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시므온! 우리 함께 올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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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 1:3~7
주일오전예배 | 2017-05-1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대나무는 딱딱하고 단단합니다. 키가 큽니다. 키에 비해 몸통은 아주 가늡니다. 잎과 가지가 울창합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습니다. 또 뽑히지 않습니다. 산 속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뽑히고 부러져도 대나무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대나무는 유연합니다. 둘째, 속이 비어 있습니다. 셋째, 뿌리가 서로 얽혀 있습니다. 대나무 뿌리는 땅 속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옆으로 뻗습니다. 그래서 다른 뿌리들과 얽힙니다. 서로를 꼭 붙들어 주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주 세찬 폭풍이 불어도 대나무는 부러지거나 뽑히는 법이 않습니다.

 

바다거북의 출생과정은 협력의 묘미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어미거북은 모래 속에 구덩이를 판 다음 50-100개의 알을 낳은 후 그 위에 모래를 덮습니다. 어미가 떠나고 뜨거운 태양이 모래를 데워주면 두 달쯤 지나 새끼가 알에서 나옵니다. 새끼들은 구덩이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역할을 분담해 협력합니다. 맨 위에 있는 새끼는 천장을 뚫습니다. 가운데 있는 녀석은 벽을 허뭅니다. 아래쪽에 있는 거북이들은 떨어지는 모래를 밟아 다집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옵니다.

 

거북이 알을 한개만 묻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새끼거북이의 구덩이 탈출 성공률이 27%에 불과했습니다. 두개를 함께 묻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탈출성공률이 84%로 급등했습니다. 그리고 알이 네 개 이상일 때에는 거의 100%의 성공률을 보였습니다. 서로 협력할수록 성공률이 크게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협력의 힘입니다.

 

모든 자연은 협력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연은 본능적으로 협력합니다. 오늘 본문에 협력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과업을 완수하는 이스라엘의 지파가 나옵니다. 함께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1. 올라가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7년 동안 가나안 땅의 주요 지역을 정복합니다. 그리고 8-9년에 걸쳐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합니다. 여호수아는 사명을 마치고 죽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지역에는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해야할지 여호와께 묻습니다.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이때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누가 먼저 올라갈까요?’라는 이스라엘의 질문에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에 보면 올라가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에는 산이 많습니다. 또 적들이 산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라는 표현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다는 말이 의도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4> 유다가 올라가매

 

올라가라는 말이 모두 4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굳이 올라간다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먼저 싸울까요?’라고 해도 됩니다. 아니면 누가 먼저 나갈까요?’라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굳이 누가 먼저 올라갈까요?’라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유다가 올라가라고 대답하십니다. 성경 기자도 올라가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4> 유다가 올라가매

 

다시 말해서 사사기는 올라가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연장입니다. 여호수아서에 올라가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여호수아 8: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여호수아 10: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여호수아 17: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여호수아서에는 올라가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여호수아서는 가나안의 정복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올라가다는 말은 정복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올라가라는 말은 정복하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올라가서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중요한 지역을 모두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나머지 땅의 정복은 이제 남아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몫입니다. 그래서 올라가라는 말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올라가서 그 땅을 정복했던 것처럼 이제 너희도 올라가서 가나안 땅의 나머지를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약에 여호수아와 비슷한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예수>입니다. 여호수아의 헬라식 표현이 예수입니다. 여호수아는 구약에서 오실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2천 년 전에 우리의 군대장관이신 예수님께서 인류가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죄와 사망이라는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죄와 사망은 인류가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고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이라는 고지를 십자가에 오르셔서 정복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마귀를 결박하셨습니다. 십자가로 마귀의 정수리를 내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저주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마귀의 잔당들이 남아 있습니다. 마귀의 잔당들이 곳곳이 숨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군대장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여호수아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정복해야 할 크고 작은 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올라가서 마귀의 잔당들을 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계속 올라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천국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10:38-39>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여러분! 뒤로 물러나지 맙시다. 앞으로 나갑시다. 우리들 앞에 있는 삶의 여러 가지 고지를 올라갑시다. 그 고지를 예수 이름으로 정복합시다. 정복하는 방법은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천국을 이룹시다.

 

2. 시므온! 함께 올라가자

 

유다 지파가 올라갈 때 혼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시므온 지파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요청합니다.

 

<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기업 내에서 자신들의 분깃을 받았습니다(19:1). 그래서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에게 함께 가자고 했는지 아니면 혼자 가는 것이 불안해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시므온과 함께 올라갔습니다. 유다가 잘 한 것일까요? 아니면 잘 못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의견이 나누어집니다. 한 쪽은 잘했다다른 한쪽은 잘 못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잘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경은 잘 했는지 잘 못했는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다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지파는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는 왜 사사기 맨 앞에 두 지파의 협력 관계를 기록했을까요? 이것은 사사기라는 성경 전체를 읽다가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사사 시대 후반부로 가면서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크게 이겼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에브라임 지파가 와서 기드온에게 시비를 겁니다. 이유는 미디안과 전쟁할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8: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미디안과 전쟁할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4개 지파만이 참여했습니다. 에브라임만 빠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가 생트집을 잡는 거예요. 아마도 이런 트집은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불안한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를 끌어않습니다. 기드온의 포용으로 다행히 분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의 시비는 계속됩니다. 입다가 사사일 때이었습니다.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깁니다. 이때도 에브라임 지파가 똑같은 말로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옵니다.

 

<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입다는 기드온과 달랐습니다. 화가 난 입다는 요단 나루턱에서 에브라임 지파 42,000명을 죽입니다.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전혀 싸울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축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같은 민족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거예요. 서로 죽이고 죽는 거예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이스라엘 지파간의 다툼은 사사기 마지막에 절정을 이룹니다. 레위인의 첩이 베냐민 지파 기업(기브아)에서 밤새도록 몹쓸 짓을 당합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열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싸움이 납니다. 이스라엘 열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세 번 싸웁니다. 이 세 번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4만 명이 죽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25천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 군사 600명만이 겨우 살아남습니다.

 

<20:47>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베냐민 군사 600명이 숨어 있는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베냐민 지파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사람이건 짐승이건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베냐민 지파 지경에 사람과 짐승의 시체로 뒤덮였습니다. 그리고 성읍은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지파를 거의 멸절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사사기의 처음은 협력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은 분열입니다. 협력의 결과는 승리입니다. 분열의 결과는 다툼입니다. 그 다툼의 결과는 아픔뿐입니다.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협력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과업을 완수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 둘로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다툼과 분열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 되지 못합니다. 사회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 나누어지고 찢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 교회의 아픔입니다. 우리 사회의 아픔입니다. 협력할 때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협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과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악인으로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라

 

유다와 시므온은 함께 협력해서 대승을 거둡니다.

 

<1: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베섹에서 1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도니 베섹을 잡았습니다. 아도니(:주권자, 통치자) 베섹은 베섹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아도니 베섹은 가나안 땅의 숨어 있는 실력자입니다. 그리고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왕 70명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랐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자른 것은 다시는 무기를 잡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엄지 발가락을 자른 것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엄지발가락은 몸의 균형(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몸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과거에 미국 노예들이 도망가다가 잡히면 주인에게 엄지발가락을 잘렸습니다. 고대의 아주 잔인한 전쟁의 풍습입니다.

 

또 아도니 베섹은 70명의 왕들을 개처럼 대했습니다. 자기 밥상 아래서 음식을 주어먹게 했습니다. 자기 밥상 아래에서 짐승처럼 엎드리게 한 것 같습니다. 자기가 닭다리를 뜯다가 던져주면 자기 상 밑에서 개처럼 주어먹게 했어요. 빵을 한 잎 베어 물고 먹기 싫으면 던지는 거예요. 그러면 개처럼 주어먹는 거예요. 틀림없이 손과 발을 묶어놨을 거예요. 아도니 베섹은 아주 잔인하고 비열한 왕입니다.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잔악무도한 짓을 많이 했겠어요.

 

그런데 유다와 시므온이 올라가서 아도니 베섹을 잡았습니다. 대승입니다. 게다가 아주 통쾌한 승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전쟁을 명령하신 이유는 바로 아도니 베섹과 같은 잔인한 왕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도니 베섹이 죽었을 때 아도니 베섹에게 학대를 당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통쾌했겠어요.

 

<1:7 하반절>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무리가 몰려들어서 아도니베섹을 죽였습니다. 유다가 시므온과 협력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두 지파는 함께 협력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했습니다.

 

두 지파가 협력해서 얻은 또 다른 놀라운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도니 베섹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1: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악인의 입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고백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릴 통해 이 세상이 하나님을 고백하게 해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꿉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꾼 꿈과 그 해석을 말하라고 합니다. 해석뿐 아니라 자신이 꾼 꿈까지 맞혀보라는 것입니다. 만약 말하지 못한다면 모두 죽이겠다고 합니다. 너무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말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석도 아닌 꾼 꿈까지 맞힐 수 있겠습니까?

 

이때 다니엘이 나서게 됩니다. 시간을 주신다면 꿈에 대한 해석을 하겠다고 합니다(2:16). 그리고 다니엘은 자신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물론 해석까지 계시하십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들어가 꿈을 해석해 줍니다. 이때 느부갓네살왕이 다니엘에게 절합니다.

 

<다니엘2: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말합니다.

 

<다니엘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느부갓네살은 이방 나라의 왕입니다. 우상 숭배자입니다. 우상 숭배자의 입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고백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믿는 자들에게 최고의 영광스러운 고백입니다. 이방 나라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협력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에게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사기는 3,000년 전의 책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유다와 시므온은 함께 베섹으로 올라가 베섹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신 목적을 성취했습니다. 우리 인생 앞에는 아도니 베섹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베섹으로 올라갑시다. 그리고 우리의 아도니 베섹을 정복합시다. 그래서 베섹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룹시다. 유다와 시므온처럼.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시다.

 

<67: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7: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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