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이 세상에는 피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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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후서3:10~13
수요예배 | 2017-04-0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몇 년 전에 제 아이가 자전거에 치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돌보는 사이에 가해자가 도망가 버렸습니다. 일단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가서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상태가 너무 심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관 두 명이 응급실로 왔어요. 사고 장소, 시간, 자전거 색깔, 인상착의 등을 이야기 했습니다. 며칠 후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담당 경찰관이 제 아이가 자전거에 치이는 장면을 보여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근처에 cctv가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찍힐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장면이 그대로 녹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녹화된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맞냐는 거예요. 그래서 또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사고 현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장면이 그대로 찍혀 있더라고요. 그날 가해자가 어디서 어리로 갔고 갔는지 가해자의 이동경로가 cctv로 추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도망을 갔기 때문에 신고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cctv가 나의 행동을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자세하게 녹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cctv450만대를 넘었습니다. cctv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동경로가 그대로 녹화되고 있습니다. 길에서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우리 행동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녹화되고 있습니다. cctv가 앞으로 더 추가될 것입니다. 피할 곳이 점점 없어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cctv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베드로후서 3:4에 있는 말씀처럼 사람들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주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심판이 우주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이 세상에는 피할 곳이 없다.

(1) 먼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습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말은 아무런 예고 없이 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올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지킨다(십인수지 부득찰일적)’고 했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재림의 날은 구원의 날이면서 동시에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더 없는 영광의 날이면서 동시에 더 없는 고통의 날입니다. 큰 은혜의 날이면서 동시에 큰 슬픔의 날입니다. 주의 날이 여러분에게는 큰 은혜의 날이 되길 바랍니다.

(2)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입니다. 본문의 큰 소리는 헬라어로 로이제돈입니다. 로이제돈은 공중에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천둥치는 소리, 불꽃 튀기는 소리, 채찍을 내리치는 소리, 거센 물이 흐르는 소리, 뱀이 지나가는 소리 등을 나타내는데 쓰이는 말입니다. 아주 강한 소리입니다. 그리고 아주 섬뜩한 소리입니다. 신약 성경에 여기에만 한 번 나오는 표현입니다. 요즘 발로 말하면 미사일이 날아가는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트기가 지나가는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여튼 굉음 중에 굉음일 것입니다. 이 굉음과 함께 하늘이 없어질 것입니다.

럼비(Lumby)라는 학자는 베드로가 이 표현을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두려움을 한 마디로 종합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천지에 여러 가지 격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7절을 감안한다면 베드로는 아마도 불심판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하늘이 불길에 휩싸여 없어질 것입니다.

(3)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물질은 물, , , 공기 등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원물질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세상은 불에 타면서 모두 분해될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아시죠? 다이아몬드와 숯은 구성 원소가 똑같습니다. 둘 다 흔하디흔한 탄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보석이고 하나는 쓸모없는 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다이아몬드가 불에 타 쓸모없는 재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금 은 보화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 때문에 힘드실 때가 있으시죠?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조그만 참으세요. 잠깐이면 다 지나갈 것입니다. 세상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기쁨도 고통도 아주 잠깐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세요.

(4)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납니다.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불에 타서 파괴되고 불살라질 것입니다. 롯데월드타워가 착공 6년 만에 개장했습니다. 123층에 높이 555.7m(555.65m)입니다. 한국에서 100층 넘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세계에서는 5번째로 높은 건물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재림할 때는 모두 불살라질 것입니다. 재물, , 차 등 우리가 아끼는 모든 것이 불에 타 버릴 것입니다.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불이 타 버릴 것입니다.

주의 날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은 전 우주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이제 곧 우주가 천지개벽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모든 인류가 다 죽는다는 거예요. 천지개벽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도를 닦는 것이라고 합니다. 천지가 개벽할 때 도를 닦으면 피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에 탈 것입니다. 모든 것이 파괴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의 날은 무섭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2.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그러면 주의 날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베드로 사도는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해야 합니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여기 바라보다는 말이 바라고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의 간절함이 있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간절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날이 빨리 오도록 재촉해야 합니다.

사모하다는 말을 NIV 성경은 speed its coming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는 것을 빠르게 하다는 뜻입니다. KJV 성경은 hasting unto the coming라고 번역했습니다. NASB 성경은 hastening the coming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는 것을 재촉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으로 주의 날을 재촉할 수 있나요?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11b-12)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 주의 오심을 재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탈무드에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단 하루 만에 진정으로 회개할 수 만 있다면 메시야가 올 것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외경인 제2에스드라서4:38 이하에도 심판이 인류의 죄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의 날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날을 앞당기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주의 날을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4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 중에는 주님의 오심을 앞당기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의 신앙과 땀이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선교사님들의 종말론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오심을 앞당기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2)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의 약속대로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새 하늘과 새 땅이 한자로 신천신지입니다. 신천신지의 약자가 신천지입니다. 어떤 이단은 신도가 144,000명이 되면 과천의 청계산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천신지가 열리면 자기들의 교파에 들지 않은 사람들은 다 지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출가해서 포교를 하고 다닙니다. 신도가 144,0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청계산에 신천신지가 열리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주장을 바꾸었어요. 이단들이지만 신천신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여러분! 100만 명 시대입니다. 그 중에 청년 실업자 수가 435천명이라고 합니다. 청년 공시생이 27만 명입니다. 공무원 준비로 인한 경제 손실이 17조원입니다. 좋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대통령입니까? 정부입니까? 우리는 암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 베드로는 암담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왜요? 이 세상에는 우리가 피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새하늘가 새 땅을 바라봅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누가 꾸며낸 곳이 아닙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곳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입니다. 이단들처럼 협박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최후의 소망입니다. 여러분! 이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새 하늘가 새 땅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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