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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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7:7-8
주일오전예배 | 2017-09-2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노아 골드스타인, 스티브 마틴 지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미 칠면조는 사랑이 많고 사려 깊으며 또한 새끼를 지극 정성으로 보호하는 좋은 어미 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어미는 새끼를 따뜻하게 하고 깨끗이 하고 또 품에 안에 보호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어미 칠면조의 자식 사랑법에는 매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새끼 칠면조의 칩칩이라는 소리에 의해서만 어미 칠면조의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새끼 칠면조의 냄새나 신체 접촉, 그리고 생김새는 어미 칠면조에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습니다. 오직 새끼의 칩칩소리가 있어야만 어미는 자기 새끼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끼 칠면조를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소리가 없으면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 생태학자인 폭스(Fox,1974)의 어미 칠면조의 박제된 족제비 실험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미 칠면조와 족제비는 천적 관계입니다. 족제비를 발견하면 어미 칠면조는 꽥꽥 소리를 지르고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할퀴는 등 살기등등하게 대응합니다. 폭스의 실험에서 박제된 족제비를 실에 매달아서 어미 칠면조에게 접근시키자 어미 칠면조는 즉각적으로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족제비에 녹음기를 내장하여 새끼 칠면조의 칩칩 소리를 내자 어미 칠면조는 놀랍게도 족제비를 우호적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품에 안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녹음기를 끄자마자 칠면조는 박제 족제비를 다시 공격하였습니다. 어미 칠면조의 모성적 본능은 칩칩이라는 소리 하나에 의해 마치 자동인형처럼 자동적으로 작동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동화된 행동이 어미 칠면조에만 국한된 형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칙적이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행동 양식은 생물의 다양한 종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가 반응하는 아기의 소리와 움직임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입니다. 울면 엄마는 보지도 않고 응가 했구나!” 그래요. 그리고 기저귀를 갈아줘요. 또 울면 배고프구나!” 그래요. 다른 사람은 몰라요. 엄마만 알아요. 지난 목요일에 엘리베이터에 2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와 엄마가 같이 탔습니다. 걸음마를 겨우 하는 것을 보니 이제 돌을 갓 지난 것 같아요. 낯선 사람들이 어색했는지 까치발을 뛰면서 두 팔을 높이 올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바로 안아줘요. 엄마가 반응하는 아기 소리와 행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위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여러 가지 일들에 반응하십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가장 많이 반응하시는 것이 우리들의 기도입니다. 이 시간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제목으로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명령으로서의 기도  

기도에 사용된 세 개의 동사가 모두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모두 명령형입니다.  

이길상 씨의 성서에서 본 하나님의 명령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길상씨는 이 책에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하라>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라>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둘째는 <하지 말라>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지 말라>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셋째는 <알라>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 가지 명령 형태에서 <하라>는 형태가 첫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항상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라는 명령 중에 기도명령이 가장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 중 기도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이 명령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결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결단으로 우리의 결단을 이끌어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단에 내가 응답하면 그 결단 위에 내가 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계속해서 결단하는 그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내 삶을 세우는 명령입니다.  

군대는 명령 사회입니다. 상명하복입니다. 그런데 상관이 아무렇게나 명령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명령에는 상관의 신중한 결심과 결단이 있습니다. 결단하지 않는 명령은 없습니다. 군대는 명령으로 세워지는 조직입니다. 군대 명령은 절대복종입니다. 그래서 복종하는 사람의 자유가 제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격을 침해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자유와 인격을 보장하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 삶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명령하셨습니다. 기도로 내 삶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기도로 내 가정 내 자녀의 삶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로 여러분이 삶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인생길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기도를 통하여 맺힙니다.

 

2.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 단어는 기도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기도를 더 강한 뜻으로 점진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관한 이 세 단어를 우리 몸의 세 가지 신체와 연결해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첫째, 구하라고 했습니다. 구하는 것은 입과 연관이 있습니다. 구하는 것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은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우리는 말로 기도합니다. 기도는 말로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아뢰는 것입니다. 입으로 구하는 자가 얻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  

주일학교 예배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간식을 하나씩 줍니다. 항상 여분으로 몇 개가 남아요. 아이들이 적개 오면 많이 남고 많이 오면 한 두 개가 남아요. 그래서 하나씩 더 주지는 못해요. 한 두 개 남은 것을 보고 꼭 이러는 아이들이 있어요. “목사님 하나 더 주세요.” 그래요. 그러면 남은 것을 그 아이에게 주게 돼요. 그런데 항상 더 달라고 하는 아이가 더 달라고 해요. 기도는 입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구하는 자가 얻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  

둘째, 찾으라고 했습니다. 찾는 것은 눈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눈입니다. 여기서 찾는다는 말은 예배드릴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예배자는 예배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시편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우리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63:2> 내가 주의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이것이 눈으로 찾는 것입니다.  

주대준 씨의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대준 씨는 청와대 경호실 차장과 카이스트 부총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 책에 프로골퍼 최경주 씨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경주는 미국 PGA에서 10번 우승을 한 선수입니다. 준우승도 여러 번 했죠.  

최경주 씨는 경기 중에 난코스를 공략할 때마다 주머니 속의 종이쪽지를 꺼내 읽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읽으면 핸디캡이 많은 난코스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샷을 날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벙커를 만날 때도 당황하지 않고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번은 대회가 끝난 후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하면서 묻더랍니다. 그 쪽지 안에 무슨 비법이 숨겨져 있냐고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 쪽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고요. 쪽지는 크리스천인 아내가 시합 전에 적어준 성경말씀입니다. 힘든 코스를 만날 때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거예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기도하는 거예요.  

최경주 씨는 경기가가 안 풀릴 때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고 합니다. 그는 골프를 인생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골프가 마치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는 것입니다. 1번 홀에서 18번 홀까지 가는 동안 똑같은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환경이 다르고 홀이 다릅니다. 가는 동안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습니다. 나이스 샷을 칠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잘 된다고 해서 우쭐해서는 안됩니다. 또 잘 안된다고 해서 골프채를 내팽개쳐도 안됩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주머니 속이 쪽지를 계속 보며 감정을 조절하는 거예요. 그래서 좋든 나쁘든 계속해서 마음을 관리하며 최종 지점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순간 하나님 안에서 최선인 지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최경주 씨의 바라봄이 법칙입니다. 난코스를 만날 때마다 계속 말씀을 보는 거예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주대준 씨가 바라봄의 법칙을 이야기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나 자기 최면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라봄의 법칙>에서 바라봄은 하나님을 바라봄입니다. 찾는 것은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하나님을 찾으면 내가 구하는 것을 얻게 되는 법칙입니다. 찾는 것은 입으로 구하는 것에 눈의 행동을 더한 것입니다. 말로 구해서 응답이 없을 때 눈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세요. 주변 환경을 보지 마세요. 하나님께 눈을 고정시키세요.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세요. 여기에 응답이 있습니다.  

셋째,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두드리는 기도는 기도의 최종단계입니다. 기도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인가요? 두드리는 기도는 손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문은 손으로 두드립니다. 성경에서 손은 그 사람의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편 18: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손은 행위입니다. 두드리는 기도는 손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두드리는 기도는 행위로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손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할 때 손을 흔드는 기도인가요? 행위로 하는 기도는 기도할 때 몸부림치는 기도인가요? 아닙니다. 손의 기도는 내 손으로 주님의 손을 잡고 하는 기도입니다. 즉 주님과 연합하는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의 말>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나를 통해 이 땅에 주님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주님의 소원이 내 삶에서 이루어질 때 내 소원이 주님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있는 기도입니다.  

한나가 아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제사장이 술에 취한 줄 알았습니다. 이때 한나는 제사장에게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내 마음을 통한 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통한 것이라는 말이 물이 흐른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슬픈 마음의 물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흘러갔습니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한나의 마음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행할 것을 서원했습니다. 한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통했습니다. 그때 기도가 응답됐습니다. 두드리는 기도는 주님과 연합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내 안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님 안에서 내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입으로 구하세요. 눈으로 찾으세요.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십시오. 이것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입니다.

 

3. 끈질긴 기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주님의 명령은 끈질긴 기도의 모형을 보여줍니다. 이 세 개의 단어는 모두 현재형입니다. 기도는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도 아닙니다. 기도는 지금, 현재입니다. 기도가 현재형인 이유는 우리 삶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현실입니다. 기도는 상상, 추상, 환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현실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는 현실 속에서 멈추지 않고 끈질김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EM 바운즈(기도는 강하다)는 예수님의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을 끈질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끈질기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끈질김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기도의 끈질김에 관한 예수님의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그는 과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연민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간청했습니다. 이 여인의 간청에 지친 재판장은 어느날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번거롭게 하니라는 말이 헬라어 의미는 눈 밑을 계속해 때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눈 아래가 멍이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여인은 재판장의 눈 밑을 멍이 들 정도로 계속 두드렸습니다. 재판장이 얼마나 귀찮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여인이 재판장에게 얼마나 끈질기게 메달린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남편의 뺨을 아주 세게 때렸다고 해요. 이유는 남편 옆에 있을 때면 자꾸 자기 뺨을 툭툭 친대요. 틀림없이 남편은 부인이 좋아서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부인은 귀찮은 거예요. 옆에서 툭툭 치니까 얼마나 싫어요. 그것도 볼을.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듣지 않는 거예요. 어느 날 또 그러더래요. 작심을 하고 뺨을 세게 때렸대요. 그랬더니 남편의 눈이 휘 둥글해지더래요. 그 다음부터 안하더랍니다. 재판장은 자기를 따라다니며 간청하는 이 여인을 얼마나 무시했겠어요? 여인은 말로 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끈질김 하나로 불의한 재판관의 손을 들게 했습니다. 끈질김으로 재판관을 때려눕혔습니다. 여인의 유일한 무기는 끈질김입니다. 여인은 다른 모든 간구와 영향력이 실패한 자리에서 순전히 끈질김만으로 성공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응답될 때까지 계속해서 지속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찾아야 합니다. 찾는 것을 얻지 못하면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성경은 끈질긴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끈질긴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5:17-18>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3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종을 어디로 보내 바다를 바라보고 오게 합니다. 아마도 바다가 잘 보이는 갈멜산의 다른 봉우리로 보낸 것 같습니다. 갈멜산은 5-600m 봉우리가 여러 개가 있는 산입니다. 시종은 다녀와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왕상18:43) 엘리야는 시종을 두 번째 보냅니다. 시종이 다시 와서 대답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 번째 시종을 산으로 올려 보냅니다. 이번에도 대답은 똑같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엘리야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까지 똑같이 다른 봉우리로 보냅니다. 사환은 일곱 번째 산에 올라갔다 온 후 이렇게 보고합니다. “선생님! 구름이 있어요. 사람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어요.” 엘리야는 일곱 번 기도합니다.  

이엠 바운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자주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로 구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끈질긴 기도는 역사하는 힘 많습니다.

 

4. 기도는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  

오늘 본문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 6, 7장은 예수님의 산상보훈입니다. 예수님은 6장에서 기도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은밀한 기도와 주기도가 6(5~15)에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먹고 사는 문제, 인간의 비판(정죄)에 관한 문제, 복음 진리에 관한 문제 등등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시며 다시 기도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뒷부분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7:13-14).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이 말씀을 주기도문 다음에 놓으면 오히려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얽히고설킨 삶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 중간에 예수님은 갑자기 기도에 관해 말씀을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어색합니다. 여기에는 마태복음의 의도가 있습니다. 기도는 삶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살다보면 여러 가지 신앙의 문제 삶의 문제들이 얽히고설킵니다. 그래서 그것을 풀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안됩니다. 오히려 더 꼬입니다. 왜 그럴까요?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추상이나 생각이나 상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실제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급박하고 복잡한 삶의 문제 중간에 기도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로 삶의 문제를 푸세요. 기도가 열쇠입니다.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님 칼럼 중에 열대지방 선교사님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방문객과 함께 정글 지역 늪을 통과했습니다. 진흙으로 된 늪은 깊이가 1.5미터 정도입니다. 목까지 차지만 걸어서 건널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과 방문객이 어렵게 늪을 통과했습니다. 늪에서 나와 보니까 거머리가 온 몸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얼마나 징그러워요. 방문객들이 기겁을 하고 떼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외쳤습니다. “잠간! 손대지 마세요.” 왜요? 거머리는 이빨이 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떼어내면 살점까지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상처 위에 균이 감염되어 죽을 위기까지 갈 수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꾹 참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발사믹 향이 나는 뜨거운 물에 들어갔습니다. 거머리가 향과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씩 저절로 떨어져나갔습니다. 이것이 향기요법입니다.  

우리는 영적 거머리에게 물릴 때가 있습니다. 거머리는 우리의 에너지를 빨아먹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거머리를 떼어내려고 힘쓰고 애씁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도 안 됩니다. 거머리 같은 세력과 힘으로 싸우지 마세요. 우리의 영적 살점 떨어집니다. 사탄의 악성균에 감염됩니다. 우리 영혼을 물고 있는 거머리를 떼어내는 방법은 하나님의 뜨거운 은혜 안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향기입니다(시편 141:2).  

<요한계시록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뜨겁게 기도하세요. 마음을 다해 기도하세요. 기도의 향과 기도의 뜨거움이 우리 영혼을 물고 있는 거머리를 떼어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향기치료입니다. 또 예배가 뜨거움과 향기입니다.  

<레위기 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예배가 향기입니다. 예배가 뜨거움입니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가 여러분을 물고 거머리처럼 놓지 않을 때 뜨겁게 기도하세요. 뜨겁게 예배하세요. 뜨겁게 찬양하세요. 찬양이 기도입니다. 기도와 예배의 욕조에 들어가세요. 하나님의 은혜에 잠기세요. 하나님의 향기로 치료하세요. 그때 세상의 거머리들이 저절로 떨어집니다. 거머리들은 힘으로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거머리는 영으로 다루면 물러갑니다. 주님은 복잡한 문제가 앞뒤로 산재해 있는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부드럽지만 강한 영으로 승리합시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위대한 과학자이면서도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뉴턴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과학자로서 늘 천체 망원경을 통해서 하늘의 별들을 관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자주 골방에 들어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면 세상 그 어떤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하는 내 영혼의 망원경입니다.” “기도는 내 영혼의 망원경이다!” 기도하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래를 봅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신디 제이콥스는 기도의 법칙은 우주의 최상의 법칙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기도라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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