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들으시는 기도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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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17:1
금요철야 | 2017-01-2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기도 응답하면 꼽히는 사람이 죠지 뮬러(1805~1898년)입니다. 독일인 출신 선교사로 영국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평생 15만 명의 고아를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죠지 뮬러는 평생 5만 번의 기도를 응답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죠지 뮬러의 기도 응답의 관한 다섯 사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죄에 대해서 정직하라. 둘째, 동기가 분명한 기도를 하라. 셋째,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라. 넷째,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라. 다섯째, 믿음으로 기도하라. 우리는 기도할 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시간 다윗의 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1. 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인은 자신의 기도를 ‘의의 호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히 체다카)라는 말은 ‘정당함, 올바름, 적절함’ 등의 뜻입니다. 이 부분을 <개역성경>은 ‘정직함’이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나의 옮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시인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잘 못이 없습니다. 시인은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변론이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살기 위해 도망갔습니다. 원수는 포기하지 않고 아주 집요하게 추격해왔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함께 맞서 싸웠을 것입니다. 아니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선 고양이를 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막다른 골목에서도 자시를 죽이려는 원수와 싸우지 않습니다. 시인은 싸움에 명수입니다. 원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싸우지 않습니다. 단지 기도할 뿐입니다. 만약 싸웠다면 양쪽 모두 다 잘못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의 기도가 아니라 불의의 기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끝까지 순전함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정당한 기도라고 합니다. 의의 호소라는 말은 죄가 없는 호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의의 기도입니다.

2.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인은 나의 ‘울부짖음’이라고 했습니다. ‘울부짖음’이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부르짖음’(히, 린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떤 소리가 울려 퍼질까요? 큰 소리일까요? 둔탁한 소리일까요? 소리가 울려 퍼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는 소리가 커야 합니다. 작은 소리는 울리지 않습니다. 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다른 하나는 반복되는 소리입니다. 큰 소리도 한 번만 나는 소리는 금방 사라집니다. 울려 퍼지지 않습니다. 반복적이어야 합니다. 크고 끊이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여러분! 한 밤 중에 아기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쉬지 않고 우는 아기 소리는 고요한 밤중에 이웃까지 울려 퍼집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습니다. 어느 집에서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마을에 있는 개가 다 짖어요. 여러 마리의 개가 쉬지 않고 계속 짖어 댑니다. 그러면 달 밝은 밤 시골 마을에 온통 개 짖는 소리로 울려 퍼집니다. 시인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번 소리 지르고 만 것이 아니라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기도는 하나님 앞까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3. 진실된 기도를 들으십니다.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짓’(히, 미레마)이라는 말이 속임, 사기, 배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NIV 성경은 기만의, 사기의(deceitful)라고 번역했습니다. KJV는 ‘꾸며낸, 거짓의’(feigned)라고 번역했습니다. 한 마디로 사기치는 입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 입술은 아주 간사합니다. 입술은 모든 상황을 자기가 유리하가 말을 바꿉니다. 우리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불리하면 아를 어로 바꾸는 것이 입술입니다. 한 마디로 입술은 거짓말을 정말 잘합니다. 사람은 하루에 거짓말을 얼마나 할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제럴드 젤리슨은 20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각자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녹음한 뒤 분석했어요. 그랬더니 하루에 200회의 거짓말을 하더래요. 7분 2초에 한 번씩 하는 꼴입니다. 사람이 하루에 8시간을 잔다면 5분 4초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하는 꼴입니다. 시인의 입술은 진실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기도는 사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꾸며낸 것도 아닙니다. 모든 상황이 진실입니다. 

4.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나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1절에 ‘당신’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나’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자신이 어떤 관계인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나와 당신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는 1인칭과 2인칭입니다. 요즘은 핸드폰에 상대 전화번호가 다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전화를 하면 내가 누군지 밝힙니다. 저도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면 “안녕하세요. 누구님! 서요한 목사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조금 더 가까운 사람에게 통화를 할 때는 “서 목사예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첫 마디가 “저에요.”입니다. 어머니와 저와의 관계입니다. 어떤 때는 이 말도 안합니다. 그냥 “식사 하셨어요?”라고 묻습니다. 이것이 부모 자식 간에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시인이에게 배웁시다. 시인의 삶에서 기도를 배웁시다. 시인의 기도의 태도를 배웁시다. 그리고 시인처럼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합시다. 이것에 기도가 응답되는 비결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듣지 않으시는지 아무 것도 모른 체 맹목적으로 기도하지는 맙시다. 한 마디의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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