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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왕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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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25:23~30
주일오전예배 | 2017-06-1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밖에서 밥을 자주 먹다 보면 집에서 먹는 김치와 하얀 쌀밥이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하얀 쌀밥에 맛있는 김치가 먹고 싶어요. 밖에서 먹는 음식이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미료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집밥이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어렸을 때 펌프질을 해서 지하수를 먹고 살았습니다. 지하에서 퍼 올려서 그런지 한 여름에도 아주 시원합니다. 한 여름에 마시면 갈증이 해소가 돼요. 정말 시원합니다. 요즘 먹는 인공착색료가 가미된 음료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진짜 생수입니다. 다윗도 어렸을 때 먹던 물을 그리워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입니다. 동료 선교사 한 명이 독일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몇 달을 처가에서 살았습니다. 독일 사람의 주식은 빵입니다. 한국에 와서 빵을 사 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이건 진짜 빵이 아니라는 거예요. 가짜라는 거예요. 너무 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주 유명한 빵집에서 빵을 사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거 진짜 빵이라는 거예요.

 

요즘은 각종 인공착색료나 설탕이 가미된 각종 음료와 빵과 같은 신앙이나 신조가 많습니다. 모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모두 가짜입니다. 가짜 빵이고 가짜 음료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빵이십니다. 예수님은 참된 음료이십니다.

 

오늘은 성소의 떡상에 대해서 말씀은 생각해보겠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정면에는 분향단이 있고 왼쪽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떡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빵상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빵이 주식입니다. 빵을 먹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습니다. 그래서 우리 식으로 하면 떡상 보다는 밥상이 더 맞습니다. 성경이 번역될 당시 우리나라에는 빵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식으로 떡상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떡이라는 말이 나오면 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떡상의 크기는 높이 75cm(1규빗 반), 넓이 100cm(2규빗), 폭은 50cm(1규빗)입니다(23). 재료는 조각목과 순금입니다(23-24). 조각목으로 떡상의 틀을 짠 다음 순금으로 겉을 쌌습니다. 속은 조각목, 겉은 순금입니다. 다리 위쪽 모퉁이에 고리를 네 개 만들어 운반용 채(막대기)를 끼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떡상 윗면 모서리에는 떡이 떨어지지 않도록 손바닥만 한 턱을 만들었습니다.

 

떡상 위에는 12개의 떡을 6개씩 두 줄로 진설해 놓았습니다. 진설이라는 말은 나란히 놓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떡을 진설병이라고 합니다. 진설병은 아주 컸습니다. 떡 하나를 만드는 양은 10분의 2에바였습니다. 1에바는 22리터입니다. 떡 하나의 크기가 4.4리터입니다. 제사장은 안식일 아침마다 새로운 떡을 진설해 놓았습니다(24:8).

 

<레위기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떡상 위에는 진설병 외에 대접, 숟가락, , 유향잔 등의 보조기구도 함께 올려놓습니다. 떡상 위에 진설되어진 12개의 진설병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먹어야 할 양식을 뜻합니다. 또한 떡상은 하나님의 식탁을 상징합니다. 이 세 가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12개의 빵

 

먼저 12개의 빵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2개의 빵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떡은 12개입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입니다. 예수님은 12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천국문이 12개입니다. 그 문에 12지파의 이름이 써 있습니다. 이 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갈 문입니다. 성경에서 12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수입니다. 따라서 안식일마다 떡상에 올려지는 12개의 떡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12개의 떡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바쳐진 12개의 떡입니다.

 

출애굽기 19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했습니다. 소유라는 말이 특별한 소유 또는 보배로운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 특별한 소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1:1). 이사야 43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것 즉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빵입니다.

 

진설병을 만들 때 꼭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룩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빵을 만들 때 누룩을 넣어야 맛있습니다. 누룩을 넣지 않으면 빵이 딱딱하고 맛이 없습니다. 또 누룩을 넣어야 빵이 부풀어 올라 빵 같습니다. 누룩을 넣지 않으면 빵이 맛도 없고 모양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서 누룩은 순수함이 결여된 인간적 요소를 의미합니다.

 

<마가복음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은 외식과 위선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과 위선을 누룩이라고 하셨습니다. 헤롯은 권모술수가 능한 여우같은 정치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정치적 술수를 누룩이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은 이 세상 죄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진설병을 만들 때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운 곡식 가루만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가치관, 방법, 인간적인 간교함, 술수 등을 버리고 순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나오실 때 있는 모습 그대로 오세요. 우리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체면 따지지 마세요. 자존심 따지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이 떡을 비추고 있는 것이 등대입니다.

 

<출애굽기25: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민수기8:2>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 하시매

 

등대(등잔대)가 앞을 비춘다는 말이 정면을 똑바로 비춘다는 뜻입니다. 등잔대 맞은편에 있는 것은 떡상입니다. 등대는 떡상을 똑바로 비추고 있습니다. 등대의 빛은 하나님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똑바로 비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춘다는 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얼굴빛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67: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민수기6:25-26>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러분! 하나님의 얼굴빛이 지금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진설병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얼굴의 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세상이요? 명예요? 세상 즐거움이요?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나 외에는이라는 말이 히브리 성경에는 내 얼굴 앞에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은 너와 내 얼굴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은 너는 항상 나만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떡상 위에 진설병은 1365일 하루 24시간 항상 차려져 있어야 했습니다. 등대의 빛은 136524시간 항상 떡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기독교는 그저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의 얼굴빛이 우리를 항상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12개의 떡입니다.

 

2. 예수님은 생명의 떡

 

두 번째, 떡상 위에 떡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먹어야 할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는 곡식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떡상 위의 진설병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이 세상에 생명을 위해 주는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것도 진짜 떡이십니다.

 

<요한복음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님은 가짜 떡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은 참된 음료입니다. 여러 가지 인공착색료를 첨가한 가짜 음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먹어야만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을 먹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먹는 방법은 성경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4)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떡도 먹어야 하고 말씀도 먹어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말씀과 떡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이 흙과 하나님의 생기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은 사람은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사람은 흙과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생기라는 말이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간 책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간 책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간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간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합니다. 말씀이 생명의 떡입니다. 진설병은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설병은 생명의 떡인 말씀입니다.

 

미국 달라스의 웨슬리 교회 담임이신 이진희 목사님의 광야를 읽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진희 목사님은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공학이나 처세술은 한결같이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광야를 무사히 걸어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광야를 지나는 것에 더 닮았다는 거예요. 산을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길이 없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광야는 지도가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산은 오를수록 전체가 보입니다. 하지만 광야는 전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산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합니다. 오늘 있던 모래 언덕이 내일이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산을 오르다가 힘들면 내려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돌아갈 수가 없다. 광야를 통과하는 방법은 더 깊숙이 광야로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는 사람에게는 진짜 음료가 아니라 진짜 물이 필요합니다. 진짜 쌀밥이 필요합니다.

 

이진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번쩍거리는 황금이 아니라 목마른 갈증을 해갈시켜 줄 생수이다. 그러므로 황금을 팔아서라도 생수를 사야 한다. 생수 한 모금에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진희 목사님은 인생은 광야를 통과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인생광야에서 참된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먹길 바랍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전도자 D.L 무디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말씀을 먼저 먹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게 하옵소서.”"

“No Bible, No Breakfast”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먼저 취하기 전에는 육신의 양식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3. 광야에서 만나는 왕의 식탁

 

세 번째, 떡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광야에 베푸신 하나님의 식탁을 상징합니다. 떡상 위에는 12개의 떡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큰 떡입니다. 빵 하나에 4.4L의 곡식가루가 쓰였습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지름이 45cm나 되는 아주 큰 빵입니다. 아주 큰 떡입니다. 왕떡입니다. 또 대접, 숟가락, , 붓는 잔이 있습니다. 이 모든 기구는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금으로 된 식탁을 배설하셨습니다. 이 식탁은 왕의 식탁입니다.

 

<29>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순금으로 만들며

 

우리말 성경에는 전부 단수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씩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복수입니다.

 

<NIV> And make its plates and dishes of pure gold, as well as its pitchers and bowls for the pouring out of offerings.

 

떡상 위에는 여러 개의 대접(진설병을 운반) 숟가락(분향용 접시, 분향을 보관) (전제용 포도주 보관하는 용기) 붓는 잔(전제를 드릴 때 사용)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금입니다.

 

이 식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광야에 배설한 왕의 식탁입니다.

 

<레위기24: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입니다. 이 식탁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드셨습니다. 이 식탁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함께 먹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상징입니다. 실제로 여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먹지는 않았습니다. 떡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광야에 베푸신 왕의 식탁의 표입니다.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표라는 말입니다. 식사는 교제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이 식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영적 긴밀한 교통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식탁을 부인했습니다.

 

<시편78: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식탁을 베푸셨습니다. 하늘에서 눈처럼 하얀 곡식이 내렸습니다. 하늘에서 고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반석을 쪼개셔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풍성한 식탁을 베푸셨습니다.

 

제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은 양식을 돈으로 환산해보았습니다. 한 끼에 3,000원씩 계산하면 하루는 세 끼이니까 한 사람에게 하루 9,000원입니다. 1년이면 365일이니까 1인당 식비가 3,285,000원입니다. 또 물을 마셨습니다. 물을 하루에 500원치만 먹었다고 해보세요. 1년이면 182,500원입니다. 고기도 먹었습니다. 고기는 일주일에 한번씩 10,000원치 정도 먹었다고 합시다. 1년이면 52번을 먹은 샘이 됩니다. 그러면 고기 값은 1년에 520,000원입니다. 실제로는 더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면 1인당 1년 식비가 3,987,500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살았습니다. 40년 동안 한 사람에게 필요한 식비가 15950만원입니다. 이스라엘 인구가 약 200만 명이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인 식비는 319조원입니다.

 

우리는 인생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광야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왕의 식탁을 배설하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배설하신 왕의 식탁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왕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왕이 주시는 음료를 마셔야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양식이 진짜입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음료가 진짜 생수입니다.

 

또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광야 식탁을 배설하십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산업장에서 때때로 우리는 곤고해집니다. 광야를 경험합니다. 광야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광야같은 사건을 만납니다. 광야 같은 일을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황량한 광야가 경험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광야식탁을 배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떡상으로 새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종종 저에게 식탁을 차려주십니다. 1995년 여름이었습니다. 제가 전도사 때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여름성경학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여름성경학교가 너무 신이 났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권 집사님이란 분이 잠깐 저를 좀 보자고 하세요. 제 옷을 잡고 끄시는 거예요. 집사님 딸이 주일학교에 나왔어요. 다훈증후군이었어요. 따라갔더니 교회 바로 옆에 삼계탕 집으로 저를 데리고 가시는 거예요. 저는 괜찮다고 아이들하고 밥 먹는 것이 더 좋다고 하며 사양을 했어요. 그랬더니 예약해놨다는 거예요. 너무 후다닥 먹어서 삼계탕 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단지 제 옷을 잡아끄시던 그분의 손과 그분의 얼굴이 기억날 뿐입니다. 저는 가끔 하나님이 그때 제게 차려준 떡상이 생각이 납니다. 잘 살고 계신지! 딸이 아직 살아 있는지! 궁금해요.

 

아주 오래 전이었습니다. 제게 아주 힘든 일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 일은 제가 잘 못해서 생긴 일입니다. 생각나는 곳이 교회 밖에 없어요. 교회로 갔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주체가 안되는 거예요. 그 때 하나님이 영혼의 떡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여호수아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막막했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도 종종 그 때 그 골방에서 하나님께서 차려주신 영혼의 떡상을 기억합니다.

 

지난 주에 금요 심야기도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금요일에는 금식을 합니다. 저녁이 되면 힘이 쭉 빠져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금요심야기도회를 인도하기가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지난 주는 유독 힘이 드는 거예요. 서 있는 것이 힘들어요. 힘을 벌려서 찬양하는 것도 힘이 들어요. 그날 소리 청년이 반주를 했어요. 소리 청년이 요새 먼 거리에 있는 회사로 출퇴근해요. 얼마나 피곤해요. 피곤한 몸을 끌고 반주를 하고 있잖아요. 모두 피곤하고 힘든 시간이잖아요. 힘을 내서 겨우 겨우 인도하고 있었어요. 9시 조금 넘었는데 누가 문을 덜컹 열고 들어와요. 우리 교회 중학생이에요. 그 아이가 와서 기도 정말 조금 밖에 안 해요. 제 아들하고 놀다가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힘이 확 솟는 거예요.

 

오늘도 하나님은 광야 인생길에서 우리에게 수없이 떡상을 차려주십니다. 그 양식을 드세요. 그 음료를 마시세요. 그래서 새 힘을 얻으세요. 왕의 식탁에서 먹는 양식으로 새 힘을 얻어 인생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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