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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블레인 앨런의 『비난에 대처하는 10가지 방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제가 각색을 조금 했습니다. 어떤 닭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친구 닭이 수프를 맛있게 끓여왔습니다. 그런데 냄새가 이상했습니다. 감기에 걸린 닭은 친구에게 무슨 수프냐고 물었습니다. 친구 닭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습니다.
“닭고기 스프라네. 닭 가슴살과 다리 살을 잘게 썰어 먹기 좋게 끓였다네. 어서 먹고 기운을 내게.”
병든 닭은 차마 치킨 수프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그릇을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친구 닭이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어서 먹어.”
하지만 병든 닭은 치킨 수프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닭은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닭고기 수프는 감기에 좋아. 그리고 그 닭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애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먹어.”
여러분! 비난 험담 조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비난의 도마에 오른 사람은 비난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칼로 난도질당합니다. 그 사람은 비난의 도마 위에서 아주 잘게 잘립니다. 그리고 비난이라는 냄비 속에 든 비난이라는 물에 잠겨 수프가 되고 맙니다. 조롱이나 비난 그리고 험담은 그 사람으로 끓인 수프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교우나 혹은 친구의 험담으로 끓인 수프를 또 다른 교우나 친구에게 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수프를 누군가 여러분에게 준다면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비난이나 험담은 당하는 사람에게 아주 파괴적인 것입니다. 어쩌면 그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심하게는 하나님의 대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흔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에게 파괴적인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1. 원수의 조롱과 방해가 있다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은 있었지만 성(벽)과 성문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허물어버리고 성문은 불태워버린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1: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성벽과 성문은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막입니다. 고대에는 치안이 취약했습니다. 산적 떼나 도둑 떼들이 도처에서 출몰했습니다. 또 지역 간에 분쟁이 잦았습니다. 성벽이 없으면 끊임없는 크고 작은 침입과 싸움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또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늘 불안합니다.
내가 사는 집에 문과 벽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방만 있는 거예요. 밥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습니다. 마음 놓고 쉴 수 없습니다. 아무나 들어와서 막 가져가도 막을 수 없습니다.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집에는 반드시 문과 벽이 있어야 합니다. 고대에 성과 성문은 집의 담과 문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공동체입니다. 성전에서 늘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허물어진 성벽은 예배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데 담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창에 유리가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들 소리, 차 소리 때문에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배실에는 담과 문이 있어야 합니다.
유다인들은 성과 성문이 없어서 주변의 족속들에게 많은 약탈과 유린을 당했습니다. 신앙생활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성의 재건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 사마리아의 총독이었던 산발랏이 유다 백성들을 비웃었습니다. 성벽 재건을 방해한 것입니다.
<느헤미야4:1-2>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산발랏의 조롱의 말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했습니다.
‘미약한’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허약하다’(동사) 또는 ‘약골’(명사)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영양과 수분이 없어 바싹 말라버린 나무와 같은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힘의 근원이 없어진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아주 암울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암울할 정도로 세력이 아주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 말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저 유다 사람 약골들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너 같은 약골이 뭘 한다는 거야”라는 빈정됨입니다. 산발랏은 유다인들을 아주 무시했습니다.
둘째,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어떤 성경학자는(블렌킨소프) ‘그들은 그 모두를 하나님에게 맡기려는가?’라고 번역했습니다. 또 어떤 성경학자(윌리엄슨)는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하나님에게 위탁하려는가?’라고 했습니다. 성벽 재건은 유다인들의 힘으로는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나보다.’라는 비웃음입니다. 유다인의 신앙을 비웃은 것입니다.
셋째, “제사를 드리려는가?”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Williamson)는 이 말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데릭 키드너(Derek Kidner)는 이 말을 “이 미친 사람들은 그저 기도(제사)를 드린다고 성벽이 다시 세워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것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면 성벽이 저절로 세워진다고 생각하나봐”라는 조롱입니다. 이 말은 기도해도 예배를 드려도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신앙도 믿음도 다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보았자 기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장춘식 목사).
제가 지난 주 월요일에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이야기 중에 그 분이 이런 말을 해요. “원래부터 안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예요. 그런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걸 이제 알았어요. 맞아요. 이거 원래부터 안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제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도는 거예요. ‘원래부터 안되는 거예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예요.’ 이런 말들이 떠나지가 않아요. 이 말이 나중에는 이렇게 바뀌는 거예요. ‘기도해도 안되는 거 아냐?’, ‘기도해도 소용없는 거 아냐?’ 그러니까 기도가 안돼요. 그래서 ‘바로 이것이 말의 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귀는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해요. 마귀는 믿음도 신앙도 예배도 다 필요 없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해요. 예배도 찬송도 못하게 해요. 믿음을 빼앗아가요. 산발랏은 유다인들의 예배를 비웃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수법입니다. 성도가 기도할 때 마귀가 가장 싫어합니다. 예배할 때 마귀는 힘을 잃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존귀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삭임에 속지 마세요.
넷째,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보군!’이라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는 원수들이 성벽재건을 방해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벽을 아주 신속하게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공사 구간을 42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성벽을 42구역에서 동시에 쌓아올리는 계획입니다. 성벽은 원래 한쪽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쌓아올려야 견고합니다. 그래서 도비야는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비웃은 것입니다. 아주 볼품없는 성벽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벽을 쌓아봤자 별 볼일 없는 것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방은 아주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느헤미야가 쌓은 성벽의 두께가 2m 74cm나 되는 아주 견고한 돌벽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조롱이나 비난의 말에 낙심하지 마세요. 조롱은 전혀 근거 없는 말에 불과합니다. 험담은 근거가 없는 거짓입니다.
다섯째,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라고 했습니다. 일으킨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야입니다. ‘소성시키다 살리다 회복시키다’는 뜻입니다. 성벽 재건에 쓸 만한 돌이 절대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라는 말은 ‘죽은 돌을 살아나게 해서 성을 중건하려고 하나 봐!’라는 말입니다. “돌도 없는데 성벽을 어떻게 건축하려고 하는가? 모레로 쌓으려고 하는가? 흙으로 쌓으려고 하는가?”라는 조롱입니다.
조롱 비난 험담은 사탄이 사용하는 방법 중에 가장 치사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이간질시키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조롱과 험담은 상대방의 흥분시키게 합니다. 또 낙심시킵니다. 그래서 결국 일을 그르치게 합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건축을 중단하기를 바랐습니다. 마귀의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마귀의 목적은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롱하고 험담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원수의 조롱과 방해가 있습니다. 원수가 조롱하고 방해해도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갑시다.
그리고 우리는 비난하는 말 하지 맙시다. 상대를 조롱하고 험담하는 말을 하지 맙시다. 대신에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시다. “성도님! 힘내세요. 기도하면 됩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반드시 길은 있습니다.”
2. 기도로 극복하라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에 굉장히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업신여김’(4절)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모욕, 경멸’이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의 비웃음에 아주 괴로웠습니다. 아주 큰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조롱과 비난을 받을 때 마음이 약해집니다. 자기의 처지를 보고 아주 심하게 낙심하게 됩니다. 이 때 마음을 다시 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마음을 강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아주 강한 기도를 합니다.
<느헤미야 4:4-5>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화살을 날리듯이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라고 외칩니다. 여기 ‘들으시옵소서’라는 말은 ‘듣고 응답하시고 행하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가만히 있지 마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비난과 조롱을 기도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비난과 조롱과 험담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실제로 느헤미야의 기도에 힘입어 유다 백성들은 성벽 재건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데이브 얼리의 『나를 살리는 화살기도』라는 책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아프리카 콩고로 파송된 영국 선교사인 헬렌 로즈비어는 분만실에서 산모를 돕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산모는 미숙아와 두 살 난 딸을 남겨 둔 채 죽고 말았습니다. 콩고는 적도 부근에 있지만, 밤에는 강풍이 붑니다. 그래서 보온 물주머니로 갓난아기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더운 물을 담다가 그녀가 가진 마지막 보온 물주머니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로즈비어 선교사는 고아원 아이들의 기도 모임에서 갓난아이와 두 살 난 누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열 살 난 룻이 단도직입적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오늘 오후에 보온 물주머니 하나를 보내 주세요. 그리고 두 살 난 아이를 위해 인형도 보내 주세요!”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국 영국에서 소포가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포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콩고까지 소포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5개월입니다. 게다가 어느 누가 덥다 못해 뜨거운 적도의 나라 콩고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온 물주머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기도의 응답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반나절이 지나자 커다란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선교사님 마음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물주머니가 왔을까?’
로즈비어 선교사는 소포 속에 손을 넣어 잡히는 것을 끄집어냈습니다. 고무로 된 보온 물주머니였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둘러선 아이들 중에 룻이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이 인형도 보내셨을 거예요!”
룻은 소포 포장 바닥까지 뒤져 인형을 찾아냈습니다. 그 소포가 도착하는 데는 다섯 달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룻이 기도한 그 날에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가 기도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는 마귀의 조롱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성도의 무기입니다.
3. 코끼리처럼 묵묵히 가라
느헤미야는 기도한 후에 성벽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건축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성의 전부가 연결되었습니다. 성은 42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42개의 공사구간은 신속하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예루살렘 성벽을 14m로 봅니다. 그러니까 7m까지 이른 것입니다. 7m라면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의 안전을 어느 정도 지켜줄 수 있는 높이입니다. 단시간에 이런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일을 계속했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산발랏에 도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 쌓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느헤미야1장 6절 말씀이 표준새번역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 쌓는 일을 계속하였다. 백성이 마음을 모아서 열심히 일하였으므로 …”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산발랏의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성벽을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조롱과 방해에도 유다 백성들은 성벽 쌓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원수의 어떤 방해가 있어도 우리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둘째,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일에 집중했습니다. 6절 하반절에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표준새번역성경에는 ‘백성이 마음을 모아서 열심히 일하였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성경은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일한 결과 우리는 성벽 전체를 절반 높이까지 복구했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백성들이 산발랏의 도발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모았습니다. 성을 마음을 다해 열심히 건축했습니다. 사람들의 말 때문에 성을 건축하고자 하는 열심히 식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을 계속하십시오. 가정, 직장, 산업장에서 여러분의 일을 계속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예배하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기도를 계속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워도 계속하십시오. 결코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중단하는 것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산발랏의 뒤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산발랏의 개인의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유다인들의 역사를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 마지막에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즉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조롱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따라서 산발랏의 뒤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중지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중단하지 마세요. 계속하세요.
우리는 성과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들입니다. 원수의 조롱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예배를 드려도 소용없다고 합니다. 신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비난과 조롱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맙시다. 원수의 조롱과 비난을 기도로 극복합시다. 그리고 계속 합시다. 중단하지 맙시다. 멈추지 맙시다. 사탄이 방해가 있어도 계속 갑시다. 우리가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원래 방해는 있는 것입니다. 방해가 없는 일은 없습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던 시절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 말은 악인들이 아무리 별의 별수를 다 부려도 이루어질 것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듯이 나의 길을 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미국 최고의 여성 금융 전문가로 거론되는 수즈 오먼이라는 여성이 인도 스승한테서 들은 인생의 조언이 있습니다.
“개가 짖어도 코끼리는 묵묵히 간다.”
수즈 오먼은 CNBC에서 자산관리 프로그램인 <수즈오먼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즈 오먼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각자의 커리어를 쌓는 항해 중에 개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외부의 비판, 경쟁자들, 악질 상사, 우리를 깎아 내리는 동료 등이 그들이다.”
“내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성공을 위해선 이 같은 개들이 짖음에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개를 길들일 수 없지만 무시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들의 존재에도 평안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이용해 나는 평판을 높였다. 개들의 독설을 나의 덕행으로 바꾸는 것이 기쁘다.”
여러분! 개가 짖어도 코끼리처럼 묵묵히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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