘의 불로 충만하게 채워졌습니다.

3. 기도합주회의 외적 표징 바람, ,  

오순절 성령 강림은 아주 분명한 외적 표징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그 표징은 바람과 불과 말 세 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성령강림이 항상 외적인 표징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항상 바람과 불과 말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깊은 산속 잔잔한 호수처럼 아주 조용히 임하실 때도 있습니다. 또 찰랑거리는 물결처럼 조금의 울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주 격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물리치면 안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자신의 부흥을 원하면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시기를 중단하실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이유가 전혀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역사를 이루신다. 물론 성령님은 스스로 성경에 제시해 놓으신 원칙들을 결코 어기지 않으신다. 하지만 그 범위 내에서는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초월하는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되겠는가?(24)  

하나님께서 전혀 새롭게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 방법이 특이하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하면 안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세요.  

먼저 오순절 성령 강림은 하늘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스가랴서 65절에 하늘의 네 바람이 나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바람도 서 있습니다. 참 신비한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여호와께서 사용하시는 권세입니다. 노아 홍수 때 비가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으로 물을 밀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땅이 들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홍해 바다를 밀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홍해를 갈라버리셨습니다. 바람으로 메뚜기를 몰아오셨습니다(10:13). 바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권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바람같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늘 바람>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신비한 바람입니다. 바람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하늘에서 와서 제자들이 모인 집에 가득했습니다. 하늘 바람은 집을 채우고 제자들의 마음을 채워줬습니다. 제자들은 담대해졌습니다. 이제 무섭지 않았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서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늘 바람이 우리 교회에 불어오길 바랍니다. 하늘 바람이 여러분에게 불어오길 바랍니다. 하늘 바람이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길 바랍니다.  

세상에도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 바람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사람은 바람에 따라 움직입니다. 바람에 따라 옷을 입습니다. 바람 따라 신을 신습니다. 바람에 따라 멋을 냅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입니다. 사람을 황폐하게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김범룡이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김범룡이 1985년에 발표한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 오늘도 잠못이루고 / 어둠속에 잠기네 / 그대 이름은 / 바람 바람 바람 /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 그대 이름은 / 바람 바람 바람 / 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  

바람은 스치고 지나갑니다. 왔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를 울립니다. 세상의 바람은 나를 울립니다.  

지난 주 45일에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줄거리 소개를 이렇게 했습니다.  

왜 사랑을 해도, 결혼을 해도 외로운 거죠?”

끝도 없이 사랑 받고 싶은 철부지 어른들이 온다!

네 사람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만 가고...

………

갈수록 환장, 들키면 끝장

뭘 해도 외로운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가 온다!

세상의 바람은 인생을 꼬이게 합니다. 갈수록 환장하게 합니다. 들키면 끝장입니다. 뭘 해도 외롭게 합니다. 세상의 바람은 사람을 황폐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바람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바람이 아닌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사모합시다. 세상의 바람에 휩쓸리지 맙시다. 하늘 바람을 기다립시다. 하늘 바람이 우리 교회를 충만히 채우고 여러분의 가정과 삶을 채우고 여러분의 심령을 채우길 바랍니다.  

둘째, 불입니다. 바람이 하늘 바람인 것처럼 불 또한 하늘의 불입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불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불을 사람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불이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불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밖에도 불이 있어야 합니다. 속에도 불이 있어야 합니다. 머리 위에 불의 혀가 임했습니다. 이것은 각 사람의 속에도 하늘의 불로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가슴 속에 하늘의 불로 가득 찼습니다. 아주 생기 있게 타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하늘의 불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슴 속에도 하늘의 불이 타오르길 소원합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모세 인생을 3구분 합니다. 40년 왕자, 40년 양치기, 40년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2구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떨기나무 불꽃을 보기 전과 본 후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을 본 후 그 불꽃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이 불은 하나님의 불입니다. 이때부터 모세는 하늘의 불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모세의 인생은 하나님의 불을 가슴에 품기 전과 품은 후로 나누어집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하늘의 불을 품고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말입니다. 제자들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바람입니다. 하늘의 불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말입니다. 하늘에서부터 시작되는 말이 제자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바람이 제자들에게 불어왔습니다. 하늘의 불이 가슴에 탔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말이 제자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은 하늘의 말로 세상을 뒤집은 스토리입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외적인 특징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 임재의 외적 표징이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채워져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그릇에 비유합니다. 이 그릇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기도로 채울 수 있습니다. 이상혁 선교사님이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채워주심은 낮은 곳으로 임하더랍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 전에 겸손함이 있느냐를 보시더래요. 기도라는 것은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비어 있는 우리를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오쇼 라즈니쉬의 삶의 길 흰 구름의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Empty Boat>입니다. 오쇼는 철학자입니다. 195332121살 때에 한 나무 아래서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1960년대는 명상가가 됩니다. 그래서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오쇼는 인생을 <빈 배>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오쇼의 강연 주제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의 스승(sex guru)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세상의 채움은 쾌락으로 흐릅니다. 쾌락의 끝은 사람을 황폐하게 합니다. 세상은 빈 그릇을 쾌락으로 채우고 싶어 합니다. 마귀는 우리 인생의 빈 그릇을 쾌락으로 채우라고 합니다. 세상으로 채우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채우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기도합시다. 그래서 성령으로 우리를 채웁시다. 하늘의 바람으로 채웁시다. 하늘의 불로 채웁시다. 하늘의 말로 채웁시다. 사람은 하늘 은혜로 채워져야 합니다. 하늘 은혜로 채워져 능력있는 삶을 사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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