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기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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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30:1~10
주일오전예배 | 2017-06-0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교회 앞 4거리에 얼마 전에 신호등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민원으로 신호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회 뒤에 있는 아파트가 20113월에 입주했습니다. 저 아파트가 생기면서 4거리가 생겼다면 최소한 6년이 된 4거리입니다. 실제로는 더 오래 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6년 이상을 신호등 없던 4거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차 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습니다. 또 많은 보행자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습니다. 차도 사람도 그냥 막 다닐 때가 많습니다.

 

제가 초록색 신호를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면 차들이 제 앞을 휙 지나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거리를 지날 때면 항상 불안합니다. 운전해서 지나갈 때도 불안하고 걸어갈 때도 불안합니다. 항상 신호를 위반하는 차량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부 ~ 웅 소리를 내며 제 앞을 휙 지날 때가 있습니다. 차들이 아주 공격적으로 지나갑니다. 어른들도 이런데 아이들이 참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 어떤 조간신문에 <공격성의 민얼굴>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성욕과 공격성을 빼고는 논할 수 없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딱 그렇습니다. 한편에서는 성()이 넘쳐나고, 다른 편에서는 전쟁, 테러, 차별이 계속됩니다.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공격성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나타납니다. 요새 부쩍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보복운전이나 묻지 마 폭행이 그렇습니다. 과격하지 않은 공격 행위도 있는데, 눈빛, 표정, 태도, 걸음걸이가 효과적인 것들입니다. 꼭 주먹을 휘둘러야 공격은 아닙니다. 여러분! , 눈빛, 표정, 태도 등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웃을 공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점점 우리 사회가 피폐해져갑니다. 저는 이런 사회 현상을 보며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아주 착착해 집니다. 그래서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 기도로 우리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 의탁합시다. 그래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 다음 세대들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2주 동안 등대에 대해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성소에 있는 분향단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분향단에 대해서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분향단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둘째, 분향단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분향단의 기도의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시간 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기도의 향기>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기도의 향기

 

먼저 분향단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떡상이, 왼쪽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분향단은 향기로운 향을 불사르는 제단입니다. 불사를 분()자 향기 향()자 그리고 단 단()를 씁니다. 향기의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분향단입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성소에 들어가 등대의 불을 손질한 후 분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불살랐습니다.

 

이 분향단의 향기의 제사는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분향단에 분향을 할 때 성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누가복음1:8-10>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제사장이 성소에서 향을 불사를 때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상징적인 행위가 분향입니다. 분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시편에 정확하게 나옵니다.

<시편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나의 기도가 향기의 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나의 손드는 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향기의 제사와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요한계시록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성도의 기도가 금대접에 담겨 천사들에 의해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기도를 아주 향기로운 향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향기입니다. 향기의 제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향기로운 향으로 받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향기로운 향인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지난 5월이었습니다. 새벽기도 끝나고 집에 나가는데 아카시아 꽃향기가 교회 앞 도로에 진동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눈이 아카시아가 하얗게 핀 교회 뒷산으로 향하는 거예요. 꽃이 정말 많아요.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의 향기가 하나님의 눈을 우리에게로 향하게 합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 나를 쳐다보십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교정에 후박나무가 있습니다. 5-6월 아침에 등교할 때나 밤에 학교에서 나올 때면 후박나무 꽃향기가 학교 교정에 진동을 했습니다. 후박나무꽃은 목련꽃처럼 생겼습니다. 향기가 아주 짙습니다. 30년이 지났지만 제 기억 속에 후박나무 꽃향기가 나던 교정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향기로운 향으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우리가 울면 우리의 눈물이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얼마 전에 가까운 마트에 갔습니다. 쇼핑을 하고 나오는데 입구에 향초와 방향제가 있는 거예요. 어떤 회사에서 홍보하기 위해 나온 거예요. 옆을 지나는데 온통 향기가 진동을 했습니다. 얼마나 향기가 좋은지 한 바퀴 돌면서 향기를 맡다가 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머무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입니다.

 

저는 백합 튤립 후리지아 같은 꽃들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백합의 향기는 짙고 향긋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 기도는 하나님 앞에 어떤 냄새로 올라갈까?” 백합꽃 향기, 장미꽃 향기, 튤립 향기 아니면 아카시아꽃 향기. 여러분은 어떠세요? 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내 기도가 시궁창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내는 기도가 아닐까?’ ‘혹시 내 기도에서 시기심의 냄새, 정욕의 냄새, 미움의 냄새, 분함의 냄새, 음란의 냄새 등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 돈 바꿔주는 사람, 비둘기를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전에서 돈 냄새가 났습니다. 성전에서 짐승의 냄새가 났습니다. 성전에서 강도의 소굴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떤 향기일까요?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백합꽃처럼 튤립처럼 아름다운 향기로 하나님 앞에 올라가길 소망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금대접으로 올라가는 향기로운 향입니다.

 

2. 오직 은혜

 

두 번째, 분향단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분향단은 성소 중앙에 있는데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바로 앞에 있습니다.

 

<6>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분향단의 위치가 성경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성소 중앙 전면 지성소 휘장 바로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9: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금향로가 분향단입니다. 금향로가 언약궤와 함께 지성소에 있습니다. 분향단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출애굽기 26:35에는 분향단의 위치가 애매모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26:35> 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

 

성소에 등대(등잔대)와 떡상만 있다고 했습니다. 분향단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분향단이 성소 있는지 지성소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아주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향단이 법궤와 아주 가까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1차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매일 같이 영적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를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 위의 속죄소로 상징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기도는 우리를 지성소의 시은좌 앞으로 가게 합니다. 왜 하나님은 분향단의 기도로 은혜가 시작되는 시은좌 앞에 항상 나아가게 했을까요? 그것은 광야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주님의 은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시내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보이는 것은 모래와 돌멩이 뿐입니다. 물 없습니다. 먹을 것 없습니다. 광야는 입고 쓸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길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를 지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쓸 것도 아무 것도 없는 광야를 200만 명이 걸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남자 청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 여자 아기가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한꺼번에 광야를 지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방법은 오직 은혜입니다. 기도로 영적 지성소에서 경험되는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무사히 지나가게 합니다.

 

세계사에서 중세를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중세는 500년에서 1500년까지 천년의 기간을 말합니다. 로마 카톨릭은 11세기 십자군을 동원하면서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발급되는 속죄장입니다. 한 마디로 천국 가는 티켓이죠. 그런데 면죄부는 12세기부터 일반인도 살 수 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천국 가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 때부터 면죄부는 중세 카톨릭의 중요한 수입원이 됩니다. 또 중세 카톨릭의 부패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5179월에 테첼이라는 (Johannan Tetzel, 1465-1519) 수도사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독일 사람들아, 똑똑히 보아라. 나는 교황의 사신이다. 즐거워하라. 여기 속죄 증서가 19000장이나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돈이 궤짝 속에 들어가 짤랑 소리가 나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해방되어 뛰쳐나온다. 그대들은 적은 돈으로 그대들의 부모를 무서운 연옥 불에서 건져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통 중에 있는 부모를 구출하지 않고 배은망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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