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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혜로 나아가라
열 명의 나병환자는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과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12절)라고 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와 예수님의 만남은 철저하게 준비되어진 만남입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나병환자의 인원입니다. 사람 열 명이 함께 다니는 일은 드문 일입니다. 더욱이 나병환자 열 명이 함께 다니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 열 명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목에 서서 예수님을 함께 기다린 것 같습니다. 열 명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준비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만나다는 단어 때문입니다. 여기서 ‘만나다’라는 단어(아판타오, ἀπαντάω)는 ‘마중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맞이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길에 서서 예수님을 개선장군을 맞이하듯 단체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들이 사는 지역에 오시자 개선장군을 기다리듯 길목에서 동시에 기다렸습니다. 둘째, 소리를 높였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소리를 높였습니다(13절). 나병환자들은 병 때문에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가는 중에 나병이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육적인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예수님께 소리를 높이세요.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2. 더 큰 은혜로 나아가라
열 명 중 한 명은 육적인 자유는 물론 영혼의 자유까지 경험합니다. 어떻게 하나는 아홉이 경험하지 못한 영혼의 깊은 은혜를 경험했을까요? 첫째,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제사장에게로 가는 중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명 중 아홉은 어디로 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명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치료는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광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왜 한 나병환자는 영광을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렸을까요? 한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나병환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받을 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둘째, 주님께 예배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16절). ‘엎드리다’는 말이 헬라어로 핍토(πίπτω)입니다. 핍토는 (물체가) 떨어지다, 쓰러지다, 드러눕다는 뜻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 발 앞에 쓰러지듯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경배입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발 앞에 엎드린 것은 단순한 존경의 표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영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인정하는 예배행위입니다. 셋째,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16절). 한 나병환자의 감사는 흥분과 감격이 있는 감사이었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병 때문에 오랫동안 가족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과 친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하지만 한 나병환자는 그 모든 것을 다 뒤로 하고 먼저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이 감사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감사는 더 큰 은혜, 더 깊은 은혜를 가져오는 도구입니다. 넷째 주님을 더 깊이 믿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에게 모두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말은 선지자, 감독, 관리자, 두목 등의 뜻입니다. 열 명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어떤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문둥병자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믿었습니다. 그것은 영혼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19절). 열 명은 모두 나병에서 육체적 자유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자유는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열 명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이 은혜를 누렸다는 사실은 복음의 은혜를 접하기는 하나 영혼구원에까지 이르는 자는 많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더 깊이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더 큰 은혜를 향하여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리고 더 깊이 믿읍시다. 더 깊이 기도합시다. 더 깊이 말씀을 봅시다. 그래서 더 깊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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