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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당신은 어떤 옷을 입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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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 6:33~40
주일오전예배 | 2026-06-2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아주 먼 옛날에 쥐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이 쥐는 고양이가 무서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물주에게 빌었습니다. “조물주님, 조물주님, 저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시면 편안하게 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물주는 그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쥐는 고양이가 되면 무서운 것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웬걸, 이제는 호랑이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조물주에게 빌었습니다. 조물주는 그 고양이를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호랑이가 되면 이제야 정말 무서운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포수가 무서웠습니다. 포수에게 한 번 걸리면 아무리 무서운 호랑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물주는 그 호랑이를 다시 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든 쥐의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가 없구나, 그냥 쥐로 사는 게 좋겠다.” 겉모습은 호랑이인데 심장은 쥐의 심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겉모양은 사람인데 혹시 생쥐의 심장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쥐의 심장은 1분에 300번에서 600번을 뛴다고 합니다. 초당 5번에서 10번을 뛰는 것입니다. 북부짧은꼬리땃쥐는 분당 900회 이상 뜁니다. 정말 빨리 뛰죠. 새의 심장은 분당 100회에서 1200회를 뛴다고 합니다. 벌새는 비행 중에 분당 1260번까지 뛴다고 합니다. 벌새가 동물 중에서 심장이 가장 빨리 뜁니다. 쥐의 2배입니다. 아주 빠른 날개 짓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새 가슴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봅니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몸집이 작을수록 심장이 더 빨리 뜁니다. 사자의 심장은 분당 40~50회 뜁니다. 고래는 쉬거나 산소를 보충할 때는 분당 25~37회 뛰지만 잠수할 때는 2~8회 뛴다고 합니다. 적게 뛸 때는 30초에 한 번 뛰는 것입니다. 쿵하고 뛴 다음 한 참 후에 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은 분당 몇 번 뛰십니까? 심장은 불안하거나 두려우면 더 빨리 뜁니다. 여러분의 가슴은 쉴 새 없이 콩당콩당 뛰는 새가슴입니까? 생쥐의 심장이십니까? 아니면 사자의 심장이십니까? 빌립보서 1:8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래의 심장도, 사자의 심장도 아닌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몸에 예수님의 피가 흐릅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사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쥐의 심장으로 살지 마십시오. 새 가슴으로 살지 마십시오. 사자의 심장의 사십시오. 기드온은 새의 가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사자의 심장을 갖게 됩니다.

 

 

 

기드온이 므낫세 산지에 있는 바알 제단과 아세라 신상을 파괴하고, 거기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은 기드온이 벼락을 맞든지 아니면 갑자기 죽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바알을 이겼습니다. 기드온이 바알을 이겼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기드온이 우상을 파괴했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에 용기를 얻고 우상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드온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은혜의 불이 붙었습니다. 부흥이 시작됐습니다. 마귀가 싫어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혜를 받고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가 영적으로 각성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움추려 살기를 바랍니다. 왜요? 그래야 장악할 수 있거든요. 이스라엘 지역에서 점점 우상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에 영적 각성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때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치러 모였습니다. 마귀가 부흥을 막으려고 모이게 한 것입니다. 33절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그때에”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 제단을 파괴한 때입니다. 은혜 받으면 마귀가 반드시 은혜의 불을 끄려고 시험에 빠뜨립니다. 그때 마귀의 시험에 주저앉지 마십시오. 가슴에 계속 은혜의 불이 타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가슴에 부흥의 불이 계속 타기를 소원하십니다. 은혜의 불이 우리 교회와 제 가슴에 그리고 여러분의 심령에 붙어 뜨겁게 타오르기를 소원합니다.

 

또 이때는 추수 때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1년에 한 번씩 추수 때에 침략해 대규모의 약탈을 감행했습니다(6:3). 미디안의 군대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성경에서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땅을 골짜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지도 산과 산 사이에 있으면 아무리 넓어도 골짜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개념이 다릅니다. 이스르엘 평원 동쪽 끝자락에 길보아산이 있는데 길보아 산 밑에서 두 개의 강이 시작됩니다. 서쪽 방향으로는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기손 강이 있고, 동쪽 방향으로는 벧산을 지나 요단 계곡으로 유입되는 하롯 강이 있습니다. 이스르엘은 비옥한 평야와 강이 어우러진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름진 평야입니다. 또 애굽에서 베니키아, 메소포타미아로 가는 국제도로가 있는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을 장악하면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집니다. 이스르엘 평야는 허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군대가 이곳에 진을 친 것입니다. 마귀는 이스라엘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마귀는 중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족의 위기 때에 여호와의 영이 아주 강력하게 기드온에게 임하셨습니다. 34절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제가 34절 말씀을 여러 번역 성경으로 대조하며 살펴봤는데 번역 성경마다 해석이 참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라는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주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으니”라고 번역했습니다. 많은 번역 성경이 사로잡았다고 번역했습니다. 임했다는 말은 사로잡았다는 의미입니다. 기드온이 성령께 사로잡혔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세상 어두움,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세상 어두움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두려움,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마귀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물리치십시오.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성령께 사로잡힐 수 있을까요? 마음 속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십시오.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자 성령께서 기드온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엎드리십시오. 그래서 성령께 사로잡히십시오. 그래야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의 시대에 기드온은 성령님께 사로잡혔습니다.

 

NASB는 “주의 영이 기드온을 덮었다.”(cover)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기드온을 덮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보면 큰 파도가 확 덮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몸이 물에 확 잠겨버립니다. 몸이 물에 빠지는 거예요. 덮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큰 능력에 푹 잠겼다는 의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 사실을 계시했습니다. 당시에는 처녀가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천사의 계시에 마리아는 깜짝 놀랐고, 두려웠습니다. 아주 당황했습니다. 그때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자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해진다는 뜻입니다. 위기 때에 기드온이 성령님의 권능에 덮여 담대해졌습니다.

 

ESV 성경은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라는 말씀을 “주의 영이 기드온에게 옷을 입혔다”(But the Spirit of the Lord clothed Gideon)라고 번역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다는 말씀은 기드온이 주의 영(성령)으로 옷을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아이언 맨 영화를 보면 나노 입자가 몸 위로 순식간에 뻗어나가 무적의 슈트가 사람에게 순식간에 입혀집니다. 그러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무적 인간이 됩니다. 성령의 옷이 나노 슈트처럼 기드온에게 입혀졌습니다.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옷이 입혀지듯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 군인은 완전무장을 합니다. 전투복을 입고, 전투화를 신고, 철모를 쓰고, 총을 어깨에 멥니다. 기드온이 싸우러 나가기 위해 성령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이 전쟁은 육적 싸움이면서 동시에 영적 싸움입니다. 그래서 먼저 기드온이 성령으로 옷 입은 것입니다. 성령의 옷을 입었다는 말은 새 사람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기드온이 하나님으로 옷을 입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성도의 참된 무기라는 뜻입니다. 성도의 진짜 무기는 하나님입니다. 겁이 많고 소심한 기드온이 성령으로 옷을 입고 큰 용사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참 힘과 능력이 되십니다.

 

요새는 그런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없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때, 청년 때 장로님 권사님들이 예배 대표기도를 할 때 “말씀을 전하실 때 목사님께 성령이 두루마기를 입혀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부흥회를 하면 “강사 목사님께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성령의 두루마기라는 표현을 아주 많이 썼습니다. 성령의 두루마기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두루마기라는 한복의 외투, 겉옷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이 용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옷을 입으셨습니까? 두려움의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걱정, 근심, 염려, 불안의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늘 불안하고 두렵지 않으십니까? 마귀는 이 세상 어두움으로 여러분에게 옷 입히려고 합니다. 성령의 옷을 입고 새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 악한 영들입니다. 에베소서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마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옷을 입으십시오. 성령의 옷을 입으십시오. 말씀의 옷, 복음의 옷을 입으십시오. 은혜를 받으십시오.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라는 말씀을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감쌌다(휘감았다)”고 번역했습니다. 역대상 12:18에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휘감는 은혜가 있습니다. 청주 좋은 교회가 있습니다. 전원교회로 고 한영제 목사님이 설립한 교회입니다. 한영제 목사님이 교회를 건축할 때 건축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서 현장에 들어갔는데 위에서 커다란 유리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바람이 불어 휘장이 날아와 목사님 휘감아 버렸습니다. 그 위에 유리가 떨어져 유리가 깨졌지만 한 목사님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 다니던 한윤희 집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집사님은 청주 좋은 교회 출신입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라 내용이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건을 두고 하나님이 한 목사님을 품에 감싸 안으셨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은혜로 휘감아 보호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당신의 백성의 전후좌우를 두르는 역사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휘장이 휘감듯 감싸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성령의 옷이 입혀지자 새로운 사람이 됐습니다. 기드온이 나팔을 힘차게 불었습니다.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미디안이 쳐들어왔음을 알리고,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나팔은 영적 각성입니다. 기드온이 원수에게 억눌려 깊은 잠에 빠진 동족들을 깨운 것입니다. 일어나서 우리 함께 싸우러 나가자고 독려한 것입니다. 이전의 기드온에게서는 상상도 못할 모습입니다. 나팔은커녕 누가 덤비면 피하는 겁쟁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새가슴이 사자가슴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두려움과 걱정 근심이 엄습해오면 나팔을 힘차게 불고 분연히 일어나 싸울 믿음의 용기가 있습니까?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습니까? 담대함이 없다면 성령의 옷을 입으십시오. 걱정, 근심, 두려움의 옷을 벗어버리십시오. 성령의 옷을 입자 겁 많고 소심했던 기드온이 앞장서서 전쟁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히드라라는 괴물이 나옵니다. 히드라는 목이 아홉입니다. 목 하나를 자르면 자른 자리에서 목 두 개가 나옵니다. 잘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자르면 더 강해집니다. 걱정, 근심, 두려움은 잘라도 잘라도 계속 나옵니다. 하나를 자르면 두 개 세 개가 나옵니다. 걱정, 근심이 히드라의 목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나옵니다. 자르면 나오고 자르면 나옵니다. 어떻게 이 걱정, 근심을 잘라버릴 수 있습니까?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목을 벴습니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목을 자르고 목이 다시 나오기 전에 불로 지져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이 다시 나오지 못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불로 이겼습니다. 어떻게 걱정, 근심,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성령의 권능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불로 마음의 두려움과 걱정을 지져버리십시오. 다시 자라지 못하게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십시오.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으십시오. 기드온은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기드온이 나팔을 불자 아비에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몰려 들었습니다. 아비에셀이 그 뒤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씨족 사회입니다. 씨족들끼리 모여 살았습니다. 아비에셀 사람들은 기드온의 친족들입니다. 기드온의 친족들은 기드온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기 때에 친족들이 겁쟁이에게로 모여든 것입니다. 친족들이 겁쟁이 뒤에 선 것입니다. 참 이상하죠. 왜 그랬을까요? 친족들은 가까이에서 기드온이 성령으로 변화된 모습을 안 것입니다. 우리도 기드온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을까요?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없을까요? 세 가지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기침, 가난, 사랑입니다. 사랑은 행동과 표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사랑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은혜 받은 것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은혜 받으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가까운 사람이 내가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됩시다. 가족과 가까운 직장 동료들이 내가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도록 은혜를 충만하게 받읍시다. “당신 달라졌어.” “너 다른 사람이 됐어.”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드온이 나팔을 불자 가장 먼저 가문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기드온으로 인해 영적인 구원과 부흥이 집과 가장 가까운 친족공동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 부흥이 가족과 교회 안에서부터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이 다른 지파에 사람을 보내 병력을 더 모읍니다. 35절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므낫세는 기드온이 속한 지파입니다. 기드온이 열두 지파 중에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만 사람을 보낸 이유는 이 세 지파가 이스르엘 평원 근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지파는 미디안 진영에서 가깝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 지파들입니다. 사람들이 더 모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를 세어보니 32,000명 밖에 안 됐습니다. 성령께서 기드온을 휘감으셨고, 나팔을 힘차게 불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고작 모인 인원이 32,000명뿐입니다. 미디안 군대는 135,000명입니다. 4배가 넘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군대는 싸움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오합지졸이고, 미디안 군대는 정예군입니다. 135,000명 중에는 아말렉 족속도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 전투민족이자 기습과 약탈에 능한 유목인이었습니다. 동방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동쪽에 살던 민족으로 좋은 목초지를 찾아 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족속이었습니다. 미디안 연합군은 싸움에 능한 전투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주셔서 가슴이 뜨거워져 나팔을 힘차게 불었는데 고작 모인 인원이 32,000명입니다. 적어도 적군의 숫자만큼은 모여야 싸울만한데 1/4밖에 안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네가 미디안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하셨는데 거꾸로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한 사람을 치듯 하게 생겼습니다. 힘이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 붙잡고 헌신했는데 사람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뭐 하시는 걸까요? 의문이 생겼습니다. 답답했고 실망했습니다. 다시 새 가슴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이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기드온이 현실의 벽에 부딪쳤습니다. 약속의 말씀과 눈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달랐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삶의 현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과 현실이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약속을 끝까지 붙잡아야 할까요? 아니면 현실의 상황에 무릎을 꿇고 약속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굳세게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약속이 이루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살다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의 역행합니다. 그때 더 약속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현실화시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게 합니다. 약속과 현실의 차이가 있을 때 믿음을 더욱 굳게 하십시오. 믿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네덜란드의 캐스퍼 텐 붐이라는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대학살을 피해 도망 다니던 유대인들을 집(시계방 건물)에 숨겨주었습니다. 그들은 집 침실 뒤쪽에 비밀 은신처를 만들어 수많은 유대인의 생명을 구했으나, 나치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이 일로 코리 텐 붐의 가족은 체포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캐스퍼 텐 붐은 체포된 직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코리 텐 붐은 언니 베시와 함께 독일의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여성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거기서 옷이 다 벗겨지는 모욕을 당하고, 영하의 날씨에서 하루 11시간의 강제 노동을 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언니 베시와 코리 텐이 배정받은 방에는 벼룩이 얼마나 많은지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막사 내에 셀 수 없이 많은 벼룩들이 들끓어 몸을 물어뜯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적이었습니다. 벼룩이 너무 많아 간수들이 근처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몰래 가지고 들어온 성경을 마음껏 읽었고 예배와 기도를 드리며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언니는 1944년 12월 16일에 영양실조로 죽습니다. 베시는 죽기 전에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가장 깊은 구덩이보다 하나님의 사랑은 더 깊다.” 믿음이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 사람들은 낙심합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기드온은 현실의 벽 앞에서 하나님께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36절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군대는 많고 강했는데 이스라엘은 너무 적고 약했습니다. 기드온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기드온은 약속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약속이 맞는지 확인하는 기도를 합니다. 기드온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37절) 이슬이 양털에만 맺히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기드온에게 초자연적인 역사를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38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물이 그릇에 가득히 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표징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기드온이 이번에는 거꾸로 기도합니다. 이슬이 땅에만 내리고 양털에는 내리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39절). 하나님이 이 기도에도 응답하셨습니다(40절).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반복해서 표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표징으로 기드온의 믿음을 굳게 해주셨습니다.

 

 

 

기드온의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이 미디안을 물리치게 될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기드온이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물증에 두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드온의 기도는 바른 기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연약한 자리까지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높이를 기드온에게 맞추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내려오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십자가는 눈높이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말씀 자체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물증이 필요합니까? 사람들이 예배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며 아멘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세상으로 돌아가면 보여주어야 믿겠다고 합니다. 도마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부활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눈에 보이는 어떤 물증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만 근거하기를 바랍니다. 말씀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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