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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인 미국의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공학에 관한 책입니다. 앤서니 라빈스는 우리 내부에 억압되어 있는 잠재력을 거인에 비유했습니다. 이 책은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깨워 성공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나 원리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우리가 바로 이 힘 즉, 거인의 능력을 이미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힘은 돈이 많거나 가정환경이 뛰어난 일부 특별한 자격을 갖춘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굉장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 그 힘은 이미 우리 손안에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해내겠다는 용기만 가진다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이 엄청난 거인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가지 자신이 과거의 자기가 아니라 훨씬 더 위대한 존재라고 결단하겠는가? 영원히 자기 영혼의 수준에 맞는 인생을 살겠다는 결단을 바로 내리겠는가?
라빈스는 내부의 거인(잠재력)을 깨우는 방법이 ‘결단’이라고 했습니다. 결단은 영어로 decision입니다. 결단decision은 라틴어의 ‘~로부터 from’를 의미하는 ‘de’와 ‘자르다 to cut’를 의미하는 ‘caedere’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라빈스는 진정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결과를 성취하기로 약속하고 다른 것을 선택할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잠재력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잠재력을 깨우는 방법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잠재력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죄와 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없앨 때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잠재력이 해방됩니다. 죄를 없애는 방법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성을 태워버리는 것이 성령의 불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영혼의 자유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재능도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은혜받기 전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 간에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었던 장소가 ‘다락방이냐?’ 아니면 ‘성전이냐?’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은 마가다락방에 있었다고 생각합시다. 중요한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 충만하도록 말씀과 기도에 헌신되어 있느냐? 헌신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헌신했을 때 오순절에 마가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성령의 바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불에 대해서 생각해보로고 하겠습니다.
1. 불처럼
오순절에 성령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불은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 있는 불꽃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2개 월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광야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광야 시작부터 광야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왔습니다. 엘리야가 쌓은 갈멜산 제단에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히12:29)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불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말합니다.
마가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은 눈으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3절 중간에 ‘그들에게 보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제자들의 눈에 보였습니다. 한 사람만 본 것이 아닙니다. 120명 모두가 불을 봤습니다. 꿈이 아닙니다. 환각상태가 아닙니다.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났습니다. 귀로 들었습니다. 그 바람이 집에 가득 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임재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다음에 불이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불은 뜨겁습니다. 성령의 불이 제자들의 가슴에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슴으로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영혼으로 느꼈습니다. 왜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들려주시고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의 믿음을 더해주시기 위함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이제 믿음 있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며 제자들의 믿음을 깨우셨습니다. 바람과 불로 제자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이것을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성령께서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일어나라고 우리 믿음을 흔들어 깨우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은 태우는 불이 아닙니다. 하지만 태우는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은 사물을 태우는 불이 아닙니다. 죄악을 태우는 불입니다. 악을 태우는 불입니다. 고통을 태우는 불입니다. 슬픔을 태우는 불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불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은 영적인 불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떨기나무가 타지 않습니다(출3:2) 모세가 말합니다.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출3:3) 하나님은 불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모세는 하나님의 불 앞에서 거룩해졌습니다. 이사야의 입술도 하나님의 불로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우리를 깨끗하게 불입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를 치료하는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살라 버리기를 소원합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의 삶을 치료하고 새롭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성령의 불이 이 시대를 새롭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요즘 천안의 죄를 회개하고 있습니다. ‘천안의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 노년들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성령의 불로 태워주옵소서. 천안이 영적으로 깨끗한 도시가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 천안시의 죄를 우리가 회개합시다. 천안시가 영적으로 깨끗한 도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시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성령의 불은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성령은 영원히 타는 불입니다. 불의 혀라는 말은 살아있는 불이라는 말입니다. 타고 있는 불은 불의 혀가 계속 움직입니다. 불의 혀가 계속 갈라집니다. 불의 혀는 지금 성령의 불이 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꺼지는 불은 혀가 점점 사라집니다. 불의 혀가 없어집니다. 성령의 불은 지금 우리 가운데 살아 있는 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출애굽기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본 불은 사라지지 않는 불입니다. 모세 시대에 타고 있는 불이 오순절에도 그대로 타고 있었습니다. 그 불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있습니다. 성령의 불은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성령의 불은 영원히 타는 불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소에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아침마다 등대에 올리브기름을 주입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등대에 불이 항상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성소에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제물을 태우는 제단입니다. 하나님은 번제단의 불을 항상 피우게 하셨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을 때도 불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나무를 태워야 합니다. 불을 꺼뜨리면 안됩니다.
존 번니언의 천로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평을 받는 명작입니다. 순례 중인 크리스천이 어떤 방에 들어갑니다. 그 방의 벽에는 불이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검은 사람이 불에 물을 부으며 불을 끄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히 더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벽 뒤에서 어떤 사람이 불에 기름을 계속 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을 끄는 검은 사람은 사탄입니다. 기름을 붓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불에 기름이 계속 부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아무리 물을 부어도 그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 영혼에 타고 있는 불을 계속 끄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가슴에 타고 있는 불을 끄려고 합니다. 교회에 타고 있는 불을 끄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속해서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래서 불이 타오르게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기름을 받는 곳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항상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쉬지 않고 부어 주십니다. 마귀는 우리 영혼의 불을 끄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을 지피십니다. 그 기름이 부어지도록 하는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찬송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은 능력의 불입니다. 불의 혀는 불의 힘을 상징합니다. 불이 활활 타 오를수록 불의 혀는 맹렬하게 솟아오릅니다. 불의 혀가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불의 혀가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개로 갈라졌습니다. 120명이 모였습니다. 한 사람 위에 불의 혀가 두 개씩 있다면 240개의 불의 혀가 있는 것입니다. 3개로 갈라졌다면 360개입니다. 마가다락방에 성령의 불이 아주 맹렬하게 타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불이 지금도 맹렬하게 타고 있습니다. 불의 혀는 불의 힘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불은 세상을 이기는 불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불입니다. 죄악을 이기는 불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아길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아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은 능력의 불입니다.
여러분! 뱀의 혀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 세상의 동물 중에 입을 벌리지 않고 혀를 내밀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뱀입니다. 뱀은 입을 벌리지 않고 혀를 내밉니다. 뱀의 혀는 두 개로 갈라졌습니다. 혀를 내미는 것은 냄새를 맡는 것입니다. 먹이를 찾는 것입니다.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보세요. 아주 기분이 나쁩니다. 아주 섬찟합니다. 두 갈래로 갈라진 사탄의 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성령의 불의 혀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불을 받아 마귀 권세를 이깁시다.
2. 성령의 충만함
120명의 제자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충만은 찰 <충>자에 찰 <만>자를 써서 ‘가득 채우다’, ‘가득 차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는 말은 제자들의 전인격이 성령님으로 가득 찼다는 의미입니다.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빈공간이 조금도 없이 성령님으로 완전히 꽉 찼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 신약 성경에서 ‘충만’이라는 말에 세 종류의 단어가 사용됩니다. 첫째, 그릇에 물을 밑에서부터 입구까지 꽉 채웠다는 의미입니다(플레로오). 둘째, 가득 차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플레레스). 셋째, 무엇에 흠뻑 적셔진 상태를 말합니다(핌플레미). 가득 찼을 뿐만 아니라 겉까지 흠뻑 적셔진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내적인 충만입니다. 세 번째는 외적인 충만입니다. 본문에서 충만은 세 번째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성령으로 흠뻑 적셔졌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내적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또 외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적셔져야 합니다. 내적 충만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외적 충만은 사명 감당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성령의 충만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성령으로 충만하게 적셔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나만을 위해 살지 맙시다. 성령충만으로 주를 위해 삽시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4절 a)는 말은 모두가 똑같은 분량의 은사를 받았다는 뜻이라기 보다 각자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은사를 넉넉히 받았다는 뜻입니다(칼빈). 12사도는 사도직에 적합한 은사를 충만히 받았습니다. 70인 전도대, 여자들, 예수님의 형제들은 각각 자신들에게 맞는 은사를 넉넉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 충만은 그 사람의 사명과 그 재능에 따라 충만하게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의 재능에 맞게 부어집니다. 하지만 넉넉히 부어집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충만을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충만은 인격적인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영적인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 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은혜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성령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 생활의 모든 영역에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판단이 나의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택이 나의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이 나의 말이 되고 주님의 것이 나의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내 인격뿐만 아니라 내 삶이 완전히 지배되는 것입니다.
중세의 교부 어거스틴은 성자입니다. 최고의 지성이요 최고의 영성가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신학 사상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한 때 자신이 높은 신앙의 경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신앙만큼은 남부럽지 않다고 자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천국에 갔는데 천국의 입구에서 천사가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어거스틴이며 그리스도인입니다”고 대답하자 천사가 다가와 어거스틴을 자세히 보더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 네 머리 속에는 키케로의 철학으로 가득 차 있어.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라고 호통을 치며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놀라서 눈을 떠 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어거스틴은 한 숨을 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속에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성령으로 가득 차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사시길 바랍니다.
3. 말하는 기적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에 보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라는 말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말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이 되길 바랍니다. 내 욕심, 내 혈기, 내 정욕, 내 생각에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막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목회하시기 전에 부동산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요즘은 부동산 중개라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복덕방이라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복덕방을 하실 때이었습니다. 요즘은 법적으로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얼마 받도록 퍼센트가 정해져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도 대체로 얼마 정도인지 공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을 시가보다 비싸게 팔아주면 수수료도 많이 받았습니다. 부르는 게 값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부동산 주인과 복덕방 사장님 사이에는 얼마에 팔아주면 얼마 주겠다는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거짓말을 많이 섞어가며 장사를 하게 된답니다. 있는 말 없는 말 다 섞어 가며 땅을 파는 거예요.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과거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그런데 복덕방을 그만 두게 된 사유가 있습니다. 이 분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복덕방을 운영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거짓말이 안나오더랍니다. 이천 만원에 팔면 얼마받기로 했어요. 그런데 천오백만원이라고 입에서 툭 튀어 나오는 거예요. 땅의 원래 가격이 자기도 모르게 툭 튀어 나오더래요. 부동산 주인에게 욕을 먹는 거예요. 그래서 복덕방을 그만 두셨답니다. 저는 성령께서 그 분의 입술을 주장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까운 곳에서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저도 종종 이런 경험을 합니다. 누구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야지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엉뚱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게 아닌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일이 잘 됐어요. 그렇게 말한 것이 잘 한 거였어요. 그래서 ‘그 때 성령께서 내 말을 인도하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말은 정말 꼭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고 잘난 체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전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말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내가 주책을 부렸구나! 내가 푼수를 떨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언어생활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자신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시편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2:16-17>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망령되고 헛된 소리’는 ‘속되고 허튼 소리’라는 뜻입니다. ‘버리라’는 말은 ‘도망가라’는 뜻입니다. ‘악성 종양’은 ‘갉아 먹는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소리는 악성 종양과 같습니다. 세상적인 말들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속되고 허튼 소리가 들려오면 도망가세요. 성령의 감동이 있는 말을 들으세요. 그리고 성령의 감동이 있는 말을 하세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은 우리 영혼을 살립니다.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하자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언어’는 외국어입니다. ‘다른 언어’라는 말을 새번역성경은 ‘다른 나라 말’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성경에는 ‘알지 못하는 외국어’라고 했습니다. living Bible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languages they didn’t know)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다른 언어’를 방언이라고 했습니다. 통역 없이는 자신 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는 천사들의 언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다른 언어는 외국어입니다. 4절 끝에 ‘말하기를’이라는 말이 ‘또박 또박 말하다’, ‘정확하게 말하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말을 웅얼웅얼 거린 것이 아닙니다. 아주 정확한 언어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했더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외국어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입에서 말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말하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자 12사도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계 곳곳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기적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양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을 후대가 물려받았습니다. 우리의 재능은 부모에게서 유전된 것입니다. 멀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인간의 재능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기능공의 기술은 하나님께서 준 특별한 은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모든 자연적인 재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어떤 사람에게는 바이올린, 어떤 사람은 테니스, 어떤 사람은 만들기, 어떤 사람에게는 그리기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그 재능이 일그러지고 파괴되었습니다. 죄로 재능이 감추어졌습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 속에서 일그러진 그 재능들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감추어져 우리가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길이 열려지길 소원합니다. 다쳐지고 억눌리고 깨진 우리 재능이 회복되길 소원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은사가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바로 우리가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특별한 일을 하게 합니다. 성령충만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특별한 은사도 있기를 소원합니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체험 후에 전혀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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