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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서
9절에 ‘주께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주께서’라는 말씀을 보면 가장 먼저 다니엘서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다니엘 1: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그런데 이 ‘주께서’라는 말은 선지자들이 즐겨 쓰던 표현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이사야 2: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예레미야 10: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여기 ‘주’라는 칭호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주되신 하나님 아래 있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주님의 권능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어떤 사건에 대해 서술할 때 하나님을 ‘주’라고 표현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주라는 칭호를 예수님께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된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납니다. 일이 크든 작든 그 모든 일들은 우리 주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큰 일은 주님께서 주관하신다. 하지만 작은 일은 주님께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뭐 이런 일까지 신경 쓰실까?’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작은 신음에도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설마 이런 하찮은 일까지 도와주실까?’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섭리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2. 주께서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십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십니다.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백성 가운데’라는 말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너희 중에도’라는 말은 ‘초대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에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초대교회 가운데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거짓 선생들은 교회 안으로 이단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며칠 전에 신천지가 영남 지역에서 급부상 한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 최근 5년간 3배가 증가했다는 거예요. 신천지가 우리 기성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근천에 있는 교회에서 얼마 전에 신천지로 몇 명이 나가면서 교회가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교회에 아픔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10여년 전에 이단에 빠졌었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오래 다닌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영향이 지금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지금도 아파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 불평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단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왜 교회를 보호하지 않으실까?’ ‘하나님은 왜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두시는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처음부터 보호하실 수는 없는 것인가?’ 예 맞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허락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시험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시험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시험이 아픔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이 우리를 더욱 자라게 합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시험을 당하면서 움츠러들지 말아야 합니다.
폴 마이어 박사가 메기와 금붕어를 가지고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큰 어항 중간에 투명한 유리로 막아 놓고, 한쪽에는 금붕어, 다른 한 쪽에는 메기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메기가 금붕어를 잡아먹으려고 쏜살같이 달려가다가 유리벽에 부딪혀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러기를 수차례 거듭하자 나중에는 유리를 치워버렸는데도 메기는 유리가 있는 지점에 오면 부딪혀 보려고 하지도 않고 되돌아 서버렸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과 아픔으로 인해서 메기의 사고구조가 실패의 사고구조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시련을 겪다보면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잘 움직이지 않아요. 가만히 있게 돼요. 시험을 당해 또 아픔을 겪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메기처럼 가만히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이 세상 살면서 아픔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 시험을 통해 우리를 유익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자들은 시험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여러 가지 일을 만나면서 결국 선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을 이루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께서 불의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1절 하반절에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고 했습니다. 이해하기가 약간 어렵습니다. 이 말씀이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좀 더 쉽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을 벌하셔서, 심판 날까지 가두어 두실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 악인들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불의한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벌을 받은 상태에서 심판 날까지 갑니다. 그런 다음 최종 심판을 받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불의한 자들의 모습이 10절에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첫째,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합니다. 육체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육체의 본성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세상에 온갖 더러운 것뿐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여기 ‘주관하는 이’가 하나님입니다. 주관하는 이를 멸시한다는 말은 두려움 없이 마음대로 행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 보세요. 마음대로 말하고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셋째, 천사들까지 비방합니다. 10절 하반절에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이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해서, 하늘에 있는 영광스러운 이들을 모욕하면서도, 두려운 줄 모릅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당돌하고 거만해 영광스런 존재들을 주저함 없이 모독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거짓 선생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하고 천사들을 비방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하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싫었던 것 같아요. 저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하나님을 욕하는 것을 듣기 싫은 뿐만 아니라 입에 올리도 싫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교만했는지 천사는 물론 하나님께서 멸시했습니다. 교만의 최고봉입니다.
4. 천사들의 겸손
반면에 하나님의 천사들은 겸손했습니다.
<11절>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거짓 교사들은 인간입니다. 인간이 잘 난 것 같지만 천사에 비하면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천사가 하룻밤에 군사 십팔만 오천명을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천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100만 명 아니 그 이상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천사와 사람은 존재는 비교불가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은 거짓 교사들이 자기를 비방해도 가만히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옳고 그름은 우리 하나님이 따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심판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천사들은 모든 주권을 우리 주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억울한 일을 만납니다. 때로 답답한 일을 만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주인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께서 모든 것을 선악간에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주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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