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십자가의 길은 승천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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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1:9~11
주일오전예배 | 2018-02-0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어느 동네 공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공터 한쪽에서 어떤 교회 교인들이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약장사가 약을 팔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습니다. 반면에 약장사 주변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북적대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기 시작하자 교인들과 약장사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리할 것도 없는 교인들은 전도지를 챙겨 넣은 후 약장사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서 약을 잘 팔수가 있습니까?”  

교인들의 질문에 약병을 챙겨 넣던 약장사는 교인들을 바라보더니 대답합니다.  

사실 이 약은 가짭니다. 하지만 난 이 가짜 약을 진짜처럼 팝니다. 나 같은 약장사도 가짜를 진짜처럼 파는데 당신들은 진짜를 어떻게 그리도 확신 없이 전하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진짜입니다. 복음은 진짜입니다. 성경은 진짜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짜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진짜를 가짜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은 가짜를 진짜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진짜를 진짜처럼 확신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진짜를 가짜처럼 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승천 기사가 나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재림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승천은 진짜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진짜입니다. 소설이 아닙니다. 성도는 진짜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사실을 사실대로 선포하는 곳입니다.

1. 십자가의 길은 승천으로 끝난다  

예수님은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예수님을 가렸습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16절에서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올라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구름은 초자연적인 영광스러운 구름입니다. 본문에도 암시가 있습니다.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는 말씀은 구름이 그를 들어올렸다또는 구름이 그를 취했다는 의미입니다. 구름이 예수님을 받들어 올린 것입니다. 아주 영광스러운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구름에 받들려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름이 예수님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모든 사명을 다 마치셨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마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아주 영광스러우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33년 생애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30년 사적 생애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3년 공생애는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여우 보다 못하고 공중의 새 보다 초라한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봉서산에 자주 올라갑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숲으로 들어가면 꿩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갑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는 고라니가 혼비백산하고 도망을 가는 거예요. 주님은 들짐승처럼 초라하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영광스러우셨습니다. 신비한 구름이 예수님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 가운데 승천하신 것은 십자가의 길이 결국에는 영광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반드시 승천이라는 영광으로 끝이 납니다. 아니 십자가의 길 그 자체가 영광의 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십니다. 기도하시는 중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십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납니다. 옷은 빛같이 희어졌습니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기사를 누가복음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누가복음9:31-32>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을 영광 중에 말을 합니다. 그때 제자들이 졸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리고 구름이 세 사람을 덮습니다. 세 사람이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에게 넘겨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이 영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십자가의 길은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마다 영광스러운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이라는 최후의 영광 가운데서 지상 사역을 마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영광입니다.  

노인의학자인 존 던롭(John Dunlop)<마지막까지 잘 사는 삶>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달려갈 길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크리스천의 후반부 인생 전략을 다룬 책입니다. 존 던롭은 잘 죽는 것이 우연인 경우는 별로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 죽는 것은 평생에 걸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라고 했습니다. 결국, '잘 죽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죽으려면 끝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엉망으로 산 사람들이 잘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순간순간 잘 살아야 끝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일부러 계획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오늘날 그런 계획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특이한 것은 존 던롭이라는 사람이 죽음에 대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유머러스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비극입니다. 그런데 존 던롭은 죽음에 대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우리 감리교도들은 멋지게 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멋지게 죽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죽을 때 멋지게 죽읍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끝이 영광스러웠던 것은 순간순간 멋지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비천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의 생애 마지막은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모습을 아주 자세히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구름 사이로 사라지진 후에도 한 동안 예수님께서 사라지신 창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자세히 쳐다보고 있다는 말이 헬라어로 아테니조(ἀτενίζω)입니다. ‘아테니조무언가에 눈을 고정시키다’ ‘주목하다’ ‘강한 시선으로 똑바로 바라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때 천사들이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자세히 본 것은 잘 한 일입니다. 엘리야가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본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받습니다. 승천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을 때 갑절의 영감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확인한 제자들은 믿음이 갑절로 생겼을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하고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않은 제자들의 행동은 칭찬받을만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예수님은 구름에 가리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공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텅 빈 하늘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텅 빈 하늘을 쳐다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학창 시절에 학교 다닌다고 집에서 나와 객지 생활을 했습니다. 토요일이면 집에 갑니다. 주일 오후에 집에서 나옵니다. 어머님이 차부에 따라 나오십니다. 버스를 탑니다. 버스 안에서 멀어지는 어머님을 봅니다. 어머님은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버스 뒤꽁무니를 바라보시면서 차부에 그대로 서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입니다. 어머님이 아들이 다시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서 계시지 않습니다. 버스가 사라지면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들이 다시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버스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허공을 쳐다봐서는 안됩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의 아들이 군대를 갔습니다. 경기도 장호원에 근무했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을 때는 차를 끌고 부대 앞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리고 부대 근처에서 파킹을 하고 서 계신 거예요. 혹시나 훈련받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셨을 거예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장로님은 정말 많은 시간을 부대 앞에서 허공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텅 빈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꿈같은 일을 쫓지 맙시다. 신화 같은 일을 상상하지 맙시다. 헛된 일을 쫓지 맙시다.  

19세기 프랑스에 라플라스라는 유명한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라플라스가 별들의 위치를 그린 성좌도를 나폴레옹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라플라스에게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느 별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별에 사시지 않습니다. 세상을 호령했던 나폴레옹! 하나님이 사시는 별이라니요!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1961412일 보스토크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돕니다. 그는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늘에 신()은 없었다. 주변을 아주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역시 신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 어디에도 천당은 없다.”  

여러분! 텅 빈 우주 공간에서 하나님을 찾지 마세요. 하나님은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 눈을 더 이상 허공에 고정시키지 마세요. 오직 우리 주님께만 고정시키세요.  

스데반 집사님이 복음을 전할 때의 일입니다.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유대인들을 스데반 집사님을 향해 이를 갈았습니다. 얼마나 불안해요. 스데반은 유대인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사도행전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습니다. 여기 주목하다는 말이 본문10절의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라고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늘은 sky가 아닙니다. 천국(heaven)입니다. 스데반은 천국에 눈을 고정시킨 것입니다. 그 때입니다. 유대인들이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돌로 쳤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자 죽어가면서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사울입니다. 바울이 회개할 수 있는 불씨가 됩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기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창공이 아니라 천국에 계신 주님께 눈을 고정시켰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골퍼들이 1~2m 거리에서 숏퍼팅을 할 때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다고 합니다. 성공하면 본전이랍니다. 반대로 실패하면 망신이랍니다. 관중의 시선이 아주 신경이 쓰입니다. “프로가 저 것도 못 넣어이런 말을 듣는 것입니다. 자괴감도 든다고 합니다. 다음 플레이에도 영향을 많은 미칩니다. 그래서 숏퍼팅을 할 때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숏퍼팅을 실패하는 원인은 대부분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너무 긴장된 상태에서 퍼팅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퍼팅 후에 공이 구르는 방향과 거리를 확인하려고 시선이 공을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선이 따라가면 머리도 따라가고 어깨도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상체가 열린 채로 퍼팅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공을 맞추기도 전에 머리를 든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깨가 열린 상태에서 퍼팅을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랍니다. 숏퍼팅을 잘하려면 먼저 머리를 고정해야 한답니다. 머리를 고정하는 방법이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고정시키면 머리도 고정이 됩니다. 머리가 고정이 되면 어깨도 고정이 됩니다. 그래서 팔로만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눈은 예수님께만 고정하세요. 눈이 창공에 박히면 안됩니다. 눈이 세상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눈은 예수님께만 고정하는 것입니다.

3. 다시 오시리라  

제자들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아주 강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이 때 두 천사가 제자들을 권면합니다. 권면 보다는 약간의 꾸짖음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꾸지람은 온유한 꾸지람입니다. 혼을 내고 질책이 담긴 꾸지람이 아닙니다. 사랑이 담긴 부드러운 꾸지람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이 천사처럼 꾸짖는다면 이 세상은 정말 온유한 세상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천사가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부릅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육적인 추억과 영적인 추억이 어려 있는 곳입니다. 그들의 고향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냈습니다. 또 여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에 대한 처음 사랑과 처음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낙심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곳입니다. 갈릴리 곳곳에는 예수님에 대한 은혜의 흔적이 있습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제자들과 갈릴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높여 부릅니다. 제자, 성도, 하나님의 자녀(1:12) 이스라엘, 의인, 존귀한 자(16:3), 여수룬, 하나님의 사람(딤후3:17). 반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내려 부를 때도 있습니다. 티끌, 안개, 지렁이 같은 야곱, , 죄인, 탕자.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은 전자 보다 후자에 속합니다. 갈릴리는 벽지입니다. 말씨가 투박합니다. 결코 선지자가 나올 수 없는 고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결코 제자들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 갈릴리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존귀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자신을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옛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이라고 부른 천사들은 아주 의미 있는 표현을 씁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가리켜 이 예수는이라고 말합니다. 영어 성경은 이와 똑같은(동일한) 예수”(This same Jesus)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너희들과 갈릴리에서 함께 했던 바로 그 예수님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바로 그 예수님이다.’ ‘너희들이 믿고 따르는 바로 그 예수님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로 변함이 없는 바로 그 구세주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천국에서 가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틀림없이 , 이 예수님!”이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어느 때는 예수님이 정말 계신가라는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나를 구원하셨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갈 때 바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바로 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 바로 그 분! , 바로 그 예수님이시다! 당신이 그 예수님 맞아요! 맞아요!”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천사들은 바로 지금 하늘로 올라가신 똑같은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모습 이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소망을 말합니다. 성도에게 과거가 있습니다. 성도는 과거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과거에 집착하면 안됩니다. 성도는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과거 집착형입니다. 정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집착하지 마세요.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갈릴리에 집착하면 안됩니다. 이제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천사들은 왜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말했을까요? 그것은 재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재림 준비를 할까요?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시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말씀을 보셨습니다. 기도를 하셨습니다. 전도를 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하며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지금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 무엇을 하고 있어야 주님이 가장 좋아하실까? 기도, 예배, 전도, 성경연구 등등 생각해보았습니다.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1365일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 삶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은 내 삶을 다 내팽개치고 기도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 주님이 오셔서도 사업가는 사업 계획을 짜야 합니다. 직장인은 일을 해야 합니다. 가정주부는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 학생은 학교를 가야 합니다. 땀을 흘리고 힘들고 어려워도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멈추면 안됩니다.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라는 천사의 말은 더 이상 허공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너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성경(8:31, 9:1,2,11, 11:7, 17:8, 20:1,3)에 무저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저갱(無低坑, Abyss)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밑으로 쑥 빠지는 꿈입니다. 느낌이 정말 싫어요. 꿈을 깨고 나서도 아주 찜찜해요. 논 같은데 가면 수렁이라는 진흙탕이 있습니다. 수렁에 빠지면 계속 빨려 들어갑니다. 서서히 밑으로 들어갑니다. 느낌이 정말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수렁에 빠지면 기겁을 하고 나옵니다. 지옥이라는 곳은 밑이 없습니다.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악인은 밑바닥이 없는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듯 내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UFO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우주선이 땅에 있는 사람을 빨아올리듯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 그렇게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은 아래가 아닌 위로 올라가면서 마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눈을 세상이 아니라 저 위 천국에 고정시킵니다. 다시 오실예수님께 고정시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구약 성경에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456번 나옵니다. 주님의 재림 예언은 구약에 1200, 신약에 318번 도합 1518번 나옵니다. 456번 예언된 예수님의 초림(初臨)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1518회나 예언된 재림 예언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의 재림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재림은 천사의 말입니다. 재림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재림은 진짜입니다. 우리 눈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께 고정시킵니다. 세파에 흔들리지 맙시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똑바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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