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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십니다. 이 부름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재의 귀중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로 물고기 잡으러 나갑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해변에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얘들아!”라는 말은 “아기들아!”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가”라고 부릅니다. 친근하고 소중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엄마처럼 ‘아가’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이 아버지 품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15장에 집을 나간 탕자가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먼 타국에 가서 창기와 함께 다 먹어버렸습니다. 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이 탕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통점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불의로 망했습니다. 둘째,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탕자도 이스라엘도 불의로 망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요14:2-3). 또 매주일 성전에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시121:8). 우리가 예배드리고 성전에서 나갈 때 아버지는 우리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엘2:12). 우리에게는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를 “아가! 괜찮니?”라고 불러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께로 돌아갑시다.
2. 입술의 열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2절). 첫째,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라는 말이 ‘말씀을 꽉 쥐고, 말씀을 꽉 붙들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갈 때는 말씀을 꽉 쥐고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은 회개를 말합니다. 둘째, 불의를 제거해야 합니다. 불의는 죄를 말합니다. 죄악은 내가 없앴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없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14장은 호세아서의 결론입니다. 그 결론은 사랑의 회복과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회복은 불의가 제거될 때 이루어집니다. 셋째, 입술의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장 좋은 제물인 어린 수송아지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입술의 열매(회개)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제사 제도에서 가장 좋은 제물은 어린 수송아지입니다. 입술의 열매가 가장 좋은 제물인 어린 수송아지입니다. 이 입술의 열매는 회개와 찬양입니다(시69:30-31).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물은 입술의 열매입니다. 노길상 씨의 「입술의 열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복은 입술을 타고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입술을 타고 옵니다. 아버지께 돌아와 입술의 열매를 드립시다. 여기에 하나님의 치료와 회복이 있습니다.
3. 아버지의 긍휼
여호와께 돌아온 이스라엘은 세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첫째, 앗수르입니다. 앗수르는 당시 그 지역의 판도를 장악하고 있는 강대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조공을 받쳤습니다. 그 대가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지켜주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앗수르가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외칩니다.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 말라” 둘째, 말입니다. 말은 군사력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서 말을 수입했습니다. 그래서 기병대를 만들었습니다. 국방력이 든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병사들을 바라보며 안심했습니다. 셋째, 우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서 우상도 수입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우상은 앗수르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의지하던 앗수르에 BC 722년에 망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입니다.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고아는 하나님 아버지를 저버리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절의 ‘여호와께로’라는 말은 ‘여호와를 향해’라는 뜻입니다. 방향을 나타냅니다. 1절의 ‘여호와께로’라는 말은 ‘여호와에게까지’라는 뜻입니다. 목적지를 말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해 주님에게까지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우상을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나의 이스라엘아!” “나의 아기들아!”라고 부르시는 주님께로 들어갑시다. 그래서 아버지 품에서 긍휼을 얻읍시다. 아버지의 긍휼을 입을 때 우리의 병든 몸과 병든 영혼이 회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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