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극히 값진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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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13:45-46
주일오전예배 | 2017-01-2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보물찾기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보물찾기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은 학교 주변에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돌밑, 나무뿌리, 나뭇가지 틈새, 나무껍질 속 등등에 보물을 숨겨두십니다. 보물을 찾기 전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어디 어디 가면 어떤 부분에 보물이 있을 것이라고 힌트를 주십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그곳으로 막 뛰어가죠. 보물에 종류가 있습니다. 아예 보이지 않는 보물이 있습니다. 돌 밑에 있는 것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종이 끝이 조금 보이는 보물이 있습니다. 주로 나무 틈에 끼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냥 다 보이는 보물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그냥 줍도록 던져 놓은 것들입니다. 발에 걸리는 보물도 있습니다. 낙엽 밑에 있는 보물들입니다. 보물이 숨겨져 있지만 학생들이 찾을 수는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만 열심히 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물찾기입니다. 저는 성경 진리가 보물찾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생님 되신 하나님께서 찾을 수 있도록 힌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대로만 하면 하나님의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비유를 <진주의 비유> 또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라고 부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진주와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천국과 진주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둘째로 천국과 진주 상인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천국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천국과 진주

먼저 천국과 진주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진주는 바다 속에서 사는 조개(연체동물)의 몸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조개는 먹이활동을 할 때 입을 벌립니다. 이 때 아주 작은 모래알이나 생선 뼈 같은 고체들이 조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서리가 뾰족한 모래알이나 생선 뼈 조각은 살이 연한 조개에게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날카로운 뼈가 연한 살을 찌를 때 얼마나 아프고 아리겠습니까? 조개는 본능적으로 모래알을 몸 밖으로 토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이때 조개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조개는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모래알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먹이활동을 계속합니다. 상처는 점점 커집니다. 결국 조개는 죽습니다. 다른 하나의 반응은 몸속에 들어온 이 물질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때 조개 몸속에서 nacre(mother-of-pearl)라는 즙이 나옵니다. 이 즙을 생명의 즙또는 진주액이라고 합니다. 이 생명의 즙이 모래알을 감쌉니다. 조개는 생명의 즙으로 1년이든 2년이든 모래알을 싸고 또 쌉니다. 수년 동안 수 천 겹의 진주층이 이물질에 쌓입니다. 이것이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진주는 탄산칼슘과 단백질의 조합입니다. 그래서 가볍고 아주 단단합니다. 그리고 광택이 납니다.

그렇다고 모든 조개가 다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조개를 만들 수 있는 조개가 따로 있습니다. 물속에 조개는 103천 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는 15,000종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아름다운 진주는 아닙니다. 정말 가치 있는 진주를 만들어 내는 조개는 1,300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주 가치는 7가지 요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크기, 형태, 칼라, 광택, 표면 상태, 네이커 품질, 매칭 등입니다. (그러나 진주의 종류에 따라서 어떤 하나의 가치 요소가 다른 가치 요소들보다 진주의 가치에 더 깊은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천연 상태에서 이 일곱 가지 기준을 완전히 만족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진주는 고대부터 아주 가치 있는 보물로 여겨졌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 1천억이 되는 진주가 티브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조개가 몸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래알을 자기 몸의 일부처럼 받아들여 끌어안고 생명의 즙을 짜낼 때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진주의 생성 원리는 우리 사람들의 인생의 모습과도 아주 흡사합니다. 인생의 진주도 아픔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아픔을 회피하거나 피하지 않고 끌어안아 삶의 깊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은 삶의 진주가 하나 둘 씩 다 있습니다. 진주의 생성 원리가 우리 사람의 삶의 모습과 아주 비슷합니다.

또 진주는 기독교 진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영적 죽음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은 바다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문학과 영화에서 그리고 성경에서 끊임없이 바다는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죽어버린 이 세상이라는 바다 오셨습니다. 조개가 모래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상처를 입지만 모래를 끌어안고 생명의 즙을 분비하여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예수님은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오셔서 인류의 죄악을 끌어안으시고 생명의 즙을 분비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진주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주 중의 진주입니다. 제가 지나치게 진주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결시키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진주로 시작해서 진주로 끝이 납니다.

<창세기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에덴동산에 흐르는 강에 베델리엄이 있었습니다. 베델리엄이 진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에 만드신 세상에 베델리엄이라는 진귀한 진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주가 요한계시록에도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21 >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진주가 천국문의 재료입니다. 성경은 에덴동산의 진주로 시작해서 천국문의 진주로 마칩니다. 진주는 천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천국의 주관적 체험을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6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예수님은 복음의 진리를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게 하는 복음의 진리가 진주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주의 진리는 우리 삶의 진리와 아주 유사합니다. 진주의 진리는 우리 기독교 십자가의 진리와 비슷합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깊은 진리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깊은 바다 속에서 진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배워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기를 원한다면 진주를 만들어내는 한 마리의 조개가 되십시오. 천국의 진리는 이 땅의 진주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2. 천국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

또 예수님은 천국을 좋은 진주, 아름다운 진주를 구하는 상인에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여기 구한다는 말이 전심전력을 다해서 찾는다는 뜻입니다. 진주 상인은 좋은 진주를 아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납니다. 여기 극히 값진이라는 말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둘도 없는’(πόλύτιμος)이라는 뜻입니다. 진주 상인은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진주를 사고팔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각종 진귀한 진주들을 많이 보고 만져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진주 상인은 이제까지 자신이 만난 진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진주를 만납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 밖에 없는 진주입니다. 진주 상인은 이것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팝니다. 그리고 진주를 샀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진주 상인은 많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좋은 진주를 아주 열심히 구하고 찾는 상인과 같습니다. 왜 예수님은 천국을 진주를 열심히 구하는 상인에 비유하고 있을까요?

사람은 끊임없이 가치와 의미를 구하고 찾고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개는 먹이를 먹을 때 그냥 먹습니다. 짐승이 먹이를 먹는 것은 본능입니다. 본능에 따라 먹이를 먹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밥을 한 숟갈 먹더라도 내가 이 밥을 왜 먹고 있지?’, ‘내가 이 밥을 먹을 만한 일을 하고 있나?’, ‘내가 이 밥을 먹어도 되나?’라고 생각하며 먹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밥 한 숟가락에서도 가치와 의미를 찾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있게 산다는 것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빅터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개미나 벌이나 다른 동물은 그들의 존재가 의미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존재 의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의 특권이다. 사람은 그런 의미를 찾을 뿐 아니라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인간이 개나 고양이, 곤충 등과 확연히 다른 것은 의미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인간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의미를 찾는 건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찾는 게 당연하듯, 인간이기에 당연한 모습입니다. 인간은 무언가에서 의미를 찾고 추구하도록 지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개는 그냥 길을 갑니다.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개가 길을 가면서 내가 이 길을 왜 가고 있지?’라고 하며 고민하지 않습니다. 개가 내가 이 길을 가고 또 가면 저 끝에 내 인생의 가치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길을 가면서도 고민합니다.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지?’, ‘이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일까?’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생각합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사람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진주를 찾고 구하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의미에 약간의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관심이 특히나 많아요. 삶의 의미 때문에 골몰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아주 열심히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에게서 진주를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에서 진주를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술에서, 어떤 사람은 학문에서, 어떤 사람은 스포츠, 어떤 사람은 봉사, 어떤 사람은 여행, 어떤 사람은 문학에서 진주를 발견합니다. 그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그것에 빠져듭니다. 그것을 통해 보람 있는 삶을 삽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이 인생을 보람 있게 삽니다.

천국은 바로 좋은 진주를 찾고 또 찾는 사람과 같습니다. 세상에 진주를 찾는 상인은 많습니다. 별의 별 진주 상인이 많습니다.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좋은 진주를 찾고 또 찾으세요. 그러면 극히 값진 진주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극힌 값진 진주를 열심히 찾다보면 누구나 다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수 없이 많은 성인군자들이 인생의 좋은 진주를 찾으려고 했지만 모두가 다 찾은 것은 아닙니다. 발견한 사람이 있고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철환 씨의 보물찾기라는 책에 나오는 보물찾기라는 글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미술 시간이 되면 나는 늘 주눅이 들고 말았습니다. 크레파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아신 뒤로 선생님은 나를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미술 시간만 되면 짝꿍의 크레파스를 빌려 썼습니다. 눈치가 보이면 다른 친구들의 크레파스도 빌려 썼습니다.

"! 내 크레파스 그만 써 ……."

이맛살을 모으며 친구가 쌀쌀맞게 말하면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혀 여러 날 동안 아프기도 했습니다. 미술대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빨간 소방차 한 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소방차를 그리려면 빨간색 크레파스가 필요했습니다. 소방차를 그리는 친구들에게 빨간색 크레파스를 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너 쓴 다음에, 빨간색 나 좀 빌려 줄래? 너 다 쓴 다음에 ……."

"나도 다 그리려면 아직 멀었어."

"치사하게 ……."

나는 부루퉁해진 얼굴로 띄엄띄엄 혼잣말을 했습니다. 운동장 한쪽에 무 밑동처럼 꽂혀 있다가 구름다리 위로 올라갔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꽁지를 까불며 구름다리 위로 짹짹짹 날아왔습니다.

그해 가을, 우리는 정릉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점심밥을 먹은 후 보물찾기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구석구석 감추어 놓은 종이를 찾아 펴 보면, 종이에는 크레파스, 연필, 노트, 스케치북 같은 보물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짝꿍 기종이와 함께 종종걸음을 치며 보물을 찾았습니다. 돌멩이도 들춰 보고, 바위틈도 만져 보고, 구새 먹은 나무의 구멍도 다람쥐처럼 쭈뼛쭈뼛 들여다보았습니다. 키가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는 보물을 찾았습니다. ……. 하얀 종이 위에 '크레파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꽃송이 같은 번개가 내 마음에 번쩍거렸습니다.

담임선생님은 패랭이꽃처럼 웃으며 큼지막한 크레파스를 내게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 눈치를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 하는 날, 내 짝꿍 기종이 집에 놀러 갔습니다. 기종이가 말했습니다.

"철환아, 이건 비밀이야. 절대 말하면 안 돼."

기종이는 말할까 말까 입을 쫑긋쫑긋 거렸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가을 소풍 갔을 때 말이야. 철환이 네가 보물을 찾아서 커다란 크레파스를 받았잖아. 사실은, 그 크레파스…… 선생님이 주신 거야. 소풍 가던 날, 선생님이 나한테만 말하셨거든. 철환이 너를 데리고 느티나무 아래로 가라고……. 느티나무 아래 있는 돌멩이를 철환이 네가 들춰 보게 하라고……너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기종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어둑어둑할 무렵, 기종이 집을 나왔습니다. 들꽃 같은 집들이 줄레줄레 늘어선 산동네 조붓한 골목길을 오르는데, 전근 가시기 전날 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철환이 네 꿈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했지?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화가가 될 수도 있고, 글을 잘 쓰니까 시인이나 소설가도 될 수 있을 거야. 철환아, 꽃은 양지에서만 피는 게 아니란다. 달맞이꽃은 햇볕이 없는 음지에서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거든.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절대로 기죽지 말아야 한다. 선생님하고 약속할 수 있지?"

골목길을 걷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선생님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이철환 씨에게 크레파스를 선물하려고 각본을 짰습니다. 그 각본대로 이철환 씨는 크레파스를 발견했습니다. 이철환 씨가 볼 때는 우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는 무엇일까요? 극히 값진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극히 값진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우연처럼 보입니다. 어쩌다가 친구 따라 교회 왔습니다. 이웃의 손에 이끌려 교회 갔습니다. 가족을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어쩌다가 미션 스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짜 놓은 각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이었습니다.

3. 천국의 가치

마지막으로 천국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한 상인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진주를 샀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야 할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판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팔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이었던 베드로는 꽤 큰 집에서 산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버나움에 가면 베드로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집이 꽤 큽니다. 물론 베드로의 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은 물론 동생 가족과 장모님까지 모시고 살았던 것을 보면 베드로는 큰 집에 산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자신의 집을 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그 집을 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삭개오는 아주 부자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적어도 자신의 재산의 반을 팔았습니다.

<누가복음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삭개오냐! 극히 값진 진주를 찾은 사람은 재산의 반이 아니라 다 팔아야 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9:9)  

그런데 예수님께서 전 재산을 다 팔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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