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감사의 선두주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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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11:17
주일오전예배 | 2017-11-1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교회에 종종 돈을 좀 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대부분 걸인들이세요. 저는 이런 분들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친절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분들이 오셔서 돈을 달라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밥을 좀 사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밥을 못 먹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디 어디를 가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더 이상 여기서 못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차비를 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려고 하는 곳은 대부분 먼 곳입니다. 광주 목포 부산 포항 강릉 등등 먼 곳입니다.  

7-8년 전인 것 같습니다. 키는 작지만 체격이 아주 다부진 분이 오셨어요. 돈을 좀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많이 달라는 거예요. 대부분 오시는 분들은 말을 빙빙 돌립니다. 대 놓고 돈을 달라고 못하세요. 그런데 이 분은 아주 당당하세요. 그냥 달라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달라는 대로 다 줄 수 없잖아요. 그래서 3천원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3천원을 그 자리에서 확 찢어버리는 거예요. 누구를 거지로 아냐는 거예요. 그리고 화를 내며 저한테 막 해대는 거예요. 제가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에 누가 와서 돈을 드리려고 하면 작다고 또 찢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입니다. 교회에 상담을 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330분까지 오겠다는 거예요. 느낌이 돈을 달라고 오시는 것 같아요. 예약을 하고 오는 걸인은 처음입니다. 얼마를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오른쪽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 왼쪽에는 오천 원짜리를 넣어놓았어요. 막 줄 수 없잖아요. 조금 있으니까 오셨어요. 나이는 63세이고 이름은 김○○라고 하세요. 나이하고 이름까지 가르쳐주는 걸인도 처음이에요.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하시는 중간에 거짓말을 하시는 거예요. 거짓말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그냥 알게 되었어요. 어쨌든 그 분의 말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결론은 부산을 가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직접 말씀은 못하세요. 계속 빙빙 돌려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멀리 가시니까 오천원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오른 쪽에서 오천 원짜리를 꺼냈어요. 그랬더니 천 원짜리인 거예요. 제가 거꾸로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순간 천원은 너무 한 것 같아서 오천 원짜리를 꺼내 6천원을 다 드렸어요. 그러면서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니라고 어디를 또 오냐는 거예요. 이제 안오겠다는 거지도 처음이에요. 또 오거든요. 그러면서 감사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몇 번씩 감사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사까지 꾸벅하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돈을 받고 감사하다고 한 분이 한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냥 휙 가버리거든요. 그러면 오히려 돈 준 사람이 멋쩍어요. 그런데 이 분이 감사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여러 차례. 비록 거지이지만 그 분이 달라 보이는 것 있죠?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먼저 감사하라고 귀한 분을 보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구걸하시는 분이 감사하다면 우리는 백배 천배 더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감사합시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했습니다. 이전에는 예루살렘 성이 황폐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을 재건하고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킵니다. 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배치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느헤미야는 아주 특별한 일을 합니다. 그것은 맛다냐라는 사람을 통해 백성들의 감사를 인도하게 한 것입니다.

 

1. 감사와 찬양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라    

사람들의 감사를 인도하게 된 맛다냐는 누구일까요? 성경은 맛다냐를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맛다냐 위로 3대에 걸쳐 조상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맛다냐의 아버지는 미가입니다. 조부는 삽디입니다. 그리고 증조부는 아삽입니다. 아삽, 삽디, 미가 그리고 맛다냐 순입니다. 보통 성경이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누구누구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만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맛다냐는 증조부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 여러 명의 미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맛다냐의 아버지 미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성경에 삽디라는 사람이 여러 명 나옵니다. 그런데 맛다냐의 할아버지인 삽디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삽디나 미가는 이렇다 할 신앙적인 업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삽에 대한 정보는 많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맛다냐를 아삽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아삽은 어떤 사람일가요? 왜 맛다냐가 아삽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아삽은 다윗 시대에 최고의 뮤지션(musician) 중에 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성가대를 만든 사람입니다. 아삽은 다윗이 만든 성가대의 최초의 지휘자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역사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아삽은 헤만과 에단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찬양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또 아삽은 제금의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아삽은 재능만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감각도 탁월했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 12편이 아삽의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50, 73-83). 모두 주옥같이 아름답고 깊은 영성이 느껴지는 시들입니다. 그리고 아삽은 선견자이었습니다. 역대하 2930절에 선견자 아삽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아삽은 탁월한 음악가이면서 선견자이었습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영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삽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이면서 깊은 영성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성경이 아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뛰어난 재능과 영성 때문일까요? 물론 이런 이유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삽이 한 정말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삽이 찬양과 감사의 우두머리라는 것입니다.  

<역대상16:4-5> 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5. 아삽은 우두머리요 그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삽을 대부분 음악가 또는 성가대장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에 음악을 담당한 뛰어난 음악가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삽은 음악만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아삽은 선견자이었습니다. 아주 뛰어난 영성가입니다. 그가 하는 음악에는 탁월한 재능과 함께 깊은 영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에 대한 칭송과 감사가 있습니다. 다윗왕은 아삽을 찬양과 감사의 우두머리로 세웠습니다. 영어 성경은 우두머리라는 말을 ‘the chief’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장관 혹은 국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아삽은 찬양과 감사의 장관입니다.  

다윗시대에 국방부 경제부 교육부 정보부 외교부 사회부 등 여러 부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감사부와 찬양부입니다. 아삽은 감사부와 찬양부의 장관입니다.  

아삽은 후손들에게 찬양으로 기억되는 조상입니다. 그리고 감사로 기억되는 조상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삽은 감사의 조상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감사와 찬양으로 기억되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 원망 불평 시기 질투 미움 분냄 짜증의 부모가 아니라 감사 찬양 기쁨으로 기억되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엄마는 매일 짜증이야! 매일 울상이야! 우리 아빠는 매일 화를 내셔! 이것 안됩니다. 감사로 기억되는 부모가 되세요.

 

2. 감사의 선두주자가 되라  

맛다냐는 증조부 아삽을 이어 느헤미야 시대에 백성들의 감사를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맛다냐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라는 말은 기도에 감사하는 말을 선창하는 두목(우두머리)’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성가대의 선창자 혹은 지휘자라는 의미입니다. 맛다냐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의 말씀을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멋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여러 번역 성경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개역성경은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감사를 인도하는 어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나도 감사를 인도하는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주님 감사합니다.”30번 했습니다. 목요일에는 50번을 했습니다. 토요일에는 130번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원망 불평을 인도하시는 어른이 되지 마세요. 시기 질투 미워하는 어른이 되지 마세요. 아이들이 따라합니다. 욕하는 아이들을 혼내기 전에 욕을 하지 않는 어른이 되세요. 불평하는 아이들을 훈계하기 보다는 먼저 감사하는 어른이 되세요. 그래야 아이들이 감사를 따라합니다. 여러분! 감사를 인도하는 어른이 되세요.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은 감사의 찬송과 기도를 인도하는 지휘자라고 번역했습니다. 감사의 지휘자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지휘자가 되십시오. NIV감사와 기도를 인도하는 감독’(the director who led in thanksgiving and prayer)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감사를 관리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불평 원망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KJV기도에 감사를 시작하는 교장’(principal to begin the thanksgiving in prayer)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아삽은 감사학교 교장이라는 말입니다. NASB는 감사의 선두주자(the leader in beginning the thanksgiving at prayer)라고 번역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불평하고 원망할 때 감사를 인도하는 선두 주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 기도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테필라입니다. 테필라는 기도라는 뜻도 있지만 찬양이라는 뜻도 있는 단어입니다. 히브리 개념에서 기도와 찬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앞에서는 기도라고 했는데 뒤에서는 노래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하박국 3). 기도와 찬양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시이면서 노래입니다. 또 시편은 기도이면서 찬양입니다. 시편은 인간의 삶과 감정과 마음 그리고 희노애락을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이 진솔하게 표현한 노래이면서 기도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노래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는 감사가 꼭 있어야 합니다. 즉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한숨이었습니다. 성은 황폐되었습니다. 사방의 대적들에게 많은 유린을 당했습니다. 보호막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방으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감사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했습니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회복하게 한 것입니다.  

수요일에는 포항에서 지진이 있었습니다. 기록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지진 중 두 번째로 강한 것입니다. 여진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잽을 맞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포항 경주 사람들은 지진 트라우마로 지쳐 있습니다. 어제는 중국에서 지진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염려 근심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늘고 감사는 없어지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 오히려 감사하는 성도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감사를 인도하는 감사의 선두주자가 됩시다. 맛다냐는 감사의 선두주자이었습니다.

 

3. 후대에 감사를 물려주라  

아삽의 음악적 재능과 영성은 그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역대상25:2> 아삽의 아들들은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니 이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을 따라 신령한 노래를 하며  

아삽의 아들들은 아버지 아삽처럼 신령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도 아삽의 후손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에스라3: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아삽과 아삽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시대 맛다냐는 아삽처럼 감사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맛다냐의 형제 박부갸는 맛다냐에 버금가는 음악가였습니다. 버금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아래 지휘자라는 말입니다. 맛다냐가 부장이라면 박부갸는 차장이라는 뜻입니다. 두 형제가 함께 대장과 차장이 되었습니다. 아삽은 후손들에게 감사와 찬양을 유산으로 남겨주었습니다. 아삽의 후손들은 아삽으로부터 찬양과 감사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감사를 우리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십시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게 합시다.

 

짐 스토벌의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원제 The ultimate life)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석유 대부호 레드 스티븐슨이 사망하면서 유산분배가 시작됩니다. 스티븐슨은 무능력한 자식들에게 재산을 불만 없이 나누어 줍니다.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들은 탐욕스런 몸짓으로 기뻐 날뜁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조카 손자인 제이슨에게는 12가지의 과제를 이행 해야만 최고의 유산을 남겨준다는 유언을 남깁니다. 제이슨은 24년 동안 부자 할아버지 덕에 돈을 공기 마시듯 쓰며 살았습니다. 고생이나 부족함 따위는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감사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생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살아온 손자에게 기본적이지만 소중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려고 합니다. 제이슨은 할아버지의 유언이 불만이었지만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제시된 과제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이슨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첫 번째 유산이 일입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을 해도 그것이 노동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안식의 기쁨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추수의 기쁨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사세요. 열심히 공부하세요. 그래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습니다.

열 번째 유산이 감사입니다. 이 챕터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뭔가 더 갖고 싶을 때는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지 마시고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합시다.  

스티븐슨에게는 황금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스티븐슨의 황금리스트는 재산 목록이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귀중품의 목록도 아닙니다. 돈을 관리하는 통장리스트도 아닙니다. 황금리스트는 삶의 감사한 일의 목록입니다. 스티븐슨은 아침마다 감사한 일 열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스티븐슨은 감사한 일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풍요로웠습니다. 스티븐슨은 자신이 가진 많은 돈이 아니라 아침마다 감사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슨은 손자 제이슨에게 돈이 아니라 감사를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감사를 통한 풍요로운 삶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명품 옷이나 액세서리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삶이 우리를 만족하게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한 해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 후대에 그 감사하는 삶을 물려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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