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독수리 날개로 업어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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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19:4
주일오전예배 | 2017-12-1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18431111일에 발표)라는 동화는 발표 된지 20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명작동화입니다 

어느 연못가에서 살고 있던 엄마 오리가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품고 있는 알들 중에 색이 검고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알에서 아기 오리가 한 마리씩 태어났습니다. 검고 큰 알에서도 새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습이 오리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몸집도 유난히 컸습니다. 모습이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싫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남달리 크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다른 오리 새끼들에게 조롱당합니다. 심지어 형제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합니다. 집 안팎으로 왕따를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엄마에게까지 외면을 당합니다. 상대를 해주는 오리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미운 오리 새끼는 구박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떠납니다.

집을 떠난 미운 오리 새끼는 혼자 사는 어떤 마음 착한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됩니다. 거기서 미운 오리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습니다. 오리는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키우던 고양이와 닭이 샘을 부린 것입니다. 고양이와 닭은 오리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미운 오리는 할머니 집에서도 살 수 없게 됩니다.

할머니 집을 나온 오리는 숲속을 해매다 어느 호숫가에 도착합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립니다. 미운 오리는 추위에 떨며 쓰러집니다. 마침 지나가던 나무꾼이 미운오리를 발견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 줍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오해로 쫓겨나고 맙니다.

나무꾼의 집에서 쫓겨난 오리는 무작정 걷습니다. 얼마쯤 가자 큰 호수가 나왔습니다. 미운 오리는 호숫가 근처에 있는 바위틈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봄이 왔습니다. 미운오리는 날개가 근질거리는 것 같아서 날개 짓을 합니다. 순간 오리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미운오리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기뻤습니다. 바로 자기가 백조였던 것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합니다.

저는 안데르센이 자신의 인생에 백조에 대한 열망을 이 동화에 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해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백조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하얀 백조가 되어 하늘을 멋지게 날아오르는 백조의 꿈, 백조가 아니면 학이라도 되고 싶은 염원, 이것이 인간 내면에 있는 열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누구나 백조가 되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겪는 그 고통을 하나님의 은혜로 승화시킬 때 아름다운 백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는 이것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독수리에 대한 열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학도 백조도 아닌 독수리가 되기를 열망하십니다. 독수리의 꿈!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입니다.

1. 독수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꼭 두 달 만에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거리는 약 240km정도입니다. 그들은 지금 시내산 앞 광야에 장막을 치고 있습니다. 시내산 앞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그 첫 말씀이 바로 독수리입니다.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었다>입니다. 왜 하나님은 첫 말씀으로 독수리 날개 이야기를 하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 살았습니다. 요셉이 30살에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110세를 삽니다. 요셉이 죽고 요셉이 애굽에서 잊혀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살이가 시작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잊혀지는 기간을 50년 정도로 잡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300년 정도를 애굽에서 종살이 한 샘입니다. 선조 대대로 종입니다. 나라 전체가 노예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 민족이 되었습니다. 3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에는 노예근성이 뿌리 깊이 박혔습니다.

이제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나왔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해방의 기쁨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문제는 정신입니다. 몸은 자유이었지만 정신은 노예의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독수리를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레로나르도 보프라는 사람의 독수리와 닭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보프는 브라질 사람으로 라틴 아메리카 사회종교운동가입니다. 이 책에서 보프는 <독수리와 닭>에 관한 의미심장한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독수리 새끼를 사로잡아 자기 집 닭장에 넣어 키웠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닭들과 함께 낟알을 쪼아 먹으며 커다란 독수리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자신이 닭인 줄 알고 있는지 전혀 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날지 않는 독수리가 있다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졌습니다. 어느날 농부의 집에 한 조류학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독수리는 반드시 날게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조류학자는 독수리의 근성을 깨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먼저 조류학자는 독수리를 그 집 지붕 위에 올려놓습니다. 높은 곳에서 독수리가 날아오를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날아오르기는커녕 비틀거리며 걸어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조류학자는 또 다른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닭과 함께 살며 몸에 밴 닭의 근성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조류 연구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독수리를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걸어서는 절대 내려올 수 없는 아주 높은 절벽 위에 독수리를 세워놓고 그 뒤를 막아버렸습니다.

독수리가 날거나 아니면 계속 그 곳에 머물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결국 독수리는 자신의 발밑에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몸을 던졌고 그렇게 유유히 날기 시작했습니다. 높이, 아주 높이 그리고 멀리 더 멀리 날아가 마침내 창공의 푸르름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독수리가 닭이 아닌 독수리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프는 <모든 인간은 그의 내면에 독수리의 성향과 닭의 근성을 함께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가 되기를 포기하고 닭의 삶에 안주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노예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속에는 여전히 노예근성이 남아 있습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독수리의 속성을 깨우고 싶어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적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에 여전히 그 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주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 뿌리박힌 종의 근성이 우리로 자유한 독수리가 되지 못하도록 따라 다니면서 괴롭힙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은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자유하지 못한 것이 많아요. 가끔 제 모습을 보며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지?’ ‘좀 더 다르게 살 수는 없을까?’ 이런 여러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어요. 계속 연약함이 반복돼요.

현대 사회는 중독사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에 빠져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또 게임에 중독됩니다. 이거 한 번씩 해주어야 좋아요. 안해주면 왠지 근질근질해요. 자기 자신을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사람마다 무언가에 매여 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계속해서 독수리가 아닌 닭으로 살게 합니다. 사탄은 무언가에 잘 매이는 연약한 인간의 속성을 이용해 우리를 여전히 자신의 노예로 부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닭이 아닌 독수리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독수리 날개로 우리를 업었다고 하셨습니다. 독수리가 닭을 업겠습니까? 참새를 업겠습니까? 독수리는 자기 새끼만 업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첫 마디가 독수리일까요?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자유하게 사세요.

미운 오리 새끼내용 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오리 우리에서 자랐으면 어떠니, 너는 백조 알에서 태어난 존재인데.” 여러분! 우리는 마귀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는 세상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마귀의 새끼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 알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마귀 새끼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기를 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독수리 비전입니다.

2. 날개로 너희를 업어

독수리는 몸에 비해 날개가 아주 큰 새입니다. 다른 새 보다 날개가 유독 큽니다. 날개 크기가 70~90cm, 꼬리길이 3541cm 가 됩니다. 날개를 펴면 2m가량 됩니다. 어떤 것은 2m가 훨씬 넘는 것도 있습니다. 독수리는 아주 위협적인 새입니다. 그래서 독수리 날개는 주변을 압도하는 권위와 능력을 상징하는 말로 성경에 쓰였습니다.

<이사야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주변 환경은 상관없어요. 날개 치며 올라가는 거예요. 독수리는 고아야든 벼랑이든 어디든 날아오를 수 있어요. 그런데 독수리의 이 날개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아주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새로 유명합니다.

독수리는 둥지를 높은 산의 벼랑의 불쑥 튀어 나온 바위 위나 높은 나무 위에 짓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자라 깃털이 생기고 날개가 커져도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만 먹으려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이 독수리나 사람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이런 새끼 독수리를 어미 독수리는 강제로 밀어 둥지 밖 벼랑으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새끼 독수리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날개를 퍼덕입니다. 하지만 날지는 못합니다. 한번도 날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의 주변을 맴돌다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급강하 하여 날개를 쫙 펼쳐 새끼를 받아 올립니다. 이런 과정을 수십번 반복합니다. 독수리는 태어날 때부터 크고 강한 날개를 소유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수리는 더욱 강한 날개를 갖게 됩니다. 독수리는 이 혹독한 훈련으로 창공을 나는 독수리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여러분! 닭이 나는 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여러 번 봤습니다. 다리와 날개 힘을 이용해서 아주 조금 날 수 있습니다. 난다기 보다는 좀 멀리 점프 수준입니다. 또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날개 짓을 하면 조금 날기도 합니다. 이 때 닭은 두려움 때문인지 날개 짓하며 꼬꼬댁 꼬꼬 하며 나 죽는다고 오두망정을 다 떨어댑니다. 막 후다닥 거립니다.

닭은 새끼 병아리를 벼랑 아래로 절대로 밀지 않습니다. 왜요? 새끼를 받을 수 있는 강한 날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떨어뜨려도 날 수 있는 크고 강한 날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병아리는 병아리입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벼랑 아래로 새끼를 밀어냅니다. 새끼를 받을 수 있는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는 독수리이기 때문에 결국 날개 됩니다. 왜 벼랑으로 미나요? 통닭으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독수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에 살다보면 조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웬만하면 잘 뜁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얼굴을 가리고 엄마하고 뛰어내립니다. 발과 엉덩이하고 거의 동시에 철퍼덕하며 떨어집니다. 뛰어내린다고 하기 보다는 떨어진다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 아이들이 이렇게 놀립니다. “통닭이 떨어지네!”  여성분들!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철없던 시절에 하던 말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떨어질 일이 많습니다. 안떨어지는 인생 있습니까? 올라가기만 하는 인생이 있습니까? 다 떨어집니다. 그런데 보세요.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큰 독수리 날개가 있습니다. 그 독수리 날개로 떨어지는 우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날개에 업힌 우리들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떨어질 때 이왕 떨어지는 거 통닭처럼 떨어지지 마세요. 닭처럼 나 죽는다고 호들갑 떨지 마세요.

성경에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한 명령이 무엇인지 아세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366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이렇게 많이 하셨을까요? 사람은 두려움에 약합니다. 게다가 세상은 온통 두려움 천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독수리 날개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여러분! 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성경에서 찾아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리차드 범브란트라는 목사님입니다. 이 분이 쓰신 하나님의 지하운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루마니아 공산 치하에서 목회하다가 이유 없이 체포되었습니다. 3년 동안 빛도 안 들어오는 독방에 갇혀 있다가 사형언도를 받고 맙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절망하며 원망 섞인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주의 일을 하다 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합니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종아,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몇 번 기록되어 있는지 아느냐?” 범브란트 목사님은 그 말씀에 동그라미를 치며 성경을 읽어내려 갔습니다. 세어보니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6번이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왜 내가 366번 그 말을 기록해 놓았다고 생각하니? 1365일 하루하루 걱정하지 말고 살라고 그런 거란다.” 범브란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1년은 365일인데 왜 366번을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성령님이 그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너는 4년에 한 번씩 윤년이 돌아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윤년이 되면 1년이 366일이란다.” 범브란트는 말씀을 깨달은 후에 원망이 감사로 바뀌어 기쁨으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4년 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출소했습니다.

여러분! 매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인 독수리 날개로 매일 여러분을 업어주십니다.

3. 내게로 인도하였음이라

그런데 이상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 이 말씀을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업어서 내게로 인도했다.” 표현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원래 표현은 이래야 맞습니다. “누군가 너희를 업어서 내게로 인도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표현은 인도하여 가신 분도 하나님이고 결국 만난 분도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업어서 내게로 인도했다.”고 하실까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호자, 인도자, 공급자, 위로자, 치료자로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3:5-6절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천만의 적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편안히 자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밤에 주무시지 않고 보초를 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보초를 서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삶 속에서 다윗과 늘 동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하나님과 때때로 마주 대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는 것입니다. 이거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지금 시내산 앞에 와 있습니다.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거리는 240km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달을 걸어왔습니다. 두 달 동안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키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앞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내산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입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하란으로 갑니다. 가는 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20년 동안 야곱을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창대하게 됩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하나님 앞에 단을 쌓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야곱이 새로운 언약의 관계로 들어갑니다. 이제 야곱은 예전의 야곱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난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가 우리의 세상살이와 같습니다. 세상에 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셨습니다. 독수리 날개로 여러분을 업어서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인도하신 곳이 여기입니다. 이 자리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여기는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마주대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새롭게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예배자로 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는 사람 가운데 한국인 아가씨가 한 사람 있는데 그녀는 김 윅스라는 맹인입니다. 그녀는 6.25 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어떤 미국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애나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받아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빌리 그레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놀라운 간증을 하곤 합니다.

나의 인도자는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 2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아니 당장 내일 일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며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일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내 생애에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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