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너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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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4:7~14
주일오전예배 | 2017-11-1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한국인의 15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여자들이 친구에게 어머 너 왜 이렇게 이뻐졌니??”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머 너 방학 동안 정말 이뻐졌다!’, ‘너 그동안 엄청 예뻐졌다!’, ‘너 안보는 사이에 정말 이뻐졌다!’ 이런 말들은 그저 예의상 하는 인사라고 합니다. 물론 안 그러신 여성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 말은 부러움이나 시기심에서 나오는 말이기도 하답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잘될 때 생기는 마음의 병입니다. 겉으로는 축하해주지만 속으로는 시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질투심을 더 원색적으로 표현해주는 속담이 있습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그렇지 못한데 상대가 잘나가면 상대적 박탈감이 아주 큽니다.  

영국 개방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피터 케이브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하다고 느끼는 심술 굳은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샤덴프로이데를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입니다. 케이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때때로 샤덴프로이데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고급 양복을 입고 빙글빙글 지팡이를 돌리면서 또각또각 산책을 하는 자신감 넘치는 신사가 있습니다. 아주 멋있죠? 순간 날아가는 비둘기가 변을 신사의 양복에 싸버립니다. 이런 장면은 웃음이 저절로 터지게 합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우아한 여인이 망가질 때나 멋쟁이 신사가 무너지는 모습은 우리를 왠지 모르게 즐겁게 해줍니다. 속으로 잘 난체 하더니 꼴이 우습게 됐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우리는 가끔씩 다른 사람의 불운에 대해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케이브는 샤덴프로이데는 인간적 감정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인생이라는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샤덴프로이데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케이브의 해석대로라면 우리인간의 삶은 시기 질투도 그런대로 정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의 질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질투는 하지 마세요. 조금만 하세요. 너무 많이 하면 추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부흥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시기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를 방해하고 대적하기도 합니다. 부흥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유다의 대적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대적하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1. 사탄의 분노  

유다 백성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건축(재건)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유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연약했습니다. 반면에 성의 건축은 대공사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사방의 대적들이 유다를 조롱하며 성의 건축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열악한 환경과 대적들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의 건축을 착착 진행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건축이 차질 없이 진행되자 대적들이 아주 싫어했습니다.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산발랏은 예루살렘의 북쪽 사마리아 성의 총독입니다. 아라비아는 요단 동편 아래쪽입니다. 암몬은 요단 동편 위쪽입니다. 아스돗은 예루살렘의 남서쪽입니다. 대적들이 예루살렘 사방으로 포진해 있습니다. 공사가 잘 진행되자 대적들은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것도 분노할 만큼 싫어했습니다. 7절 끝에 심히 분노하여라고 했습니다. 심히 분노했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분노를) 불태우다’, ‘(분노가) 불붙다는 뜻입니다. 보통 싫어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불이 붙이 일어날 정도로 싫어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적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시기해 왔습니다.  

<스가랴 1: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조금 화가 나셨습니다. 조금 노하셨다는 말은 잠시 노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적들은 이스라엘에 화를 많이 냈습니다. 힘을 내서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혔습니다. 아예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분노했습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가 얼마나 잘됐는지 100배나 얻었습니다. 이삭은 거부가 됐습니다. 그랬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가지고 있는 우물을 매워버렸습니다. 이삭은 잘 된다는 이유 때문에 블레셋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삭이 그랄로 갔습니다. 그랄에서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이 터졌습니다. 그랄 사람들도 이삭을 시기했습니다. 요즘이야 우물이 별 것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물이 하나 터지는 것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의 가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강성해져 갔습니다. 그랬더니 애굽이 분노했습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의 씨를 말려버리려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태어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졌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강성해지는 것을 시기하고 분노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는 인류 역사에서 5대 제국으로 꼽히는 강대국입니다. 5대 제국들이 모두 이스라엘에 분노했습니다. 페르시아 시대에는 하만이 나라 안에서 유대인의 씨를 모두 말려버리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멸족되는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성경 시대에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에 분노했습니다. 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이것이 성경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이런 성경의 역사는 오늘 교회 시대에도 우리에게 영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분노합니다.  

<요한계시록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용은 사탄입니다.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기 위해 모래 위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쫓겨난 자신의 처지 때문에 생기는 시기 질투 대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영적 성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영적 부흥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흥은 사탄이 시기하고 분노할 만큼 값지고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사탄이 좋아합니다. 우리가 뒤로 물러나면 사탄이 좋아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로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닙니다. 사탄이 시기하고 분노하도록 우리 안에 영적 부흥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2. 사탄의 방해 전략  

산발랏은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본격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산발랏의 방해 전략은 유다 백성들을 곁길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삼천포로 빠지게 하는 작전입니다.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요란하게 하자라는 말은 곁길로 빠지게 하자’, ‘방황하게 하자’, ‘혼란스럽게 하자는 뜻입니다. 지금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성을 쌓는 일에 아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곁길로 빠져 성을 쌓지 못하게 하자는 말입니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자는 말입니다. 삼천포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봅시다. 먼저 군사적으로 위협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자고 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성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인력이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인구를 4,500으로 추정합니다. 4,500명 중에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솔로몬이 성전 건축할 때 관리자가 3,100, 역군(공사장에서 삯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30,000, 담꾼(무거운 물건을 나르며 날품을 파는 사람)70,000, 산에서 돌 뜨는 자가 80,000이었습니다. 모두 183,100명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체 인구수가 4,500여명에 불과합니다. 물론 성의 규모가 많이 다릅니다. 어쨌든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아무 사건 없이 공사가 진행이 되도 힘이 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적들이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야로 경계 근무까지 서야 했습니다. 일이 가중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입에서 힘들어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성을 쌓으려면 이전에 무너진 성벽의 잔해를 치워야 합니다. 성을 쌓으며 경계근무까지 서게 되자 폐허가 된 잔해를 치우는 일이 버거웠습니다. 게다가 성벽의 잔해는 지난 날의 아픔의 흔적입니다. 유다가 패망할 때 남은 것입니다. 선조들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의 흔적입니다. 지난 날 패망의 아픔이 유다인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이런 지친 상황에서 산발랏 일당에 기습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유다 백성들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루살렘 변방에 사는 동족들이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산발랏 일당들이 예루살렘 변방에 사는 유다인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변방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산발랏의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도움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그마치 열 번이나 도움 요청이 있었습니다. 안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성을 쌓다가 각지로 흩어지게 되며 성의 재건은 끝입니다. 가자니 성을 쌓지 못하고 안 가자니 동족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산발랏은 바로 이 점을 노렸습니다. 산발랏은 유다인들의 정신을 못 차리게 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탄의 전략 전술입니다. 사탄은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고 요란하게 합니다. 세상일에 정신을 못 차리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흐릿하게 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으로 우리 마음을 요란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삼천포로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다른 곳에 빠지게 합니다. 여러분!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힘들고 분주하시죠? 분주하고 피곤하고 힘들 때 일수록 하나님께 마음을 더욱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혼란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더욱 집중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주야로 경계를 서게 했습니다. 백성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성을 쌓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집중했습니다.  

레스 휴이트와 찰리 셀프의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이 중심을 잡고 끝까지 해내라입니다. 이 챕터에 일에 집중하는 네 가지 해법이 나옵니다. 첫째, ‘내버리라’(Dump)입니다. 둘째, ‘위임하라’(Delegate)입니다. 셋째, 연기하라(Defer)입니다. 넷째, 지금 바로 하라(Do)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들을 좀 내버려야 합니다.  

시편 166절에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역을 내가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것을 충실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것에 집중하세요. 다른 것에 자꾸 고개를 돌리지 마세요. 나머지는 다른 사람을 주든지 맡겨버리세요. 이것이 바로 믿음을 중심으로 한 집중의 전략입니다.  

고린도전서12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일하는 것은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속에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너무 많은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세요.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것에 집중하세요.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마세요. 우리가 혼란스러운 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3. 너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싸우라  

느헤미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14절 상반절>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합니다.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합니다. 세상은 힘과 돈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지만 돈도 힘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을 두려워하면 반드시 올무에 빠집니다.  

<잠언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안전하리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놓여지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악인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습니다.  

14절에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일어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쿰입니다. 쿰은 일어나다’, ‘자신을 유지하다’, ‘확고하게 되다’, ‘고정되다등의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위협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굳게 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러분의 자리에 굳게 서세요. 사탄이 요란하게 해도 흔들리지 마세요.  

둘째, 너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싸우라고 했습니다.  

<14절 하반절>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라는 말이 히브리 성경에는 너희 형제와 너희 딸과 너희 아들과 너희 아내와 너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되어 있습니다(YLT - fight for your brethren,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your wives, and your houses). ‘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결국 나를 위하여 싸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가족을 위하여 싸우세요. 믿음을 지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나를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싸움을 가르치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인 싸움은 가르칩니다.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세력은 영적으로 악한 세력입니다. 이 싸움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은 믿음으로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선한 싸움입니다.  

<디모데전서6:11-12>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탄의 분노가 있습니다. 사탄의 위협이 있습니다. 사탄의 방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세요. 돈도 힘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세요.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세요. 여러분과 여러분의 딸과 여러분의 아들과 여러분의 집을 위하여 싸우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6)  

사냥개는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냥개 한 마리가 주인과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산 중에서 사냥개는 호랑이와 맞닥뜨립니다. 사냥개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덤벼듭니다.  

멍 멍 멍 멍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사냥개를 보고 호랑이가 도리어 도망을 갑니다. 호랑이가 얼마나 급했는지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원래 호랑이는 나무를 잘 못 탄다고 합니다. 하지만 급할 때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주인이 왔습니다. 주인은 총 한 방으로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여러분! 왜 사냥개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사냥개가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사냥개 뇌리에 새겨진 자아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짐승도 주인의 총 한방이면 끝이라는 자아상이 사냥개의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냥개는 주인의 총 한 방에 어떤 짐승이라도 쓰러져 죽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호랑이가 무서운 존재이지만 주인의 총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믿음이 사냥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3:5-6).  

여러분! 강하고 담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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