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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작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나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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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계시록10:2
주일오전예배 | 2017-02-1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1895118일 저녁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1845~1923)이 우연히 엑스선(X-Ray)를 발견합니다. 뢴트겐은 저녁 시간에 음극선관을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검고 두꺼운 마분지로 음극선관을 덮어 높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빛도 새어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빛이 두꺼운 검은 종이를 뚫고 나왔습니다. 뢴트겐은 이것이 새로운 타입의 광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광선인지 몰랐습니다. 수학에서 미지의 물체를 X라고 하는 것처럼 뢴트겐은 이 미지의 광선을 엑스선(X-Ray)라고 불렀습니다. 엑스선의 발견은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이 엑스선은 각종 물체를 통과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뢴트겐은 그때까지 무명의 과학자이었습니다. 하지만 엑스선을 발견하고 세계적인 과학자가 됩니다. 뢴트겐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0112월에 노벨물리학상을 타게 됩니다.  

1947년의 일입니다. 미국의 레이더 제작업체인 Raytheon사에서 일하던 퍼시 스펜서라는 사람이 레이더에 필요한 마그네트론을 연구 중이었습니다. 스펜서는 작동 중이었던 마그네트론 옆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초콜릿 바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넣어 둔지 얼마 안된 초콜릿이 전부 녹아버렸습니다. 스펜서는 이것이 마그네트론에서 발생되는 극초단파 에너지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펜서는 옥수수를 가지고 실험해 봅니다. 처음 실험에서 옥수수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그네톤의 출력을 높이자 옥수수는 그 자리에서 팝콘이 되어버렸습니다. 레이시온사는 이것을 이용해 보스톤의 한 레스토랑에서 시제품 장치를 테스트 한 후에 첫 상업용 모델을 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전자레인지인 레이더레인지입니다.  

이런 놀라운 발견이 우연한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들을 대하다 보면 우연한 일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우연한 일들이 역사를 바꾸어 버립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안인희 역, 휴머니스트)라는 책을 썼습니다. 슈테판은 이 책에서 역사는 한 순간의 특정한 결정이나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중심으로 역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슈테판은 우연이라고 합니다. 사가들은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우연히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역사의 순간순간에 우리 눈에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입니다. 이 시간 함께 작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나의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1. 작은 두루마리  

힘센 천사의 손에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두루마리>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제가 쭉 세어보니 42회 나옵니다(신약21, 구약21). 구약성경은 예레미야서(12)에 신약성경에는 요한계시록(19, -2)<두루마리>라는 말이 특히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두루마리가 무엇일까요? 두루마리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아닙니다. 고대 문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둘둘 말아놓았다고 해서 두루마리라고 부릅니다. 고대에는 종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피루스(papyrus, paper의 어원)나 짐승의 가죽을 종이 대용으로 썼습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강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입니다(5m 까지 성장). 짐승 가죽은 주로 양가죽이나 소가죽을 썼습니다. 사슴 가죽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동양에서는 나무 조각을 여러 개 이어 거기에 글을 쓴 후 둘둘 말아서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종이가 없던 고대에는 파피루스, 짐승의 가죽 등에 글을 써서 둘둘 말아 보관을 했는데 이것이 두루마리입니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 사극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또한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이 됐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두루마리는 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두루마리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John Stott, 1921427~ 2011727, 향년 90)성경 연구 입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이 책에서 구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과학이나 문학이나 철학의 책이 아니라 구원의 책이다. 구원은 죄의 용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전 인류, 아니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고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전부를 의미한다.’  

우리는 구원하면 영혼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토트 목사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회복을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모든 피조물은 죄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인간의 죄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두루마리에는 죄 아래 탄식하며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두루마리는 모든 피조물의 소망입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40: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히브리서 기자 또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나를 가리켜 기록한 하나님의 계획이 두루마리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피조물의 소망입니다. 특히 두루마리는 인류의 소망입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는 책이 두루마리입니다. (그래서 힘센 천사는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루마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성경이냐는 논쟁이 있습니다. 논쟁은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두루마리가 성경 전체라는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두루마리가 요한계시록만을 가르킨다는 견해입니다. 성경 흐름을 볼 때 이 두루마리는 요한계시록입니다. 11절에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습니다. 51절에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작은 두루마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왜 요한계시록을 <작은 두루마리>라고 했을까요? 성경 전체에 비해 요한계시록의 분량이 작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작다는 말은 요한계시록의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AD 100년을 지나면서 신약 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도들의 글이 성경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베드로후서 유다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2,3서과 함께)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2세기 교회들은 요한계시록을 기피했습니다. 그래서 약 300년 동안 요한계시록은 교회 안에서 성경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397년 칼케돈 종교회의에서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27권이 신약성경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가장 늦게 정경으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꺼리는 분위기는 1000년이 넘게 계속됩니다.  

종교개혁가들까지 요한계시록을 천대했습니다. 쯔빙글리는 계시록은 성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흥미도 없고 ‧‧‧‧‧‧ 계시록은 요한의 사상 또는 말을 전달하고 있지도 않다. 나는 하고자 한다면 그 증언을 물리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1517년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도 계시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교시되지도 않았고 인정되지도 않고 있다. 또한 성령의 영감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이광복,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에 기독교적인 어떤 요소가 없다는 거예요. 물론 마틴 루터는 후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자신의 이런 견해를 수정합니다. 칼빈도 성경을 주석하는데 요한계시록을 빼놓습니다. 교회사에서 요한계시록은 계속 천대를 받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자기들의 교리에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기피하는 책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각종 성경을 공부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하지 않습니다. 저도 요한계시록은 조심스럽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역사 속에서 작은 책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저녁이었습니다. 남편이 교회 주변에서 거지 한 명을 데려왔습니다. 부인은 거지가 싫었습니다.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거지에게 눈치도 주고 천대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홀대할수록 거지의 몸이 작아졌습니다. 부인의 홀대로 거지의 몸이 한 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런데 잘 대해주면 다시 커지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거지는 천사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성경이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영적 분위기 때문에 나의 삶 속에서 성경, 요한계시록이 작아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교회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 시대 사회적 분위기처럼 우리 삶 속에서도 예수님이 점점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까?  

1907년 평양대부흥이 있었습니다. 이 부흥을 이끌었던 분이 길선주 목사님입니다. 길 목사님은 한국인 1호 목사입니다. 장대현교회 1대 원로 목사입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뺄 수 없는 영적 거장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부흥을 이끌었던 길목사님의 영성은 성경에서 왔습니다. 길 목사님은 성경을 100독 하셨습니다. 요한1서를 500독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1만 독 이상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을 우리 삶에서 크게 만듭시다. 성경을 읽읍시다. 요한계시록을 사랑합시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예수님께서 점점 커지게 될 것입니다.

 

2.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계신 역사의 주인  

두루마리가 힘센 천사의 손에 있습니다. 힘센 천사는 그 모습을 볼 때 틀림없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인류 역사의 운명이 기록된 책이 들려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운명은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 눈에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있는 자, 가진 자, 쥔 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국정농단사태의 전모가 들어나면서 블랙리스트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정부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어요. 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가 됐습니다. 그 동안 국민들은 겉으로 들어난 기사를 보고 이렇게 저렇게 판단하며 말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어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어요. 검은 손이 뒤에서 문화계와 체육계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해요. 그것은 또 다른 검은 손이 그 검은 손 뒤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 또 다른 검은 손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이지 않는 검은 손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아픔과 슬픔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끊임없이 음모를 꾸며 인류를 고통 가운데 집어 넣으려고 하는 검은 손 보다 이 세상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더 큰 하얀 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검은 손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위에 더 큰 하얀 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합니다. 사탄이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경륜입니다. 다니엘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4: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에베소서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중국을 보세요. 광활한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다 있다는 땅입니다. 역사 속에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역사가 어떻게 바뀌어 온 줄 아십니까? 무협지에 나오는 영웅호걸일까요? 제갈공명같은 현자일까요? 아닙니다. 먹을 것 때문에 역사가 바뀌어왔습니다. 중국 역사는 200~300년마다 한 번씩 바뀌었습니다. 바뀐 이유가 기후변화입니다. 기후 변화로 땅이 척박해집니다. 그러면 먹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먹을 것 때문에 이민족들이 중국 본토 안으로 계속 들어왔습니다. 이것 때문에 200-300년에 한 번씩 중국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날씨와 먹을 것이 대국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사람이 바꾼 게 아닙니다.  

성경 기록을 최초로 시작한 모세는 성경 첫 장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창세기 1장에 6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7, 9, 11, 15, 24, 30).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말씀대로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마쳐질 것입니다.

 

3. 열려있는 소망의 두루마리  

두루마리가 펴진 상태로 힘센 천사의 손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운명이 기록된 책이 예수님의 손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때 닫혀져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아무나 읽지 못하도록 도장이 일곱 개 찍혀 있습니다. 인류의 소망이 닫혀져 있습니다. 아무도 두루마리를 열수 없습니다. 인류의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요한계시록5: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두루마리는 인류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의 책이 덮여 있습니다. 끊어진 소망 때문에 사도 요한이 울었습니다. 여러분! 돈 때문에 힘들 때가 있으시죠? 직장문제, 집문제, 자녀문제 때문에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는 마세요. 우리 기도하면서 세상 문제를 이깁시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두루마리에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닫쳐진 두루마리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이때 어린 양이 나와서 두루마리를 취합니다.  

<요한계시록5: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인을 찢으셨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펼치셨습니다. 닫쳐진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펼쳐졌습니다. 여기 펴져있다는 말은 완전히 열려있다는 뜻입니다. 소망이 완전히 열려졌습니다. 이제 이 책을 누구나 읽을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의 소망을 발견하시길 소원합니다.  

힘센 천사가 두루마리를 펴서 들고 서 있습니다. 힘센 천사는 왜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서 있을까요? 책에 기록된 대로 집행하겠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책에 기록된 대로 집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된 대로 진행하십니다. 나의 소망의 집행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의 직책이 비문계입니다. 비밀문서 취급하는 직급이었습니다. 이 비밀문서를 보관하는 곳이 비합소입니다. 비밀문서합동보관소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부대 전체의 비밀문서가 모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기밀문서에는 평상시, 비상시 그리고 전시에 부대가 어디로 이동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2020년까지 부대 작전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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