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 서라

조회수 : 396회

본문 : 베드로후서3:15-16
수요예배 | 2017-04-1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1827~1910)라는 영국 화가가 있습니다.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을 한 작가입니다. 주요 작품으로 눈뜬 양심》 《죽음의 그림자》 《성전에서 찾은 예수》 《한밤의 탄생》 《속죄양》 《세상의 빛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세상의 빛>이라는 작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세상의 빛은 요한계시록320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에게는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작품을 보면 예수님께서 왼손에 등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안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이 문은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오래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모습은 조용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오래 기다리면 화가 납니다. 안절부절 합니다. 제가 만약 예수님이었다면 기다리다 지쳐 문을 강제로 밀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화가 난 모습이 아닙니다. 그냥 잠잠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기다림에는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은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1. 방종이 아닌 은혜의 기회로 삼으라

 

오늘 본문 말씀에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정말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분인지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를 가만히 살펴보면 심판이 어느 날 갑자기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참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심판을 예고하시고 약 천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므두셀라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 세상 심판 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유다서 14-15>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인류 심판 계시를 받은 후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노아 홍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작정하시고 약 천 년을 참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길이가 150m, 넓이가 25m, 높이가 15m입니다(길이-삼백 규빗, 너비-오십 규빗, 높이-삼십 규빗). 굉장히 큽니다. 하지만 2-3년이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오래 걸려도 5-6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넉넉하게 20년이라고 합시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보통 성경학자들이 방주를 만든 기간을 120년으로 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짧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120년이라고 합시다. 또 하나님은 인간의 날 수를 120년으로 한정하셨습니다.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120년 동안 참으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동안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칠일을 기다리십니다. 부정한 것은 두 쌍씩, 정결한 것은 일곱 쌍씩, 공중의 새도 일곱 쌍씩 방주로 들어갑니다. 방주에 동물들이 들어가자마자 홍수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홍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고 7일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주시고 천년을 기다리셨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만드시며 12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7일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는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은혜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2.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바울을 가리켜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라고 했습니다. 바울에 대한 베드로의 이런 태도가 매우 놀랍습니다. 과거에 베드로는 바울에게 책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이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옵니다. 베드로는 자리를 물립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은 척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외식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음식법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먹을 수 있는 정한 음식이 있고 먹으면 안 되는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 또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합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은 아주 부정한 행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정결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을 부정한 일로 여겼습니다.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물을 길러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이 오랜 세월 동안 굳어져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지도 자격이었습니다. 게다가 과거 예수님의 수제자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외식을 하자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베드로를 따라서 외식을 하게 됩니다. 이미 복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경계가 없어졌습니다. 유대인의 정결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효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외식으로 복음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자리에서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갈라디아서2:11-14>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여기 책망하다는 말이 대항하다 저항하다 반발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이로 보나 교회에서 서열로 보나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베드로를 아주 심하게 책망합니다. 그것도 아래 사람을 혼내듯이 혼을 냅니다. 나이로 보나 서열로 보나 자기보다 한참 아래 사람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 베드로가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그런데 베드로는 그 책망을 기꺼이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을 사랑하는 형제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 싸움이 너무 많아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이 싸워요. 잘 못한 사람이 없어요. 다 잘한 사람만 있어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잘 못한 것은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의 잘 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는 모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3.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 서라

 

바울이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쓸 때는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이 완성이 된 때입니다. 따라서 그 모든 편지는 바울이 쓴 모든 성경입니다. 특히 바울이 쓴 성경 가운데서 재림에 관해 기록한 성경일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고린도전서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계속해서 종말에 대하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쓴 성경 가운데는 어려운 것이 더러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고 약 1,900년이 지났습니다. 1,900년 동안 수 없이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수 없이 많은 신학 서적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풀지 못한 성경이 있습니다. 신학대학 도서관에 가면 책이 정말 많아요. 기독교 역사상 발행된 책은 수천만권이 넘을 것입니다. 그 모든 책이 다 성경을 연구한 책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다 해석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많은 서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비밀이 다 풀리지 않았어요. 저는 도서관에 가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경의 신비 앞에 저의 인간적인 무능과 나약함이 그냥 낮아져요.

 

성경은 신비입니다. 기록한 사람도 무엇인지 모르고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이 말을 이상하게 하지 마세요. 선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미래에 될 일을 기록합니다. 천 년, 이 천년 후에 될 일을 기록합니다. 틀림없이 이해하고 기록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기록한 것도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또 해도 모르는 성경이 있습니다. 읽으면 쉽게 이해가 가는 성경도 있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성경도 있습니다. 성경은 신비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 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 서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을 억지로 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무식한 자들배우지 못한 사람들, 미숙한 자들, 지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세상의 학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을 연구하는데 일정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려면 일정한 소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마음대로 풀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신학훈련과 하나님의 조명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굳세지 못한이라는 말은 굳게 만들어지지 않은, 변하기 쉬운, 흔들리는 불안정한, 견고하지 않는등의 뜻입니다. 즉 굳세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성경에 대해 아직 확고한 믿음과 기초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아직 확고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마음대로 풀

 

억지로 풀다는 말이 헬라어로 스트레블로오(στρεβλόω)입니다. 이 말은 고문대 위에서 비틀다, 비틀다, 꼬다, (상도에서)벗어나다, 곡해하다는 뜻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해석해 놓은 글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읽다가 보면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꼬였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생각이 정말 꼬였어요. 여러분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모르는 것은 목회자에게 물어보세요. 억지로 풀지 마세요.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은혜 받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망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디모데후서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다른 하나는 우리 신앙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디모데후서3:15>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방종이 아니라 은혜와 구원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또 성경이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되길 바랍니다.

이전글 큰 노아를 기다리며
다음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