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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플로리다 키즈 제도(Florida Keys Is)에 매일 같이 “오늘이 그날이다”를 외치며 보물을 찾는 멜 피셔(Mel Fisher)라는 보물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멜 피셔는 1622년 대서양 어디엔가 침몰한 스페인의 보물선을 찾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침몰 지점이나 지도도 없이 1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이 그날이다”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다이버들을 바다 속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보물을 찾는다는 말에 임금을 받지 않고 자원 봉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났습니다. 나중에는 임금을 지급하랴 빚쟁이들을 피해 다니랴 아주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피셔의 가족은 오랫동안 바람이 들이치는 배 위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들 하나와 며느리는 바다에서 보물을 찾다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래도 피셔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정신 나간 사람이니 미친 사람이니 하며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비판과 의심이 쏟아져도 멜 피셔는 꿈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물을 찾는 일을 중단하지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피셔는 매일같이 '오늘이 그날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으로 꿋꿋이 버텨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1985년 7월, 그의 다이버들은 드디어 스페인 돛배의 잔해에서 금은보석의 '원천'을 발견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이버들은 그 장소에서 보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희망은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면 끝은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맙시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등대는 희망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등대는 희망입니다.
1. 등대는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등대의 잔을 살구(Prunus)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하시면서 꽃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살구꽃이라는 말이 세 번, 꽃받침이라는 말은 아홉 번, 그리고 꽃이라는 말을 네 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꽃이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쓰고 계십니다. 살구꽃, 꽃받침, 꽃. 계속해서 ‘꽃, 꽃, 꽃을 외치시고 계십니다. 33-34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33-34절>
33.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34.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하나님은 왜 살구꽃이라는 말을 강조하실까요? 살구꽃이라는 말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살구라는 말이 히브리 성경에는 아몬드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감복숭아 또는 편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과 표준새번역 성경은 <감복숭아>로 번역을 했습니다.
16세기경 페르시아 상인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동 지역과 중국을 오갔습니다. 이 상인들이 아몬드를 중국으로 들여왔습니다. 이 아몬드를 페르시아어로 “바담(badam)”이라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아몬드를 살구처럼 약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살구 ‘행’(杏)자를 “badam”에 붙여 "파단행(巴旦杏)"이라고 음역해서 썼습니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중국어 성경을 참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 창세기 43장 11절에는 아몬드가 파단행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자 성경의 파단행이라는 말 때문에 우리말 성경에는 아직도 아몬드가 살구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아몬드 꽃과 살구꽃이 아주 비슷합니다. 또 살구씨와 아몬드 씨가 모양이 아주 비슷합니다. 아몬드 꽃은 벚꽃과도 비슷합니다. 성지 순례하는 사람들이 아몬드 꽃을 보면 벚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살구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살구가 나오면 아몬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왜 하필 성소의 등대의 잔 모양을 아몬드 꽃 형상으로 만들었을까요? 세상에 아름다운 꽃이 많습니다. 백합, 장미, 수선화, 튤립 등등 아름다운 꽃이 정말 많습니다. 백합이나 장미 형상으로 만들었다면 더 아름답고 더 멋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등대의 잔을 아몬드 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필 아몬드 꽃일까요?
아몬드 꽃은 생명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아몬드는 흔들어 깨운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동 지방에서 아몬드는 한 겨울에 꽃이 핍니다. 모든 식물이 자고 있는 겨울에 아몬드는 혼자 깨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겨울인 1월 말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10월부터 3월까지가 겨울입니다. 성경에서 겨울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봄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아몬드는 추운 겨울에 광야에서 홀로 꽃을 피워 봄이 왔다고 흔들어 깨우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고대 중동 지역에서 아몬드 꽃은 부활의 상징으로 불렸습니다. 모든 식물이 자고 있는 겨울에 혼자 깨어 있는 식물이 아몬드입니다.
아몬드가 히브리어로 샤케드שׁקד입니다. 샤케드는 שׁקד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샤카드”는 “잠에서 일어나다”, “깨어 눈을 뜨고 있다”, “깨우다”, “경계하다”, “지켜보다”, “기다리다”, “밤을 새다”, “주목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식물이 자고 있는 한 겨울에 홀로 깨어 있는 꽃이라 샤케드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아몬드 꽃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꽃입니다.
하나님은 등대에 불을 끊이지 않고 켜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27: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고 있는 한 밤 중에도 등대의 등불은 성소에서 홀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등대의 불은 항상 깨어 있습니다.
시편 121:4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등대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광야에 보이는 것은 모래와 돌멩이뿐입니다. 생명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광야는 죽음의 땅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낙심이라는 잠에 빠집니다. 고통, 아픔이라는 잠에 빠집니다. 이 때 하나님은 등대가 되셔서 절망이라는 잠을 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겨울을 끝내고 희망의 봄이 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몬드 꽃 형상의 등대가 되셔서 낙심하지 말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조금만 더 참으라고! 희망의 봄이 오고 있다고!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여러분! 일어나세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외칩시다. ‘오늘이 그날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의 파수꾼입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솨마르) 아니하시면 파수꾼(솨마르)의 깨어 있음(솨케드)이 헛되도다
여기 ‘깨어 있음’이 솨케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의 파수꾼이십니다.
이삭의 집안에 부모 자식 간에 사기극이 벌어집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화가 난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살벌해졌습니다. 야곱은 그대로 있다간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 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갑니다. 한번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어느 지역에 이르렀을 때 해가 집니다. 야곱은 광야에서 돌로 베개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입니다. 정말 불안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창세기28:15-16>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그 광야에 혼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가 벧엘입니다. 그 벧엘의 옛 이름이 루스입니다.
<창세기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루스가 셈어로 아몬드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서 눈을 뜨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주목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켜보겠다는 약속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하란으로 간 야곱을 한 순간도 빼 놓지 않고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삼촌의 첫째 딸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삼촌에게 7년을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은 라헬이 아니라 첫째 딸 레아를 주었습니다. 사기 결혼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혀요. 이 외에도 라반은 야곱을 여러 번 속였습니다. 품삯을 여러 번 변경했습니다. 나중에는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야곱은 쉬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혼자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창세기31:11-12>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은 야곱의 모든 것을 보고 게셨습니다. 아플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서러울 때 그리고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희망의 파수꾼이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 정부는 사도 요한을 펄펄 끓은 기름 가마에 던집니다. 하지만 상처하나 입지 않습니다. 로마 정부는 요한을 밧모라는 섬에 유배 보냅니다. 이 때 요한의 나이가 90에서 100세 사이이었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중노동과 추위 그리고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요즘 같은 장수 시대에도 100세 어른은 흔치 않습니다. 2,000년 전에 100세는 정말 드문 일입니다. 장말 많이 늙은 나이입니다. 거의 소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요한 자신도 자신의 인생이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지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유배지에서 요한에게 일곱 금촛대를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그 금촛대를 주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100세가 다 된 노인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요한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희망의 파수꾼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등대의 잔을 아몬드 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등대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계속 꽃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실까요? 꽃! 꽃! 꽃! 아몬드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아몬드는 소망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등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인생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인생 광야를 지날 때 너무 힘겹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등대를 바라보세요.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희망의 파수꾼입니다. 예수님은 한 겨울 눈 속에서 홀로 피는 우리의 등대입니다.
아몬드는 얼음을 깨고 싹을 틔웁니다. 꽃을 피웁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아몬드 꽃이 주는 메시지는 죽음과 같은 겨울이 와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몬드 꽃은 부활입니다. 생명입니다. 소망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잃지 맙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소망을 잃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죽은 살구나무 지팡이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그 희망. 그 희망을 단단히 붙잡읍시다.
『더치 쉬츠의 소망』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위대한 장군이 있었는데, 적에게 지는 바람에 그만 적에게 포로로 잡혀가 부하들과 함께 깊고 넓은 구덩이에 던져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았더니 그 구덩이에는 말똥으로 가득 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장군은 똥더미 속으로 뛰어들며 부하들에게 “나를 따르라, 여기 어딘가에 말이 있는 게 분명하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이야기는 포로로 붙잡힌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거부의 예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인생 광야를 지날 때 절망이라는 똥구덩이에 빠질지라도 이 장군과 같은 긍정과 용기를 가질 수 없을까?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살구꽃 형상의 등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등대는 희망입니다.
2. 앞을 비추게 하라
등대의 등불을 켜서 앞을 비추게 하라고 했습니다.
<37절>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민수기8:2-3>
2.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 하시매
3.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앞을 비추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정면을 똑바로 비추는 것입니다. 등대의 불은 정면을 똑바로 비추게 하기 위해 켰습니다. 왜 등불을 앞을 똑바로 비추게 했을까요? 등대의 맞은편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25:30>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진설하다는 말은 음식을 상에 벌려놓은 것을 말합니다. 떡상에는 12개의 떡이 두 줄로 진설되어 있습니다.
<레위기24:5-6>
5. 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6.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떡이 여섯 개씩 두 줄로 12개가 진설되어 있습니다. 진설병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등대의 빛이 떡상을 똑바로 비춘다는 말은 하나님의 빛이 이스라엘을 똑바로 비추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등대의 불을 끊이지 않고 켰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빛은 항상 켜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끊이지 않고 비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이스라엘을 비춘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다는 뜻입니다. 진설병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얼굴의 빵 또는 앞에 있는 빵’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는 빵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축복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민수기6:23-26>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얼굴빛과 은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얼굴빛과 평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얼굴 빛 아래 있을 때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기를 소원했습니다.
<시편 89:15>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시편80: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여러분! 하나님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세요. 여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샬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험에 들면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버립니다.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의 얼굴빛 아래 있어야 합니다.
1997년 1월 13일 스티브 포셋이라는 사람이 기구로 전세계를 일주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열기구의 조종실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3일 후, 그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아프리카를 향하여 동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높이 부는 바람은 포셋을 리비아를 향하여 똑바로 날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리비야는 자국의 영공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포셋이 리비아를 향해서 계속 날아갈 경우 그것은 엄연한 영공 침범이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리비아 군 당국에 의해 격추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기구는 방향을 틀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고도를 낮추든지 높이든지 해서 다른 방향에서 부는 바람을 찾아야만 합니다.
리비아 관제소로부터 경고를 받자 포셋은 기구의 방향을 틀기 위해 기구를 6300피트로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부는 남동풍을 타고 리비아의 국경 근처를 빙 돌아 리비아를 안전하게 지나갔습니다. 포셋은 리비아를 안전하게 지나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기구에 열을 가하여 고도를 만 피트 높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부는 동풍을 타고 다시 원래 날아가던 동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기구는 바람을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구는 바람이 부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기구는 바람의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기구가 고도를 바꾸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태도를 바꿈으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기구가 바람의 포로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바람의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바람을 타기 위해서는 그 바람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바람 안에 있읍시다. 그래서 그 바람을 타고 날읍시다.
릭워렌 목사님의 새들백 교회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영적 파도타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파도를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51: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영적 파도타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파도를 타는 기술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파도 속으로 들어가야 파도를 탈 수 있습니다. 파도 밖으로 나가면 파도를 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등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살구꽃이십니다. 항상 깨어계십니다.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우십니다. 절망의 잠, 낙심의 잠을 잘 때 하나님은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일어나라고! 봄이 오고 있다고! 우리를 깨우십니다. 서럽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눈물이 흐를 때 우리의 등대이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등대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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